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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28일 일요일 17:58:26

[글] 1960.4.19, 4.19항쟁

1960.4.19, 4.19항쟁


1960.4.19, 오늘은 4.19항쟁이 일어난 날이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한 경남 마산의 시위대중 한사람인 김주열학생이 실종 한달만에 최류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위에 떠오른 사건이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서울에서는 4.18에 고려대학생들이 시가행진을 하고 귀가중 폭력배들에 피습을 당했다. 마침내 4.19 경무대앞에 대학생·중고등학생 2만여명이 집결해 재선거와 이승만하야를 요구했다. 이에 오후3시 계엄령이 선포되고 경찰의 사격으로 사망자만 21명이 발생했다. 결국 4.26 이승만대통령은 하야성명을 내고 하와이로 도피했고 부통령당선자 이기붕의 일가족은 사퇴후 동반자살했다.

4.19가 혁명이 아니라 항쟁인 이유는 4.19로 이승만정권의 퇴진만을 이뤄냈을 뿐 근본적으로 남코리아의 사회를 변혁하지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장면정권이 잠시 과도기를 맡다가 바로 5.16군사쿠데타로 미국의 또다른 대리정권이 들어선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사회과학적으로 혁명이란 개념은 민족적 차별을 해소하는 민족해방혁명이나 계급적 차별을 해소하는 사회주의혁명에 적용해야 한다. 남코리아에서 미국의 식민지배를 끝장내고 자주적이고 민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혁명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은 북에서 2번 일어났을 뿐 남에선 아직 1번도 일어나지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9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체계에 심대한 파열구를 내며 그 대리정권의 폭압과 학정에 맞서 남코리아민중의 불굴의 투쟁의지를 과시한 역사적인 투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4.19항쟁은 남코리아의 반파쇼반미투쟁, 조국통일투쟁에서 거둔 커다란 승리다. 4.19항쟁의 승리이후 청년학생운동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국통일투쟁을 힘차게 전개했다. 비록 4.19항쟁이 5.16군사쿠데타로 파쇼역풍을 맞았지만 이 투쟁을 통해 수많은 반파쇼투쟁·변혁운동의 핵심이 자라나 이후 남코리아의 민주주의의 전진과 변혁적 성과를 이룩하는데서 큰 결정적 역할을 했다. 

4.19이후 5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코리아에는 식민지배체계와 파쇼적 잔재가 여전하다. 파쇼적 잔재는 오히려 되살아나 유신파쇼체제로 회귀하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고 있다. 4.19항쟁을 총칼로 짓밟은 군사파시스트 박정희의 딸이 천문학적인 관권부정선거로 당선돼 전교조·공무원노조를 사실상 불법화하고 황당한 <내란음모>사건에 이어 통합진보당마저 강제해산시키려 하고 있으며 <유우성·유가려>사건처럼 고문·위조·날조로 <간첩>사건을 만들려하고 있다. 3.15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부정선거를 하고, 이승만·박정희정권처럼 파쇼통치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하려하는 박근혜정권이 제2의4.19항쟁으로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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