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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26일 금요일 19: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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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시금석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시금석



1920년대말 만주에서 항일청년핵심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한 젊은 핵심이 다른 나이어린 핵심에게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와의 합작에 대해 물었다. 그때는 국민당이 제1차국공합작을 깨고 공산당원들을 제거하며 민중들을 무리로 학살할 때다. 다들 격분하여 복수를 다짐할 때, 이 나이어린 핵심은 그 젊은 핵심에게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는 애국애족의 공통점이 있다고 어떤 변수가 있어도 이 통일전선노선은 관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석은 당시 이러한 논쟁에서의 입장차이를 진정한 공산주의자와 기회주의자를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회고했다.


그 젊은 핵심이 나이어린 핵심의 손을 잡고 격하게 이름을 불렀다는 일화. 그 젊은 핵심은 일본유학을 다녀온 청년인텔리 차광수고 나이어린 핵심은 당시 중학생에 불과한 김성주(김일성)였다. 그 이후 차광수는 김성주가 지도하는 청년동맹을 함께 조직하고 그 뒤 항일유격대에서 김성주의 참모장을 맡았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시기만이 아니라 생애 마지막순간까지 이러한 통일전선사상을 일관되게 관철했다. 그렇게 해서 공산주의자동지들을 학살한 민족주주의군대들과 절대로 총질을 하지 않았다. 1930년대 후반 공산주의군대와 민족주의군대가 백두산에서 하나가 된 것도 다 이런 바탕에서 가능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표적인 반공산주의자적 민족주의자인 김구와의 합작도, 빨치산토벌대장출신 민족주의자인 최덕신과의 합작도 기어이 성사시켰다. 김주석의 한생은 그렇게 보면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와의 통일전선을 실천한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과 노선이 김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총비서, 또 김총비서의 후계자인 김정은제1비서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남에서는 통일전선론을 전략전술적으로만 대하는데 결코 그런 수준으로는 북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를 못하는 북과 합작이든 대결이든 잘 될 리가 없다. 늘 말하지만, 북에 대한 남의 연구는 너무나 일천하고 왜곡돼 있어 첨예한 정국을 돌파하는데 별 도움이 안되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항일시기에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관계를 오늘 무엇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진보세력내 자주계와 평등계가 아니라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주계와 평등계의 단합을 이룬 전제에서 진보계와 개혁계의 단합이다. 선후로 하지 못해 동시에 진행하더라도 그 근본은 달라지지 않는다. 진보계가 우선 단합해야 주체역량이 강화되어 더 큰 단합을 힘있게 추동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오늘 역시 이러한 사상관점을 가지는가 못가지는가가 진정한 진보주의자와 사이비 진보주의자, 즉 기회주의자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등계를 품지 못하는 자주계, 개혁계를 품지 못하는 진보계가 제대로 된 자주계, 제대로 된 진보계일 수 없다. 이 이치를 터득하지 못해도 문제고 알고는 있는데 실천하지 못해도 문제다. 매사 당내문제, 운동계내문제를 자주계와 평등계를 대립시키고 그 대립을 격화시키며 풀려고 하는 일부자주계는 정말로 명심할 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어 때로 극단적인 분열양상을 빚어낸다. 결과적으로 주체역량을 훼손시키며 주체적으로 돌파해야 할 엄중한 정세속에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끼친다.


12일 진보당(통합진보당) 중앙위회의에서 벌어진 최악의 폭력사태, 5.12사태는 자주계가 2008년분당사태에서 전혀 교훈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말은 분당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어 뜻있는 사람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진보당이 노동계급의 변혁적 당이 아니라 통일전선적 당이고, 자주계만의 당이 아니라 평등계, 나아가 진보적 개혁계까지 포괄하는 통일전선적 당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제대로 알지못하고 있다. 여기서 비롯된 무지가 끝내 비극적 사태를 일으키고 말았다고 봐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통일전선의 원칙이 무엇인지,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5.12사태를 주도한 일부 자주계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된 그 무엇은 바로 이 원칙이다.


진보계와 개혁계의 단합, 그 전제로서의 자주계와 평등계의 단합. 진보계의 단합을 전제로 하면서 동시에 개혁계와의 단합을 이루어내는 이 길외에 다른 길은 없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며 오래 걸려도 오직 이 길로만 가야 한다. 폭력은 이성을 잃었다는 증거다. 보수정당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자주계다운 자주계, 진정한 자주계는 기회주의적으로 동요하지말고 통일전선적 성격인 진보정당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흔들림없이 고수하고 견결히 관철해 나가야 한다. 진정한 자주계마저 중심과 원칙을 잃는다면, 자주계와 비자주계 사이에 폭발이 발생하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될 수 없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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