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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한 우리 어버이

6일 노동신문은 기사 <논설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는것은 우리 당의 존재방식>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관철에 떨쳐나섰다> ,<혁명의 성지에 바쳐가는 충성의 마음>, <위대한 영도의 손길아래 넓어지는 조국의 대지>,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한 우리 어버이>, <한없이 고결한 풍모를 지니시고>,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 <하늘처럼 떠받드신 존재>, <당정책의 열렬한 선전자-모범학습강사들>, <충성과 위훈의 한길을 이어가는 백금산의 주인들>, <양심>, <숭고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역의 아들딸들을 안아키우시여>, <20세기의 탁월한 국가정치활동가>등을 게재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논설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는것은 우리 당의 존재방식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14차 정치국 확대회의는 인민을 하늘처럼 내세우고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우리 당의 본태를 뚜렷이 과시하였다.인민에 대한 멸사복무, 이것은 인민대중을 생명의 뿌리로 여기는 조선노동당의 존재방식이며 혁명적당풍이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이 언제나 인민대중을 생명의 뿌리로,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으로 여기고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 절대시해온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들은 당을 진정 운명의 등대로, 어머니로 믿고 따르게 되였으며 이 땅우에는 일심단결의 대화원이 자랑스럽게 펼쳐지게 되였습니다.》

나무를 받쳐주고 쉬임없이 줄기에 영양소를 주는것은 뿌리의 중요한 기능이다.뿌리가 튼튼해야 나무는 그 어떤 광풍에도 끄떡없고 푸른 아지와 생신한 잎새를 펼치며 거목으로 자랄수 있다.

당도 마찬가지이다.억센 뿌리, 공고한 대중적지반을 가진 당만이 무한한 활력과 왕성한 열정에 넘쳐 영도적정치조직으로 끊임없이 강화발전해나갈수 있다.

인민은 혁명적당의 생명의 뿌리이다.혁명적당은 인민대중속에서 선발된 선진분자들로 조직되고 인민대중을 저수지로 하여 자기의 대열을 보충확대해나가며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나간다.인민의 버림을 받은 당, 인민이라는 기반이 없는 당은 바람앞의 초불과 같다.

뿌리는 저절로 든든해지는것이 아니다.나무의 생명활동에 의해 뿌리가 지심깊이 내리는것처럼 일군들의 멸사복무에 의해 당의 생명의 뿌리가 억세여진다.일군들은 한몸이 그대로 우리 당의 생명의 뿌리를 소중히 덮어주는 한줌 흙이 되려는 고결한 희생정신을 지니고 인민을 위해 뼈를 깎고 피를 바치는 충실한 복무자가 되여야 한다.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는 당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높여주는 자양분이다.

인민의 지지와 신뢰는 당의 힘이다.뿌리가 흔들리면 나무가 바로설수 없듯이 대중의 믿음이 흔들리는 당은 굳건할수 없다.당이 민심을 얻는것은 천하를 얻는것이나 같고 민심을 잃는것은 당자체를 잃는것이나 같다.혁명적당에 있어서 인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없다.

당에 대한 군중의 지지와 신뢰는 강압적인 방법이나 유혹으로는 절대로 얻을수 없다.그것은 당의 인민사랑의 정치와 인민적시책, 일군들의 헌신적인 복무정신에 의하여 굳건해진다.당이 인민의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이끌어주며 일군들이 인민의 이익과 편의를 첫자리에 놓고 투쟁할 때 군중은 평범한 나날에나 시련의 나날에나 변함없이 당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게 된다.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는것은 조선노동당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혁명발전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투쟁과업은 달라졌어도 이민위천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운 우리 당의 입장과 자세에서는 사소한 드팀도 없었다.당사업전반이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일관되고 전당에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을 사랑하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기풍이 차넘치는 여기에 우리 당의 불패의 위력이 있고 진모습이 있다.

일군들의 멸사복무정신의 열도이자 당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심의 높이이다.당에서 아무리 인민을 위한 노선과 정책을 제시해도 그 관철의 제일기수인 일군들이 인민의 복무자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당의 인민적시책이 인민들에게 제때에 정확히 가닿을수 없고 나아가서 혁명진지, 계급진지가 흔들리게 된다.일군들이 고생은 자기가 하고 낙은 인민들이 누려야 한다는 확고한 관점을 지니고 인민생활향상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해나갈 때 당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심이 지켜지고 어디서나 노동당만세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지게 된다.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는 광범한 군중을 혁명위업수행에 떨쳐나서도록 적극 추동하는 활력소이다.

전체 인민이 총동원되여야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당의 위업이 승리적으로 전진할수 있다.대중이 발동되는것만큼 혁명이 전진하고 당의 전투력과 향도력이 과시된다.

군중동원, 군중발동은 호소나 하고 지시하는 방법으로는 성과를 볼수 없다.진실로 인민대중을 감화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틀어잡는 여기에 대중을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킬수 있는 묘술이 있다.일군들이 인민의 요구를 최우선, 절대시하며 인민을 위해 만짐을 지고 내달릴 때 대중의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은 더 높이 발양되게 된다.

부닥치는 시련과 난관을 맞받아뚫고 사회주의승리의 진격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오늘의 정면돌파전도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전으로 일관되여야 전체 인민이 호응하며 산악같이 일떠서는 위대한 혁명사업으로 될수 있다.시련이 있다고 하여 인민들의 생활을 외면하고 남을 쳐다볼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수록 인민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와 애로를 풀어주며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야 천사만사를 풀어나갈수 있고 그 어떤 험산도 넘을수 있다.일군들은 모든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인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현대적인 종합병원건설을 발기하고 수도시민들의 생활보장문제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중요의제로 토의한 당의 의도를 뼈에 새기고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것을 체질화, 습벽화해나가야 한다.

모든 일군들은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는것이 우리 당의 존재방식이라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14차 정치국 확대회의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사업에 떨쳐나서야 할 것이다.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관철에 떨쳐나섰다

평양종합병원 의료봉사의 지능화, 정보화를 위한 준비사업 적극 추진

역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14차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평양종합병원건설이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는것과 동시에 과학기술부문에서는 종합병원 의료봉사의 지능화, 정보화를 위한 준비사업이 입체적으로 벌어지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겹쌓인 애로와 격난을 뚫고 수도의 한복판에 솟아오르게 될 평양종합병원은 적대세력들의 더러운 제재와 봉쇄를 웃음으로 짓부시며 더 좋은 내일을 향하여 힘있게 전진하는 우리 조국의 기상과 우리 혁명의 굴함없는 형세를 그대로 과시하는 마당이 될것입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지난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건설 착공식에서 하신 연설에서 종합병원 의료봉사를 지능화, 정보화하기 위한 실무적대책을 세울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그리고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14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평양종합병원을 인민들에게 실지 최상급의 선진적인 의료봉사를 할수 있게 세계적수준으로 훌륭히 완공하는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시급히 대책하기 위한 국가적인 강력한 조치를 또다시 취해주시였다.

인민을 위한 병원을 보란듯이, 세상이 부러워하게 훌륭히 일떠세우려는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을 빛나게 실현하기 위하여 현재 평양종합병원건설연합상무 기술 및 운영준비분과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보건성을 비롯한 해당 성, 중앙기관의 일군들과 각지 대학, 과학연구기관, 의료봉사기관의 과학자, 기술자들, 의료일군들로 강력한 지능화, 정보화추진역량이 조직되여 자기 사업을 활발히 진행해나가고있다.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의학대학, 이과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과 과학연구기관, 의료봉사기관의 권위있는 과학자, 기술자들과 의료일군들, 박사원생들이 여기에 망라되여있다.

평양종합병원 의료봉사의 지능화, 정보화를 위한 사업에서 자기들이 맡고있는 임무의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고있는 과학자, 기술자들과 의료일군들은 당의 뜻을 결사관철할 한마음한뜻으로 집단주의의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면서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긴장한 두뇌전, 탐구전을 벌리고있다.

과학자, 기술자들과 의료일군들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지난 4월부터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됨으로써 지금까지 평양종합병원 의료봉사의 지능화, 정보화를 위한 기술과제서가 작성되고 총설계서에 대한 국가적인 심의가 결속되였으며 현재 개발단계에 진입하였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보건성에서는 당이 정해준 시간에, 당이 바라는 수준에서 평양종합병원 의료봉사의 지능화, 정보화를 기어이 실현하기 위하여 떨쳐나선 과학자, 기술자들과 의료일군들의 앙양된 열의에 맞게 조직사업을 빈틈없이 짜고들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제때에 요해장악하여 대책을 세우기 위한 작전과 지휘를 강화하고있다.

보건성과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이과대학을 비롯한 여러 단위의 책임일군들이 개발사업이 벌어지고있는 현지에 자주 나와 걸린 문제들을 풀어주고 성의있는 후방사업으로 과학자, 기술자들을 적극 고무해주고 있다.

혁명의 성지에 바쳐가는 충성의 마음

전국각지에서 삼지연시꾸리기를 물심양면으로 지원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성, 중앙기관들과 각 도, 시, 군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우리 인민의 마음의 고향인 삼지연시를 혁명의 성지답게 더욱 훌륭히 전변시키기 위한 사업에 적극 떨쳐나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있다.

지난 5월과 6월 기계공업성, 경공업성을 비롯한 여러 성, 중앙기관의 책임일군들이 삼지연시꾸리기 3단계공사장을 찾았다.그들은 건설현장들을 돌아보고 각종 기공구와 안전모를 비롯한 노동보호물자, 후방물자를 돌격대원들에게 넘겨주고 당의 구상을 충성으로 받들어 올해에도 자랑찬 성과를 거둘것을 당부하였다.

