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당·정부간부 무력책임일군 금수산태양궁전참배

16일 노동신문은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즈음하여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군들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 표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에 뜻깊은 태양절에 즈음하여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소년학생들 꽃바구니 진정>, <인민을 한평생 떠받드신 자애로운 어버이>, <위대한 혁명생애의 갈피를 더듬어>, <추억깊은 명곡을 들으며>, <따사로와라 우리 안겨사는 어머니품이여>, <유훈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위력한 사상공세>, <크나큰 믿음에 강철증산으로>, <들끓는 우리 일터에 와보시라>, <6시간에 비낀 결사관철의 기풍>, <오늘도 울리는 《밭갈이노래》>,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도록>, <불멸의 친필글발들을 우러를 때마다>, <4월의 하늘가에 울려퍼지는 행복의 웃음소리>, <달이 가고 해가 가도>, <복받은 삶>, <태양절을 맞이한 수도의 거리>, <대를 이어 걷는 보답의 길>, <새형의 무궤도전차가 달린다>, <숭고한 뜻 길이 전해갈 일념으로>, <풍만한 정서와 우리 생활>, <세월이 흘러도 그 은정 못 잊습니다>, <인류가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신 불멸의 업적>등을 보도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즈음하여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군들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 표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생 108돐에 즈음하여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군들이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주체의 최고성지를 찾은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군들은 비범한 사상리론과 정력적인 영도,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조국과 인민, 시대와 역사앞에 영구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과 경모의 정에 휩싸여있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였다.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립상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이어 영생홀들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에 뜻깊은 태양절에 즈음하여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소년학생들 꽃바구니 진정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을 뜻깊게 맞이하는 온 나라 인민은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주체의 영원한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가장 숭고한 경의와 영원무궁한 영광을 드리고있다.

전국각지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과 태양상을 찾아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소년학생들이 다함없는 경모의 정을 표시하였다.

만수대언덕으로는 조국의 륭성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하여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영생축원의 대하가 뜨겁게 굽이쳤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에 당, 정권, 무력기관, 사회단체, 성, 중앙기관, 조선인민군, 조선인민내무군 부대, 평양시내 각급 기관, 공장, 기업소 등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가 진정되였다.

군중들은 이 땅우에 자주, 자립, 자위로 빛나는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우시고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성스러운 역사를 수놓아오신 절세위인들의 혁명생애를 가슴뜨겁게 되새겨보며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우러러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김일성종합대학, 인민무력성, 만수대창작사를 비롯한 수도의 여러곳에 모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과 태양상에 기관, 기업소, 조선인민군, 조선인민내무군 부대 등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가 진정되였다.

각지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소년학생들도 자기 고장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과 태양상을 찾아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인민을 한평생 떠받드신 자애로운 어버이

이민위천!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한평생이 함축된 이 네 글자에 얼마나 심오한 철학이 있고 거대한 역사가 집약되여있는것인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영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우리는 지금 어버이수령님의 리상이 숭엄한 화폭을 펼친 수도의 한복판 김일성광장에 서있다.

남산재의 높은 자리에 하늘높이 조선식지붕을 떠이고 웅장하게 서있는 인민대학습당, 그옆 낮은 자리에 자리잡은 중요국가기관청사들,

이 대조적인 건물배치를 음미해볼수록 오늘도 우리의 귀전에 쟁쟁히 들려오는듯싶다.

우리는 광장에 정무원청사를 하나 앉혀놓았는데 그것도 중앙에 앉힌것이 아니라고, 중앙에는 인민을 위한 인민대학습당을 앉히고 그옆에 정무원청사를 앉혔는데 그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의 심부름을 많이 하라고 앉힌것이라고 교시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음성이.

이렇듯 평양시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전민학습을 위한 대전당을 짓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김일성도서관》으로 부르자고 할 때에도 자신의 존함대신 《인민》이라는 두 글자를 넣도록 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며 자신의 하늘로 떠받드신 인민은 그 어떤 초인간적인 존재나 특수한 몇몇 사람들의 집단이 결코 아니였다.

기나긴 세월 정치적무권리속에 살아가던 사람들, 공장과 농촌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노동자, 농민들 그리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바로 그이의 인민이였고 하늘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세상 전부를 대표한다고도 할수 있는 인민이라는 거대한 집체는 항상 역사의 수레바퀴를 진두에서 성실하게 굴려왔다고, 그 역사에 거북선이 필요하면 거북선을 만들었고 피라미드가 필요하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고, 시대가 피를 요구할 때 인민은 육탄이 되여 서슴없이 화구앞으로 죽음을 맞받아나갔다고 뜨겁게 회고하신것이다.

인민을 우매하고 미개한 계몽대상으로 보아오던 온갖 그릇된 사고방식을 뒤집어엎으시고 인민이야말로 선생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기본동력이라는것을 확고한 신조로, 좌우명으로 삼으시였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장 수십성상에 달하는 혁명영도의 나날을 역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인민적영도로 수놓으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당도 국가도 인민을 위하여 세우시고 군대도 인민을 위하여 창건하시였다.그래서 우리 당은 인민의 이익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는 노동계급의 당으로, 국가정권도 인민의 요구를 실현하는 정치적무기로, 혁명무력도 우리 인민의 자주권과 안녕을 철옹성같이 수호하는 강위력한 무장력으로 건설되였고 우리 사회주의도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로 솟아난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시작도 끝도 인민이였다.인민으로부터 출발하고 인민으로 일관되여 끝없이 펼쳐진것이 곧 그이의 거룩한 사색이였고 위대한 활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소에 간직하고계신 제일 크고도 일관한 념원은 우리 인민들을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잘살게 하는것이였다.

인민의 행복이자 우리 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목적이였고 기쁨이고 락이였으며 유일한 안정이고 휴식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희귀한 닭 한마리를 보게 되시였다.발뒤축에 여러가지 색갈의 털이 길게 나있는 그 닭은 정말 보기에도 깜찍한것이였다.

흥미가 동하시는듯 닭을 유심히 바라보시면서 일군에게 그 닭이 1년에 알을 얼마나 낳는가를 알아보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실망을 금치 못하시며 서운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닭이야 알을 많이 낳아야지 보기나 좋아서 무얼 하겠는가, 자신께서는 아무리 보기 싫게 생겨도 알을 많이 낳는 닭이 있으면 매일 보러 나오겠다고 하시며 나는 1년에 알을 한 400알 낳는 닭이 있으면 좋겠소, 그러면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알을 공급할게 아니요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모든 가치평가의 절대적기준은 오직 인민의 이익이고 행복이였다.아무리 현란하고 새로운것이라 할지라도 인민들에게 실제적인 덕을 줄수 없는것이라면 전혀 무의미하다는것이 바로 우리 수령님의 평가기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전 과정에 초인간적인 정력을 지니시고 헤아릴수 없이 많은것을 구상하고 설계하시였으며 실천하시였다.

순간의 멈춤도 없이 한생토록 끝없이 펼쳐진 그이의 위대한 사색과 실천에서 인민을 떠난것이란 있어본적이 없었다.

주체47(1958)년 8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대동강의 반월도앞에 이르시였다.배를 세우시고 기슭에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바위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손을 드시고 저 바위가 옥류벽인데 집터로는 아주 좋은 자리라고, 바로 저기에 대동강풍경에 어울리면서도 마치 물에 떠있는것처럼 보이는 조선식료리집을 번듯하게 건설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안겨주자고 하시였다.

천하의 절승경개를 자랑하는 옥류벽우의 명당자리에 푸른 추녀 나래를 편 조선식건물로 된 인민을 위한 식당을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이름도 몸소 《옥류관》이라고 지어주시였다.

정녕 오로지 인민만을 생각하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온갖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무슨 말로 다 전할수 있으랴.

지금도 만경대갈림길에 서면 꿈결에도 그리시던 고향을 지척에 두시고 강선의 노동계급을 찾아가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뵈올듯, 농촌에 가면 멍석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농민들이 잘살 방도를 의논해주시던 그이의 정깊은 음성이 들릴듯…

인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다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진펄에 빠진 승용차를 한치한치 미시며 북방의 농촌마을을 찾으신 이야기며 한낮이 기울 때까지 여러 농장포전을 돌아보시고 풋강냉이로 때늦은 점심식사를 대신하신 사실을 비롯하여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의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가 이 땅 그 어디에나 뜨겁게 새겨져있다.

인민과 잠시라도 떨어지시면 귀중한것을 놓친듯 허전해하시고 인민들과 만나실 때면 이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순간이 없으신듯 그토록 기뻐하시며 환히 웃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는가.

세상에 인민을 위한다는 영도자나 정치가는 많았어도 우리 수령님처럼 이민위천의 좌우명을 한평생 간직하시고 인민을 위해 사색하시며 인민과 함께 혁명의 먼길을 걸으시면서 인민의 어버이가 되신 영도자, 정치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녕 이민위천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과 고락을 같이하시고 인민을 하늘높이 떠받드시는 과정에 체질화하신 지론이였다.

우리 다시금 숭엄한 마음으로 위대한 태양의 모습을 삼가 우러른다.

오늘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온 누리를 밝히는 태양의 미소로 자신께서 한평생을 다하여 하늘로 떠받드신 인민에게 끝없는 축복을 보내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인민이라는 하늘의 태양으로 영생하신다.

위대한 혁명생애의 갈피를 더듬어

즐거운 휴식

주체54(1965)년 7월 어느날이였다.

