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8.15 코리아는 미완의 해방속에 독립의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다. 1945.12.16~26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소미영 외세에 의해 우리민족의 운명이 기로에 서게 된다. 당시 미대통령 루즈벨트는 <코리아인은 자치능력이 없다. 아마 40년 내지 50년정도는 신탁통치를 해야 할것 같다.>는 입장이었고 소련의 스탈린은 5년정도의 후견제로 조율했다. 회의는 합리적인 소련측주장이 영국의 지지를 받아 채택됐다. 12.25 미국의 통신사들이 워싱턴발추측기사로 보도하고 이를 남의 동아일보가 받아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후에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의 진상을 파악한 송진우는 김구에게 <반탁>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설득했다가 바로 다음날 암살됐다. 암살범인 한현우는격몽의숙이라는 극우조직대표였고 격몽의숙의 성원중 한명이었던 한지근은 1947.7.19 여운형을 암살했다. 이들은 친미극우비밀결사체 백의사와 연결돼있었는데 수장인 염동진은 미방첩대CIC요원출신이었다. 일련의 과정은 <반탁>에 반대한 핵심인물들이 미군의 배후조종에 의해 제거됐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 이후 <찬탁반탁>논쟁이 일어나고 <남남갈등>은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5년후견제>로 끝날 일이 수백만이 희생된 <전쟁>을 거쳐 장장 70여년동안 계속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