금강무역지도국을 비롯한 여러 성, 중앙기관의 일군들은 삼지연시 신무성동지구의 살림집과 고급중학교건설장에 찾아가 돌격대원들에게 많은 지원물자를 넘겨주어 그들을 힘있게 고무해주었다.

양강도당위원회 일군들은 최근 216사단 철길건설여단 양강도연대 돌격대원들의 생활조건을 요해하고 안전모, 작업장갑을 비롯한 노동보호물자를 원만히 보장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들었다.

우시군, 초산군, 법동군, 김정숙군, 장강군당위원회와 삼지연시, 강계시당위원회에서는 우리 혁명의 성지를 더욱 훌륭히 꾸리는데 이바지할 마음 안고 성의껏 마련한 기공구와 노동보호물자, 많은 후방물자를 삼지연시건설장에 보내주어 돌격대원들이 새로운 위훈창조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일으키도록 하였다.

은천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에서는 922건설여단 황해남도연대에 8종에 800여점의 지원물자를 보내주어 돌격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개성시청년동맹위원회와 평안남도청년동맹위원회에서는 돌격대원들과 한전호에 선 심정으로 갖가지 후방물자를 건설장에 보내주었다.

청진철도국과 라선철도국을 비롯한 여러 단위의 일군들도 삼지연시꾸리기를 함께 책임진 심정으로 돌격대원들과 시공단위들에 작업복과 신발, 많은 후방물자를 보내주는 기풍을 발휘하였다.

희천은하피복공장을 비롯한 각지 공장, 기업소의 일군들과 근로자들도 성의껏 마련한 후방물자를 216사단의 돌격대원들에게 안겨주어 그들모두가 날에날마다 높은 공사실적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삼지연시꾸리기 3단계공사에 대한 성, 중앙기관 일군들과 각지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지원열의에 고무된 216사단안의 전체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은 연속공격, 계속혁신의 한길로 줄달음치며 우리 당의 웅대한 건설구상을 충성으로 받들어나가고 있다.

위대한 영도의 손길아래 넓어지는 조국의 대지

대계도간석지가 완공된 때로부터 10년세월이 흘렀다.

주체99(2010)년 7월 이곳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계도간석지건설과 같은 방대한 규모의 자연개조사업은 김일성동지의 후손들이며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직한 애국자, 영웅들만이 해낼수 있는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하시며 평안북도의 간석지건설자들에게 특별감사를 주시였다.

옹근 한개 군의 면적과 맞먹는 부침땅을 얻어내고 국토의 면모를 일신시킨 이 놀라운 기적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 정력적인 영도가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며 평안북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불타는 충성의 마음과 무한대한 정신력이 낳은 자랑찬 성과이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의 영원한 재부인 땅을 넓혀가는것은 후손만대의 행복과 나라의 융성번영을 위한 중요한 사업입니다.》

조국의 국토를 넓히기 위한 간석지건설과 같은 대자연개조사업의 직접적발기자는 위대한 수령님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벌써 우리가 인민의 나라를 세운 다음에 서해안의 간석지를 막으면 수십만정보의 기름진 땅을 얻을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으며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간석지조사단을 파견하시여 우리 나라 간석지건설의 웅대한 전망을 펼쳐주시였다.

주체47(1958)년 6월 몸소 배를 타시고 다사도앞바다에까지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해안일대에는 간석지가 많다고 하시며 평안북도에 간석지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소를 내오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서해안일대에 수십만정보의 간석지를 개간할데 대한 웅대한 목표를 제시하시고 대자연개조사업을 정력적으로 영도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그대로 이어나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90년대에 간석지의 해일피해를 가시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으며 그후에도 대계도간석지건설장을 여러차례 찾으시여 거창한 창조투쟁에서 더 큰 로력적위훈을 세우도록 평안북도의 간석지건설자들을 불러일으키시였다.

그리고 주체97(2008)년 12월 당보에 노래 《간석지에 새겨가는 청춘의 마음》을 게재하도록 해주시여 간석지건설자들에게 새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고 그들이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높이 추켜들고나가는 투쟁의 전렬에 서도록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고무된 평안북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의 노동계급을 비롯한 건설자들은 우리 식의 독특한 건설공법들을 창안도입하여 대계도간석지건설공사를 완공함으로써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조선인민의 정신력이 하늘도 이긴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대자연개조구상을 현실로 꽃피우기 위하여 불굴의 정신력으로 만난시련을 이겨내고 대계도간석지건설공사를 훌륭히 완공한 평안북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당시의 평안북도간석지건설연합기업소)에 김일성훈장을, 대계도간석지설계도에 김일성상을 수여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기업소의 로력혁신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최상최대의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대를 이어 더해지는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평안북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대계도간석지건설공사를 완공한 후에도 조국의 국토를 넓히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리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간석지건설영도업적은 오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에 의하여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

곽산간석지 2계단건설공사가 마감단계에서 다그쳐지고있던 주체101(2012)년 2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유화 《대계도간석지의 저녁》을 선물로 보내주시여 건설자들의 혁명열, 투쟁열을 백배해주시였으며 공사를 끝낸 후 건설자들이 삼가 올린 편지를 받아보시고

《동지들의 불굴의 정신과 혁혁한 성과를 당중앙은 높이 평가합니다.

김정은

2012. 4. 27》

이라는 사랑의 친필을 남기시였다.

간석지건설자들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크나큰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하여 견인불발의 투쟁을 벌려 1 600정보의 곽산간석지 2계단건설을 1년 10개월만에 끝낸 기세로 6년이상 걸려야 한다고 하던 4 500정보의 홍건도간석지 1단계건설을 4년만에 결속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건설자들은 연이어 5 500정보의 홍건도간석지 2단계건설의 1차물막이공사를 끝내고 1호방조제를 완공한데 이어 2, 3, 4, 5호방조제확장성토 및 장석입히기공사를 당창건 75돐까지 완공하기 위해 충성의 돌격전을 벌리고있다.

3 300정보의 월도간석지 2구역의 1 870정보에 대한 1차물막이공사를 끝내고 방조제확장성토작업을 힘있게 내미는것과 동시에 1구역의 1차물막이공사를 짧은 기간에 결속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다그치고있다.

하여 8 800정보의 대계도간석지건설공사완공후 지금까지 10년동안에 13 470정보의 새땅을 또다시 얻어내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우불구불하던 해안선이 자를 대고 그은듯이 쭉 펴지고 서해안간석지에 사회주의농장벌과 소금밭, 양어장이 더욱 늘어나는 희한한 현실을 보면서 평안북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기 위한 오늘의 대자연개조사업에서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조국의 대지를 넓혀나가는 용감한 바다의 정복자, 백절불굴의 투사들답게 더 큰 위훈의 자욱을 새겨갈 일념에 넘쳐있다.

조국의 영원한 재부인 땅은 우리 당의 현명한 영도와 간석지건설자들의 불타는 충성심, 뜨거운 애국심에 의해 앞으로도 계속 넓어질 것이다.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한 우리 어버이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영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김정은

그리움으로 더욱 불타는 7월의 하루하루가 흐른다.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을 그리며 온 나라의 마음과 마음들이 뜨겁게 설레인다.

어찌하여 어버이수령님의 환하신 미소는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의 가슴가슴을 열화같이 불타오르게 하고 해솟는 바다처럼 설레이게 하는것인가.

인류역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바쳤다고 하는 위인들을 적지 않게 기록하고있다.하지만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현실로 꽃피우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오신 우리 수령님 같으신 걸출한 위인, 인민의 어버이가 언제 또 있었던가.

인민들속에서!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생애를 함축할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정녕 이 한마디일것이다.

위대한 생애의 주체83(1994)년 7월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과 함께 걸어오신 자신의 한생을 추억깊이 돌이켜보시며 하신 뜻깊은 교시가 되새겨진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지금까지 인민을 믿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살아왔습니다.나의 한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쳐온 한생이였으며 인민들과 함께 투쟁해온 한생이였습니다.》

언제나 인민과 함께,

인민은 수령님을 태양으로 받들었어도 수령님은 저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인민들속에 계시였다고 어느 한 시인도 노래하였듯이 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은 언제나 인민과 함께 계신 인민적수령의 한생이였다.

주체101(2012)년 4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어버이수령님 탄생 100돐에 즈음하여 발표하신 논문의 구절구절이 어려온다.

수령님은 적들앞에서는 백두산호랑이와도 같았지만 전사들과 인민들앞에서는 더없이 친근하고 다정한 어버이이시였다고, 수령님께서는 어린이와 이야기할 때에는 어린이의 심정이 되여주시고 로인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허물없는 친구가 되여주시였으며 다심한 어머니와도 같이 사람들의 속생각까지 다 헤아려주시였다고, 수령님께서는 노동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기름묻은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시고 농촌에 가면 밭머리에서 농민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였으며 사람들을 만나 담화하실 때에는 롱담도 즐겨하시고 유모아와 생활적인 말씀도 자주 하시였다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얼마나 뜨겁게 회억하시였던가.

어린이로부터 백발의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으신 어버이수령님, 자신의 성스러운 한평생을 인민과 합쳐놓으시고 끝없는 헌신의 자욱만을 수놓아오신 우리 수령님의 인민적영도의 갈피에 새겨진 하많은 사연들이 오늘도 천만의 심장을 끝없이 울려준다.

주체81(1992)년 5월 《노동신문》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개성시내 인민경제 여러 부문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신 소식이 실리였다.