추운 겨울철과 무더운 여름철에도 쉬임없이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어느 한 곳을 찾으시였다.

풍치수려한 산도, 맑은 물 출렁이는 호수도 있어 휴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그러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일군들과 담화도 하시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시였다.

동행한 일군은 너무도 서운하고 안타까와 자기의 심정을 어버이수령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옛말에 《신로군일》이라는 말이 있다고, 이것은 신하가 일을 많이 하면 임금이 편안하다는 말인데 자신은 인민의 신하이고 인민은 우리의 임금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일을 많이 하여야 인민들이 편안하게 지낼수 있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일을 많이 하는것이 자신에게는 휴식이라고, 이보다 더 즐거운 휴식이 어데 있겠는가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은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의 낮과 밤을 보내는것을 제일 즐거운 휴식으로 여기시는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이 그 언제 있었던가.

정녕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인민을 위한 한평생이였다.

꽃향기와 낟알향기

주체66(1977)년 6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정원에 꾸려진 포전을 돌아보실 때였다.

무성하게 자란 콩포기들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포전옆에 있는 쪽가래나무와 방울나무들을 가리키시며 정원에 심은 쪽가래나무를 금년 가을에 가서 다른 곳에 옮겨심고 이 지대를 잘 정리하여 콩시험포전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은 이미 있던 포전보다 거의 10배나 되게 넓은 부지였다.그곳에는 갖가지 꽃들이 활짝 피여있었다.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잠시나마 휴식의 한때를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어놓은 꽃들이였다.

일군은 그이께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망설이였다.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정원에 나무만 심는것보다 콩과 같은 농작물을 심는것이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시려 정원에 꽃밭대신에 농작물시험포전을 만드시는 그런 절세의 위인이 또 어디에 있으랴.

정녕 인민을 위한 일이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이시여서 그 어떤 꽃향기보다도 구수한 낟알향기를 더 좋아하시며 이런 류다른 정원을 꾸리도록 하신것이였다.

필생의 좌우명

주체81(1992)년 12월 어느날이였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참다운 인민의 충복이 되려면 혁명적군중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회고록에 《이민위천》이라고 썼는데 그것은 인민을 하늘과 같이 여긴다는 뜻이라고, 《이민위천》은 자신의 지론이고 철학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선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인민대중을 하늘과 같이 여기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였으며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하여왔다고, 혁명하는 사람이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것은 오랜 혁명실천을 통하여 그 진리성이 뚜렷이 실증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한평생 이민위천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이 흘러넘치는 어버이수령님의 간곡한 교시를 새겨안는 일군들의 가슴속에서는 격정의 파도가 세차게 일렁이였다.

추억깊은 명곡을 들으며

오늘도 우리 인민이 뜨거운 격정속에 부르는 노래가 있다.

절세위인의 위대한 한평생을 격조높이 구가한 명곡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지난 세기 70년대 중엽에 창작된 이 노래가 세월이 흐를수록 크나큰 격정의 메아리가 되여 인민의 가슴마다에 끝없이 울리고있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이던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어느날에 있은 이야기가 감회깊이 돌이켜진다.

그날 옥류교를 건느던 한 작가는 뜻밖에도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를 보게 되였다.때는 깊은 밤이라 사람들이 단잠에 든 시각이였다.

옥류교를 지나 멀어져가는 승용차를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넘칠듯 고여있었다.

(아, 행복의 요람속에 인민을 재우시고 이 밤도 사랑의 길 떠나시는 수령님!)

작가는 누를길 없는 격정에 북받쳐 그 자리에서 만년필을 꺼내들었다.강바람에 퍼덕이는 종이장에 눈물을 쏟으며 그는 한자한자 가사를 적어나갔다.

행복의 요람속에 인민을 재우시고

이 밤도 사랑의 길 떠나시는 수령님

찬이슬 내리는데 또 어데 가시옵니까

수령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인민 누구나 목메여 부르는 명곡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는 이렇게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은 우리 인민이 그처럼 절절히 바라던 소원대로 흘러왔던가.

우리 인민에게 이 세상 만복을 안겨주시려 나라의 첫 새벽문을 남먼저 여시며 무한한 헌신의 자욱자욱을 끝없이 새겨가신 우리 수령님,

오로지 마음속에 인민을 안고 사신 그이이시였기에 탄생 82돐이 되는 주체83(1994)년 4월 15일에도 인민을 위해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온 나라 인민이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축원하던 뜻깊은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들에게 한가지라도 더 색다른것을 마련해주겠는가에 대하여 마음쓰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 한 일군이 이제는 휴식을 하셔야 하겠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고맙다고, 동무들은 나를 보고 자꾸 휴식을 하라고 하는데 나도 쉬고픈 때가 많다고 하시면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깊은 사색속에 천천히 방안을 거니시였다.

잠시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정말 이제는 나이 80살을 넘기고보니 일이 힘들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다니면서 편히 휴식을 하고싶다고, 그럴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것이 인민들의 생활이 높아지지 못하는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 생일을 뜻깊고 즐겁게 보내고싶어한다.

허나 우리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생신날에도 인민을 위해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으니 정녕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이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으랴.

진정 한가지를 해주면 두가지, 세가지를 더 해주고싶어 늘 마음쓰는 부모의 심정으로 명절날, 휴식날, 생신날도 끝없는 로고를 이어가신 우리 수령님이시였기에 그이께는 인민을 위한 헌신의 시간만 있을뿐 자신을 위해 바치신 시간은 따로 없었다.

바로 그래서 우리 인민은 이른새벽에도, 낮에도, 깊은 밤에도 휴식을 모르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하루라도, 한시라도 편히 쉬시옵기를 바라는 간절한 념원을 담아 노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를 목메여 부르고 또 부른것 아니던가.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단순히 노래가 아니다.

정녕 그것은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을 우러러 인민이 터친 절절한 마음속고백이였으며 어제만이 아닌 오늘도 내일도 울려퍼질 수령칭송의 영원한 메아리인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을 그리며 인민이 부르던 이 노래는 오늘도 이 땅우에 끝없이 울려퍼지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인민사랑의 뜻을 정히 받들어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인민을 위하여 끝없는 사랑의 길, 헌신의 길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어버이로 모시였기에 이 명곡은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수령칭송의 노래로 영원히 울리여가리라.

따사로와라 우리 안겨사는 어머니품이여

태양절을 맞으며 전국의 원아들과 보양생들이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았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어린이들과 인민들을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하여 그들의 행복의 웃음소리, 노동당만세소리가 높이 울려퍼지게 하자는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고 의지입니다.》

온 나라에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지는 속에 또 하나의 사랑의 전설이 이 땅우에 꽃펴나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우리 원아들과 보양생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사랑에 사랑을 거듭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그들에게 또다시 은정깊은 선물을 가슴가득 안겨주시였다.

혁명가유자녀들을 언제나 마음속 가장 가까이에 두시고 친부모의 정을 부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웅심깊은 사랑속에 만경대혁명학원을 비롯한 혁명학원원아들이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았다.

지난 광명성절을 맞으며 조국땅 방방곡곡의 학령전어린이들에게 《해바라기》학용품을 보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번에는 공업품과 식료품, 학용품을 비롯한 선물을 원아들에게 보내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이 어린 선물은 수도 평양과 각 도의 육아원과 애육원, 초등학원, 중등학원원아들에게 빠짐없이 가닿았다.머지않아 학원문을 나서게 될 원아들은 물론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원아들에게까지 나이별에 따르는 가지가지의 사랑의 선물이 아름벌게 안겨졌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만지는 위대한 어버이의 한량없는 사랑에 온 나라 인민이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다.

뜻깊은 태양절의 하늘가에 높이 울려가는 원아들의 행복에 넘친 웃음소리, 노래소리는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승리의 신심과 밝은 미래에 대한 락관을 더더욱 깊이 새겨주고있다.

원아들에게 전해진 선물의 내용을 적은 명세를 정히 펴들고 감동에 겨워하는 우리에게 내각의 한 일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버이사랑이 어린 선물을 싣고 원아들을 찾아갈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리우군 합니다.세상에 우리 원아들처럼 행복한 아이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다달이 원아들에게 안겨지는 물고기며 빵을 비롯한 식료품에 깃든 사랑의 이야기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우리 인민이다.

찬바람부는 포구에 오래도록 서시여 원아들의 하루물고기섭취량까지 몸소 계산해보신 우리 원수님, 인민군대에 원아들을 위한 최고사령부직속 수산사업소를 내오도록 하시고 사시장철 조국땅 방방곡곡에로 물고기수송길을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사랑의 조치를 연속 취해주신 우리 원수님의 그 은정을 철없는 아이들까지도 이제는 다 안다.

원아들을 위해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면서도 그 사랑이 부족하신듯 뜻깊은 명절때마다 친아버지의 정을 기울여 원아들이 명절을 잘 쇠라고, 더 밝게 피여나라고 고급식료품이며 새옷을 꼭꼭 보내주신 우리 원수님.

그때마다 우리 아이들이 목청껏 부르던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얼마나 뜨겁게 해주었던가.

정말이지 이 땅에는 부모잃은 아이는 있어도 부모없는 설음에 그늘진 아이는 단 한명도 없다.

