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이란 실천적 경험을 개괄한 지식체계이며 실천이란 자연과 사회, 인간을 개조하는 사람들의 활동이다. 실천적 경험은 추상적 일반화를 통하여 체계화되어야 이론으로 된다. 실천은 이론의 기초로서 실천의 요구에 의하여 이론적 연구의 방향이 규정되고 발전이 추동된다. 이론은 실천에서 성과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필수적 담보로서 변혁적인 이론이 없이는 변혁실천은 실패와 편향을 면할 수 없다. 착취계급에게 있어서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나 노동계급에게 있어서는 이론과 실천이 통일된다.
진리란 객관적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이론이며 오류는 객관적 현실을 그릇되게 반영한 이론이다. 진리와 오류는 조건에 따라 전환된다. 진리는 모두 구체적인 것으로서 일정한 조건에서의 객관적 사물 및 그 법칙의 정확한 반영이기 때문이다. 조건이 변화되면 객관적 사물 및 그 법칙도 변화되므로 인간의 인식도 그에 따라 변화되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도 여전히 원래의 그 진리적 인식을 고집한다면 진리적 인식이었던 것이 오류로 변하게 된다. 비가 오는 것은 꽃밭에 물을 주려는 여자아이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축구를 하려는 남자아이에게는 나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반파쇼민주전선전략은 1987년에는 부합되었으나 2002년에는 부합되지 않았다. 군사파쇼정권이 퇴출되고 예속적 부르조아개혁세력이 집권한 조건에서 민족민주세력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고 시민운동세력과 지역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려는 전략, 민족민주전선전략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진리는 객관적이다. 또한 진리는 절대적이며 상대적이다. 진리가 절대성을 띠는 이유는 언제나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하며 객관적으로 실재하며 인간의 인식능력이 무한히 발전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상대성을 띠는 이유는 인식의 대상인 객관적 사물현상이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며 인간의 인식능력이 무한하면서도 역사적 세대의 인식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톤역학을 근본적으로 뒤엎지 않고 단지 뉴톤역학이론체계의 범위를 한정하였을 뿐이다. 뉴톤역학은 그 적용범위 내의 물질운동의 객관적 내용을 반영하였기 때문에 그 범위에서는 진리성이 절대적인 것이다. 맑스주의는 19세기 중엽 서유럽의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의 역사적 경험을 사상이론적으로 총화한 것으로서 그 시대적 조건에서는 진리성이 절대적인 것이다.
절대적 진리란 그 어느 때에 가서도 변하지 않는 완성된 진리이며 상대적 진리란 일정한 조건하에서만 진리성을 가지는 진리이다. ‘이북에는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어 있다’와 ‘이승만정권은 4.19봉기로 타도되었다’는 것은 이미 있는 사실로써 절대적 진리이다. 19세기까지 사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입자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이 더욱 발전하며 원자는 더 작은 미립자로 쪼갤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정한 역사적 단계에서 얻어진 상대적 진리 가운데는 그 어느 때에 가서도 변화되지 않는 절대적 진리의 요소가 포함되는데 절대적 진리의 요소는 다음 단계 사람들의 인식활동에 의하여 더욱 증대된다. 절대적 진리는 상대적 진리의 총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절대적 진리를 긴 강에 비유한다면 개개의 상대적 진리는 이 긴 강의 물방울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주의(장자)나 불가지론(칸트)은 상대적 진리가 무한히 통합되며 절대적 진리로 나아간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객관적 진리는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를 다같이 포함한다. 진리의 절대성만을 인정하면 기성지식만을 절대화하며 지식의 심화발전의 합법칙성을 부정하는 절대주의, 교조주의에 빠지게 되며 반대로 진리의 상대성만을 인정하면 인간지식의 정확성을 믿지 않는 상대주의,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변증법은 맑스주의를 죽은 교조로 간주하는 것을 반대하며 맑스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그 개별적인 원리와 이론이 개변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와 동시에 변증법은 맑스주의는 객관적 진리이며 그 기본원리와 기본원칙을 견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교조주의자와 회의주의자는 각각 정반대의 견해를 제기한다.
진리의 기준은 실천이다. 권위, 자기의 의견, 다수의 의견, 관념의 명백여부, 유용성 등은 모두 주관적 범위에서 진리를 기준을 찾고 인식으로써 인식을 검증하려는 주관적 기준이다. 진리는 객관적인 것이므로 인식의 진리성을 검증함에 있어서 주관적 영역에서만 맴돌아서는 아무런 결과도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실천만이 이론과 객관적 현실의 일치 여부를 검증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알고 푸딩의 맛은 먹어보아야 안다. 우리나라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땅을 파보아야 안다. 이북은 해외동포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탐사작업으로 약 50억톤의 매장량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이론은 실천에 적용되어 생활력이 발휘될 때 진리로 확증된다.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시대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변혁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러시아변혁을 통하여 입증하였다. 코민테른의 반파쇼인민전선노선은 2차대전에서 파시즘을 격멸하고 세계적 범위에서 변혁의 전진을 이룩하며 그 진리성을 입증하였다. 조선변혁은 조선민중이 주인이며 조선민중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진리는 조국광복을 통해 그 진리성이 입증되었다. 자주, 민주, 통일의 노선은 우리 변혁이 노선상 편향 없이 전진하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 진리성이 입증되었다.
이론은 또한 실천에 의하여 검증된 명제를 논거로 하여 논리적 법칙에 맞게 논증한다면 그 진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정한 조건에서는 논리적 증명에 의거하여서도 그 어떤 인식의 정확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아무런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고 영원히 돌아가는 기계는 설계할 수 없다. 이것은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에 위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뉴톤역학의 기본법칙에 의거하여 계산과 추리의 방법으로 혜성의 궤도를 정확히 추산할 수 있다. 현시대의 수많은 계산, 추리는 논리적 증명의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 관건적인 경우에만 실험의 방법으로 검증하고 있다. 만일 모든 경우에 다 실천의 검증을 받겠다고 한다면 과학과 이성을 믿지 않는 경험주의자로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논리적 증명이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논리적 추리에서 사용되는 전제는 반드시 실천에 의하여 증명된 정확한 지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논리적 증명의 방법도 실천을 토대로 하는 것이다.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은 오직 실천뿐이다.
맑스주의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시하기 전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러저러하게 해석하였을 뿐이다. 세계를 인식하는 것과 세계를 개조하는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실천이다. 실천은 인식의 출발점이고 이론발전의 추동력이며 진리의 기준이다. 실천적 경험을 통해 확증된 진리만이 인간을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주인으로 되게 한다. 인간은 진리를 터득함으로써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비약한다. 민중이 자연과 사회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주인으로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변혁적이고 주체적인 진리로 무장하여야 한다. 노동계급의 변혁적 진리만이 민중의 자유를 종국적으로 실현하게 한다. 맑스주의는 그 노동계급의 변혁적 진리의 하나로서 노동계급의 완성된 진리를 터득하기 위한 기초로 된다.
(2003.9.15 21세기코리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