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민주주의
1. 헌법의 역할
인류최초의 문명인 고대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바빌로니아왕국은 특히 함무라비왕때 법전을 정비해서 중앙집권을 구축해 낼 수 있었다. 바빌로니아 왕국은 이미 이전에 존재하였던 수메르왕국과 아카드왕국의 법률을 토대로 제정한 함무라비법전을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주요도시의 신전입구에 법규정을 새긴 2m가 넘는 돌기둥 비석에 토지세, 재산, 결혼, 상속뿐 아니라 28개의 형벌조문을 쐐기문자로 기록해 세움으로써 법으로 각 도시들을 묶어 통일왕조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당시 함무라비왕은 비문에 다음과 같은 법의 정신을 기술해 놓았다.
“재판을 받으려는 자는 이 비문을 읽으라. 그대들에게 법을 명백히 가르치고 그대들의 권리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이법을 통해 강자가 약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악을 뿌리 뽑겠노라”
이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법학자의 눈으로 보면‘ 기본권’과‘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조세, 재산, 혼인 등은 사법상의 권리와 밀접하고, 형벌조문은 당연히 형사법상의 권리가 관련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기본권과 이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이 비문을 통해 드러난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원천적인 헌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헌법의 정신은 결국 인류의 최초문명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국가는 헌법을 가지고 있다. 이는 통치규범으로서 헌법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기본권 보장’과 ‘권력분립’을 규정하지 아니한 헌법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헌법이라고 인정받기는 어렵다. 여기서 사실상 헌법의 역할이 나온다. 바로 ‘기본권 보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본권 보장’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권력분립’인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의 집중은 항상 국민의 기본권훼손을 유발하였기 때문에 권력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국민의 기본권보장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권력을 나눌 것인가에 대해서 로크의 2권분립이 이른바 내각제의 형태로, 몽테스키외의 3권(입법, 사법, 행정)분립이 대통령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상세히 규정한 것이 바로 헌법이다. 그리고 이 헌법으로 한 국가가 운영된다. 국가운영에 있어서 정치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정치의 비중이 크면 클수록 규범적으로 주도되고 규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만능의 풍토가 조성되고 결국 ‘힘’의 논리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헌법은 이러한 ‘힘’의 폭주를 막기 위해 ‘권력분립’을 규정해 놓았다. 여기에 바로 헌법학의 과제가 있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이 정치의 시녀가 되는 것을 막고, 정치가 국민적 합의의 바탕을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헌법학의 과제이다.
2. 법치주의
법치주의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가권력이 악용되거나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립된 헌법상의 원칙이다. 즉 국가작용 중에서도 특히 국민과 접촉이 많은 행정작용이 항상 입법부에서 제정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공정하게 이루어 져야 함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치주의원리가 법률의 형식만을 강조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내지 ‘법률만능주의’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법률의 형식을 취했다는 이유로 국가의 공권력이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면, ‘악법도 법이다’라는 식의 실정법만능의 풍토를 낳게 하고 이것은 결국 ‘법의 독재’로 이어진다. 또한 이러한 ‘법의 독재’는 ‘힘의 독재’와 ‘사람의 독재’로 발전한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수많은 역사를 통해서 이미 경험하여 왔다.
나치는 6년간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하였다. 이는 전부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 졌다. 심지어 자국민이 당시 외국의 방송을 들었다는 이유로 처형하였다. 물론 법을 근거로 한 것이다. 특히 ‘프라이슬러’는 야심만은 법학도로 나치의 특별재판소장으로 임명되자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추적하고 응징하였다. 그러면서 민족공동체에 해가되는 자라고 판단되는 모든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런 그를 두고 ‘전체 독일 사법부에서 가장 음울하고 야만적이며 잔혹한 재판관’이라고 평한다. 모두 형식적 법치주의의 한계이다. 이제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법치주의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실현하는 것을 그 실질적인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실질적 법치주의’가 오늘날 법치주의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이런 실질적 법치주의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모든 국가작용의 한계로써 ‘과잉금지원칙’을 두었다. 즉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하고, 합당한 사유와 합리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한 방법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제한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우리 헌법 제37조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 독일은 패망후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참혹성을 확인하고 반성적인 차원에서 독일기본법 제1조에 절대 침해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발생할 수도 있는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주를 막기 위해 법률의 내용을 심사하고 폐기할 수 있는 연방헌법재판소를 설립하였다. 결국 실질적 법치주의의 또다른 단면인 것이다. 법치주의 원칙도 결국 ‘기본권 보장’을 위한 헌법상의 원칙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3. 민주주의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하는가? 인간은 존엄한 존재니까? 물론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열한 것이 바로 기본권들이다. 하지만 헌법이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란 한자그대로 풀이하면 백성이 주인이라는 사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각각의 국민이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과 관련된 일들을 직접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만약에 내가 나와 관련된 일들을 판단할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다면 인간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가치가 있을까? 민주주의는 결국 우리가 인간인 이상 반드시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철학적인 담론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면 이는 사실상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인간인 이상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인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의 또다른 명칭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 원칙이 얼마나 구현되기 힘든지를 경험해 왔다.