80고령임에도 머나먼 길을 달려 개성시를 찾으신 그이의 헌신과 노고에 온 나라 인민은 한없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허나 어떻게 알수 있었으랴.우리 수령님 이어가신 현지지도길에 어떤 가슴뜨거운 사연이 새겨져있는지.

그날 새벽에 평양을 떠나 달리던 승용차들은 뜻밖에도 개성시를 얼마 앞두고 멈춰서게 되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 아침식사를 하고가자고 하신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길가에서 아침식사를 하시게 하다니.

이런 생각으로 어쩔바를 몰라하던 일군들은 우리 수령님께 어떻게 풀밭에서 식사를 하시겠는가고, 개성에 아침식사를 준비시켰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국가주석의 현지지도라고 해서 왕님행차하듯 해서는 안된다고, 옛날에는 시골의 사또만 행차해도 숱한 아전나부랭이들까지 묻어가서 음식상을 차려놓고 진탕망탕 먹고 돌아치며 인민들의 피땀을 빨아내군 했다고, 그러나 우리는 인민우에 군림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인민의 심부름군이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오늘은 자신께서 내겠다고, 어제 저녁에 곽밥을 준비시켰으니 그걸 하나씩 나누어주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면 인민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으니 좋고 시간을 절약해서도 좋다고 하시였다.

손에 든 곽밥을 내려다보던 일군들은 또 한번 놀라며 눈굽을 적시였다.식은 밥에 반찬이라야 콩나물과 도라지무침이 전부였던것이다.

간소한 야외식사는 15분도 못되여 끝났다.마지막 한사람이 저가락을 놓을 때까지 기다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럼 시간도 없는데 더운물로 입가심들을 하고 어서 떠나자고 하시며 일어서시였다.

길없는 심산속, 갈대 설레이는 길섶, 머나먼 섬마을 도래굽이…

어버이수령님의 발자취가 무수히 찍혀진 이 나라의 산과 들은 그 얼마이며 이러한 야외식사자리는 또 얼마인지 우리 진정 다 아는가.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들로 수놓아진것이 우리 수령님의 하루하루였고 거룩한 한생이였다.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이것은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서 언제 한번 떠나본적 없는 지론이였다.

여기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오래동안 사업해온 한 일군의 회상자료가 있다.

언제인가 우리 수령님께서 외국방문의 길에 계실 때였다.달리는 열차안에서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무연한 벌판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다른 나라들에 가보면서 다른것은 부러운것이 없는데 저렇게 넓은 부침땅만은 정말 탐난다고 하시였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을 위해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조국과 떨어진 외국방문의 길에서조차 농사문제때문에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이 감동을 금치 못해하는데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의식주문제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먹는 문제이다.글자순서로 보면 입는것이 첫째이고 먹는것이 둘째이며 쓰고 사는것이 셋째이지만 나는 먹는것을 첫째로, 입는것을 둘째로, 쓰고 사는것을 셋째로 본다.

그러시고는 다시금 차창에 시선을 주시며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에서 해마다 사망률은 줄어들고 대신 출생률은 늘어만나고있다고 하시면서 수첩을 펼쳐드시고 무엇인가 계산해보시였다.

호기심에 끌린 일군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 수첩에 우리 나라의 부침땅면적과 인구 한사람당 차례지는 면적이 적혀있는것이였다.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시였어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속에, 인민과 함께 계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이런분이시였다.

창밖의 눈보라소리를 들으시여도 산판에서 일하는 벌목공들을 생각하시였고 지나가는 소나기에도 비새는 집이 없겠는가를 걱정하시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자식들의 생활을 구석구석 보살펴주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농촌집에 들리시여 가마뚜껑도 열어보시고 새집들이한 살림집에 가시여서는 방바닥도 짚어보시였으며 공장노동자들의 식당과 합숙에서 국맛도 보시고 이불두터이도 가늠해보시면서 그처럼 마음쓰신 인민의 어버이이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기울이신 그이의 어버이사랑을 천으로 헤아리랴, 만으로 헤아리랴.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외국의 한 문필가를 위해 오찬을 마련하신적이 있었다.

그때 그 문필가는 우리 수령님께 슬기로운 조선인민의 번영을 위하여 부디 건강하시기를 축원한다고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을 위해서 오래 살라니 참으로 고맙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 사실에 대하여 감동적으로 전하면서 후날 그 문필가는 인민이라는 두 글자만 화제에 오르면 금시 활기를 띠시는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글은 마땅히 인민적인 송가로 되여야 할것이라고 자기의 심정을 절절히 토로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삶전체를 인민을 위한것으로 생각하시며 인민을 하늘로 떠받드신 위대한 수령님이시기에 그이께서 한평생 구상하고 실현하신 일들은 모두 인민과 잇닿은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들을 찾아 불철주야로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길은 수령과 인민이 정과 정, 믿음과 믿음으로 결합되는 위대한 혼연일체를 낳았다.바로 그 힘이 혁명의 년대마다에 세인을 경탄시키는 변혁과 기적을 안아왔다.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인민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체현하시고 멸사복무의 려정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자욱자욱을 마음속으로 따르며 오늘 온 나라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은 인민의 만복이 더욱 넘쳐날 조국의 내일을 확신하고있다.

그렇다.위대한 수령님의 성스러운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더더욱 줄기차게 흐르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하늘처럼 여기신 우리 인민을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상으로 정히 새겨안으시고 수령님들을 모시듯이 받들어나가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를 높이 모시여 어버이수령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

우리 수령님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인민들속에 계신다.

한없이 고결한 풍모를 지니시고

몸소 벼모도 꽂으시며

주체 36(1947)년 6월 어느날이였다.몸소 미림벌에 나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늘 동무들과 같이 모내기를 해보려고 나왔다고 하시며 논판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이때 한 일군이 어버이수령님께 장화를 가져다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이 장화를 신고 모내는것을 보았는가고, 모내기는 맨발이 좋다고 하시며 장화를 밀어놓으시고 논판에 들어서시였다.

평범한 농민들과 함께 손수 모를 꽂으시는 어버이수령님,

흥겨운 웃음꽃이 피여나는 논벌은 단란한 한가정의 일터와도 같이 흥성이였다.

한 일군이 어버이수령님의 앞자리에 모를 꽂아드리려 하자 그이께서는 남의 구역에까지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모를 내러 온 사람들이니 저마다 책임량을 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밝은 웃음을 지으시고 모를 꽂으시였다.

일군들과 농민들이 조금이라도 어려워할세라 이처럼 일판을 흥겹게 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정녕 동서고금 그 어디에 농민들과 함께 허물없이 모를 꽂으시며 고락을 같이하신 우리 수령님 같으신 위인이 있었던가.

조밥에 오이랭국

주체54(1965)년 7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한 공장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이날 어버이수령님의 지도밑에 진행된 협의회는 점심때가 퍼그나 지나서야 끝나게 되였다.그러자 공장일군들은 죄스러운 마음으로 어버이수령님께 공장정양소에 점심식사를 준비해놓았다고 말씀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럼 모두 같이 가자고 너그럽게 말씀하시며 앞장서 걸으시였다.

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기들의 소청을 쾌히 받아주시자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그이의 뒤를 따랐다.그런데 그이께서 가시는 곳은 정양소가 아니라 숙소였다.일군들은 너무도 뜻밖의 일에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그곳에는 간소한 점심상이 차려져있었다.소박한 식탁에는 조밥 몇그릇과 오이랭국이 올라있었다.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는 그들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늘은 우리가 준비해온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시면서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시원한 오이랭국이 그저그만이고 거기에 조밥이 제격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낮에 있었던 일을 상기하시며 자신께서는 대접놀음을 반대한다고 이르시였다.

진정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두지 않으시고 오직 인민만을 생각하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출근시간에 있은 일

주체61(1972)년 1월 대한추위로 날씨가 여간만 차지 않던 어느날 아침 출근시간에 있은 일이다.

수도의 어느 한 무궤도전차정류소부근에 승용차 한대가 서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수도근로자들의 출근실태를 알아보시기 위해 일부러 그곳에 차를 멈추게 하시였던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정류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궤도전차가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시계를 보시며 무궤도전차가 몇분만에 한대씩 오는가 직접 측정해보시였다.

무궤도전차는 인차 와닿지 않았다.시간이 어지간히 흘러서야 무궤도전차가 정류소에 도착하였다.

손님들을 다 태운 전차가 이윽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무궤도전차가 제시간에 다니지 못하는 원인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조직사업을 잘해서 걸린 문제를 풀어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귀중한 시간을 바쳐가시며 인민들의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헤아려보신 위대한 어버이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리 어찌 세월이 흐른들 잊을수 있으랴.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

오백룡

1933년 초봄 어느날이였다.

아직 날씨는 춥고 두만강에는 얼음이 두터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우리 유격대원들은 두만강기슭에 있는 양수천자부근의 어느 한 농막앞에서 잠시 휴식하게 되였다.

우리는 농막집마당에서 휴식하기 위하여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집안에서 분명 인기척이 있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주인은 전혀 응대하지 않았다.

