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기관차6 – 바이러스] 세계를 멈추고 세계를 바꾸다

세계를 멈추고 세계를 바꾸다

역병으로 흉흉해진 민심

역병이 창궐하면 민심이 흉흉해진다. 원인을 모른채 무리로 목숨을 잃으니 그허망함이란 말로 다할 수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그런 허망함에서 벗어나 원인을 찾아내고 대책을 세워가지만 완벽하지않다. 일상적인 위생과 검역으로 많은 전염병들이 통제·관리되고있다. 일상적인 위생문화의 관리만으로도 수명이 늘어나고 삶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은 계속 나타나 인류를 위협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2003사스(SARS)·2009신종플루·2014에볼라·2015메르스(MERS)등 끊이지않았다. 코비드19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선포로 보면 2009신종플루·2014소아마비·서아프리카에볼라·2016지카바이러스·2019콩고민주공화국에볼라에 이어 여섯번째고 팬데믹(pandemic)선언으로 보면 1968홍콩독감·2009신종플루이후 세번째다. 세계보건기구는 1948 창립됐으며 2005 국제보건규약을 제정해 그이후부터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을 규정해왔다. 코비드19는 사스·메르스와 같은류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알려졌지만 신종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전세계에 퍼지며 수백만명의 확진자를 기록하고 <물리적거리두기>를 야기해 경제생활을 중지시키기에 이르렀다.

자본주의경제가 발전해 원료·연료의 원천지를 찾아 바다건너 멀리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인적·물적교류가 시작됐다고 본다면, 그방향으로 계속 성장해오던 자본주의역사에서 코비드19사태와 같은 인적이동·물적이동의 중단을 경험해본적이 없다. 경제위기·민생파탄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 경제활동을 희생할정도로 코비드19의 통제는 중요문제로 부각됐다. 일단 경제를 앞세웠던 우파정치인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도쿄올림픽을 고집하던 아베신조일본총리는 결국 올림픽의 연기를 받아들이지않을수 없었다. 1940 도쿄올림픽이 중일전쟁으로 취소돼 1964 개최됐던 예가 나오는 판이다. 경제적손실액은 6000억~7000억엔으로 예상돼 올림픽개최비용에서 역대최고치를 기록할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지방선거·남총선·러시아헌법개정·미국대선등 정치일정도 코비드19에 대한 선제적대응을 촉진했다. 이란총선은 이란의 코비드19상황을 특별히 악화시켰다.

보건도 민생만큼 빈익빈부익부다.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하지만 접촉하는 층이 다르고 생활조건이 다르고 근무환경이 다르다. 노숙자들은 격리조치에도 불구하고 갈만한 집이 없고 하루벌어 하루사는 이들에게는 당장의 경제활동이 더욱 절실하다. 그에 비해 부자들은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북은 코비드19의 확산이 예견되던 시점에 과감히 중·러국경까지도 봉쇄했다. 경제제재로 쉽지않은 상황인데도 그나마 있던 교류마저도 스스로 중단하고 경제봉쇄를 선택했다. 자국내 전염병의 확산은 곧 <인민>들을 희생시킨다. 세계언론들은 북에 대해 언제나 시비를 건다. 북은 단호한 조치로 이미지훼손을 최소화했고 인민들의 희생을 막았다. 결과가 말해주듯이 공산당이 견고한 정치지도력을 가지고있는 중국은 코비드19를 수습하는데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필요하면 1주일안에도 대규모병원을 지으며 방역조치를 취할수 있다. 첫환자가 나온뒤로 2달만에,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나선뒤로 약1달만에 확산기세가 꺾였다.

상대적으로 공동체성이 강한 아시아에서 보다 규율있게 움직이면서 코비드19의 확산을 제어하고있다. 남코리아는 초기 세계 곳곳에 포교활동을 벌이던 <신천지>의 종교집회집단감염사례가 발생하면서 일파만파 확대됐지만 주로 지역차원으로 최소화 하면서 통제해 들어갔다. 대대적인 검진과 확진자의 이동경로공개등을 통해 주동적으로 확산을 막았고 혁신적이라고 평가되는 드라이브스루의 발상도 남에서부터 나왔다. 방역수준이나 문화위생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는 유럽과 비교해서도 남의 코비드19방역은 돋보인다. 4.15총선을 치르고 나서도 확산이 일어나지않아 한번더 주목받고있다. 높은 교육수준과 집단의식이 빛난다. 이란과 미국에서는 소독제가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루머가 돌아 이로 인한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미국은 특히 그중심에 대통령 도널드트럼프의 발언이 있어 파장이 심각했다.

