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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항쟁의기관차〉 1 첫남북수뇌회담과 6.15시대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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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98.4.18 남북연석회의50돌에 즈음해 <온민족이대단결하여조국을통일하자>라는 글을 발표한다. 글에는 북에서 얘기하는 <민족대단결5대방침>이 담겨있다. 정세는 바야흐로 1998.8.31 광명성1호-백두산1호의 발사를 앞두고있었다. 1995.1.1 기점으로 선군정치가 시작됐고 <고난의행군>을 마무리하는 강행군의 시기였다. 1998.8 광명성1호발사가 있기직전 미언론들에 <북금창리핵시설>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미간협의가 재개됐고 1999.5 페리전국방장관이 특사로 파견됐다. 금창리를 보고 돌아온 페리는 상원에 대북고립압살전략의 <평화공존>전략으로의 전환을 골자로 하는 <페리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런 정책전환을 배경으로 2000.6 남북수뇌회담이 추진된다. 미국과는 2000.10.12 북의 조명록총정치국장이 백악관에 들어가 미대통령 클린턴과의 북미공동선언을 합의했다. 미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정권을 잡으면서 클린턴의 방북은 성사되지 못했고 이후 6자회담의 틀에서 북핵문제가 다뤄지는 다자간의 소극적인 외교전으로 전환됐다. 북은 이 과정에서 1·2차핵시험을 진행했고 은하2호를 발사했다. 이렇게 분단역사상 첫남북수뇌회담이 이뤄지고 6.15시대가 열렸다. 노무현정권이 들어서자 반북대결수구세력은 <대북송금사건>을 획책하며 6.15공동선언을 위협했다. 노무현 정권은 국가보안법개정조차 손을 대지 못하고 2007 정권말기에 가서야 방북하며 10.4선언에 합의했다. 그러나 2달뒤 대선에서 정권은 반북수구세력에게 넘어갔다. 6.15시대는 상층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며 하층민족통일전선의 확대에 기여했다. 1990년대 북의 선군정치·<고난의행군>강행군과 우리민족의 북남해외3자연대의 하층민족통일전선의 발전은 6.15시대를 열었지만 분단·예속의 굴레를 혁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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