추운 날씨였으나 어느 누구도 문을 열고 농막안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휴대품을 토방에 내려놓고 마당에서 휴식하기로 하였다.살을 에일듯이 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행군하던 몸으로 밖에서 휴식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더우기 부상당한 동무를 생각하니 불현듯 더운 집안에 눕히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그러나 우리는 항일유격대는 인민을 위한 참된 군대가 되여야 한다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간곡한 교시를 잊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외투를 벗으시여 친히 부상당한 동무를 덮어주시고는 우리들에게 《추운 때에는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하는것보다 운동을 하는것이 더 좋거든.》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수 도끼를 드시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나오시였다.이렇게 되자 대원들은 모두 그이를 따라나섰다.어떤 동무들은 집주위의 눈을 치고 마당을 쓸었으며 어떤 동무들은 샘터에 가서 얼음을 까고 물을 길었고 어떤 동무들은 나무를 해다가 불을 피워놓고 식사준비를 서둘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때까지 우리 유격대를 대해본 일이 없는 이 농막집주인은 우리가 마당으로 들어서는것을 보자 일제군경놈들인줄 알고 겁이 나서 집안에 숨어있었다.

그런데 문틈으로 밖을 엿본 그들부부의 눈에는 의외의 광경이 띄였다.살을 에이는 추운 날씨건만 대원들이 모두 마당의 눈을 치고 산에 가 나무를 해다가 불을 피우고 마당 한쪽에 쌓아놓은 짚단도 깔지 않고 앉아 쉬고있는 광경을 본 그들부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보다 더 그들을 감동시킨것은 마당에 눕힌 부상당한 대원을 생각하여 자기 외투를 벗어서 덮어주며 정성스레 간호를 하고있는 군대들의 지극한 우정이였다.《아무리 보아도 왜놈의 군대같지는 않군!…》, 《글쎄 무슨 군대들일가.… 저런 군대는 난 처음 보오! 확실히 일본군대는 아니요.》, 《어떻게 할가?…》라고 말하면서 부부는 잠시 망설이고있었다.마침 이때 잠에서 깨여난 어린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그바람에 주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이윽고 우리가 어떤 군대란것을 알게 된 그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어쩔바를 몰라 당황해하면서 지금까지 품고있던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리고 안해에게 더운물을 끓이게 하고는 우리더러 집안으로 들어가자고 옷소매를 당겼다.그뿐만아니라 그는 얼마 안되는 식량가운데서 강냉이 몇말과 추녀끝에 매달았던 배추시래기까지 아낌없이 내놓는것이였다.우리는 그 성의만은 고맙다고 치하하면서 굳이 사양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담배를 권하시였다.그리고 이 집은 오랜 농민의 집이 분명한데 어째서 닭 한마리도 치지 못하고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에게 털모자 하나 사씌우지 못하느냐고 하시며 가정형편에 대하여 일일이 물으시자 로인은 깊은 한숨을 지으면서 자기의 가난한 생활을 《타고난 팔자》로 돌리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이 로인의 생활과 고생에 대하여 한집안식구처럼 걱정하시면서 조중인민이 할아버지처럼 가난하게 사는것이 《타고난 팔자》탓이 아니라 일제와 동북군벌, 토착봉건지주들의 2중3중의 비인간적인 착취와 략탈때문이라는것을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우리가 잘살수 있는 길은 오직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길만이라는것을 일깨워주시였다.로인은 자기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대하여 례를 들어가며 일깨워주시는 그이의 말씀에서 비로소 모든것을 깨달은듯 눈물을 머금고 자기도 유격대를 따라가고싶다고까지 말하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곳에서 휴식을 끝마치신 후 농막을 떠나실 때 로인앞에 얼마간의 돈을 내놓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 집 할머니까지도 입고계신 옷이 헐어서 당장 문밖출입을 못하시는것 같습니다.적은 돈이지만 보태쓰십시오.그리고 닭도 사다가 기르시면서 아이들에게 고기도 먹일수 있게 해주십시오.》

로인은 자기들을 이렇게까지 극진히 대해주시는 그이가 바로 조선인민이 어버이로 우러러모시는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자 그이의 옷자락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는것이였다.

《그러한 큰어른이 손수 나무를 패시다니… 사령관님께서 그런 일을 다 하시다니!》

그이께서는 로인의 이 말에 빙긋이 웃으시며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이랍니다.인민들이 다 하는 일을 내라고 어째 못하겠습니까.사람은 일을 해야 사는 재미가 있고 밥맛도 더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로인은 그이의 손을 꼭 잡으며 간청하듯 다시 말씀드렸다.

《날씨가 추운데 오늘밤은 우리 집에서 모두 쉬여가십시오.하루밤만이라도 더 모시고싶쇠다.나는 이 세상에 당신들같은 군대가 있는줄은 정말 몰랐쇠다.이 늙은것도 새 힘이 솟습네다.》

하늘처럼 떠받드신 존재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자라난 이 나라의 천만자식들이 뜨거운 격정속에 되새겨보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깊은 교시가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왔고 인민을 하느님처럼 섬겨오고있다.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이다.》

자자구구 새겨볼수록 절세위인의 숭고한 인민관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가슴속에 파고든다.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 박인진도정이 이런 질문을 드린적이 있었다.

《제가 꼭 여쭈어 알고싶은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우리가 〈한울님〉을 숭상하듯이 장군도 숭상하는 대상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도정의 그 질문을 쾌히 받아들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론 자신에게도 신처럼 숭상하는 대상이 있다고, 그것은 바로 인민이라고 하시면서 세상에 인민대중처럼 전지전능하고 위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정녕 인민을 하늘처럼 받드는것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간직하시고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주체80(1991)년 5월 어느날 지방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예정된 기일을 앞당겨 금수산의사당(당시)으로 급히 돌아오시였을 때의 일이다.

그이께서는 도착하시는 길로 한 일군을 부르시여 금수산의사당 구내도로를 다시 포장하지 말라고 그만큼 말하였는데 왜 도로공사를 벌려놓았는가고 엄하게 따지시였다.

일군은 눈물을 머금으며 인민을 위해 멀고 험한 길을 걸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길에 꽃주단을 펴드리고싶어하는것은 온 나라 인민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라고,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매일 걸으시는 구내길이 갈라터진것을 알면 인민들이 저희들을 뭐라고 하겠는가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론 자신을 생각하는 동무들의 심정은 알만 하다고, 그러나 동무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한창 벌려놓은 공사현장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일군은 혹시 공사를 승인하시지 않을가 하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그이를 우러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나를 잘 모시고 나에게 기쁨을 드린다고 하면서 저런 공사를 벌려놓군 하는데 나의 기쁨은 그런데 있는것이 아니라 인민의 행복속에 있다고, 나는 우리 인민들을 잘살게 할수만 있다면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매일 기쁘게 걷겠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내가 그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인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줄수 있다면 그러한 고생을 더없는 낙으로 생각할것이다, 나는 인민들이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고 승용차도 타고다니고싶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나이가 많아 다니기 힘들지만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기 위하여 논두렁길도 걷군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그런 절세의 위인이 동서고금에 과연 있었던가.

인민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인민과 더불어 혁명을 전진시키시며 한평생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드신 우리 수령님,

진정 이 땅에 흐른 날과 달들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길을 끝없이 이어가신 우리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역사였다.

당정책의 열렬한 선전자-모범학습강사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사상사업을 개선강화하여 혁명의 전진동력을 배가해나가는데서 초급선전일군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중속에 당정책을 깊이 체득시키며 혁명과업수행에로 적극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는 모범학습강사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교양자가 되기 전에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

단천시 가응농장 제2작업반 반장 김진석동무

군중과 인간적으로 친숙해질 때 학습강사활동에서도 성공할수 있다.

이것은 17년간 학습강사로 활동하고있는 단천시 가응농장 제2작업반 반장 김진석동무의 지론이다.

학습강사활동을 시작하여 몇해가 지난 어느날이였다.

2분조의 박동무가 또다시 출근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생각이 깊어졌다.

일찌기 부모를 잃은 박동무는 일터에 안착되지 못해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군 하였다.그런 그에게 김진석동무는 각별한 관심을 돌리면서 개별담화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였는데 좀처럼 개진이 없었던것이였다.가슴이 아팠지만 그는 자기 사업의 빈구석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박동무를 친혈육으로 생각하였는가 아니면 의무감을 앞세웠는가.)

무턱대고 교양만 하려들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정을 안겨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의도적으로 박동무를 자주 만났다.함께 일도 하고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풀어주기도 하면서 한없이 고마운 우리 당의 사랑과 나라쌀독을 책임진 농업근로자의 본분을 가슴깊이 새겨주기 위하여 애썼다.부모를 대신하여 결혼상도 차려주며 마음쓰는 초급일군의 진정은 박동무의 마음을 울려주었다.

지난날과 단호히 결별한 박동무는 혁신자로, 청년동맹초급단체일군으로 성장하였으며 올해에는 분조장으로 일하게 되였다.

지난해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군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보내주신 서한을 무한한 감격속에 받아안은 김진석동무는 더욱 분발하였다.나이와 성격, 수준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그릇은 진정뿐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말씀을 받들고 뒤떨어진 사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더 왼심을 썼다.

5분조의 서동무를 혁신자로 만든 실례가 있다.

김진석동무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람들의 눈밖에 난 그를 교양대상으로가 아니라 친혈육으로 생각하고 그와의 사업에 품을 들였다.그를 찾아가 개별강의도 해주고 농업전선을 사회주의수호전의 제1제대 제1선참호로 정한 당의 의도를 해설해주었다.그의 가정생활도 어머니의 심정으로 도와주었다.수시로 분조에 나가 그와 일을 같이하면서 당의 뜻을 해설해주고 그가 신경통으로 고생할 때에는 밤새워 의학서적들을 탐독하여 민간치료방법도 알려주었다.

자기 형제를 대하듯이 진심으로 위해주는 그 진정에 목석인들 감화되지 않을수 있겠는가.

서동무와 그의 안해는 만근자로, 분조의 기둥으로 자라났다.

작업반은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였으며 3중3대혁명붉은기쟁취를 위한 결의목표수행에서도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였다.