전염병의 대유행과 잔혹한 학살의 역사

역사에는 전염병의 대유행이 기록돼있다. 전염병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지못하고 보건방역체계와 위생문화시설이 갖춰지지않은 상태에서 전염병의 확산은 불가피했다. 14세기 유럽의 페스트(흑사병)는 유럽인구 7500만명중 25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에도 전쟁중 적국에 의한 전염병의 의도적인 살포가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전역에서는 환자를 마을밖수용소에 분리하고 출입하는 사람과 물건을 일정기간 격리하는 검역개념을 도입했다. 이탈리아 라구사에서는 1377 페스트가 유행하는 주변섬에서 온 사람이나 물자를 30일간 격리하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1397 40일(quarantenaria)로 늘어나 오늘날 검역 (quarantine)이라는 영단어의 어원이 됐다. 페스트는 쥐(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이 옮겨 발생한다. 6세기 동로마제국과 19세기 중윈난성에서의 총3번의 전염병대유행은 페스트에 의한것이다.

세균을 이용해 침략한 사례들도 있다. 남아메리카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피사로는 천연두바이러스로 오염된 옷을 잉카의 원주민들에게 선물해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북아메리카에서는 프랑스와 전쟁을 하던 영국군이 프랑스진영의 요새를 지키던 인디언추장에게 천연두에 감염된 담요를 선물했다. 당시 남아메리카의 잉카원주민들이나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처음 겪는 전염병에 취약했고 이들에게 유럽인들이 퍼뜨린 각종병원성세균과 바이러스는 치명적이었다. 미국독립전쟁때도 영국군은 천연두를 사용했으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미국군대에 예방접종이 이뤄졌다. 인류학자들은 천연두가 B.C1만년경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유럽지역에서는 18세기이전까지만 해도 매년40만명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고 20세기에도 전세계에서 3~5억명이 사망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1967 한해동안 1500만명이 감염됐으며 그중 200만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천연두는 18세기말 종두법이 발견돼 천연두예방접종이 널리 실시되면서 근절됐다. 1980 WHO는 공식적으로 천연두바이러스의 완전소멸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사라지게 되면 다시 천연두가 발생하게 되고 그피해는 엄청날것이라는 우려가 남아있다. 1996 WHO190여개회원국대표들은 미·러 두나라에 보관중인 천연두균을 파괴하도록 권고했지만 미·러의 반대로 실현되지못했다. 천연두바이러스의 게놈을 변형시켜 종래의 천연두보다 치사율이 훨씬 높은 바이러스를 개발해 생물테러에 사용한다면 그피해는 상상할 수 없다는 우려다. 그러면서 미국과 독일이 천연두백신의 재생산에 들어갔고 천연두예방접종을 실시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2018.7 미식품의약국(FDA)은 천연두치료제를 승인했다. 남코리아보건복지부도 2002 천연두를 법정전염병으로 재지정했다.

생물학적물질을 이용해 벌이는 전쟁을 생화학전이라고 한다. <테러리즘>과 연결돼 <바이오테러리즘>이란 표현도 사용된다. 전염병의 유행이 자연에 대한 무지로 야기된것이라면 생화학전은 자연의 왜곡된 개발과 이용의 전형이라 할수 있다. 다른듯 같고 같은듯 다르다. 전염병의 유행이 인류에게 주는 공포와 생화학전이 주는 공포도 다른듯 닮아 있다. 생화학무기는 크게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로 구분된다. 세균·바이러스·독가스가 있다. 생화학전에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구제역과 같은 바이러스도 사용될수 있다. 이런 바이러스는 동물에게만 감염되지만 그경제적영향으로 물질적타격이 상당하다. 생화학무기는 그살상력·비인간성·참혹함으로 인해 가장 악독하고 더러운 무기로 불린다. 인류의 화학무기사용에 관한 역사도 짧지않다. 그 최초의 기록은 BC400년경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스파르타군이 유황을 연소시킨 유독가스를 아테네공격에 이용했다는데까지 올라간다. 18세기까지는 독성물질의 대량제조가 어려워 화학무기사용이 거의 불가능했다. 20세기에 들어서 현대적의미의 생화학무기가 본격적으로 실전에 활용됐다. 1차세계대전당시 독일군이 벨기에이프레에서 영·프연합군의 방어진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염소가스를 사용한것이 화학무기의 위력을 확인하게 된 최초라고 기록돼있다. 당시 영·프연합군5000여명이 사망하는등 화학무기의 전술적효과가 확인되자 연합군도 화학무기개발에 나섰다. 화학무기는 풍향·지형·날씨의 영향등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화학무기활용에 수반되는 복잡한 병참지원의 어려움으로 그전술적효과는 사실상 뚜렷하지못했다. 생화학전에 대한 참혹함으로 인해 그반론이 커졌고 1925 <전시에있어서의생물·화학무기사용금지에관한제네바의정서>가 체결됐다. 2차세계대전당시에는 중하얼빈에 설치됐던 일본731부대등이 악명높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후 일본관동군의 세균무기관련자료들을 넘겨받고 일본전범 이시이시로를 사면해 생물무기개발을 추진했으며 코리아전쟁에 미본토의 메릴랜드주와 유타주의 생산시설들에서 만든 16가지세균무기를 사용했다.

