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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28일 일요일 10:27:03

[글] 유치한 이간책

유치한 이간책


정말 웃기는 기사다. 최근년 들어 이만한 헛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존스홉킨스대의 한 연구원이 <북 항일투쟁 적통은 최현>이고 <보천보전투도 최현이 주도>하고 <그래서 최용해가 숙청될 수 있다>고 했다. 이간책을 쓰려는 건데 너무 유치해서 웃음도 안나온다. 존스홉킨스대수준인지 미국인북전문가수준인지 하여튼 바닥을 보이고 있다. 자주 느끼는 거지만, 미국도 참 한심하다. 특히 북을 상대할 때 이런다. 

오늘 4.25건군절이다. 1932년 안도에서 김일성항일빨치산이 처음으로 조직된 날이다. 반일인민유격대는 1934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칭되고 해방이후에는 조선인민군이 된다. 김일성빨치산대장은 1926.10.17 <ㅌ·ㄷ>를 결성한 이래 항일무장유격대건설이나 항일민족해방통일전선건설이나 공산당창건에서나 유일한 지도구심이었고 절대적 신뢰를 받았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초기 완전유격근거지였던 동만을 반유격구로 바꾼 후, 조선인민혁명군이 백두산지구로 진출할 때, 그 대신으로 이 동만반유격구들의 지하조직과 투쟁하는 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한 별동대의 대장이 최현이다. 쉽게 말해 김일성부대의 별동대대장이다. 

1937.6.4 보천보전투도 <김일성장군>이 직접 지휘하는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와 갑산·혜산을 중심으로 암약하는 박달지하조직이 합세해서 벌인 전투로서 중일전쟁직전 일본의 중요후방거점을 불바다로 만들어 지금도 전중국인이 기억하고 있다. 김구도 창문을 열고 조선이 살아있다고 외치고 여운형도 감격에 겨워 직접 보천보현장을 찾아갔다는 일화가 있다. 최현은 이 전투와 관련해 별로 한 게 없다. 해도 그건 김일성사령관의 지휘하에 한 일이다. 

최현은 코리아전에서 북이 승승장구하던 초반부든, 북으로 미군이 들어왔던 중반부에 후방에서 제2전선을 쳤을 때든, 후반부에 1211고지 등을 맡아 싸우든 김일성최고사령관의 지시대로 잘 싸웠다. 1956년8월종파사건때도 김일과 함께 총대로 김일성수상을 잘 보위했다. 김일성주석의 서거시 최초의 충성맹세를 그 최현의 아들 최용해가 한 건 유명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최용해를 키워 김정은최고리더의 오른팔로 앉힌 이유가 다른데 있지않다. 이른바 <미국인북전문가>들은 공부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말이나 아나 모르겠다. 

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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