당초급선전일군들은 교양자가 되기 전에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그럴 때만이 자기 단위를 단합되고 전진하는 애국집단으로 만들수 있다.

가응땅의 모범학습강사의 활동은 이것을 다시금 확증해주고있다.

비록 연탁은 크지 않아도

양덕군혁명전적지답사숙영소 노동자 리선화동무

양덕군혁명전적지답사숙영소 노동자 리선화동무는 학습강사가 된 후 처음 출연한 강의를 지금도 잊지 않고있다.

단지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서만이 아니다.당정책을 해설선전하는 강사들이 어떤 자세와 입장에서 강의를 진행해야 하는가를 늘 자각하게 하는 귀중한 교훈을 새겨주기때문이다.

기동예술선동대원으로 활동한적이 있고 혁명전적지관리소에서 강사로 사업한 경력도 있었던지라 그날 리선화동무는 연탁에 처음으로 나섰지만 자신심에 넘쳐있었다.

그러나 강의가 끝난 다음 사람들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뒤집어놓았다.화술은 좋은데 제강을 그대로 읽어주는 식으로 강의를 하니 감흥이 크지 못하다는것이였다.

순간 리선화동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첫 강의를 너무도 가볍게 대하였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당에서는 우리 당초급선전일군들을 믿고 혁명진지, 계급진지의 전초선을 맡겨주었다.하다면 나에게 과연 그런 자격이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그 연탁이 결코 작게 여겨지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그는 부단히 자신의 실력을 쌓아나갔다.지식의 높이이자 강의의 실효이라는것을 깊이 새기였던것이다.

그야말로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남들이 다 자는 깊은 밤에도 절세위인들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연구발취하였고 정치, 경제, 문화, 상식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피타게 노력하였다.그때로부터 그가 작성하고 강의에 구현한 자료만도 수천건이나 된다.

리선화동무가 학습강사로 일한지도 이제는 26년이 되여온다.하지만 그의 강의자세는 변함이 없다.

그가 강의의 실효를 높이기 위해 얼마나 피타는 사색을 기울이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한가지 실례가 있다.

언제인가 우리 나라를 교육강국, 인재강국으로 빛내이기 위해 크나큰 노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불멸의 영도업적에 대한 강의를 앞둔 때였다.

리선화동무는 강의내용을 원리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필요한 절세위인들의 명언들과 위대성교양자료들 그리고 양덕땅에 깃든 사랑의 이야기들을 청강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었다.그자신은 강의뒤끝에 강조할 중점적인 문제까지 요약하여 적어놓았다.이런 사전준비에 기초한 강의의 실효가 크리라는것은 두말할것 없다.

지난해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군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역사적인 서한을 받아안던 날 리선화동무는 커다란 흥분에 휩싸여 당초급선전일군으로서의 역할을 다해나갈 결심을 더욱 가다듬었다.

리선화동무는 오늘도 모범학습강사로 내세워준 당의 크나큰 믿음을 깊이 간직하고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고 있다.

충성과 위훈의 한길을 이어가는 백금산의 주인들

룡양광산 노동계급의 투쟁의 자욱을 더듬어

백금산!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기에 있는 돌산은 《금산》이며 《돈산》이라고 하시면서 몸소 현지에서 전변의 새 역사를 펼쳐주신 영광의 일터에서 혁신의 하루하루가 벅차게 흘러가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영웅적김일성-김정일노동계급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총진군대오를 앞장에서 이끄는 기관차가 되고 사회의 본보기가 되여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힘있게 추동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룡양광산을 찾았을 때 광산청사에서는 2.4분기 및 상반년총화가 화상회의형식으로 진행되고있었다.

지배인 장춘근동무의 목소리가 전류를 타고 울려갔다.

두달전만 해도 우리 광산이 2.4분기계획을 수행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그만큼 조건은 최악이였다.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우리는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끝내 분기와 상반년 인민경제계획을 지표별로 수행하고야말았다.예비는 어디에 있었는가.백금산노동계급의 본태를 지키려는 우리들의 심장속에 있었다.자료를 종합해보니 올해 2.4분기에 지난 시기 같은 양의 광석을 생산할 때보다 연유소비량은 4분의 1로 줄었고 폭약소비량도 근 절반으로 줄었다.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정신으로 살며 일한다면 지금의 난관이 결코 문제로 되지 않는다는것이다.

이 기세로 냅다 달려 하반년에도 또다시 기적을 창조하자.우리는 년간계획을 완수하는 정도로 만족할수 없다.앞으로 광산이 영원히 침수라는 말을 모르게 3천여m의 배수갱건설에 대담하게 달라붙자.절약예비를 가능한껏 더 찾아내고 자력갱생기지들을 계속 확대해나가자.그래서 애로와 난관이 끝없이 지속된다고 해도 광산이 제발로 당당히 걸어나갈수 있게 하자.

현실이 보여준것처럼 우리 광산노동계급의 정신력이 총폭발된다면 그 어떤 난관이 겹쌓인다 해도 끄떡없이 당의 영도업적을 빛내여나갈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광산에서 받은 첫인상이였다.

어려운 조건에서 간고하게 한걸음한걸음 내짚고있는줄로만 알고있던 룡양광산에서 이렇듯 신심에 넘친 목소리가 울려나오고있으니 역시 백금산의 공기가 다르다는 생각에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여러차례나 찾아주시고 석수떨어지는 막장에도 뜻깊은 자욱을 남기시며 광산노동계급에게 크나큰 믿음과 은정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영상을 언제나 가슴에 안고 사는 백금산의 주인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충성과 위훈의 한길을 꿋꿋이 이어가고있는것이다.

룡양광산 노동계급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우리는 6월초까지 년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한 두 혁신자집단의 광부들을 만나보고 더욱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영웅소대의 바통을 우리가 넘겨받았다!

올해초였다.

금산갱막장의 채굴현장을 돌아보는 두사람이 있었다.

금산갱 7호굴착기채광소대 소대장 윤경호동무와 갱공정기사 김성철동무였다.

《아무래도 발파준비를 다시 해야 할것 같소.》

《나도 같은 생각이요.》

이들은 지금 두개의 막장을 동시에 타고앉을 소대의 대담한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현장을 다시한번 깐깐히 돌아보고있는중이였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소식에 접한 후 금산갱 7호굴착기채광소대원들은 한사람같이 궐기해나섰었다.영웅소대의 바통을 이어받은 우리 소대가 종전보다 두몫, 세몫을 하자.

소대원들의 열의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전에 계획한 발파로는 도저히 두몫, 세몫을 해제낄 광석량이 나올수 없는것이였다.

어떻게 하면 발파를 합리적으로 하여 더 많은 광석량을 확보하겠는가 하는 모두의 생각이 한곬으로 흐르던 끝에 비록 힘겨워도 발파를 위한 장약실을 다시 뚫자는 의견이 제기되였다.하여 현장조사를 하고있는것이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새로운 장약실을 뚫기 위한 소갱작업이 시작되였다.이미 많은 품을 들여 준비해놓은 장약실을 버리고 어려운 선택을 한 이들을 두고 공연히 사서 고생을 하지 않는가고, 로력랑비가 아닌가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하지만 100%나 150%로는 도저히 성차할수 없었던 소대원들은 그런 말에 애당초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앞에 실천으로 우리의 양심을 총화짓자.)

이런 든든한 배심을 안고 소대원들은 한달이 걸려야 한다고 하던 장약실뚫기를 20일 남짓한 기간에 끝냈다.1월말 드디여 첫 발파가 진행되고 뒤이어 두번째 발파도 진행되였다.결과는 완전히 성공이였다.많은 폭약과 뢰관을 절약하면서도 예견했던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광석량을 확보한것이다.

그날 기쁨을 금치 못해하는 소대원들을 둘러보는 소대장과 당세포위원장 당현증동무의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얼마나 끌끌하고 대견한 동무들인가.)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대는 지금처럼 전투력있는 집단이 되지 못하였었다.

지난해 5월 광산당위원회 책임일군의 방에서 있었던 일이 눈에 선했다.

《당조직에서는 동무들이 영웅소대의 바통을 꿋꿋이 이어가리라고 믿습니다.》

당의 영도업적이 깃들어있는 7호굴착기채광소대는 이제부터 1970년대에 영웅소대를 배출한 금산갱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것이였다.

(영웅소대의 바통을 꿋꿋이 이어나갈것을 바라는 당조직의 믿음과 기대에 우리가 과연 보답할수 있을가.)

이런 생각으로 하여 이들의 마음은 무거웠다.소대원들이 모두 새 사람인것으로 하여 근심은 더욱 컸다.

《소대원들을 믿읍시다.전세대 7호굴착기소대원들도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들은 아니였소.성격도 취미도 나이도 준비정도도 각이한 사람들이였지만 영웅집단으로 자라나지 않았소.》

이렇게 금산갱에서 새로운 걸음을 뗀 7호굴착기채광소대였다.

다른 소대원들은 맡겨진 일을 주인답게 잘하였으나 두명만은 그렇지 못하였다.소대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하고있었던것이다.자기들은 건강상태도 좋지 못하고 가정사정도 있기때문에 광산의 본보기가 되여야 하는 7호굴착기채광소대에는 적합치 못하다는것이였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올해에 들어와서는 옛이야기로 되였다.바로 그들이 맡겨진 일감도 성차지 않아 일을 스스로 더 찾아하는 소대의 핵심으로 된것이다.홍수영동무만 해도 그렇다.틀림없는 소설 《백금산》에 나오는 《류혁》이라고 사람들이 머리를 젓던 그가 남들이 다 쉴 때에도 발이 닳도록 광산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보물같은 유휴자재를 가지고와 소대와 갱의 《예비창고장》,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떠받들리우고있다.