다심한 어버이사랑속에서 원아들이 부모있는 아이들보다도 더 밝고 명랑하게 무럭무럭 자라고있는 감동깊은 현실, 이것이 바로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한결같이 찬탄하는 사회주의 우리 조국의 참모습인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위대한 사랑이였다.

그 사랑, 그 은정은 항일의 나날 추위에 떠는 아이들에게 안겨주신 모포에도 어리여있고 오늘도 우리 아이들이 정담아 부르는 장군님은 전선으로 아이들은 야영소로라는 노래구절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오늘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후대사랑, 미래사랑의 뜻을 정히 받들어가시는 우리 원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을 한없이 넓고 따사로운 사랑의 한품에 안아 보살피고계신다.

선물의 내용을 적은 명세를 한조항한조항 읽어내려갈수록 그리도 다심하고 웅심깊으신 어버이의 사랑에 누구나 눈굽을 적신다.

여름운동복이며 운동신발, 운동모자 그리고 아이들의 구미에 맞는 각종 사탕과 과일단졸임, 졸인젖, 초고온요구르트를 비롯한 당과류와 식료품, 학과학습에 필요한 학용품…

우리 어머니들의 가슴을 뭉클 젖게 하는 한 항목이 눈뿌리를 지지며 안겨든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크나큰 배려에 의하여 아직은 꽃망울에 불과한 어린 처녀애들에게 안겨진 갖가지 코스모스머리빈침!

나이별에 따르는 머리빈침이며 그 개수까지 세세히 밝혀져있다.

이 땅의 어느 부모가 한창 자라는 자식들의 머리에 꽂아줄 빈침이며 입고 신게 될 운동복과 신발, 운동모자까지 미리미리 갖추며 아이들을 키운적이 있었는가.

불러볼수록 밤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모르는 당중앙창가가 눈앞에 어려오고 우리 원수님 쉬임없이 이어가시는 전선길이 가슴에 마쳐와 목이 꽉 메인다.

우리 원아들, 이 세상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고 부럼없이 자라는 그들이다.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고 좋아라 웃고떠드는 원아들을 바라보며 《너희들은 얼마나 행복하니.》 하고 곱씹어외우는 사람들이 어찌 육아원과 애육원, 초등학원, 중등학원의 교직원, 보육원, 교양원들뿐이겠는가.

아이들의 취미를 헤아려 색갈이며 형태 그리고 영양학적특성까지 과학적으로 타산하여 식료품을 마련해주고 학령에 따라 각이한 크기의 학습장과 필기도구, 도화공작용색점토까지 갖추어준 그 사랑은 천만부모의 사랑을 다 합친다 해도 따르지 못할 뜨겁고 위대한 사랑이 아니랴.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 원아들은.얼마나 따사로운가, 우리 안겨사는 그 품은.

평양애육원 원장은 뜨거움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에 접할 때마다 과연 저 철부지아이들이 자기들에게 돌려지는 사랑에 대해 언제면 다 알가 하는 생각이 들군 합니다.》

그렇다.아직은 철부지원아들이다.하지만 나이가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자기들에게 순간순간 피방울처럼 흘러드는 우리 원수님의 그 사랑을 어이 모르랴.

아버지원수님 고맙습니다! 원아들 누구나 한목소리로 스스럼없이 터치는 이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그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바로 이렇듯 따사로운 어머니품속에서 밝고 명랑하게, 행복하게 자라고있다.

나라의 곳곳에 자리잡은 양로원, 양생원들에도 당의 은정이 뜨겁게 가닿았다.

뜻깊은 명절때마다 식료품을 비롯한 선물을 안겨주시며 명절을 즐겁게 쇠도록 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대해같은 사랑에 보양생들은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적시고있다.

인생의 노년기에도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나라일에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보양생들의 건강과 생활에 대해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며 거듭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우리 원수님이시다.

우리 인민모두가 이런 위대한 어버이의 품에 안겨산다.

우리의 태양은 얼마나 따뜻하며 우리가 안겨사는 당의 품은 얼마나 따사로운가.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이여,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내 나라 사회주의찬가-《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가리

유훈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위력한 사상공세

영도업적단위 당조직들에서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이 넘쳐나는 4월의 하루하루가 흘러가고있다.

영도업적단위 당조직들에서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사상공세로 정면돌파전을 힘있게 추동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각급 당조직들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당이 제시한 혁명과업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합니다.》

인민경제 중요공업부문의 영도업적단위 당조직들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관철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여기에 당사업의 화력을 집중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계를 낳는 어머니공장이라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신 룡성기계연합기업소 당위원회에서는 20여차례나 찾아오시여 탄광과 광산, 공장들에 필요한 설비를 원만히 생산보장할데 대하여 주신 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사업에 선전선동역량과 수단을 총동원하고있다.방송선전차와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을 동원하여 출근길선동, 혁신자축하방송을 활발히 진행하는 한편 직장, 단위별로 음향증폭기재를 통한 방송선전을 강화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록음편집물을 정상적으로 내보내여 누구나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을 안고 유훈관철을 위한 투쟁에 한몸바칠 맹세로 가슴을 불태우게 하고있다.당세포위원장들과 선동원들이 종업원들에게 위대성자료, 연합기업소에 깃든 당의 영도업적자료를 반복해설해주도록 하고있다.

당위원회에서는 또한 당, 행정일군들에게 직장들을 분담시켜 그들이 대상설비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열의를 북돋아주고 걸린 문제를 제때에 료해하여 풀어주도록 하고있다.그리하여 린회석광산을 환원복구하는데 필요한 10㎥V형압축기 40여대를 제때에 생산하여 지난 4월 5일에 보내주게 되였다.또한 합성가스압축기, 쌍축스크류혼합기, 감속기대치차를 비롯하여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와 흥남비료연합기업소,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에 보내줄 대상설비생산에서 생산적앙양을 일으켜나가고있다.

2.8비날론연합기업소에서 유훈관철전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있다.

당위원회에서는 굴지의 대화학공업기지를 수십차례나 찾고찾으시며 화학제품생산을 정상화할데 대하여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유훈을 대중의 심장속에 새겨주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었다.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중에서 한개 부문씩 집중적으로 학습하도록 아래당조직들에 주별학습방향을 주고 일군들과 당초급선전일군들이 앞장서게 하였다.

당위원회에서는 선행공정을 추켜세우는것을 생산정상화의 기본고리로 정하고 사상전의 집중포화를 들이대여 성과를 이룩해나가고있다.무연탄과 석회석수송렬차들에 대한 당위원회일군들과 초급당위원장들의 첨승을 조직하여 그들이 탄광과 광산노동계급의 정신력을 발동하기 위한 사상사업을 화선식으로 진행하도록 하였다.카바이드2호전기로와 5호전기로, 중요자재회수현장에 방송선전차와 기동예술선동대를 파견하여 경제선동을 화선식으로 맹렬하게 진행하도록 함으로써 생산의 돌파구를 열어나가고있다.그리하여 연합기업소에서는 1.4분기 화학제품생산을 지표별로 수행한 기세를 조금도 늦춤이 없이 생산정상화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리게 되였다.

수풍발전소 초급당위원회에서는 발전소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영도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 여기에 큰 힘을 넣고있다.

당창건 한돐이 되는 뜻깊은 날 발전소에 첫 현지지도의 자욱을 남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을 찾으실 때마다 전력생산을 정상화할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관철정형을 항목별로 구분하여 만든 직관물을 부서와 직장사무실, 작업반휴계실마다 게시하고 종업원들이 늘 보면서 분발하도록 하였다.

한방울의 물이라도 아껴쓰면서 발전기효률을 높여 전기를 많이 생산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고 새형의 수차를 제작하여 104호발전기에 도입하기 위한 작업현장에 방송선전차와 기동예술선동대를 집중배치하고 기술자, 기능공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있다.

장마철전에 발전설비보수를 끝내기 위하여 107호발전기보수작업장에 일군가족경제선동대를 내보내여 맹렬한 경제선동활동을 벌려 제때에 끝낸 기세로 날마다 성과를 확대해나가고있다.

김정숙평양제사공장, 김정숙평양방직공장, 평양곡산공장, 함흥제사공장을 비롯한 경공업부문의 영도업적단위 당조직들에서도 첨입식, 집초식사상공세로 대중을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있다.

농업부문의 영도업적단위 당조직들이 어버이수령님의 유훈관철에로 농업근로자들을 불러일으키는 사상전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다.

만경대구역 만경대남새전문농장 초급당위원회에서는 40여차례나 단위를 찾아오시여 모든 면에서 전국의 본보기가 되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대중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주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참신하게 진행하고있다.그리하여 농업근로자들모두가 영광의 땅에 세세년년 풍요한 가을을 안아올 굳은 결의 안고 봄철영농작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신 평원군 원화협동농장 당조직에서도 농장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의 가슴속에 다수확으로 농장에 깃든 수령님의 불멸의 영도업적을 더욱 빛내이며 유훈관철전의 앞장에 설 각오를 굳혀주고있다.

강서구역 청산리당위원회, 안악군 오국리당위원회, 사리원시 미곡리당위원회, 함주군 동봉리당위원회에서도 대중을 어버이수령님의 유훈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선전선동공세를 힘있게 벌려 당면한 영농작업에서 성과를 이룩해나가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가리

크나큰 믿음에 강철증산으로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노동계급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노동계급의 대는 바뀌여도 당과 수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충실성의 전통, 일심단결의 역사는 영원히 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강선의 노동계급이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슴끓이고있다.

수령님과 강선!

