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길 헤매는 무력한 청춘 <헤디(Inhebbek Hedi)>

헤디는 어머니가 정해준 약혼녀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또한 결혼식당일까지 직장상사의 지시에 의해 출장을 가야하는 처지이다. 서비스업인 푸조자동차 세일즈맨인 헤디는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청년노동자이다. 출장차간 휴양지에서도 상사의 전화벨소리에 다급하게 움직여야하고 클라이먼트를 만나려고해도 문전박대를 당하는 헤디의 삶은 기계적이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중 휴양지호텔에서 림을 만나게 된다. 낮에는 가이드, 밤에는 춤공연을 하는 림은 헤디와는 달리 자유로운 존재이다. 헤디는 림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는데..
영화<헤디>는 관습과 자본주의경제시스템 속에서 <자기결정권>이 없는 소아(쁘띠)적인 청년 헤디의 변화과정을 통해 튀니지청년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그 보편적정서는 튀니지사회문제와 떼려야 뗄수 없다. 튀니지의 사회문제가 영화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11년 본질상 반혁명세력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재스민<혁명> 이후 사회변화를 짐작할수 있다. 튀니지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원인이 되어 재스민<혁명>이 시작됐고 선거로 새정권을 수립했지만 경제적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실례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튀니지청년(15~24살)실업률이 37%에 이른다고 밝혔다. 게다가 2015년 IS에 의해 휴양지를 중심으로 발생한 3번의 테러는 튀니지의 주력산업인 관광산업을 파탄시키고 사회불안도를 높여 튀니지를 더욱 핍진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튀니지의 일련의 상황은 영화<헤디>에서 헤디와 그를 둘러싼 주변환경을 피폐하고 무기력하게 그림으로써 감독은 튀니지의 현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튀니지어로 <헤디>는 <조용한>,<차분한>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영화에서 헤디는 단순히 조용하고 차분한 인물이 아니라 시무룩하고 무기력하다. 헤디는 끝임없이 길을 따라 차로 이동하지만 그 길은 집과 출장지 사이를 맴돌 뿐이다. 길이 눈앞에 있으나 그 길이 진정 본인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 강요된 길임을 헤디의 무력한 눈빛과 표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림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림 또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튀니지청년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파혼까지 하면서 찾고자 한 자유가 도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헤디는 누군가에게 기대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기결정권>을 쥐고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은 다시 길을 찾는 헤디의 단단해진 눈빛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눈빛을 통해 감독은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튀니지사회와 청년들에게 조심스럽게 희망을 건넨다.
<헤디>는 단편영화로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모하메드 벤 아띠아의 첫 장편영화로 베를린영화제 경쟁작으로 출품, 은곰상·남우주연상과 데뷔작품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프랑스진보매체인 뤼마니떼(L’Humanité)의 <정치적 아이디어를 일상에 종종 담았다>는 평가처럼 전작들에서도 튀니지의 정치·사회적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포착하여 담아냈다. 여러 단편을 거쳐 제작한 첫 장편영화인 <헤디>에서 감독은 핍진한 튀니지에서 살아가는 청년에게 주목했다. 관습과 자본주의시스템이 혼재된 현실과 경제적위기, 그 위기상황에 짓눌려 꿈을 포기하는 청년의 모습은 남코리아청년의 모습과 닮았다. 남코리아의 사회문제가 수용이나 도피로 해결될 수 없듯, 튀니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의 <헤디>들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답을 찾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산적한 문제들이 사회적문제인만큼 이를 극복하는힘 또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게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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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