미군은 베트남전쟁에서 막대한 양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비슷한시기 코리아 군사분계선전역에서도 고엽제를 대량살포한 사실이 나중에서야 공개됐다. 당시 투입된 국군사병들이 그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로도 미국등 몇몇나라들이 국지전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논란이 있다. 생화학무기는 테러방식으로도 사용됐다. 1995 일본의 오움진리교신도들이 사린가스를 도쿄의 지하철역에 살포해 10여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린은 유기인계화합물의 맹독성가스로서 사람의 신경계에 작용해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한다. 2001 9.11사건직후에는 미국에서 우편물을 이용한 탄저균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이시기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됐다. 9.11사건이후 미국을 혼란에 몰아넣은 탄저균테러공격사건도 그균주는 미국의 포트데트릭에서 연구된것이었다. 2003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할때 내세웠던 이유도 <가난한자의핵무기>라 주장하는 대량살상용생화학무기였다. 그러나 이후 이라크에서 대량살상용생화학무기는 확인되지않았다.

코리아전쟁이후에도 코리아에서의 미군의 생화학전태세는 계속 이어져왔다. 1976 일본가나가와현에 주둔하고있는 미육군세균무기연구소406부대소속 미생물연구소분견대를 남에 끌어들여 세균연구소들을 설치하고 남민중들을 대상으로 치사율이 높은 악성전염병인 유행성출혈열세균무기실험을 진행했다. 1985~89 남의 40여개기지들에 <악마의무기>라는 2원화학무기를 들여왔다. 미남<연합군사령부>의 <작전계획9518>에 화학전훈련계획을 포함시키고 미2사단과 미19전구지원사령부산하에 4개의 미육군화학부대들을 새로 편성했다. 1980년대말 오산미공군기지에 세균무기연구소를 설치하고 세균전특수부대인 화생방중대까지 창설했다. 2011 <키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기간 각종생화학전장비들을 동원해 북침전쟁연습을 진행했으며 이때부터 남군대와 생화학전을 위한 <연합생물방어연습>을 해마다 벌였다. 미군이 오산미공군기지를 거점으로 탄저균뿐아니라 보툴리누스균까지 실험하면서 세균전준비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2009 미국은 <생물무기테러에대 처한방역준비사업>이라는 이유로 본토에 있는 18곳의 생물무기연구소에 탄저균을 발송해 세균전준비를 해왔다.

2013.3 미국의 한군수산업체가 주최하는 화학생물학방어계획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주피터계획>이란남에서미군이생물학전을위해2013.6부터착수하는군사적과제며이계획의독소분석1단계실험대상은탄저균과보툴리누스균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3.6부터 주남미군은 서울용산·경기오산을 비롯한 여러 미군기지연구소들에서 세균전을 위한 <생화학전대응체계>실험들을 진행했다. 존볼턴전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은 2019당시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없이 끝나자 주요방송사인터뷰에서 <북은핵과생화학무기등을포함한대량살상무기를모두포기해야한다>며 생화학무기를 전제 하는 심리전을 벌였다. 그러면서 <주피터계획>은 미군의 생화학전대처능력을 기르기 위한 비밀프로젝트라고 주장했다.

