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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항쟁의기관차〉 쎄큐히떼쏘시알, 민중정권 없이 민중복지 없다

1945 2차세계대전종전후 10.21 제헌의회선거결과 프랑스공산당은 148석을 차지하며 제1당이 됐다. 2차세계대전시기 레지스탕스의 주축이었던 공산당이 노동자·민중의 지지를 받는것은 필연이었다. 1943.5 반파쇼통일전선체로 구성된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는 새로운 사회보장제도인 쎄큐히떼쏘시알(Sécurité sociale)을 내놓았다. 프랑스4공화정은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가 중심이 돼 의회를 구성한것과 다름없었다. 1945.10 제정된 10월법령은 프랑스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이 됐다. 쎄큐히떼쏘시알은 공산당원이자 노동부장관이었던 크후와자에 의해 집행됐다. 노동자·민중의 강력한 힘에 의해 부르주아세력이 일시적이나마 통제되던 해방직후의 시기, 쎄큐히떼쏘시알은 그재정부터 운영까지 노동자·민중의 참여가 전제된 혁신적인 제도였다. 쎄큐히떼쏘시알의 혁명성은 그운영자가 노동자며 모든 노동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는점에 있다. 쎄큐히떼쏘시알에 의해 마련된 기금은 연금·의료·각종수당·교육·주택등에 투입되면서 노동자·민중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제공했다. 문제는 프랑스공산당이 혁명적인 시책을 딛고 민중권력쟁취로 나아가지못했고 그사이 미국을 등에 업은 부르주아세력의 반격이 시작됐다는것이다. 1947.4 프랑스국민연합을 창설한 드골세력은 냉전상황을 이용해 진보세력을 배척하며 부르주아세력의 지지를 얻었다. 1947말까지 프랑스에 군대를 주둔시켰던 미국은 부르주아세력의 반민중공세를 적극 지지했다. 1947.5 오히올대통령은 법령으로 공산당원각료들을 내각에서 해임시키며 공산당을 정치적으로 타격했다. 쎄큐히떼쏘시알은 노동자·민중의 경제권을 거세하려는 부르주아세력의 집중적인 공격대상이었다. 쎄큐히떼쏘시알<국가화>책동은 드골정부에 의해 시작됐으며 결국 1996 쥐페총리의 주도하에 완료됐다. 민중정권 없이 민중복지 없다는 교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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