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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26일 금요일 17: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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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불타고 있다. 〈파이어 앳 시(Fire at Sea)〉

리비아와 시칠리아 사이의 작은섬 람페투사는 배를 타고 유럽으로 불법이주하는 아프리카난민들이 반드시 거치는 곳이다. 이곳에 연간 15만명의 난민이 배를 타고 불법으로 건너온다. 그 과정에서 하루평균 30명이 목숨을 잃는다. 거금을 주고 몸을 싣는 이들은 선박에서 유출되는 연료와 바닷물간의 화학반응에 의한 열기나 탈수증세 때문에 부상 또는 죽음에 이른다. 바다라는 거대한 물위에서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겪으며 죽는 모순된 현실은 난민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프리카 민중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배에 몸을 싣는 이유는 간단하다. 본래 살던 터전에서 더이상 살아갈수 없기 때문이다. IS에 의한 테러, 내전, 변방으로 밀려 사하라사막을 건너다가 죽어야하는 현실. 제국주의의 지배와 착취로 인해 아프리카민중들이 겪는 고통은 그들로 하여금 배에 운명을 맡길 수 밖에 없는 난민의 삶을 선택하게 한다. 난민들은 난파된 배에서 절박하게 구조요청을 하고, 구조지역에서 기도하고, 축구경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쌍둥이를 임신한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고통을 노래하고 바다를 건너오는 이들을 기다린다. 이러한 모습은 난민도 우리같이 삶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난민들에게 바다는 죽음의 공간이다.
람페투사에 사는 사무엘가족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간다. 감독은 사무엘을 중심으로 람페투사의 일상을 그린다. 사무엘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있는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전형적인 소년이다. 학교가기 싫어하고, 또래와 전쟁놀이를 하고, 새총을 만들어 놀고 맛있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또한 사무엘가족의 일상은 특별할거 없이 평범하게 흘러간다. 이들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닮아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이는 한편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절박하게 삶을 갈구하는 난민들의 모습과 대조된다. 난민들의 절박함과 고통은 극심하여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감독은 마치 나와 무관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 고통을 사무엘가족의 일상과 교차함으로써 난민들이 바로 사무엘과 같이 살아숨쉬는 <내 이웃>과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섬의 유일한 의사인 바톨로는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부상당한 난민들을 치료하는 유일한인물이다. 섬에서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난민을 치료하는 한 그들의 문제가 남의 문제일 수 없는 바톨로의 시선.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바로 이 의사와 같은 시선으로 난민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감독은 보통의 다큐영화에서 보기 힘든 유려한 영상미와 절제된 인터뷰, 상징과 비유를 적절 히 활용하여 예술영화와의 경계를 허문다. 이러한 특징은 관객들이 난민문제를 더욱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난민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알게 하고 그들의 고통이 나와 가까운 일로 느끼게 한다. 감독은 차근차근 사실관계와 정서를 쌓는다. 난민들이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줄때는 그들의 움직임을 여러 각도로 영상에 담는다. 사선을 뚫고 건너온 그들에게서 생동감을 발견할때면 어쩌면 당연한 그 사실이 새롭게 느껴진다. 살았기 때문에 생동한 것인데 그 낯선 생동감에 계속 눈길이 간다. 그러다 난민의 불안과 고통을 보여줄때는 그들의 눈을 중심으로 가까이, 오래 그들을 비춘다. 감정의 세부까지 다 전달될 수 있게 눈을 중심으로 비추는 그 영상은 뇌리에 오래 남는다. 감독은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정서까지 공들여 전달해 그들의 정서와 관객의 정서를 일치시킨다. 그리고 난민의 눈에서 흘리는 피눈물과 난파된 선박 곳곳에 엉켜있는 시신을 통해 영화는 절정에 치닫는다. 절정인지 모르게 슬며시 다가온 절정. 담담하고 느리게 꼼꼼히 죽은 시신을 비추는 영상은 그들이 진정 죽었는지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참혹하다. 또한 피눈물을 흘리는 난민의 눈에 오래 시선이 머문다. 그 눈빛은 극심한 고통에 텅 비어있다. 그 눈빛은 보고있는 사람의 마음도 구멍이 뚫린 듯 텅비게 만든다. 그 빈곳에 난민의 슬픔과 고통이 내 것이 되어 차오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난민들의 참혹한 삶과 죽음을 명징하게 깨닫게 된다. 정신적 부침이 클 수 밖에 없는 주제와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각오하지 않고 볼 수 있는 것은 진실과 대면할 용기를 주는 균형감 때문이다. 난민의 고통과 균형을 이루는 요소가 바로 사무엘의 천진한 모습이다. 또한 사무엘의 행동을 통해 감독은 난민문제의 원인을 보여주며 그 해결방안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드러낸다. 사무엘은 새총놀이를 좋아한다. 새를 향해 거리낌없이 새총을 쏜다. 그러다가 선인장에 눈코입을 새겨 사람 얼굴을 만든다. 그곳에도 새총을 쏜다. 작은폭약을 선인장에 매달아 터트린다. 상처 난 선인장을 테이프로 감는다. 이러한 사무엘의 놀이는 감독의 노골적인 은유이다. 감독은 현재 난민문제의 원인이 유럽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 때문이며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침략과 약탈이 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그들에게 붕대를 감아주는식의 해결책은 근본적이지 않음을 비판한다. <파이어 앳 시>는 꽤 묵직하고 어려운 사회적문제를 예술적으로 엮어 보는이의 이성과 감성을 충족시킨다. 그래서 베를린이 2016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택한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상적으로 볼 때 아프리카 민중들이 오늘날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에 불법으로 몸을 싣는 것과 16세기 노예무역선에 몸을 싣는 것은 자발성과 강제성의 측면에서 정반대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과 착취의 결과라는 점에서 본질상 일치한다. 또한 죽음으로 계속 내몰리고 있는 난민들의 고통은 온세계 민중들이 겪는 제국주의에 의한 고통의 극단적 크기를 보여준다. 난민은 아프리카 민중들이며, 그들은 온세계 민중들의 일부이다. 그리고 우리도 온세계 민중들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들은 바로 <내 이웃>이며 또다른 나이다. <Fire at Sea>는 제국주의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물위에서 타죽어가는 <내 이웃>의 고통에 대한 처절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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