돌이켜보면 우리 수령님 강선의 노동계급을 얼마나 크나큰 믿음과 사랑으로 걸음걸음 손잡아 이끄시여 나라의 강철기둥을 억세게 떠받드는 영웅적노동계급의 대부대로 키워주시였던가.

해방직후 그처럼 그리시던 고향 만경대를 지척에 두시고 강선을 먼저 찾으신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선제강소 노동계급은 민주건국사업에서 선봉대가 되여야 한다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선봉대, 이 고귀한 믿음을 안고 강선노동계급은 강철로 당중앙을 결사옹위하며 조국역사에 자랑찬 위훈의 자욱을 수놓아왔다.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를 준비하시다가 평범한 자기들과 인민경제복구건설문제를 의논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크나큰 격정속에 만나뵙고 산악같이 떨쳐일어나 전후 40일만에 첫 출강을 보장,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이후에도 또다시 제강소를 찾으시여 동무들이 다음해에 강재를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결사의 투쟁을 벌려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밀어내는 기적을 창조하며 천리마의 새시대를 앞장에서 개척…

충성과 보답의 열망으로 쇠물을 끓이는 강철전사들이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선의 노동계급에게 당과 수령의 부름에 충실한 핵심부대, 강철로 당을 받들고 종파오물을 쓸어버리며 당중앙을 보위한 영웅전사들이며 근위대라는 최상최대의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10여년전 12월의 그날에도 온 나라에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지펴주시기 위하여 또다시 강선을 찾아주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자력갱생과 간고분투로 일관된 수령님의 위대한 건국사가 비껴있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는 부강조국건설을 위해 한생을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애국헌신과 수령과 인민의 혼연일체의 위력을 가슴뜨겁게 보여주는 위대한 역사의 체험자, 증견자이라고 하시면서 어려울 때마다 강철로 당을 받들어온 강선의 노동계급이 다시한번 천리마를 탄 기세로 세기를 주름잡으며 대고조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대를 이어 받아안은 하늘같은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금 강선의 노동계급모두가 산악같이 일떠섰다.

정면돌파전이 개시된 올해에 금속공업부문이 용을 쓰며 들고일어나야 한다는 당의 뜻을 심장에 새기고 철강재생산토대를 더욱 튼튼히 다지기 위하여, 당면하여 평양종합병원건설장에 더 많은 철강재를 보내주기 위하여 힘찬 투쟁을 벌리고있다.

줄기찬 생산돌격전이 벌어지는 압연직장 현장에서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세상이 다 아는 천리마의 고향으로 이름떨친 강선의 자랑찬 역사를 대를 이어 빛내여가려는것이 우리 새 세대 강선노동계급의 불같은 의지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움의 4월과 더불어 더더욱 세차게 끓어번지는 강선노동계급의 한결같은 신념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가리

들끓는 우리 일터에 와보시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함경북도의 경공업발전에서 중요한것은 도자기공업을 발전시키는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이 가슴 더욱 젖어드는 4월,

그리움의 낮과 밤이 흐를수록 경성도자기공장 일군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의 발걸음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 있다.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영도업적이 어려있는 작업장들이다.

구내에 들어설 때면 공장을 찾으시였던 어버이수령님의 그날의 환하신 모습이 그대로 안겨오는듯싶어 눈굽을 적시는 일군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이다.

몸소 작업현장에까지 들어오시여 노동자들이 생산한 도자기제품들도 보아주시고 평범한 한 운반공의 작업모습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며 우리 나라의 도자기제작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그 질을 높일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신 어버이수령님.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심장에 새겨안고 온 공장이 일떠섰다.

일군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의 가슴속에는 도자기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데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할 일념이 차넘치였다.

기대를 지켜선 노동자들도, 밤을 밝히며 새 제품창작에 창조적지혜를 합쳐가는 기술자들도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기어이 관철할 의지로 가슴 불태우며 혁신의 낮과 밤을 이어갔다.

하기에 공장은 해마다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지표별로 초과완수하면서 도자기제품의 가지수를 늘이고 질제고를 위한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공장에서는 자체의 기술역량에 의거하여 소성로들을 전기절약형으로 개조하면서 여러가지 도자기제품들을 수많이 생산하였다.

오늘도 이곳 일군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은 여러가지 맵시있고 쓸모있는 도자기제품을 종전보다 배이상으로 생산할 목표밑에 석탄가스화에 의한 도자기생산공정을 확립하던 나날을 잊지 못한다.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설비와 자재, 기술, 자금 등 걸리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공장실정에서는 힘에 부친 아름찬 과제였다.

그러나 공장일군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은 가능성을 따지기에 앞서 무조건 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일떠섰다.

석탄가스화에 의한 도자기생산공정확립을 단순한 기술개건이 아니라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사상적문제로 받아들였던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어버이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의 설비, 우리의 기술, 우리의 원료로 세계적수준에 도달할수 있는 도자기제품을 다량생산하는것이였다.

일군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은 성, 중앙기관들과 과학연구기관들, 경성도자기연합기업소의 방조밑에 방대한 공사과제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생산공정에 대한 통합조종체계를 확립하였다.그리하여 자체의 힘과 기술로 석탄가스화에 의한 도자기생산공정을 확립하고 생산을 배로 끌어올릴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일군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생산공정의 현대화를 계속 드세게 내밀어 제품의 가지수를 늘이고 질을 부단히 개선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있다.

뜻깊은 태양절을 맞이한 이들은 공장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다시금 가슴깊이 새기며 도자기공업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할 열의에 넘쳐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가리

6시간에 비낀 결사관철의 기풍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 청년직장 초급당위원회에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자기 단위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도사적을 빛내이고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 수령님과 장군님의 생전의 뜻과 념원을 현실로 꽃피워야 한다.》

지난 1월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 청년직장의 어느 한 보이라에서 운영도중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분사수도관이 터졌던것이다.

높은 압력에 의해 온도가 200℃나 되는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발전설비를 세울것인가, 아니면 생산을 계속하면서 보수를 진행할것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였다.

이때 초급당위원들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전력생산을 늘이라는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이다.더우기 우리는 정면돌파전의 첫걸음부터 큼직하게 내짚자고 결의다지며 목표를 높이 세우지 않았는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생명선으로 여기고 한W의 전력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결사의 의지를 안고 떨쳐나선 노동계급의 뜨거운 숨결을 매일, 매 시각 느끼고있던 초급당위원들은 그들의 애국열을 분출시킨다면 얼마든지 발전설비를 세우지 않고서도 보수작업을 진행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홍영길직장장, 보수1작업반 반장을 비롯한 초급당위원들이 앞장에 섰다.그들은 제일먼저 보수현장에 뛰여들었다.

그런 정황에서 뜻밖의 일이 생길수 있다는것을 그들은 모르지 않았다.하지만 난관앞에 주저앉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한걸음의 양보도 없이 가장 철저하게, 가장 완벽하게 관철해나갈 불타는 일념을 안고 초급당위원들은 불의의 정황에 맞게 조직정치사업을 능숙하게 벌리였다.

초급당위원인 직장장은 임명된지 얼마 안되여 경험이 부족하였지만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직사업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면서 보수작업의 앞장에서 헌신하였다.그의 모습에서 당세포위원장, 노동자들은 큰 힘을 얻었다.

증기가 뽀얀 현장은 한치의 앞도 가려보기 힘들었다.그러나 그들은 바닥으로부터 거의 15m나 되는 높은 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가 땀을 철철 흘리며 긴장하게 일하였다.

보수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오랜 시간이 지나자 노동자들이 하나둘 맥을 놓기 시작하였다.

그때 초급당위원들은 동무들, 힘을 내자, 우리가 이 보수작업을 빨리 끝내야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할수 있다, 오늘의 정면돌파전의 하루하루를 충성과 위훈으로 빛내이자고 호소하면서 앞장에 섰다.

이에 힘을 얻은 노동자들은 결사의 각오와 의지를 안고 분발해나섰다.이렇게 되여 보수작업은 6시간만에 끝나게 되였다.

이 하나의 사실을 놓고서도 우리는 정면돌파전에 떨쳐나선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어떻게 결사관철하여야 하는가를 다시금 깊이 절감하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가리

오늘도 울리는 《밭갈이노래》

룡천군 장산협동농장을 찾아서

우리는 얼마전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영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역사의 땅 룡천군 장산협동농장을 찾았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장산협동농장에서 준엄한 전화의 나날 장산리여성들이 수령님을 모시고 불렀던 〈밭갈이노래〉를 영원히 부르면서 쌀로써 당을 받들겠다고 하는데 앞으로 일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농장일군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가 제일먼저 찾은 곳은 장산리혁명사적지였다.

교양마당에 들어서니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체41(1952)년 6월 이곳 당세포총회를 지도하시는 영상작품이 정중히 모셔져있었다.

전화의 그날 당시의 민주선전실에서 몸소 당세포총회를 지도해주시며 당원들을 전시식량증산에로 고무해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모습이 어려와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전선에 더 많은 식량을 보내주겠다는 한 녀당원의 토론도 대견하게 들어주시고 풍금에 맞추어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여성들의 소박한 모습에서 큰 힘을 얻으신 어버이수령님.