언제인가 작업장을 옮기면서 많은 배관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갱의 일부 사람들이 7호굴착기채광소대에 배관이 필요하다고 하면 광산에서 어련히 생각해주지 않겠는가고 하였지만 소대원들은 그럴수 없었다.그때 홍수영동무가 80m나 되는 배관을 자체로 해결하여 작업의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이런 이야기를 다 꼽자면 끝이 없었다.

소대를 위하여 가정에서 요긴하게 쓰던 귀중한 공구도 주저없이 내오고 소대원들이 안전등충전을 제때에 할수 있게 솔선 나서서 조건을 갖추어준 소행, 수십kg이나 되는 폭약마대를 메고 수직사다리를 타고오를 때에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나이많은 소대원들의 몫까지 도맡아한 이야기…

이런 일도 있었다.

추운 겨울이면 막장의 어느 한 굽인돌이에 석수가 고여 얼음이 지군 하였는데 그것이 대형화물자동차들의 운행에 몹시 지장을 주었다.하여 소대의 광부들은 교대작업을 마치고는 얼음까는 작업을 진행하군 하였다.맡겨진 일을 두몫, 세몫으로 하고 지친 상태로 갱막장에서 30분나마 얼음까는 작업을 매일 한다는것이 헐치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던 어느날 교대작업을 마치고 나오던 소대장의 귀전에 얼음까는 소리가 들려왔다.가까이 가보니 선동원 송순애동무가 쉬임없이 얼음을 까고있었다.

모두가 7호굴착기소대 전세대 영웅들처럼 살며 투쟁할데 대한 내용을 가지고 심금을 울리는 선동사업을 진행하고 이동식속보판을 현장에 전개하여 소대원들을 고무해주며 가족소대원들과 함께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갱감시초소에 대한 관리사업과 소대원들에 대한 후방사업을 진행하는 등 송순애동무가 하는 일은 정말 많았다.

《이제부터 제가 얼음까는 작업을 맡겠으니 마음놓고 더 많은 광석을 캐내세요.》

송순애동무의 결심을 누구도 막을수 없었다.이들이 교대작업을 마치고 나올 때면 얼음은 이미 송순애동무가 혼자서 깐 뒤였다.

어찌 이들뿐이였던가.

김광선, 박명철, 황수연, 한룡국, 하용덕, 최원백동무들도 서로 돕고 이끌며 집단주의정신으로 정면돌파전의 날과 달을 보내지 않았던가.

지금은 모든 소대원들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 광산과 7호굴착기소대가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이 또박또박 적혀있는 수첩을 늘 가슴에 품고다니며 충성심과 양심에 자그마한 티라도 생길세라 스스로 자신들을 다잡고있다.

《이런 동무들과 함께라면 태양절전으로 상반년계획을 끝낼수 있겠소.》

소대장과 당세포위원장이 두손을 굳게 마주잡았다.

그후 두개의 채굴장을 타고앉아 생산을 꽝꽝 내민 소대는 3월 중순까지 상반년계획을 완수하였다.그리고 년간계획도 반년이상 앞당겨 수행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영웅소대의 바통을 우리가 넘겨받았다!

금산갱 7호굴착기채광소대원들은 이것을 말로써가 아니라 충성의 실적으로, 뜨거운 심장으로 증명하였다.

승리의 보고는 하루도 드틸수 없다!

룡양광산 노동계급에게는 가슴속에 늘 품고있는 남다른 물음이 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담겨져있는 뜻깊은 조선화 《룡양광산의 아침》의 주인공들처럼 우리가 살며 일하고있는가.

8년전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몸소 보내주신 이 사연깊은 화폭을 받아안았을 때 룡양의 광부들은 눈물을 삼키며 맹세하였었다.위대한 수령님들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오직 보답밖에 몰랐던 전세대의 투쟁기풍을 대를 이어 빛내여가리라고.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날의 맹세를 지켜가는 혁신자집단에는 6월5일갱 채광2소대원들도 있다.

지난 1월초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앞에서 떠날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소식에 접하고 격동된 심정을 누를길 없어 달려온 채광2소대 대원들이였다.그들모두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불덩이가 이글거리고있었다.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백금산주인들의 본때를 다시한번 떨쳐가리라.)

이들의 심정을 담은 소대장 함은철동무의 목소리가 힘있게 울리였다.

《동무들, 결사전을 벌립시다.목표는 상반년안으로 년간계획을 완수하는것입니다.》

《알았습니다.》

소대원들의 찌렁찌렁한 대답이 룡양의 하늘가에 메아리쳐갔다.이들은 당세포결정서에 한자한자 쪼아박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광산을 다녀가신 6월 5일을 맞으며 년간계획을 무조건 완수할것이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 이런 대담한 목표를 내세운다는것은 아름찬 과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검증된다는 불같은 자각이 심장속에 억척같이 자리잡았기에 소대원들은 신심드높이 결사전에 나섰다.

새해의 진군길에 나선 이들에게는 하나의 류다른 일과가 생겨났다.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막장길을 정리하는것이였다.

그것은 그들의 몫도 아니였고 누가 시킨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1년전 5월 위대한 장군님을 석수떨어지는 막장에 모시였던 그날의 죄책감이 모두의 가슴속에 응어리로 맺혀있었기에 스스로 이 사업을 맡아나섰던것이다.

소대원들은 매일과 같이 위대한 장군님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수백m에 달하는 막장길을 정리하면서 위대한 장군님께 못다 바친 충성까지 합쳐 경애하는 원수님을 더 높은 광석생산성과로 결사옹위할 심장의 맹세를 되새기군 하였다.

하루하루가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한 실천으로 흘렀다.

교대작업이 끝났지만 누구도 막장을 떠나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이 아까와 잠도 휴식도 뒤로 미루며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들의 의지를 시험하려는듯 난관이 시시각각 막아나섰다.

하지만 결사관철의 의지로 충만된 이들에게 불가능이란 말은 통하지 않았다.정머리를 비롯한 자재와 부속품들이 모자라면 자체로 해결하면서 작업을 중단없이 밀고나갔다.

그 과정에 작업속도를 보다 높일수 있는 기발한 착상도 나오게 되였다.

어느날 하루생산실적을 종합하던 소대장의 생각은 깊어졌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당앞에 결의다진 날자까지 년간계획을 수행할수 없지 않는가.)

속에서 불이 일어 견딜수가 없었다.안타까움에 모대기던 그의 머리속에 한가지 궁리가 떠올랐다.

종전의 1m속빼기발파방법대신 2m, 3m속빼기발파방법을 받아들이면 작업능률을 보다 높일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날 그는 3m나 되는 정대를 리용하여 착암작업을 하였다.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각도를 조절하기가 조련치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구멍을 뚫었다.발파를 해보니 이전시기보다 훨씬 많은 광석이 떨어졌다.

그는 지체없이 이 방법을 소대에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소대는 결국 지난 시기에 비해 작업능률을 5배로 높일수 있게 되였다.소대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암질조건에 따르는 합리적인 천공배치방법들을 계속 창안하여 도입하였다.

하루에는 낮과 밤이 있어도 이들의 막장에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막장은 곧 룡양노동계급의 충실성을 검증받는 마당이였다.하기에 생명의 위험을 동반하는 정황속에서도 주저를 몰랐다.

작업속도를 높여나가던 지난 5월 어느날 작업장에 뜻밖의 정황이 조성되였다.갑자기 무게가 수백t이나 되는 바위가 떨어져 앞을 막았던것이다.

이때 이들의 심장속에서는 어떤 신념의 웨침이 울려나왔던가.

승리의 보고는 하루도 드틸수 없다!

한몸이 그대로 착암기가 되고 폭약이 되여서라도 당앞에 다진 결의를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로 이들은 쉬임없이 버럭들을 처리하면서 한치한치 통로를 열어나갔다.

천연암반도 녹여낼만큼 뜨겁고 열렬한 불타는 충성심은 드디여 기적을 낳았다.

소대원들은 당앞에 맹세한대로 6월초까지 년간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평양하늘을 우러러 자랑찬 승리의 보고를 올리였던것이다.

정녕 이들이 캐낸 하나하나의 광석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뼈속깊이 체질화한 백금산광부들의 사상과 신념의 결정체였다.

오늘도 룡양광산의 광부들은 성과에 자만함이 없이 하루하루를 기적과 혁신으로 수놓아가며 백금산의 본때를 힘있게 떨쳐가고 있다.

실화

양심

(사람은 하루에도 숱한 문을 여닫는다.출입문과 현관문, 살림집과 사무실문… 헌데 그토록 무수히 열고닫으면서도 별로 눈여겨본적 없는 저 문에 한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도 심각하게 비낄줄이야.)

강선비닐박막공장 지배인 우재명은 사무실문을 바라보며 달리는 살지 못할 사람이라고 여겨왔던 오랜 지기와 마음속대화를 나누고있었다.

근 20년간 한뜨락에서 고생도 같이하고 긍지와 보람도 함께 나누며 살아온 공장목수 오세종의 모습이 그 문속에 비껴들며 얼른거리였던것이다.

(저 문도 그렇고 공장의 크고작은 출입문들과 현관문, 책걸상과 연탁 어느것이나 오세종이 자네가 뼈심을 들여 멋스럽게 만든것들이 아닌가.)

공장 구석진 곳의 목공실에서 누가 보건말건 묵묵히 자기 일에 전념해온 그가 며칠전 느닷없이 저 문을 열고 들어서던 일이 떠올랐다.