2019.12.24 서울대수의학과 우희종교수는 미국이 미본토내에 위험한 시설을 짓지않기 위해 생물무기에 관한 첨단시설을 남에 지었다고 주장했다. 방어용이라는 미군의 주장에 대해 <생화학무기의특징상방어와공격이같이일어나기때문에다죽게된다>고 하면서 <2017미군은북의작은도시를상정해시가전연습,실전연습을했다>고 반박했다. 우희종은 이미 개발된 역사가 긴 탄저균은 그위험도가 대단히 높다고 경고했다. 우희종은 미국은 당시 박근혜가 집권했던 남이 이런시설을 만들기에 제일 우호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군은 SOFA규정에 따라 전세계 어느곳에도 없는 특권을 갖고있다고 설명했다. 독일등 다른나라는 미군시설내 모든 물질을 자국에 보고하도록 돼있는데 남은 미군시설내에서 위험한 실험이 벌어져도 제재는 물론 알길도 없다는것이다. 부산에 미군세균무기실험실철거남구주민대책위는 <미군의생화학대응프로그램,주피터프로그램을철폐하라>며 부산미군기지철거를 요구하고있다.

코비드19도 생화학전의 한프로그램에서부터 나왔다는 의혹이 미국으로부터 제기됐다. 지난2월 미공화당의 톰코튼상원의원은 의회청문회에서 <신종코로나는체르노빌보다더심각한세계최대의문제>·<중국은처음부터신종코로나의기원에대해거짓말을해왔다>고 주장하며 코비드19가 중국의 생화학전프로그램에서 비롯됐을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추이텐카이주미중국대사는 <의심과루머를일으키고퍼뜨리는건아주위험하다>·<공포를조장하는것은인종적차별을부채질하는것이다.신종코로나에대응하는공동노력을해친다>고 비난했다. 코튼의원은 이어 트위터에 <음모나이론이아니라사실>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 코튼의원은 우한에 중국 의 유일한 생물안전4급<수퍼실험실>이 있다면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려했다. 생물안전4급실험실은 에볼라바이러스등 치명적인 병균을 연구할수 있는곳이다. 마이클폼페오미국무장관은 코비드19가 중국내 연구소에서 기원했다는 <방대한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트럼프대통령도 중국에 코비드19에 대한 책임론을 내세우며 중국의 생화학전프로그램에서 비롯됐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정보당국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이만들거나유전적으로변형된바이러스가아니라는광범위한과학적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우한의 연구소에서 사고가 있었는지 판단해보겠다고 강변했다.

이에 홍콩 친중파유튜버 조나단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전방위 공격의 일환으로 중국본토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살포했다고 했으며 러시아TV방송인 <채널원>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이 아시아인을 겨냥해 만든 <민족적생화학무기>라고 주장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파리인근병원의 응급실책임자인 의사 이브코엔은 2019.12와 2020.1 코비드19검사에서 음성반응을 보였던 환자24명의 샘플을 재검사한 결과 2019.12.27 양성반응을 보인 환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중우한에서 보고된 첫발병시점보다 4일 빠른것이다. 프랑스의 이환자는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50 대남성이며 코엔은 샘플에 오류가 없는지 여러차례 확인했다며 2019.12 코비드19가 이미 프랑스에 있었다고 추론할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중국에서 감염자가 나타나기전에 코비드19감염자가 있었다는 보도가 연속적으로 나와 중국발원설은 갈수록 더욱 근거를 잃고있다.

2017까지 폐기하기로 한 생화학무기를 재정부족이라는 구실로 지연시키고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생물무기금지협약(BWC) 은 1972 초안이 제출됐으며 1975 발효했다. 화학무기금지협약 (CWC)은 1990 화학무기최대보유국인 소·미양국이 자국에 있는 화학탄을 대량으로 감축하기로 합의하면서 급격히 진행돼 1993.1 파리에서 조인되고 1997 발효했다. 화학무기금지협약은 핵확산금지조약(NPT)·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과 달리 모든 협약당사국들이 차별없이 10년내에 자국이 보유한 모든 화학무기를 폐기하고 생산시설을 폐기하거나 평화적목적시설로 전환해야한다는 의무를 명시하고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협약을 이행하지않고있다. 미국은 인류역사상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나라일뿐아니라 가장 많은 생화학무기를 실전에 사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전쟁보다 위험한 바이러스

바이러스(virus)는 세포에 기생해야 생명체기능을 유지할수 있다. 홀로 증식하지못한다. 세균(bacteria)은 그자체가 하나의 세포다. 스스로 증식한다. 바이러스는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핵 (RNA 또는 DNA)이 단백질에 둘러싸여있는 형태를 가진다. 바이러스는 생명력이 강하고 빠르게 전염되며 돌연변이도 많다.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대표질병으로는 감기·독감·수두·대상포진·간염·소아마비·에이즈등이 있다. 세균이 일으키는 대표질병으로는 폐렴·결핵·파상풍·페스트등이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이는 스스로 증식하지못해 샘플을 얻기 어렵고 관련한 실험도 활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백신개발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세균에는 항생제가 치료제로 사용되지만 바이러스는 변이가 많아 항바이러스제가 있다 해도 정확한 치료제는 아니다. 독감이라 하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매년 그변이에 맞춰 백신이 새로 나오지만 명확한 효과가 있는것은 아니다.