주체99(2010)년 6월 농장을 찾으시여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던 위대한 장군님,

그날 장산협동농장에서 준엄한 전화의 나날 장산리여성들이 수령님을 모시고 불렀던 《밭갈이노래》를 영원히 부르면서 쌀로써 당을 받들겠다고 하는데 앞으로 일을 잘하여야 하겠다고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높이 받들고 농장에서는 올해농사에서 장훈을 부를 열의밑에 통이 크게 일판을 벌리고있었다.

농장당조직에서는 대중의 정신력을 총발동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활발히 벌려나갔다.

이곳 일군들은 절세위인들의 거룩한 자욱이 새겨진 땅을 옥토로 전변시키기 위해 년초부터 정보당 4t의 유기질복합비료를 내기 위한 사업에로 대중을 불러일으켰다.그리고 활창대와 나래를 비롯한 자재를 넉넉히 마련하여놓고 씨뿌리기를 앞당겨 진행하였다.

농장원들은 준엄했던 전화의 나날 승리할 조국의 내일을 그려보며 《밭갈이노래》를 신심드높이 불렀던 전세대들의 투쟁정신으로 부닥치는 모든 난관을 뚫고나갔다.그들은 저수확지들에 강냉이원형재배와 여러개체모아심기방법을 도입할수 있는 준비사업을 성과적으로 결속하였고 양수기수리도 제때에 하였다.

농장에서는 또한 대중의 정신력을 발동하여 많은 면적의 논밭갈이도 끝내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관리위원장은 확신에 넘쳐 말하였다.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인 농업전선을 지켜선 높은 책임감을 안고 뜻깊은 올해에 풍요한 가을을 안아옴으로써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영도업적을 더욱 빛내여나가겠다는것이 우리들의 한결같은 지향이고 열망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가리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원산신발공장에서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은 원산신발공장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가슴마다에도 뜨겁게 넘쳐흐르고있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인민들의 의사와 요구를 깊이 료해하시고 그에 기초하여 당의 로선과 정책을 세우시였습니다.》

우리와 만난 공장일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공장이 걸어온 긍지높은 나날들이 되새겨진다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산공정을 기계화, 자동화하며 질기고 맵시있는 신발을 많이 만들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날에 하신 교시를 언제나 심장깊이 새기고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인민생활향상에 적극 이바지하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왔다.이 나날에 공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생산현장들과 노동자합숙, 구내를 일신하는 등 영도업적단위의 영예를 빛내이기 위한 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최근에만도 3대혁명소조원들과 합심하여 새로운 기술혁신안을 받아들여 천신종합작업반의 제화흐름선을 현대화하였다.

기술혁신과 창의고안의 명수가 될 불타는 일념밑에 두뇌전, 기술전을 벌리는 과정에 3대혁명소조원들은 자동온도조절장치와 자동속도조절장치를 창안도입하여 제품의 질을 훨씬 높이였다.

당창건 75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도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당조직의 지도밑에 원료의 국산화를 실현하고 제품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한 통이 큰 작전을 펼치였다.

기술일군들과 3대혁명소조원들은 서로 지혜를 합쳐가며 롤기를 개조하여 파수지와 파고무로 신발창을 생산할수 있는 담보를 마련해놓았다.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갈데 대한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정초부터 생산적앙양의 불길을 지펴올려 1.4분기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

이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심장깊이 새기고 인민들의 호평을 받는 소비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분발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가리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도록

-모란봉구역상하수도관리소에서-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

불멸의 친필글발들을 우러를 때마다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4월의 이 봄날, 조국땅 방방곡곡에 력력히 새겨져 빛나는 절세위인의 불멸의 친필글발들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준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주체혁명위업의 승리적전진과 완성을 위한 만년초석을 마련하신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며 주체의 태양이시다.》

대성산혁명렬사릉에는 조국해방성전에서 영웅적으로 싸우다 희생된 투사들을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가 있다.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김 일 성

1985.10.10.》

친필비앞에서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혁명적의리의 세계를 뜨겁게 안아본다.

준엄한 항일전의 나날 희생된 전사에 대한 애석함을 금치 못하시며 눈보라 울부짖는 깊은 밤 고깔불앞에서 한자한자 추도문도 쓰시고 멀리로 떠난 대원들을 생각하시여 쉰개의 고기가루봉지에 손수 이름까지 적어 건사하게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기신 친필은 우리들이 매일같이 건느는 다리들에도 새겨져 빛을 뿌리고있다.

《옥류교》,

몸소 다리건설을 발기하시고 터전도 잡아주시였으며 건설 전 과정을 지도해주신 우리 수령님,

다리의 이름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였을 때 다리에 이름을 하나 붙여도 인민들이 부르기 좋아하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하시며 고장의 지명과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친히 《옥류교》라고 이름지어주시고 사랑의 친필도 보내주시였다.

릉라다리, 충성의 다리, 미림다리 등에 새겨진 친필글발들도 나날이 커만 가는 인민의 행복에서 기쁨을 찾으시며 헌신의 길을 이어가신 위대한 어버이의 인민사랑의 전설을 길이 전하고있다.

역사의 땅 판문점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남기신 불멸의 친필이 새겨져있다.

《김 일 성

1994.7.7.》

보면 볼수록, 새기면 새길수록 조국통일을 위하여 그토록 마음쓰신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이 숭엄히 안겨온다.

어느해 4월 15일, 온 나라 인민들과 인류의 다함없는 축원속에 만시름을 놓고 편히 쉬셔야 할 탄생일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한가지 나의 마음에 걸리는것은 통일된 조국에서 다같이 행복을 누리려는 겨레의 념원을 풀어주지 못한것이라고, 조국을 통일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공동의 숙원인 동시에 민족앞에 다진 나의 맹세이기도 하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바치신 로고와 심혈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하기에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남기신 불멸의 친필을 우러를 때마다 가슴뜨거워지는 우리 인민이다.

김형직사범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고려성균관에 빛나는 친필현판에는 나라의 교육발전에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이 어려있다.

《묘향산》, 《상원암》, 《만폭동》, 《비로봉》 등의 친필글발은 우리 인민들에게 조국산천의 아름다움과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대한 한없는 긍지를 새겨주며 내 조국의 명승고적들과 더불어 빛나고있다.

이 나라의 그 어디에나 새겨져 빛을 뿌리는 어버이수령님의 친필글발,

정녕 그것은 위대한 어버이의 거룩한 혁명생애와 업적을 길이 전하는 역사의 증견자가 아니겠는가.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

4월의 하늘가에 울려퍼지는 행복의 웃음소리

여명거리를 따라 걸으며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주체의 태양으로 높이 모시며 수령님과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없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화창한 4월의 봄명절을 뜻깊게 경축하고있는 인민들의 모습을 지면에 담고싶어 우리는 여명거리에 대한 취재길에 올랐다.

얼굴마다에 행복의 웃음을 함뿍 담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자기의 아름다움을 뽐내려는듯 앞을 다투어 망울을 터친 울긋불긋 꽃송이들…

명절분위기로 단장된 여명거리에 들어선 우리는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은 70층살림집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이마에 손채양을 붙이고 초고층살림집을 올려다보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취재길에서 얼굴을 익힌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가 입가에 느슨한 웃음을 짓고 서있었다.

알고보니 다른 교원들과 함께 룡남산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에 인사를 드리고 오는 길이였다.

뜻깊은 태양절 아침 위대한 수령님들께 달려가 영생축원의 인사를 올리고 새 결의도 다졌을 교수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은 뭉클 젖어들었다.

얼마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가면 섭섭하지 않은가, 지금쯤 안해가 특색있는 명절음식을 차려놓고 있을거라며 무작정 잡아끄는 교수와 후날의 상봉을 약속하고 헤여졌다.

연로한 몸이지만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고있는 최옥로인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우리는 대성구역 여명동 25인민반 4층 2호로 걸음을 재촉하였다.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최옥로인의 안내를 받으며 방에 들어서니 소담한 꽃바구니가 눈가에 비껴왔다.

《날마다 커가는 우리 가정의 행복을 아뢰고싶어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을 찾아가려던참이라오.》

최옥로인은 우리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들이 모셔져있는 방으로 이끌었다.그는 우리에게 자기의 인생담을 들려주었다.

평범한 노동자의 딸의 성장을 걸음걸음 보살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대하여,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는 당의 고마운 은덕에 보답하고저 힘이 자라는껏 일을 찾아했을뿐인 자기에게 감사를 보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정에 대하여…

더 물어 무엇하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게 하는가를 영광의 기념사진들이 말해주고있었다.

최옥로인은 우리에게 아들며느리와 함께 모란봉에도 올라가보고 저녁에는 가족오락회를 열고 며칠전부터 준비한 6살 난 손자의 노래도 들어보련다고 흐뭇한 어조로 이야기하였다.이윽고 우리는 그의 집을 나섰다.

유난히 따스한 봄날이였다.

가족끼리, 동무들끼리 웃고 떠들며 여명거리의 살림집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도 절로 흥그러워졌다.곳곳마다에 훌륭히 꾸려진 봉사망들과 공원 등 어디 가나 인민의 기쁨넘친 모습을 볼수 있었고 어디서나 행복넘친 웃음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우리의 생각은 아물아물 피여오르는 아지랑이와 더불어 깊어갔다.

여명거리에서 울리는 웃음소리, 정녕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최대의 애국유산인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서 복된 삶을 누려가는 이 나라 인민들의 행복의 메아리였고 당을 따라 끝까지 충성의 한길을 이어갈 불타는 맹세의 노래였다.