《이젠 공장문을 나설 때가 된것 같습니다.일욕심에 육신이 따라서지 못할 때쯤에 제꺽 자리를 뜨는게 옳은 처사지요.》

정 그러면 젊은 사람들에게 힘에 부친 일감을 맡기고 슬슬 일하라고 하는데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겐 못합니다.노루친 막대기 3년을 우려먹는다는 식으로 낡은 공적을 빗대구 공장밥을 그냥 먹는거야 잡초로 사는 인생이지요.》

그렇게 공장을 떠나갔던 오세종이 어제저녁 갑자기 옛 일터에 나왔다가 판자며 각재토막들을 싸들고 정문을 벗어났다고 한다.

경비원이 유심히 쳐다보자 《문짝을 마저 좀 짜느라구… 》 하고 얼버무리며 못할 일을 한 사람처럼 바삐 사라지더라는것이였다.

(일손을 놓고 집에 들어가더니 뭔가 생각이 달라진것인가.)

퇴직한 오세종이 그 좋은 재간으로 제살궁리를 한다고 해서 누가 탓할 사람도 없었다.

지금까지 법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던 그가?…

전화통은 성가시게 찌르릉거렸지만 오세종과 관련된 잊지 못할 추억속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지배인이였다.

* *

우재명이 공장지배인으로 임명된지 며칠후 한창나이때부터 알고지내는 사이인 오세종이 찾아왔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양심은 행동의 거울이며 거짓과 진실을 판결하는 기준이다.》

자기한테는 목수재간밖에 없으니 그것으로 공장을 꾸리는데 한몫하겠다는것이였다.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 때에 성실하고 양심적인 그가 스스로 찾아온것이 무등 기뻤다.

오세종은 공장목수가 되여 구석진 방을 하나 차지하게 되였다.

그의 손은 거칠었지만 재간없는 고운 손보다 공장에는 유익했다.

공장은 워낙 부재생산기지로 건설되였던 건물인지라 그가 할 일은 허다하였다.

휴계실들과 식사실이 번듯하게 꾸려지자 인차 사무실들을 꾸리자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때 오세종이 지배인사무실 문턱을 넘어섰다.

《내 생각엔 공장사람들도 그렇구 주변사람들도 정신을 번쩍 차리게 구호판을 하나 큼직하게 내걸었으면 좋겠수다.》

이렇게 되여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는 구호판이 온 공장의 관심속에 제작되게 되였다.높이만 해도 2m나마 되는 그 구호판제작을 주관하느라 오세종은 꼬박 며칠째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하였다.

그 큰 구호판을 생산건물벽면에 올리느라 수고한 그였지만 지배인이 이왕이면 불장식까지 하는게 더 좋겠다고 하자 군말없이 다시 발판에 올라 아찔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날 밤은 그의 속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된 못 잊을 밤이였다.

자정무렵 공장을 돌아보던 지배인은 목공실에서 불빛이 새나오는것을 보고 다가갔다.내일까지 푹 쉬라고 억지로 등을 떠민 사람이 혹시 아직도…

톱밥이 뽀얗게 묻은 모자를 쓰고 곤죽이 된 몸으로도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대패질을 하는 오세종을 마주할 때에는 더우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일밖에 모르는 그를 지배인은 집으로 떠밀었다.강짜를 부리다싶이 해서야 그를 일에서 떼여낸 지배인은 퇴근길에 다시한번 놀랐다.

맥빠진 자세로 터벌터벌 지배인을 따라오던 오세종이 고작 두걸음만 짚으면 질러갈수 있는 도로옆의 좁은 잔디밭을 빙 에돌아오는것이 아닌가.이 깊은 밤중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가 지배인앞에서 목소리를 높인것은 단 한번뿐이였다.

《경기에서 지면 졌지 부정선수를 넣으면 안됩니다, 절대로.잡초처럼 살아선 안된단 말입니다.》

오세종은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남모르게 재능을 바친다고 재세할줄 몰랐으며 작업조건을 핑게대거나 생활상애로를 놓고 불평할줄은 아예 몰랐던 인간이였다.비양심적인것과는 타협을 모르는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였다.그래서 공장사람들은 누구나 그 인간됨에 머리를 수그리군 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런 사람도 로쇠해지고 가정사에 파묻히면 달라진단 말인가.

지배인은 종잡을수 없는 생각을 털어버리며 방을 나섰다.

* *

하늘가에 저녁노을이 비낄제 소형뻐스는 거리를 벗어났다.

뻐스에는 지배인과 초급당위원장, 부원이 타고있었다.일군들은 진지한 토의끝에 오랜 공로자인 오세종의 노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주기로 하였다.

텔레비죤과 몇가지 우대상품이 뻐스에 실려있었다.

숨죽다싶이 하였던 공장이 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하고 온 나라에 소문난 자력갱생본보기단위로 솟구쳐오르기까지 오세종이 바친 노력에 비해볼 때, 그의 성실성과 대중의 신망에 비해볼 때 뭔가 더 마련해주고싶은것이 모두의 심정이였다.

어느덧 뻐스는 오세종의 집 가까운 곳에 멎어섰다.

나지막한 울타리너머로 보이는 그의 단층집은 너무도 수수했다.

더우기 출입문이 그러하였다.

낡은 형식의 문인데다 도색도 드문드문 벗겨져 남정의 손길이 가닿은지 오래되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홍성애부원이 《저런 문을 그냥 두고있다니.》 하고 혀를 찰 때 방원봉초급당위원장은 《원, 사람두.가사는 제쳐놓고 공장일에만 신경을 썼군.》 하고 말하였다.

우재명지배인에게는 두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오세종의 가정생활을 등한시한 자신에 대한 질책처럼 들려왔다.

당사자인 오세종은 영문도 모르고 황급히 손님들을 맞아들이였다.

모두가 부산을 피우며 방안에 들어서니 대패밥이 한가득 널린 옆방에서 제법 고급한 모양을 갖춘 문짝 하나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제야 가사에 좀 신경을 쓰는것 같구만.》 하고 지배인이 칭찬조로 말하자 동행한 공장부원은 《생활문화야 누구나 응당 관심해야 할 일이지요.》 하고 제꺽 동을 달았다.

초급당위원장은 《이젠 공장일을 놓았으니 집도 좀 잘 꾸려놓고 여생을 즐겁게 보내기 바랍니다.》 하면서 오세종의 두손을 잡았다.

오세종의 어줍은 태도며 가정방문의 강렬한 첫인상으로부터 세사람은 그 문이 다름아닌 이 집의 낡은 출입문을 교체할 새 문짝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던것이다.

이때 안주인 김옥희가 부엌에서 올라오며 세대주 핀잔인지 자랑인지 모를 말, 세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말, 겉과 속이 한결같이 아름다운 보석같은 인간의 진면모에 대한 말을 털어놓았다.

《아이구, 그게 우리 집문짝일게 뭐나요.공장 청년학교문을 바꿔주지 못한게 속에 걸린다구 이렇게 잔뜩 벌려놓지 않았겠나요.》

한동안 누구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홍성애가 겨우 《문이… 참, 정말 멋있군요.》 하고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한마디 했다.

아직 연마도 부각장식도 도색도 하지 않은 문이 멋있어야 얼마나 멋있겠는가.

그러나 방문객들은 송진내가 은근히 풍기는 그 문이야말로 제일 번쩍거리는 문, 변함없는 한 인간의 보석과도 같은 애국의 마음이 슴배인 값비싼 양심의 문이라는것을 더욱 뜨겁게 느끼고있었다.

그 문우에서는 세상에 없는 미덕의 나라, 아름답고 참다운 인간들을 무수히 키워내는 어머니조국이 오세종에게 안겨준 3대혁명붉은기훈장이 은은한 빛을 뿜고있었다.

오세종은 심장과도 같고 목숨과도 같은 순결한 양심을 지니고 오늘도 조국을 위해 헌신의 문을 기꺼이 열어가고 있다.

숭고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역의 아들딸들을 안아키우시여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경모의 정을 안고 그이의 위대한 혁명생애를 한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더듬어보게 되는 7월이다.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사랑의 한평생이였다.

그이는 세기의 온갖 풍상을 헤치시며 세계적인 강적들을 연이어 타승하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신 전설적영웅,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대서사시를 펼치신 탁월하고 로숙한 영도자이시였으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하기에 우리 인민은 자나깨나 어버이수령님의 숭엄한 영상을 가슴에 안고 산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도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경모의 정으로 가슴끓이고있다.이역땅에서 고생하는 총련동무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조국을 방문한 재일동포들을 만날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자기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뜻깊은 기념사진도 찍어주시던 우리 수령님의 그 자애로운 영상을 심장에 새기며.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자주시대 해외교포운동의 개척자, 총련의 창건자이시며 재일동포들의 삶의 은인,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온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한결같이 터놓은 격정의 토로가 있다.

위대한 수령님은 존엄높은 우리 조국의 국가수반이시기 전에 자애로운 친어버이이시라는것이다.그이를 만나뵈옵고 이역살이에 두터워진 마음속얼음장이 녹아내리던 그날들을 누구나 잊지 못하고있다.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조국방문의 길은 곧 아버지의 품으로 가는 길이였으며 가장 큰 소원은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는것이였다.