불의의 힘에 의해 내가 나와 관련된 소소한 일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판단할 수 없었던 그 암흑의 시절이 일제식민지부터 군사독재를 넘어 지금까지도 그 잔재가 대한민국에 수십 년간 이어져 왔었다. 그 중심선상에 항상 국가보안법이 서 있었다.
4. 표현의 자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모든 헌법은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 헌법도 국가가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기본권으로서 행복추구권(제10조), 평등권(제11조), 신체의 자유(제12조),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 직업선택의 자유(제15조), 주거의 자유(제16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 통신의 자유(제18조), 양심 및 종교의 자유(제19조, 제20조), 언론출판 및 집회결사의 자유(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 등 국민의 기본적 권리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 권리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나, 부득이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못 하도록 되어 있다(헌법 제37조 제2항).
여건상 직접민주주의는 구현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대표를 선출해서 우리의 일을 결정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국가의 통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인 자유와 평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민주주의의 핵심을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참여’의 방법으로 내가 직접 대표자로 나서거나 아니면 적어도 다른 대표자를 뽑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사상을 들어보고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민주주의사회는 모든 의견과 사상의 허용 및 공개토론을 통한 의견수렴에 그 존재의의가 있으므로 사회의 일반적인 합의에 반대하는 의견까지도 자유롭게 개진되어야 한다. 그래서 특히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서 언론출판 및 집회결사의 자유와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거론된다.
고대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혼란스러운 당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사상체계였던 모든 스승이라는 의미의 ‘제자’와 수많은 학파를 의미하는 ‘백가’가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덕치주의를 강조하는 유가사상, 법치주의를 강조하던 법가사상, 무위자연을 주장하였던 도가사상 그리고 겸애설을 강조하였던 묵가사상이 그것이다. 특히 중국최초의 통일왕조를 이끌어 냈던 진의 시황제는 그중에서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의 통일과 더불어 국가의 체제를 정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학문을 통한 정치비판을 막기 위해 진나라기록 이외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유학자 460여명을 생매장하는 ‘분서갱유’를 단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혹한 형벌 법조항으로 백성들의 언로를 막고 강압적으로 통치해 나갔다. 이러한 가혹한 사상탄압과 가혹한 형벌위주의 정책은 당연히 진의 멸망을 앞당기고 말았다.