전염병역사연구학자에 따라 독감(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대유행을 기원전5세기 그리스부터 보기도 하고 중세와 르네상스에 유행했던 호흡기질환들이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의한것이 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인플루엔자라는 말은 <영향을미치다(Influence)>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나왔다. 이단어는 1357 이탈리아플로렌스에서 발생했던 역병에 사용됐다. <추위를유발하는(Influenza di freddo, Cold Influence)>이라는 맥락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1580 아시아에서 시작돼 아프리카·유럽에까지 퍼져나갔던 병은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의한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전체가 6개월동안 이질병에 의해 고통받았다고 알려졌으며 미대륙에까지 퍼져나갔다. 로마에서만 약8000명의 사망자가 보고됐으며 스페인의 몇몇도시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1729봄 러시아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유럽전체로 퍼져나 갔고 지속적인 변종바이러스의 발생이 치사율을 높였다. 그로부터 약40년후 다시 유행해 1781~82 중국에서 러시아를 거쳐 전 유럽에 퍼졌는데 뻬쩨르부르크에서는 매일3만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로마인구의 2/3가 독감증상을 보였다. 1830~33 유행은 스페인독감과 맞먹는 독성을 지녔으며 아시아·유럽·북미대륙에 서 다시 유럽으로 넘나들며 전세계인구의 20~25%를 감염시킨것으로 알려졌다.

1932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최초로 분리되면서 이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시작됐다. 스페인독감은 분자생물학적방법으로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라는것이 증명된 최초의 대유행이다. 이때 유행한 바이러스는 H1N1 으로 명명됐다. 사람에게 전염가능한 조류독감인 H5N1·H5N2 와 유사성이 크다고 한다. 그기원에 대해 1917 프랑스북부의 영국군임시병원시설이라는 견해와 1917.11 중국북부에 번진 호흡 기질환에 대한 기록이 있다. 1년뒤 중당국은 이질환이 스페인독감과 동일한것으로 확인했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독감은 1917 에 발생했다고 보는것이 맞다. 1차세계대전(1914~18)이 끝나갈 무렵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전쟁과 맞물려 크게 확산됐다. 미국내의병영·대서양의증기군함·반(反)독일전선의참호에 독감이 창궐 했다. 전쟁으로 언론통제가 된 나라들에서는 보도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 당시 중립국인 스페인에서만 독감감염상황이 제대로 보도됐고 게다가 스페인국왕 알폰소13세가 감염돼 <스페인독감> 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전쟁은 독감의 전파를 가속화했고 집단생활·전투상황이라는 특수조건으로 방역을 불가능하게 했다. 당시 25~34세의 건장한 성인들의 사망률이 높은것은 그들이 노동이나 사회활동을 활발히 해야하는 조건에 있어서다. 지금도 전염병의 비상상태에서 노동조건이나 임금보장을 제대로 받지못하는 부당한 대우로 어려움을 겪는데 당시에는 더욱 심각했을것으로 추정된다.

미질병통제예방센터(CDC)자료에 의하면 독감은 1918 봄·가을·겨울 세차례 미대륙을 휩쓸었다. 1차발병지는 캔자스시티였다. 2차에 희생자가 가장 많았으며 3차는 이듬해 봄까지 지속됐다. 미국인 25%가 독감에 걸렸고 67만여명이 숨졌다. 기대수명은 12년이 줄었다. 세계전체사망자는 1918에만 5000만명이었다. 1차대전희생자1600만명의 3배다. 미일간지<샌프란시스 코크로니클>은 <독일의평화프로파간다보다스페인독감이덜위험하다>고 보도해 전염병으로 인한 희생을 불가피한것으로 여기게 조장했다. 동부 필라델피아에서는 대중적인 캠페인과 1918.9 20만명이 참여하는 전쟁공채모집퍼레이드가 독감을 확산시켰다. 그주에 2600명이 숨졌으며 1918~19 필라델피아시의 인구10만명당768명이 사망했다. 중부 세인트루이스에서는 군대에서 발병하자 학교·극장·당구장을 폐쇄하고 대중집회도 금지하며 피해를 최소화했다. 서부 샌프란시스코는 마스크착용의무화조례를 만들며 통제·조절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11월말 해금령이 내려지고 공공집회도 허용되면서 3차유행때는 사망률이 50개도시중 최상위권에 이른다.