정말이지 발목이 시도록 걷고 또 걷고싶은 여명거리였다.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김일성동지는 역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만민이 우러르는 절세의 위인이시다.》

우리 수령님!

이렇게 목메여 부르느라면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신 자애로운 어버이의 모습이 가슴뜨겁게 어려온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서 만나주시고 내세워주신 사람들 천이던가, 만이던가.

그들속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리마시대에 보건일군의 본보기로, 로력영웅으로 내세워주신 최정심여성도 있다.

이제는 여든고개를 넘어선 고령의 몸이지만 그는 아직도 교단을 떠나지 않고있다.

20대의 꽃나이에 강원도의 산골군인 회양땅에서 조산원으로 일하고있던 그는 주체50(1961)년 여름 수도 평양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전국보건부문일군열성자회에 참가하여 토론하는 영광을 지니였다.

그날 조산원으로서 당의 뜻을 충직하게 받들어가고있는 그의 토론을 들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이 동무를 당원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최상의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런 뜨거운 사랑속에 성장한 그여서 비록 나이는 많지만 오늘도 의료일군들을 키워내는 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는것이다.

자강땅의 한달화여성,

해방전 머슴군의 딸로 태여난 그가 로력영웅으로, 관리위원장으로 복받은 삶을 누려올수 있은것도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그가 오늘도 전설처럼 전해가는 이야기들중에는 주체60(1971)년 2월 어느날에 있었던 가슴뜨거운 사실도 있다.

그날 회의에 참가하였던 한달화관리위원장을 따로 불러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고기를 생산해서 덕을 보고 농사도 잘 지어 집집마다 많은 알곡과 현금을 분배받았다는 보고를 들으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오늘도 그는 인민의 행복에서 더없는 기쁨을 찾으시며 한평생 험한 농장길을 걷고 또 걸으시던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심장을 불태우고있다.

《우리 자매는 어릴 때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속에서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과 영광을 누리며 성장하였습니다.하기에 우리는 어버이수령님앞에서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리 수령님 량부모를 다 잃은 아이들이라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 최영옥 4자매의 심정뿐이고 그들만이 안고 산 노래이겠는가.

온 나라 인민모두가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속에서 복된 삶을 누려온 잊지 못할 나날들을 돌이켜보며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른다.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르던 시대가 지나간 역사속의 순간이 아닌 오늘의 현실이 되도록 하실 드팀없는 의지를 지니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어버이수령님은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영원히 우리 인민과 함께 계신다.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

복받은 삶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60청춘, 90환갑을 노래하며 마음껏 행복을 누리게 하시려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60청춘, 90환갑이라고 하였습니다.》

《60청춘, 90환갑》, 조용히 이 말을 외우느라면 이 땅의 수많은 장수자들의 모습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승호군 만달리에 자리잡고있는 양로원을 찾으시였던 못 잊을 이야기가 되새겨진다.

주체37(1948)년 5월 건국의 초행길을 헤치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이곳을 찾으시여 이제부터 나라에서 로인들을 잘 돌봐주니 자식이 없다고 섭섭해하지 말라고 다정히 이르기도 하시고 정세를 알수 있게 신문도 보고 또 건강을 위하여 몸이 허락하는 정도에 맞게 일도 할데 대하여 세심히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

어찌 그뿐이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운명이 판가리되는 준엄한 전쟁의 나날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할 구상을 펼치시고 주체42(1953)년 정월초하루부터 그 시행에 들어가도록 하시였으며 사회주의의학은 예방의학이라는 사상을 내놓으시고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5호담당의사구역제, 정기적인 검진 및 치료제를 비롯한 인민적시책들도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해빛같은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위대한 장군님에 의해 인민들의 생활속에 더욱 뜨겁게 스며들었다.

따사로운 사랑의 갈피에는 배우들의 예순번째, 일흔번째 생일을 계기로 독창회, 독주회, 독무회까지 조직해주신 이야기도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여성무용가를 만나신 자리에서 50살까지 춤을 출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을 때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영원히 춤을 추겠다고 대답올렸던 일을 잊지 않으시고 그의 예순번째 생일을 맞으며 독무회를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손녀까지 관람석에 앉힌 60살의 무용가는 청춘의 열정에 넘쳐 민족의 향취가 넘쳐나는 춤가락으로 관중의 흥취를 돋구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속에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연로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가 조직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연로자보호법》이 채택되였다.

오늘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로인들을 위한 훌륭한 보금자리가 솟아나고 그들은 전사회적인 관심과 보살핌속에 혁명선배로, 웃사람으로 존경받으며 인생의 노년기에도 값높은 삶을 누려가고있다.

산좋고 물맑은 명승지, 명소마다에 일떠서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고있는 휴양소, 료양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평양종합병원건설의 첫삽을 뜨시던 그날 우리 인민들과 후대들이 사회주의보건의 혜택속에서 선진적인 의료봉사를 마음껏 받으며 모두가 무병무탈하고 문명생활을 누리면 우리 당에 그보다 더 기쁘고 힘이 되는 일은 없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려준다.

절세위인들의 이민위천의 숭고한 뜻이 응축되여있는 《60청춘, 90환갑》, 이것은 《세월이야 가보라지》의 노래를 부르며 대대손손 복락을 누려가는 우리 인민의 행복의 대명사이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찬가가 아니겠는가.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

태양절을 맞이한 수도의 거리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

대를 이어 걷는 보답의 길

김일성종합대학 수학부 교원 오규남동무와 그의 가정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이 더욱 커만 가는 뜻깊은 태양절 아침 우리는 만수대언덕에서 낯익은 모습들을 볼수 있었다.

지난 20여년간 하루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주변관리사업에 깨끗한 충성의 마음을 바쳐온 김일성종합대학 수학부 교원 오규남동무와 그의 가정이였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변함없이 높이 모시고 받들어나갈 때 우리 나라는 영원한 태양의 나라로 온 세계에 찬연한 빛을 뿌릴것이며 우리 조국의 앞날은 끝없이 밝고 창창할것이다.》

오규남동무와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일하고있는 그의 동생 오혜심동무는 어머니인 림옥여성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주변관리사업을 하고있었다.

유치원시절부터 부모의 손목을 잡고 만수대언덕으로 오르던 오누이, 철없던 그 시절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왜서 매일과 같이 자기들과 함께 만수대언덕에 오르는지 다는 알수 없었던 그들이였다.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시기 오규남동무의 아버지는 출장길에서 돌아올 때면 만수대언덕에 심을 꽃씨들과 수종이 좋은 꽃나무모들을 안고 집으로 들어서군 하였다.그러던 아버지가 뜻밖의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였을 때 자식들에게 남긴 마지막말이 있다.

《너희들은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순간도 살수 없다는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아버지의 당부는 그들이 한생 안고 살아야 할 좌우명으로 가슴깊이 새겨졌다.

하기에 오규남동무는 당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외국류학을 하는 나날에도 위대한 수령님들을 그리며 탐구의 열정을 아낌없이 바쳤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어느해 겨울날이였다.평양교통운수대학 학생이였던 오혜심동무는 그날도 공부를 마치고 만수대언덕으로 올랐다.그는 문득 애어린 꽃나무앞에 멈추어섰다.이미 얼지 않게 벼짚으로 나무밑둥을 든든히 감싸주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자기의 목수건을 벗어 나무밑둥을 다시 꽁꽁 감싸주는 그의 가슴속에는 만수대언덕에 피여나는 충성의 꽃이 될 마음이 굳게 자리잡고있었다.

오규남동무와 그의 가정의 생활은 이렇듯 언제나 만수대언덕에서 시작되고 총화되였다.별들도 잠든 깊은 밤에도 올랐고 동이 트는 이른새벽에도 올랐으며 내리는 눈비에 온몸을 적시면서도 언제 한번 변함이 없었다.

당에서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그들을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참가하도록 하여주었으며 오혜심동무는 대회의 연단에서 토론하는 영광을 지니였다.그후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로 자라난 오혜심동무는 대학을 졸업하고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일하면서 기업소앞에 나서는 많은 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이바지하였다.오규남동무도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에서 후대교육사업에 자기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어느덧 동상주변관리사업을 마치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앞에 정중히 선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맹세가 울려나오고있었다.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그 사랑, 그 믿음에 대를 이어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

새형의 무궤도전차가 달린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생산물들은 그것이 크든작든 다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밑천이며 우리가 일떠세우는 모든 건설물들은 다 후대들에게 넘겨줄 나라의 귀중한 재보입니다.》

뜻깊은 태양절을 맞은 청진시의 거리에 새형의 무궤도전차가 경쾌하게 달린다.

청진뻐스공장 노동계급이 만든 새형의 무궤도전차에 오른 시민들의 얼굴마다에는 기쁨이 어려있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볼수록 멋쟁이인 무궤도전차에 척 올라 명절일색으로 단장된 시내의 거리를 달리니 꼭 평양에 온것만 같다고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전차에 오르는 시민들의 얼굴마다에 활짝 피여나는 웃음꽃으로 하여 산뜻하고 정갈한 전차안이 한결 더 환해지는듯싶다.

《새형의 무궤도전차를 타는 사람들 누구나 다 좋아한답니다.》

기뻐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전사의 흥에 겨운 목소리이다.

기쁨이 커갈수록 청진시민들을 위하여 크나큰 로고를 바쳐가신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과 은정이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청진시건설총계획도를 몸소 보아주시며 노동자들이 무궤도전차를 타고 공장에 통근하게 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어버이수령님,

어버이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속에 청진시에 첫 무궤도전차로선이 개통되였을 때 시민들은 얼마나 기뻐했던가.