진시황의 사안에서 확인하였듯이 국가의 권력은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 이른바 합법화된 폭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은 폭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는 끊임없는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최선의 결론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다수 국민의 의사를 모으면 최악을 피할 수 있다. 다수의 의사를 모으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5. 국가보안법
이미 탄생부터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던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에 대해서 논의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단지 민주주의와 관련되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논의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현행 국가보안법 제1조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이 법의 목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는‘ 목적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하며 이를 확대하거나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보안법의 적용이 위의 목적에 부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 인권실태조사보고서로 결론을 도출한 바가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당국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사례가 너무 많았을 뿐 아니라 특히 권위주의 정부시절에는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안보를 위해 활용되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당시 이들은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고무 등)를 통해 사상, 학문, 예술 및 표현의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하였다. 문제가 된 제7조 제1항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5조는‘ 제1항 내지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TV에서 북코리아와 일본이 축구경기를 할 때 같은 민족이라고 북코리아를 응원한다면, 북코리아축구선수들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의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에 해당하고, 축구를 하는 것은 이들의 활동에 해당하므로 이들을 응원한다는 것은 찬양고무죄에 해당해 최대7년까지 징역에 살아야만 한다. 이것이 그냥 코미디로만 들리는가? 불행히도 이 이야기는 내 아버지가 실제로 중학교교사로 근무하면서 당시 학생들에게 축구경기에서 북코리아를 응원한다는 지나가는 말 한마디로 수사기관에 끌려가면서 조사받았던 실화이다. 다행히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일로 아버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큰 상처를 입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제5조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북코리아의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출판하거나 소지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처벌받게 된다. 너무나 슬픈 일은 이 삼류저질코미디 같은 현실이 분명 대한민국에서는 존재하였고 불행히도 그 현실이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80년부터 1987년까지의 제5공화국시절 국가보안법위반으로 2041명이 입건되었다. 이중에서 제7조가 적용된 인원은 무려 1882명으로 전체92.2%에 해당되었다. 위 조항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자 하는 세력들에게 얼마나 유용하였는지를 단적으로 확인해 주는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시대가 바뀌면서 국가보안법의 폐해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폐지론이 힘을 얻어가는 와중에 1989년 남코리아에 헌법재판소가 설립되었다. 드디어 실질적 법치주의의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이 논의되었다. 당시의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법문의 다의성과 그 적용범위의 광범성’ 때문에‘ 국가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줄 구체적인 위험이 없는 경우까지도 형사처벌이 확대 될 위헌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 제7조제1항 및 제5항은 각 그 소정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된다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한정합헌결정’을 내렸다. 전면적 위헌결정이 아니라 아쉬운 감이 없진 않지만 나름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확인하고 이를 제한하려는 헌재의 의도는 평가하고 싶다.
이러한 헌재의 한정합헌결정취지에 맞게 국가보안법은 1991년 개정되었다. 주요내용은 기존의 법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요건이 추가되었다. 국가보안법의 존치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법개정을 통해 국가보안법의 확대해석의 위험성을 제거되었으므로 이 법은 더 이상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과거 권위주의군사정부와는 달리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였지 법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논리였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면 한번 1991년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문민정부와 최초의 정권교체가 있었던 국민의정부시절 10년간(1993년 2월25일부터 2003년 2월24일까지) 국가보안법관련 전체 구속자수는 무려 3047명으로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들이 주장대로라면 법조문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정권도 바뀌었는데 왜 법위반구속자수는 줄지 않는 것인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만 국가보안법남용의 위험성이 제거되었고 또 법을 적용하는 사람도 바뀌었기 때문에 숫자가 줄어야 논리적인 것이 아닌가? 아니면 엄격하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자수가 줄지 않을 정도로 국가반역자가 늘었단 말인가? 재미있게 국민의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북코리아와의 관계가 완화된 시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자수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다면 결국 국가보안법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닌가?
재미있게도 전체 구속자 3047명중에서 제7조 관련 구속자는 2762명으로 전체 90.6%에 이른다. 모든 것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전과 유사한 통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정도 되면 국가보안법자체의 문제성이 고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국제사회가 국가보안법 제7조를 여러 차례에 걸쳐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9조 표현의 자유에 위반된다고 판정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6. 구체적 사안
이런 상황에서 1991년 법개정이후의 국가보안법적용사안 몇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6.1. 1998년 4월 한양대 사학과 학생이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에『 Race and Class(민족과계급)』(캘리니코스),『 광란의 자본주의』(크리스 하먼)라는 대학교재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요약하여 게시한 일이 있었다. 이 책들은 당시에 합법적으로 출판되었을 뿐만아니라 시내유명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었고 국회도서관은 물론 국립중앙도서관과 각대학도서관에서 얼마든지 열람이 가능하도록 비치되어 있는 책들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 배포혐의로 구속하였다. 만일 이게 죄가 된다면 도대체 이런 금서를 볼 수 있도록 한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은 가중처벌 받아야 하는가?
6.2. 1994년 일명‘ 법타스님사건’으로 스님은 통일원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협회’ 소속회원이었다. 그는 이 단체가 발간하는 회보인『 하나로』라는 회지에 6.25전쟁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소개하기 위해『 김일성저작선집』의 일부를 게재했다. 이 일로 스님은 역시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 제7조제5항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코리아의 입장도 소개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된다. 북코리아를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의 입장도 알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그저 궁금할 뿐이다.