스페인독감은 식민지조선에도 퍼졌다. 1918 조선총독부통계연감에는 총인구 1670만명중 44%인 742만명의 독감환자가 발생해 이중 14만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있다. 치사율에서 조선인은 1.88%나 됐고 일본인은 0.71%였다. 3.1운동이 벌어지는 1919초에도 당시 매일신보는 많은 학교가 휴교하고 회사들은 휴업하며 추수를 할수 없어 민심이 흉흉하다고 보도했다.

1957유행은 2월 중윈난성에서 발생해 6개월만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최초 유행시에는 집단생활을 하는 학생이나 군인들 사이에서 주로 환자가 발생했으며 치명률이 그다지 높지않았으나 두번째유행시 노인들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체사망자수는 100~200만명으로 추정됐다. 이바이러스는 H2N2로 명명됐다. 1968유행은 7월중순에 홍콩에서 시작해 세계로 번졌다. 전체사망자수는 약100만명으로 추정됐다. 이바이러스는 H3N2로 명명됐다. 20세기 3번의 대유행은 모두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이다.

1958아시아독감으로 미국경제성장률은 1957 2%에서 1958 -0.9%로 하락했다. 일본노무라증권에 의하면 1957아시아독감으로 일본GDP는 2.6% 감소했다. 1968홍콩독감은 당시 미경제성장률을 2.9% 떨어뜨렸다.

20세기 플루시대가 21세기 코로나시대로 바뀌다

20세기 유행한 전염병은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의한 이른바 <독감>이라고 알려진 감염병이다. 21세기 새롭게 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원래 아데노·리노바이러스와 함께 흔한 3대감기바이러스의 하나였다. 유전자변이를 일으키며 사람에게 위협적인 바이러스로 변질됐다. 코로나바이러스계열로 2003사스·2015메르스·2019코비드19가 있다. 같은 계열의 사스·메르스는 발병1여년만에 8000여명의 감염자에 종식되거나 중동에서 발병해 전 세계 총2500여명에도 이르지못해 그백신·치료제개발이 이뤄지지못했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으면 배양이 어렵고 변이도 쉽게 일어나 백신·치료제가 완벽하지않고 개발도 쉽지않다. 신약개발에 평균10년정도 소요되는데 빠른 유전자변이로 얼마 쓰지못하고 무용지물이 될 리스크가 크다. 인류는 19세기이후 코비드19 사태처럼 질병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있지않은채 세계적 확산을 경험한적이 없었으며 이부분에서 보건당국이나 의료계의 우려가 컸던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초기 코비드19검사를 위한 사례정의에 폐렴을 중점에 뒀다. 코비드19가 초창기 <우한폐렴>으로 불린 이유도 SARSCoV-2에 감염되면 폐렴증상이 나타난다고 알려져서다. 폐렴은 정확히 폐렴균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우한폐렴>이라고 고집하는 이유는 중국에 그책임을 돌리고자하는 정치적이유가 크게 작용하고있다. 차차 확인된 코비드19의 증상을 보면 경미한 경우가 많으며 확산양상도 인플루엔자와 유사했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코비드19환자7만2314명임상데이터분석 결과에 따르면 환자의 81%가 경증이었다. 다이아몬드프린세스 크루즈선박환자의 10%도 진단시 무증상이었다. 코비드19는 지역사회감염확산이 더 두드러진다는점에서 사스와 차이를 보인다. 사스는 주로 병원내에서 전파됐다. 코비드19는 인플루엔자처럼 높은 감염률과 낮은 치사율을 보이고있어 소멸하지않고 향후 계절성독감처럼 이어질것으로 예상하고있다. 그런 이유로 백신·치료제의 개발이 중요하며 또 그가능성도 높다.

미식품의약국(FDA)은 5.1 인공호흡기등을 필요로 하는 코비드19 중증입원환자에게 사용하는것을 전제로 렘데시비르에 대한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정식사용허가와는 다르다. 미국립보건원(NIH) 이 주관한 임상시험예비결과 렘데시비르가 코비드19입원환자의 회복기간을 다른 통상적치료를 받은 환자보다 평균 4일·31% 단 축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에볼라치료제로 개발됐던 렘데시비르는 특정바이러스가 자신을 복제하고 잠재적으로 숙주의 면역체계를 압도하는 매커니즘을 무력화시키도록 고안됐기에 에볼라가 아닌 다른 바이러스에도 효과적인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남정부는 추가로 진행중인 임상결과를 보고 최종결정한다는 입장이며 위급한 상황이 지난만큼 안정성을 기본으로 시간을 두고 판단할 가능성도 크다.