청진뻐스공장을 몸소 찾으시여 궤도전차생산과 공장관리운영에서 나서는 과업을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사랑이 청진시민들에게 그대로 가닿게 하기 위해 더욱더 마음쓰신분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이시였다.

함경북도인민들을 위해 현대적인 남새온실을 지어주시고 새형의 무궤도전차생산을 다그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 사랑, 그 은정을 세월이 흐른들 어찌 잊을수 있으랴.

손자, 손녀의 손목을 잡고 무궤도전차에서 내린 한 로인은 차체에 새겨진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글자를 말없이 쓸어만지였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바로 한자한자의 글자마다에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뜨거운 인민사랑의 세계가 그대로 슴배여있기에 일흔살이 넘은 로인은 새형의 무궤도전차를 무심히 바라보지 못하는것이다.

다시 무궤도전차에 오르는 로인을 보며 의아해하는 운전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무궤도전차를 타고 거리를 한바퀴 더 돌고싶습니다.》

이것이 어찌 그 로인 한사람만의 심정이랴.아마도 그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과 은정속에 마련된 무궤도전차를 타고 이밤이 지새도록 끝없이 달리고싶은 청진시민들의 심정그대로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새형의 무궤도전차를 타고보니 더 많은 철강재를 생산하여 보답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더 굳어집니다.》

김책제철연합기업소의 용해공청년이 터친 심장의 맹세에 화답하듯 전차에 탄 시민들모두가 맡은 일을 더 잘해나갈 결심들을 피력한다.

뜻깊은 태양절날 새형의 무궤도전차는 기쁨에 넘쳐있는 인민들을 싣고 경쾌하게, 힘차게 청진시내의 거리를 달리고 또 달린다.

숭고한 뜻 길이 전해갈 일념으로

금강산혁명사적관 일군들과 종업원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사적사업은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역사와 불멸의 영도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길이 빛내이기 위한 사업이며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주체의 혁명전통으로 교양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입니다.》

지난해 10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신 소식에 접한 신명철, 김성실동무를 비롯한 금강산혁명사적관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북받치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였다.

금강산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명산,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인민의 문화휴양지로 훌륭히 꾸리실 구상을 안으시고 헌신의 자욱을 새기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돌이켜보면 금강산은 백두산3대장군의 거룩한 발자취가 어린 역사의 땅이였다.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체취가 어려있는 이 역사의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한생을 바쳐가고있는 사적관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다.

지난 기간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적자료를 발굴고증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리였다.그리고 사적건물과 사적물들에 대한 보존관리사업을 책임적으로 하면서 들끓는 생산현장들에 나가 고성군에 깃든 백두산3대장군의 영도업적을 근로자들에게 깊이 새겨주기 위한 이동해설강의를 널리 진행하였다.

금강산을 인민의 훌륭한 문화휴식터로 꾸려주시려고 온갖 로고와 심혈을 바치신 절세의 위인들의 불멸의 영도업적을 깊은 감동속에 되새길수록 그들의 가슴속에는 혁명사적부문에서 일한다는 남다른 영예와 긍지를 안고 우리 당의 혁명사적을 빛내이는 사업에 온넋을 바쳐갈 결의가 더 굳게 자리잡았다.

우리 혁명사적부문 일군들과 종업원들에 대한 당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자.

그들은 이렇게 심장을 불태우며 자신들의 정치실무수준을 한계단 높일 목표를 세우고 그를 실천하기 위한 투쟁을 이악하게 벌렸다.

군과 금강산에 깃들어있는 위대한 수령님들과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학습하였으며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매 시기 제시되는 당정책도 제일먼저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그것을 자기의 뼈와 살로 만들었다.

강사들인 박성경, 리미경동무들의 열의가 이만저만 아니였다.그들은 강의술을 높이는데 모를 박고 혁명사적강의를 원전자료에 기초하여 생동하고 실감있게 진행하기 위하여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였다.특히 강사생활을 갓 시작한 리미경동무는 하루빨리 자질을 갖추기 위해 퇴근시간을 미루어가며 학습과 화술훈련에 열중하였다.

일군들은 그가 해설강의를 실감있게 하도록 시범해설강의와 강의안합평회, 경험교환회를 자주 조직하였으며 강사들이 참관자들과 함께 사적물들을 돌아보면서 해설강의에 대한 반영과 의견을 듣고 강의를 더 잘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 나날 강사들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과업관철로 들끓는 여러 농장에 나가 군중의 심리에 맞게 이동해설강의를 생동하게 하여 농업근로자들이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을 지켜선 전초병답게 당면한 농사일에 애국의 마음을 바쳐가도록 적극 고무해주었다.

언제인가 진눈까비가 내리던 일요일이였다.아침일찍 사적지로 나왔던 관장은 어느 한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관리원 리성구동무의 모습이 눈에 띄였던것이다.비닐박막을 제끼고 꽃모들이 상하지 않았는가 유심히 살펴보는 그를 바라보는 관장의 가슴은 뭉클하였다.누가 보건말건 지난 수십년간 혁명사적지관리사업에 깨끗한 량심을 바쳐가는 그였다.

몸을 돌보며 일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관장에게 그는 웃으며 말하였다.

하루라도 사적지를 돌아보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하다고.

이것은 그만이 아니라 20여년을 관리원으로 일하고있는 김명준동무와 사적관종업원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그들은 10여종에 수백그루에 달하는 나무며 잔디를 제살붙이처럼 여기며 정성껏 가꾸었고 명절날, 휴식일 가림없이 눈발이 날리고 세찬 바람이 터지는 날이면 혁명사적지에서 한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참으로 혁명사적지관리사업은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삶의 전부였다.

지난 2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들이 백두산정에서 결의모임을 진행하고 전국의 근로자들에게 보낸 호소문에 접한 그날 사적관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심장은 하나로 고동쳤다.

천만의 가슴마다에 백두산정신을 억척같이 심어주는 조선노동당의 붉은 선전원, 붉은 선동원이 되자.

풍만한 정서와 우리 생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람들의 풍만한 정서는 락천적이고 다정다감한 생활에 바탕을 두고있습니다.》

생활속에서 우리는 흔히 락천가들을 보게 된다.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아도 웃음과 노래로 헤쳐나가는 사람, 아무리 바쁘다 해도 여유작작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생활을 다정다감하게 꾸려나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의례히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마련이고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높은 사업성과와 함께 언제나 풍만한 문화정서생활이 꽃펴나게 된다.

삼지연시꾸리기전투장에서 만났던 한 일군의 모습이 떠오른다.그에게는 별칭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우리의 눈길을 더 끌었었다.

독서애호가, 화초애호가, 나무연구사, 체육애호가, 축산박사, 건축전문가…

그 일군에게는 짬만 있으면 책을 보는 좋은 습관이 있다.아침일찍 일어나서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시간씩 책을 읽는것은 그의 어길수 없는 일과로 되고있다.

온 사단이 자랑하는 인조석판생산기지며 블로크생산기지, 남새온실과 종합축사 등은 모두 그의 꾸준하고 진지한 독서기풍이 낳은 결실이라고 한다.

책을 보면서 새라새로운 착상을 무르익히고 그것을 실천해나갈 때가 제일 좋다고, 그것이 창조가 아니겠는가고 그는 웃으며 말하였다.

그가 일하던 려단에서는 작업의 쉴참마다 온 건설장이 떠나갈듯 오락회나 체육경기를 펼쳐놓군 하였는데 아무때 보나 앞장에는 그 일군이 있었다.

투쟁이 있는 곳에 노래가 있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혁명의 승리가 있다는 철리를 심장에 안고 사는 그이기에 늘 정서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는것이였다.하기에 려단은 맡은 공사과제수행에서도,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에서도 언제나 사단적으로 첫손가락에 꼽히였다.

이렇듯 혁명실천과 문화정서생활은 하나로 잇닿아있는것이다.

내일에 대한 신심에 넘쳐있고 자체의 힘으로 시련을 이기는 법을 배운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정서는 언제나 생활의 길동무이다.

한 우표수집가의 생활이 그에 대한 좋은 실례로 된다.

우표애호가인 보통강구역 류경2동에서 사는 안준옥여성은 우표수집활동이야말로 생활에 기쁨과 정서를 안겨주는 고상한 일이라고 말하고있다.그의 경험에 의하면 사회생활도 하고 가정도 돌보느라 바쁘던 때에도 저녁마다 우표첩을 펼치고 우표를 감상하느라면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가셔진다고 한다.

그에게는 우표전시회에 참가하여 받은 메달과 상장들도 많았다.지금은 그의 딸이 어머니와 함께 우표수집을 하는데 모녀가 최근 몇해동안 만든 우표첩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안준옥여성은 올해 15살 잡히는 딸이 무척 다정다감하다는 평가를 받군 하는데 아마도 우표수집의 덕인것 같다고, 우표수집을 하면서부터 생활을 정서적으로, 아름답게 꾸려나가려고 노력하는것이 눈에 띄게 알린다고 말하였다.

정서생활은 이렇게 새 세대들의 성장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것이다.일이 바쁘다고 하여 정서생활을 소홀히 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메마른 인간이 되고만다.

