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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26일 금요일 19: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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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항쟁의기관차〉 프랑스, 쎄큐히떼쏘시알과 〈노란조끼〉

프랑스, 쎄큐히떼쏘시알과 <노란조끼>

1789프랑스혁명에는 노동의 권리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지않다. 1789 <인권선언(인간과시민의권리선언)>은 고용주와 노동자간의 평등한 계약관계, 즉 쌍방의 합의를 존중한다. 이는 <노동계약은상호간에의무를지는자유로운당사자들간에이루어지는서명,경영주와노동자의연합을금지하면이계약의자유는2배로증진될것>이라는 자유주의사상으로 안받침된다. 이논리는 지금 프랑스에서도 노동법의 규제를 거부하는 자본주의정치가들에 의해 반복되고있다. 혁명이 남긴것은 이보다 더 결정적인데 민중의 봉기·항쟁으로 절대권력을 무너뜨릴수 있다는 실천적경험이었다. 1848 2월혁명직후 노동계급의 역할이 인정돼 노동권이 선언되고 노동자의 단결권도 승인된다. 성인남성들의 일반선거권도 실현된다. 그렇게 이뤄진 선거결과는 노동자들이 의회의 주인이 될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줬고 선거결과에 불신과 분노를 가진 노동자들은 이해 6월 부르주아정부가 병역의무복무와 국립작업장폐쇄를 결정하자 이에 맞서 새로운 봉기를 일으킨다. 맑스는 <노동자들에게는선택의여지가없었다.그들은굶어죽거나싸움에나서야했다.>·<이폭동은현대를가르고있는두계급사이의최초의대전투였다.그것은부르주아질서의유지냐파괴냐를놓고벌어진투쟁이었다.공화국을가리고있던장벽은찢어졌다.>고 말했다. 봉기는 노동자의 패배로 끝났다. 노동자투쟁의 역사는 1871 파리코뮌으로 이어진다. 노동자·민중정권은 비참한 결말을 맺게 되지만 당시 파리에서 실시된 노동자·민중의 주요정책들은 2차세계대전전후 프랑스공동주의자들에게 넘겨졌다. 2차대전에서나치에무장으로맞선공산당에대한신뢰·레지스탕스활동으로단련된노동계급·500만명을아우른강력한노동자조직쎄제떼(CGT 프랑스노총)의 힘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들을 실현했다. 산재한 여러기금들을 노동자들에 의거하는 사회보장제도 쎄큐히떼쏘시알로 통합하고 퇴직연금을 2배로 인상했으며 단체교섭권을 발의하고 최하층노동자도 안정된 의료서비스를 받을수 있게 했다. 1995 쎄큐히떼쏘시알이 국가화되면서 노동자가 주도하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의의가 사라졌다. 프랑스도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해고절차는 점차 쉬워졌지만 고용은 늘지않았고 2000년대 <노동시장유연화 >로 정규직계약을 대체하는 비정규직계약만 늘어난다. 변화하는 노동현실을 반영해 산재범위를 임시직·특수고용노동자·직업훈련을받는학생·구직자까지 확대하고 2016 플랫포옴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제도들을 마련하는 식이다. 최근 마크홍정부의 유류비인상은 뇌관을 건드렸고 이에 저항하는 <노란조끼>가 공장·기업대신 도로를 점거했다. 2019말에는 마크홍의 연금개편안을 반대해 총파업이 벌어졌다. 마크홍정부는 취임이후 노동분야에서 신자유주의화를 시도하며 노동자들을 강박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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