현재 코비드19의 백신후보 70여개가 전세계각국에서 개발중이며 중국·미국·독일등에서 정부가 관련규제를 풀고 민간에서 수백억원의 자금을 기부하며 백신·치료제개발을 지원하고있다. 옥스퍼드대학연구진은 이미 4월초 6개월안에 백신을 출시할수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앤서니파우치미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NIAID)소장도 당초12~18개월보다 줄어든 내년1월까지 수억개의 백신생산이 가능할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겨울2차유행을 대비해 준비를 갖춰야한다는점을 강조하고있다. 빌게이츠도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이 18개월내로 나올수 있다고 하면서 9개월이내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재단을 통해 7개의 백신후보를 선택해 지원하고있다. 백신개발단축을 위해 전세계적협력을 강조하며 <터널끝에빛이있고(백신개발외에)다른대안은없다>고 말했다. 중난산중공정원원사도 <어떤국가에서먼저백신을개발하든전세계에공급하긴어렵기에상호협력이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9월쯤 백신이 나올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2005 <팬데믹인플루엔자국가전략>을 제정했다. 이국가 전략은 팬데믹에 대응한 준비태세·소통, 감시·탐지, 대응·봉쇄의 지침서다. 1977이래 보건복지부가 추진하지못했던것을 백악관 국토안보위원회(HSC)가 밀어붙이면서 국가안보·국토안보차원으로 다루면서 제정이 가능했다. 2006 보건복지·국토안보·국무·국방·운송·농업·재무·노동부의 역할과 책임을 명시한 300개가 넘는 실행계획도 제출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물론 민간영역·개인이 해야할 원칙등을 담았다. 영국도 2011 <인플루엔자팬데믹대응태세전략>을 마련했다. 가디언은 코로나대책문답식보도에 이문서내용을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일본은 2012신종플루대책문서에 1918 필라델피아와 세인트루이스 사망률편차를 담았으며 이는 코비드19대응에 대한 아베총리의 초중고임시휴교요청의 근거가 됐다. <코비드19국제적대응약속온라인회의>가 개최돼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각국에서 74억유로, 남코리아에서 약 600억원의 국제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목표액중 40억유로는 백신개발에, 20억유로는 치료제에, 15억유로가량은 진단부문에 쓰일 예정이다.

세계를 멈추고 세계를 바꾼 코비드19

코비드19로 2020 예정된 세계의 많은 스포츠경기들이 중단됐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1)은 3월 호주에서 2020시즌을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22개의 그랑프리중 3~6월기간 진행될 예정이었던 그랑프리를 취소하거나 연기해야했다. 수익이 급격히 줄어 직원500명중 절반을 일시해고하고 경영진의 급여를 20%삭감했다. 현재 포뮬러원은 7.3 오스트리아그랑프리로 2020시즌을 개막한다는 계획이다. 상황을 고려해 무관중에 하루에 두경기를 몰아서 진행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3월예정이었던 2022 열리는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메이저리그야구(MLB)· 메이저리그축구(MLS)·미국프로농구협회(NBA)·북미아이스하키리그 (NHL)는 선수들과 필수팀직원들에게만 라커룸입실을 허용하고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7월 개최될 도쿄올림픽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아일랜드정부는 3.17성패트릭데이퍼레이드를 취소했고 아일랜드계미국인이 많이 사는 보스턴에서도 퍼레이드가 취소됐다. 3.14~15 예정된 미국최대의 도서축제인 투싼축제도 취소됐다. 5.12~23 예정됐던 깐느영화제도 7월초로 미뤘다가 아직 개최여부·일자를 확정하지못하고있다. 필름마켓은 6.22~26 온라인개최를 결정했다. 8.5~15 열릴 예정이었던 스위스의 로카르노영화제도 취소됐다.