중구역 오탄동 김혜영동무의 가정에서는 일요일마다 다양한 정서생활을 하고있다.그의 가정에서는 이날이면 주간 자식들의 학습과 생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독서일지와 일기장도 펼쳐보며 자식들의 성장에 대해 파악하고있다.또한 읽은책소감발표도 하게 하고 자식들과 함께 어항의 물도 갈아주며 화분에 심은 꽃나무도 가꾸군 한다.

일요일이야말로 정서생활에 좋은 하루라며 김혜영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일요일의 하루를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속에서 다양한 정서생활로 보내고나면 쌓였던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휴식의 하루를 정서짙은 생활로 보낸 이들이 일터에 가면 또 얼마나 밝은 모습으로 성수가 나서 일손을 잡을것인가.

이렇듯 정서는 사람들이 가정과 사회에 대한 애착을 안고 더 많은 일을 하게 하는것이다.

풍만한 정서가 차넘치는 우리 생활!

메마른 땅에서 아름다운 꽃이나 알찬 열매를 바랄수 없는것처럼 정서와 랑만이 없는 생활은 벌써 그자체가 진정한 인간의 생활이 아니며 그런 생활에서는 삶의 기쁨과 보람은 물론 혁명열과 투쟁열, 앞날에 대한 희망도 기대할수 없다.

엄혹한 추위와 굶주림속에서도 유격대춤을 추고 혁명가요를 창작한 항일투사들, 포연속에서도 화선악기를 만들고 공연무대를 펼친 전화의 용사들의 후손들인 우리들에게 비관과 실망은 아무런 인연도 없다.

누구나 풍만한 정서와 랑만으로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해나갈 때 우리 식 사회주의는 더욱 활력있게 전진하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그 은정 못 잊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위대한 영도자이시였을뿐아니라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시였으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습니다.》

내가 개천군 룡진협동농장(당시) 관리위원장으로 임명받고 떠날 준비를 하고있던 주체63(1974)년 5월 6일이였다.그날 개천군 보부협동농장(당시)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나를 불러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뵈옵게 된다는 기쁨과 감격으로 가슴들먹이는 나의 눈앞에는 한해전의 일이 감회깊이 돌이켜졌다.

주체62(1973)년 1월 5일 보부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농사일을 의논하는 자리에 농장관리일군들과 작업반장들, 분조장들과 함께 당시 애어린 분조장이였던 나도 참가하였다.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이름과 나이를 손수 수첩에 적으시며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하라고 고무해주시였다.

내가 지난 일을 생각하며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그새 앓지 않았는가 다정히 물어주시며 룡진협동농장 관리위원장으로 가서 일을 잘해보라고 하시면서 농장의 경지면적은 얼마나 되며 뜨락또르는 몇대인가고 물으시였다.

내가 올리는 말씀을 들으시며 무엇인가 계산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수행성원들을 둘러보시며 이 동무를 시집보내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고, 옛날부터 딸자식들을 시집보낼 때 부모들은 그 무엇인가 해보내는데 이 동무에게 뜨락또르를 주자고 교시하시였다.

나는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에 충성으로 보답할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그런데 정작 일에 달라붙으니 무엇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안타까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러던 6월 하순 내가 룡진리에 온지 두달도 채 못되던 때 어버이수령님께서 농장에 찾아오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생소한 곳에서 많은 일감을 놓고 고심하는 나의 심정을 헤아려보신듯 농사형편과 사업에 대하여 세세히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랜 시간 당면하게 해야 할 농사일들에 대하여 실례를 들어 가르쳐주신 후 이다음에 다시한번 오겠다고 하시며 농장을 떠나시였다.

그해 10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약속대로 우리 농장을 찾아주시였다.

제5작업반 탈곡장에 들리시여 농사를 잘 지었다고 치하해주신 그이께서는 이날 저녁식사도 뒤로 미루시고 다음해에 강냉이영양단지를 많이 하고 평당 포기수를 잘 보장할데 대하여, 벼농사를 잘하기 위하여 좋은 벼종자를 심고 랭습지를 개간하며 논의 물온도를 잘 보장할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이 떠나셔야 할 시간이 지났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처녀관리위원장을 도와주지 않고 누가 도와주겠는가고 하시면서 나에게 다음해농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들과 뜨락또르와 자동차의 이용률을 높이고 길을 포장하며 작업반마다 창자를 지을데 대한 문제 등 농장의 관리운영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 우리 농장에 거룩한 영도자욱을 새기시였다.

자애로운 어버이의 다심한 손길아래 농사일에서 신입생이나 다름없던 내가 로력영웅으로, 한개 시의 농사를 책임진 일군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은 저를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스승이시고 친어버이이시다.

나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인 농업전선을 지켜선 일군답게 농사작전과 지휘를 혁신적으로 전개하여 올해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겠다.

인류가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신 불멸의 업적

뜻깊은 태양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 인민은 물론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군 한다.세상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계자주화위업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중에서 가장 큰 업적,전인류에게 안겨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은 바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이라고 한결같이 칭송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류사상사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혁명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시였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인민대중은 오랜 세월 무지와 몽매, 착취와 억압의 쇠사슬에 얽매여 버림받아왔다.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지름을 썼건만 자기의 존재가치에 대해 알수 없었던 탓에 너무나도 오래동안 자주성을 유린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노예사회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착취사회에서 인민대중은 소나 말보다도 못한 운명을 강요당하였다.동서방에 관계없이 모든 고대국가에서 노예는 눅거리상품이였다.주인에게 조금이라도 반항한 노예는 귀나 혀를 자르고 사지를 찢어죽이는 형벌을 가하였다.하기에 고대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말하는 도구》라고 평하였다.봉건사회는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도 인민대중의 운명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그러한 인간,인민대중에게 주체사상을 안겨주시여 자기의 존재가치에 대하여,자기가 지닌 무궁무진한 힘에 대하여 똑똑히 알도록 해주시고 시대와 역사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신분이 바로 우리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다.

주체79(1990)년 11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나라를 방문한 네팔기자협회 위원장이 제기한 질문에 대답을 주신적이 있다.

그때 네팔기자협회 위원장은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이 오늘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있으며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진영과 반공산주의진영에 다같이 커다란 영향을 주고있다고 하면서 이 위대한 사상의 밑바탕에 어떠한 고무적인 요소들이 있으며 이 사상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있다고 생각하시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사상은 한마디로 말하여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이라고,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원리에 기초하여 인간의 운명개척의 옳바른 길을 밝혀준다고 교시하시였다.그러시면서 그 어떤 지배와 구속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살려는것은 사회적인간의 본성적요구이라는것,세계의 주인으로서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가려는것은 모든 인민들의 공통된 지향이며 온갖 지배와 예속을 청산하고 인민대중이 진정한 주인으로 되는 자주적인 새 세계를 건설하는것이 바로 현시대의 요구이라는것,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할수 있는 힘은 인민대중자신에게 있다는것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정녕 그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람중심의 세계관을 주는 주체사상을 인류에게 안겨주심으로써 전인류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똑바로 알고 혁명과 건설에 떨쳐나서도록 해주시였다.그리고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매개 나라의 혁명과 건설,온 세계의 자주화위업실현에서 나서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에 완벽한 해답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국가로 건설하고 강화발전시키심으로써 주체사상이 얼마나 위대하고 우월한가를 인류에게 산 현실로 보여주시였다.

하기에 전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부리사장이며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티.비.무케르지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조선이 세계에서 밝은 빛으로 솟아오르게 된것은 주체사상이 있었기때문이다.조선은 주체사상이 구현된 생동한 모범이며 조선의 빛은 주체사상의 빛발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를 구현하시여 조선을 주체의 나라로 전변시키시였다.조선혁명의 빛나는 로정과 김일성주석의 존함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주체사상이 철저히 구현되고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제눈으로 똑바로 보기 위하여 세계 수많은 나라 정부수반들과 정당지도자들,사회학자들과 기자들 등 각계층 인사들이 우리 나라로 끊임없이 찾아왔다.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인사들은 그이께 주체사상의 진수는 무엇인가,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자기 나라 혁명과 건설을 다그치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등 알고싶은 문제들을 무랍없이 제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마다 태양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그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명확한 대답을 주시였다.

에꽈도르 여성국회의원이며 과야낄종합대학 부총장,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였던 알바 챠베스는 가족과 함께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1시간 40분》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주석께서는 시종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우리들의 건강이며 가정생활에 대하여 묻기도 하시고 앉은 자세가 불편하겠다고 다심한 어버이의 심정으로 보살펴주기도 하시였다.

저의 가족은 한없이 너그러우시고 소탈하신 그이의 인품에 이끌리여 자신들도 모르게 어려움을 다 잊고 그이께 평시에 생각하고있던바를 죄다 말씀올리고 외람된 청을 드리기도 하였다.

주석께서는 우리들의 행동을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하나 해설해주시는것이였다.주석께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이기때문에 하늘에서 별을 따오자고 결심하면 별을 따올수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시고 조선의 사회주의사회는 인민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높이 내세우는 사회라고,그때문에 조선인민은 자기의 사회주의를 더없이 좋아한다고 절절히 말씀하기도 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주체의 홰불로 인류에게 리상사회에로 가는 길을 밝혀주신 만민의 태양이시다.

오늘도 진보적인류는 주체사상을 시대의 지도사상으로 삼고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고있으며 사회주의위업, 자주위업의 승리를 위한 투쟁을 세계적범위에서 힘차게 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