파란많은 인생의 바다에서 고달픈 운명의 노를 저어가던 재일동포들이 우리 수령님의 품에 삶의 닻을 내리게 된것은 바로 그이의 무한한 믿음과 바다같은 도량에 끌려서였다.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태양의 눈부신 빛과 열이 흘러드는 애국의 화원에 인생의 씨앗을 묻었던가.어버이수령님의 고귀한 가르치심은 그들에게 있어서 한생 흔들림없을 삶의 좌표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떠난 자식을 걱정하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이역에서 고생하는 재일동포들의 마음에 자그마한 그늘이라도 질세라 언제나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으며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그들을 만나주시고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가슴가득 안겨주시였다.

공화국창건 26돐을 경축하던 주체63(1974)년 9월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국가연회장에 들어서던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어버이수령님을 모신 탁에 자기 자리가 있었던것이다.너무나도 특례적인 조치여서 그는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역의 전사를 위해 축하연설무대도 마련해주시였다.연단에 나선 축하단단장은 솟구치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면서 공화국의 창건자, 영도자이시며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으시며 연설을 들어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축배잔을 정히 받쳐들고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그러시고는 정에 넘친 시선으로 축하단단장을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축배는 후에 하고 우선 동무의 손부터 잡아보자고 하시며 그를 자신의 넓은 품에 따뜻이 안아주시였다.

순간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장내를 진감하였다.참으로 눈물없이 볼수 없는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곁에 있던 다른 나라의 국가수반에게 이 동무가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이라고 소개까지 해주시였다.

름름하게 성장한 자식을 두고 대견해하는 어버이의 심정이 력력한 그이의 영상을 우러르며 축하단단장은 격정으로 가슴들먹이였다.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애국지성을 아낌없이 바친 재일동포상공인들도 영광의 단상에 올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그 애국정신이 귀중한것이라고 하시면서 재일동포상공인들에게 자기 조국을 위하여 일하는 애국적상공인, 진보적상공인이라는 크나큰 믿음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82(1993)년 10월 9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 적으나마 특색있는 기여를 한 재일조선녀성상공인대표단 성원들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주시였다.

그들모두를 한없이 정겨운 시선으로 둘러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가 그전에도 말하였지만 조국은 어머니와 같다고, 사람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자기를 낳아키워준 자애로운 품이라면 조국은 참된 삶과 행복을 꽃피워주는 요람이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재일조선녀성상공인들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억센 신념을 심어주신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 그이의 손길이 없었다면 영광의 절정에 오른 오늘을 어찌 생각할수 있겠는가.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자본주의이역땅에서도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애국의 열정을 깡그리 바쳐왔던것이다.

긍지로운 추억으로 가슴설레이는 그들의 귀전에 어버이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울려왔다.

《재일조선녀성상공인들은 비록 이국땅에서 살더라도 사회주의조국의 어엿한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적극 힘써야 합니다.》

사회주의조국의 어엿한 주인!

참으로 쉽게 받아안을수 없는 크나큰 믿음이였다.동포녀성들은 어버이수령님의 이 사랑의 말씀을 천근만근의 무게로 받아안으며 애국충정의 길을 영원히 걸어갈 불타는 맹세를 다지였다.

그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고 자식을 위해 바치는 어머니의 정은 모자라는 법이 없다.

주체57(1968)년 6월 어느날 함흥모방직공장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가 훌륭한 모방직공장을 건설해놓고 좋은 천을 짤수 있게 되였으니 다가오는 9.9절에 총련일군들에게 외투천을 짜서 선물로 보내주는것이 어떻겠는가고, 일본이나 미국에서 짠 천만 보아온 그들이 우리가 짜서 보낸 외투천을 받으면 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역땅에서 고생하는 총련일군들을 두고 늘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재더미밖에 남지 않았던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우리 수령님, 이역에서 나서자라는 아들딸들도 지덕체를 갖추어 사회주의조국의 역군이 되기를 바라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그이께서 해마다 보내주신 막대한 액수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애국의 생명수, 은혜로운 사랑의 젖줄기였다.

주체62(1973)년 8월 31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을 방문한 총련의 교육일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이날 그이께서는 총련에서의 교육사업은 사회주의조국에서의 교육사업보다 몇배나 더 어려운 조건에서 진행되고있다고 하시면서 총련교육일군들의 수고를 헤아려주시였다.

이역의 교육자들의 심장은 격정으로 터질듯 하였다.

그들이 교단에 서게 된것은 생계를 유지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였다.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민족관, 후대관을 받들어 동포자녀들을 우리 민족의 말과 글, 역사와 전통을 아는 참된 조선사람으로 키워 애국의 대를 굳건히 이어가게 하겠다는 그 한가지때문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일본땅에서 가족들의 생계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도 교단을 떠나지 않았으며 학생들의 부모가 되고 형님, 누나가 되여 학습과 과외생활지도는 물론 식사와 잠자리까지 돌보아주고있었던것이다.

자기들의 남모르는 고민과 수고를 속속들이 헤아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그들은 한없는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재일조선인운동의 위대한 영도자이시기 전에 이역의 청소년학생들과 교육자들을 끝없이 사랑하신 자애로운 어버이, 다심한 학부형이시였다.

재일동포들을 조국인민들과 꼭같이 한식솔로 여기신 어버이수령님의 육친적인 사랑이 있어 총련은 이역땅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각급 조직들을 훌륭히 꾸려놓은것은 물론 초급학교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적민족교육체계를 정연하게 세워놓고 자녀들을 애국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튼튼히 키워낼수 있었으며 출판선전사업과 문화예술활동도 활발히 벌려나갈수 있었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의 대이동》으로 불리운 재일동포들의 귀국의 배길과 조국왕래의 넓은 길도 열어주시였다.

평범한 사람들도 영웅으로, 애국자로 키워주는 한없이 은혜로운 어머니품,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 피눈물의 그 세월 죽음의 고역장들에서 등살을 벗기우던 역사의 수난자들과 그 후손들인 재일동포들이 극적인 운명전환을 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은정으로 수많은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이 되였으며 인민교원, 인민예술가, 인민배우, 인민체육인, 명예원사, 교수, 박사 등 높은 영예를 지니고 삶의 자욱을 뚜렷이 아로새기였다.

세계에는 1억이 넘는 해외교포들이 있다.장구한 세월 끊임없이 이어진 참혹한 동란과 착취계급의 압제, 그것이 초래한 망국과 정처없는 류랑의 물결은 수많은 해외교포들을 산생시키였다.

자국내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들에 흩어져살고있는 나라들도 있다.장구한 역사의 흐름속에 타민족에게 동화되여버린 사람들도 허다하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대대로 탁월한 수령을 높이 모신 자주강국의 당당한 해외공민으로 긍지높은 삶을 누리고있다.

세상사람들이 군대와 법기관을 내놓고는 한 나라에 있어야 할 모든것이 그쯘히 갖추어져있다고 찬탄하는 총련의 자랑스러운 면모에는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해 기울이신 우리 수령님의 크나큰 노고와 심혈이 깊이 어려있다.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재일동포들에게 베풀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은정은 참으로 산이나 바다에 비길수 없이 높고 큰 사랑이였으며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위대한 사랑이였다.

위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나날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위해 마음쓰시였다.주체83(1994)년 7월 7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총련지부일군대회에 친히 축전을 보내시여 대회참가자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고무를 주시였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그이의 하늘같은 사랑과 은정은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

재일동포들을 귀중한 한식솔로 여겨주시며 시련의 언덕을 넘어온 총련이 새로운 전성기를 펼쳐나가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뜨거운 육친적손길이 있어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의 역사는 영원하다.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어버이사랑을 길이 전하며 이역의 아들딸들은 애국의 화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갈것이며 그들이 부르는 다함없는 감사의 노래, 경모의 노래는 세월의 끝까지 높이높이 울려퍼질것이다.

20세기의 탁월한 국가정치활동가

여러 나라 인사들 열렬히 칭송

자주의 새시대를 개척하시고 빛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진보적인류의 다함없는 경모의 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뜨겁게 분출되고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정당지도자들과 각계인사들은 걸출한 인민의 수령, 절세위인의 한생을 감회깊이 회억하며 전문들을 보내여왔다.

에짚트자유사회주의자당 부위원장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서거일에 즈음하여 혁명적인민들은 인류앞에 쌓아올리신 그이의 불멸의 업적을 되새기고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7월 8일은 진보적인류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백두산을 조선혁명영도의 중심으로 삼으시고 간고한 투쟁속에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시였다.세계의 정치, 군사역사에 새로운 장을 펼치시고 빛나는 본보기를 창조하시며 줄기찬 영웅적투쟁으로 위대한 사회주의조선을 건설하신 김일성주석의 영구불멸할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것이다.

로씨야민족구국전선 위원장도 절세위인에 대한 끝없는 경모의 정을 전문에 이렇게 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의 장구한 기간 조선인민을 승리에로 영도하시여 인민이 주인된 새 조선을 일떠세우시였다.김일성동지의 영도가 있어 조선은 제국주의침략과 봉쇄, 랭전의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빛나는 승리적전진을 이룩할수 있었다.

파키스탄주체연구회 회장은 김일성주석은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주체의 위대한 태양이시다, 독창적인 사상이론으로 조선혁명과 조선인민의 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탁월한 정치가, 가장 걸출한 영도자의 업적은 후세에 길이 빛날것이다고 격찬하였다.

로씨야 띤다시 주체사상연구협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김일성동지는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20세기의 탁월한 국가정치활동가이시다.그이께서는 사회주의승리와 인류자주위업실현을 위한 투쟁에서 열렬한 혁명가, 인민의 영웅으로 만민의 다함없는 칭송과 신뢰를 받으시였다.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영도따라 조선인민은 강력하고 번영하는 강국건설에서 언제나 새로운 승리만을 떨쳐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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