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점자본주의·제국주의사회 러시아에서 레닌은 1국적사회주의혁명승리론을 설파하며 러시아혁명의 지도세력인 볼셰비키와 혁명의 대중지반인 노동자·빈농·병사소비에트를 조직했다. 소비에트는 1917.10 러시아혁명승리후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정권기관으로 전화했다. 1905.10 전러시아적인 정치총파업이 발생했을때 파업지도기구인 노동자대표소비에트가 창립됐다. 12.18 정치총파업단행과 동시에 무장투쟁으로의 전환을 결의한 모스크바소비에트를 시작으로 소비에트는 무장투쟁지도기구로 발전했다. 소비에트의 힘으로 1917.2 2월혁명에 승리했으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내 기회주의세력인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원들이 부르주아정당인 입헌민주당·10월당과 결탁하며 민중을 배신했다. 결국 부르주아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2중권력>정세가 형성됐다. 레닌은 1917.4 연설에서 소비에트공화국을 가장 혁명적인 정권형태로 제시하고 <모든권력을소비에트로!>구호를 들었다. 1917.4 임시정부는 볼셰비키를 집중탄압하는 동시에 케렌스키를 임시정부수반으로 내세웠다. 온갖 탄압·개량화책동에도 혁명의 분위기가 계속 고조되자 제국주의세력은 군사쿠데타정권을 수립하려 했다. 레닌의 지도를 받은 소비에트는 임시정부반대와 소비에트정권수립을 위한 투쟁기관으로 발전했다. 1917.10 임시정부의 공격에 반격하며 혁명군대는 빠르게 도시의 주요거점을 장악했고 마침내 10.25 아침에는 임시정부가 붕괴됐다.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주권이 뻬쩨르부르크노동자·병사대의원소비에트-군사혁명위원회에 있음을 선포하고 <평화에관한법령>·<토지에관한법령>을 채택했다. 소비에트정권은 정치적으로 인민위원회를 설립, 군대통수권을 장악하고 노농붉은군대창설법령등을 채택해 정권을 공고화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주토지소유제와 신분제를 청산하고 남녀평등권법령·정교분리법령등을 시행했다. 1918.1.13 3차전러시아소비에트대회와 3차전러시아농민대의원대회가 통합되며 전국적으로 노동자·농민·병사대의원소비에트통합이 촉진됐다. 이대회에서 러시아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창건됐다. 이후 스탈린의 지도하에 1936 근로자대의원소비에트로 개편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