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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 항쟁의기관차〉 〈미루나무〉사건

사건 이틀전인 1976.8.16부터 진행된 5차블럭불가담운동정상회의에서 북은 주남미군철군문제와 미국핵무기철거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하루전인 8.17 유엔성원국들은 미국의 남에서의 모든 군사장비 철수와 남에서의 군사연습·도발행동중지촉구대미결의안을 유엔총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미군의 대북결의안에 대한 지지성원국이 19개국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2008 기밀해제된 비망록에서 확인됐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미군은 사전에 현장사진촬영을 위한 준비가 철저히 돼있었고 사건이 발생하자 기민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진들을 골라 공개했다. 군사분계선이 없었던 당시 판문점의 상황은 크고 작은 충돌이 많았다. 미군은 사전에 이미 부대출동대기상태였던 것으로 확안됐다. 반면 북의 군대가 수십명이 몰려온 시점은 나중이었다. 북측에서는 <그 나무는 우리가 심고 기른 것으로 도로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며 그것을 자르려면 군사정전위에서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지치기에는 필요없는 큰도끼를 들고나타난 측도 미군이고 북군인이 미군을 때렸던 곤봉의 주인도 미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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