한편, 코비드19사태로 <4차산업혁명>이 촉진되고 가상경험공간이 점진적으로 성장하며 교육뿐아니라 경제·문화등 전분야에서 디지털경제의 수용이 높아질 전망이다. 대학강의에서도 온라인교육의 활용이 늘어나고 빅데이터·인공지능(AI)·드론모빌리티와 같은 기술혁명과 보건의료· 에너지·환경등의 기본분야들도 더욱 주목받고있다. 화상회의·재택근무등 산업환경의 변화, 온라인상점의 활성화, 비대면플랫포옴·배송업종중심으로의 일자리재편이 가속화된다는 예측이다. 국가·사회·개인간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정치·경제·문화 모든 사회분야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지는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세계는 코비드19이후에도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새로운 질서가 크게 변하지않을것이라고 예견되고있다.

그간 신자유의주의·세계화의 경제는 최소비용과 최고이익을 위해 국제적분업체계를 만들어왔다. 그러다가 코비드19사태이후 2월 중국에서 와이어링(배선뭉치)을 제때 공급받지못해 공장가동을 중단해야했던 자동차업계가 최근에는 유럽에서 엔진부품을 받지못해 생산라인을 제한가동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국내자동차회사중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수만개를 자체로 100% 조달하는 회사는 없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언제든 제한될수 있다는 가능성이 국제적분업을 위태롭게 하고있 다.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 조셉니블렛소장은 미외교전문지포린폴리시에 <이제세계는<상호이익을증진하는세계화>라는신념을다시갖기어려워진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탄소배출을줄여야한다는여론이장거리이동을요하는기업의공급사슬에의문을제기해왔다>고 했다. 하루이틀사이에 나온 문제가 아니며 코비드19만의 일시적현상이 아니라 현시기 사회문화적현상의 한단면이라는 의미다. 니블렛이 말하는 공급사슬의 약화는 20세기후반부터 가속화된 신자유주의경제질서가 후퇴하고있으며 코비드19사태로 안전·환경의 가치가 더 중요해지고있다는 의미다. 세계는 새로운 가치로 이동하고있다고 하지만 그세계가 신자유주의세계화된 세계보다 더나을것이라고 얘기할수는 없다. 그들이 그리는 세계는 여전히 금융자본집단이 그리는 세계의 일부여서다.

한국무역협회는 <코로나19변수와미국통상정책의향방>이라는 보고서에서 트럼프대통령이 중국관련안보위협을 코비드19와 연계해 부각시키고 무역장벽등 기존보호무역기조를 유지하는데 총력을 다할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는 코비드19확산에 3M·GM등에 국방물자생산법을 적용한 수출제한을 명령했다. 국경을 봉쇄하는 전략도 강화해 어느때보다 장벽이 필요한 순간이라며 멕시코국경에 장벽을 짓는 사업을 언급했다. 그리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일시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관세장벽을 올리고 환율을 내리면서 수출을 늘리고 제조업이 미국내로 돌아오는것은 트럼프의 지속된 바람이었다. 싱가포르국립대 키쇼어마부바니석좌교수는 최근 포린폴리시글에서 <코비드19사태는미국중심세계화에서중국중심세계화로의이동을가속할뿐>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코비드19를 수습해가는 과정에서 미국·유럽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될것으로 보인다. 1·2월까지만해도 그렇지않았지만 지금 은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과 미국은 모든 지점에서 팽팽하게 맞서고있다. 역시 금융자본집단이 그리는 중·미시소체계, 중국을 중심에 놓고 중국과 미국을 상호견제시키는 시스템에 잇닿아있다.

고용과 국내총생산(GDP)의 침체는 지난 1930년대 대공황이후로도 최악의 수준을 이어갈것으로 전망되고있다. RSM의 경제학자 조셉브루수엘라스는 <현재회복세가좀더점진적이지만,여전히공격적으로회복하면<나이키형>을그릴것으로보인다>고 말했다. 4월중순 440만명의 미국인들이 실업수당을 청구하면서 청구건수가 코비드19사태기간에만 2600만명이상으로 폭증했다. 뉴욕연준(Fed)은 약11%의 GDP위축을 예상하고있고 최근 산업생산수치는 2차세계대전이후 최악이었으며 소매판매수치도 극명하게 줄었다. 소매업계는 이미 심각한 압력을 받고있다. 미시장조사업체CFRA의 분석가들은 올해 약1만5000개의 점포가 문을 닫을것으로 예상했다. 국가경제위원회(NEC) 래리커들로국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5월은전역경제개방으로의전환이될것>이라면서 <우리는경제가회복될수있는지점까지최선을다할뿐>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기회로 작용할수 있다. 자본을 쥐고있는자들에게는 이위기가 절망을 의미하지않을것이다.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민중에게는 어떤 기회로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