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우연적 죽음의 필연적 이유 <Death in Sarajebo>

보스니아에 방문한 세계적인 인사들이 다 묶었다는 호텔<유럽>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백주년 EU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옥상에서는 1차세계대전 직전 프란츠대공을 암살한 세르비아계 청년 프린치프에 대한 <티비쇼>를 만들기 위해 기자인 베드라나가 역사학자·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중이다. 한편 국빈으로 보스니아에 방문한 프랑스배우이자 지식인 자크가 <티비쇼>에 출연하기 위해 이 호텔에서 묵고 있다. 이렇게 분주한, 보스니아의 대표적인 호텔<유럽>은 현재 노동자들의 월급이 두달째 밀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위해 파업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호텔지배인인 오메르는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고 주요인사가 투숙해 있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파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악랄한방법을 동원한다.
영화 <데쓰 인 사라예보(death in sarajabo)>는 호텔<유럽>을 배경으로 보스니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회구조와 역사를 보여준다.
호텔의 어둡고 눅눅한 지하에서 요리와 빨래를 하는 노동자, 겉보기에 화려한 호텔1층에서 주로 일하며 지하를 오가는 매니저, 호텔을 지키야한다는 눈먼사명에 사로잡힌채 노동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지배인, 옥상에서 <티비쇼>를 준비하며 끝임없이 떠드는 지식인들을 통해 현재 보스니아사회의 구조적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옥상에서의 인터뷰와 논쟁을 통해 보스니아의 역사적 측면을 해설한다. 보스니아는 2차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유고)연방에 속해있던 사회주의국가였다가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자본주의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1992~1995년까지 4년간 심각한 내전에 시달렸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만 1만여명이 사망하는 등 이른바 민족청소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민간인학살이 자행되었다. 이러한 역사적배경을 반영하여 베드라나와 가브릴로(프린치프의 후손)는 <대의를 위한 살해의 정당성여부>를 초점으로 격렬하게 논쟁한다. 또한 스위트룸에 투숙해 있는 프랑스스타 자크는 또다른 <티비쇼>준비를 위한 대본을 외우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은 경비원 에도는 스위트룸에 사전 설치한 CCTV를 통해 자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코카인을 흡입한다. 총기를 소지한 채 마약을 흡입하며 개인을 보호라는 미명하에 감시하는 자크는 보스니아의 타락한 공권력을 상징한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감독은 영화를 통해 복잡하면서도 극단적인 시대를 거쳐온 보스니아의 현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부르주아계급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호텔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쁘띠(쁘띠부르주아)출신인 지식인들은 입만 놀리는데 분주할 때 오로지 프롤레타리아계급만 현실에 발을 딛고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부당한 처지를 파업이라는 투쟁방식으로 돌파하려고 계획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출신의 쁘띠적인 호텔 매니저 라미야는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하며 노동자를 탄압하는 지배인의 만행을 그냥 지나친다. 이같은 라미야의 비겁한 행동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라미야의 어머니이자 세탁실에서 일하는 하티쟈가 파업을 준비하는 중 조직폭력배에 끌려가 생사를 알 길이 없고 어머니가 파업을 주도한다는 이유로 라미야는 해고된다. 급기야 지배인에 의해 농락을 당하며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자본주의하에서는 프롤레타리아계급출신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쁘띠적으로 살고 싶어도 그조차 허용되지 않음을 라미야의 운명을 통해 보여준다. 지배인에 의해 탄압을 받아도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완강하게 파업을 준비하고 라미야는 실종된 하티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옥상과 스위트룸의 지식인들은 <티비쇼>준비와 소모적인 논쟁만 할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중 베드라나와 가브릴로가 논쟁하며 옥상에서 내려와 건물 안으로 들어오다 에도에 의해 가브릴로가 총살을 당한다. 자신이 보호해야하는 자크가 호텔밖을 나간지 모른채 부인과 말싸움을 하고 코카인을 흡입한 에도는 자크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한 상황이다. 그런데 호텔안에 총을 들고 있는 가브릴로가 눈앞에 있다. 분노와 약기운에 판단력을 잃은 에도가 총을 들고 있는 가브릴로를 테러범으로 오인하고 쏴죽이게 된다. 그 순간 영화 내내 거침없이 논리를 전개하던 베드라나는 말문이 막힌채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 영화는 갑작스러운 총성에 극의 긴장도를 확 고조시키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흥분상태에서 약에 취한채 사람을 죽인 에도의 모습은 공권력의 지시에 의해 광분하며 민간인을 학살한 보스니아내전의 군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베드라나의 망연자실한 모습은 좋은시절 민주주의를 떠들던 쁘띠지식인들이 정작 위기상황에 도래하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스위트룸안에만 머물며 열심히 <티비쇼>대본만 외우던 자크는 <티비쇼>에 출연하기 위해 호텔을 떠난다. 이는 완전히 현실과 괴리되 허공에 떠있는 지식인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에도의 눈먼 총성에 호텔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 와중에도 호텔 밖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진행중이다.
우연적인 총성과 필연적인 파업. 그러나 우연속에 필연이 있다.
2달째 월급을 못받을 정도로 자본주의경제위기가 심각한 곳에서 자신의 일을 방기할 경우 돌아오는 것은 당연히 해고다. 이러한 현실은 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만든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보스니아의 곡절 많은 현대사를 총화하면서 현재 보스니아의 자본주의경제위기 또한 그 현대사의 연장선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자본주의위기가 심각해지면 심각해질수록 노동자들앞에 놓인 선택지는 3개뿐이다. 에도처럼 제정신으로 살지 못한채 우발적 사고를 일으키던지, 라미야처럼 개인적으로 열심히 쁘띠를 지향하다 해고되고 그 이상의 최악의 상황에 놓이던지, 아니면 노동자들처럼 생존권쟁취를 위해 단결하여 투쟁하던지.
총성과 파업으로 텅빈 호텔안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사람이 없는 호텔의 고요는 평화롭기보다 공허하다. 가야할 길을 몰라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멈춰버린 상태. 사회주의붕괴와 내전에 이어 자본주의경제위기에 직면한 보스니아는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보스니아는 갈길을 몰라 텅 비어있는 듯한 상태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등장하는 블랙코미디로 인해 터져나오는 웃음 또한 참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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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