6.3. 1998년에는 이른바‘ 대동출판사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출판사발행인은 북코리아여성의 생활상이 담긴 자료집인『 북한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등 총11종의 책을 발행해서 판매하였다. 이 책들은 현대사연구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로 간주되어 구속된 사건이다. 막말로 우리는 북코리아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하면 처벌받는 것이다.
6.4. 1996년‘ 노래패천리마사건’으로 경기남부총학생회연합산하에는 ‘천리마’라는 노래모임이 있었는데 이들이 부른 노래 가운데 북코리아 가요 일부를 개사해서 불렀다는 이유로 학생 10여명이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혐의로 구속된 바 있었다. 노래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는 교훈이 여기에서 나온다.
6.5. 1994년‘ 태백산맥사건’으로 작가 조정래가 쓴『 태백산맥』은 6.25 전쟁당시를 배경으로 저술한 역사소설로 국내에서 100만부이상이 판매된 명소설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검찰은 역시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 제7조5항의 이적표현물이라는 이유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은 100만명의 독자는 이적표현물 소지나 취득죄로 처벌되어야 하는가?
6.6. 그밖에 이러한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크게 박해를 받은 분들은 다름 아닌 교수님들이었다.
1994년 경상대학교 장상황교수는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교양교재를 집필하였다가 내용이 좌경 급진적이라며 국가보안법 제7조의 이적표현물이라며 불구속 기소된 바 있었다. 또한 1997년에는 이장희교수가 초등학생용 통일교육교재로서『 나는야 통일1세대』를 저술하였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었다. 같은 1997년 광주대학교 박지동 교수도『 진실인식과 논술방법』이라는 책에서 유물론에 의거해 남코리아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까지 된 사건도 있었다.
6.7. 그 외에도 제주도4.3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안도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 다큐영화는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였다. 이밖에도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있어서 이 지면에서는 전부 나열하기는 힘들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건들은 벌써 10년들이 지난 사건들인데 설마 지금도 이와 같은 형태가 나타나겠느냐고 말이다. 역시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말이다. 그럼 이 사건을 한번 보자. 바로 2012년 2월에 국가정보원에서 수사가 종결된 사건이다.
6.8. 남코리아에는 통일전문잡지로 <민족21>이라는 잡지가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이 잡지의 편집장과 편집국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이 북코리아와 일본을 오가며 북한 정치공작원과 접촉하며 밀명을 받아 간첩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집을 압수수색 당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유례가 없는 언론사 사무실도 압수수색을 당하였다. 일명 ‘왕재산’사건이다. 그렇게 이들은 무려 7달에 걸쳐 헌법상 보장된 ‘피의자로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국정원에 의해 보장받지 못한 채 수사를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국정원은 이들을 불법적으로 도청 및 감청과 미행을 하고 이메일과 통화기록 등을 샅샅이 조사하였으나 결국 간첩활동에 대한 실체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자 슬쩍 이들이 그동안 강연하였던 내용과 이 언론사에 출판한『 행복한 통일 이야기』라는 책의 문장을 트집 잡아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옮겨 탔다. 참 어떻게 이리도 과거와 다른바가 없는가? 이런 똑같은 패턴이 과거 군사정부시절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래도 시대가 바뀌었다고 강변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또 다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위 사안을 보더라도 국가보안법은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법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는 이른바 지식인들의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이 영화든, 소설이든, 논문이든 심지어 초등학교교재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지식인들이 뭔가를 비판하면 바로 국가보안법 제7조가 작동한다. 누구는 이를 두고 공안기관의 ‘국보법놀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지식인들에게 침묵을 강요할까?
노암 촘스키는 1967년 자신의 저서인『지식인의 책무』에서‘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말대로 ‘진리는 때로는 지식의 형태’로 나타난다.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만일 그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아마도 그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지식인들의 비판은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7. 위헌성 검토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헌법적 측면에서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가 지닌 위헌성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현대 민주적인 헌법국가에서 합리적인 기본권제한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불가피한 경우에만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기본권 제한의 기준이나 방법 및 한계를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기본권이 국가권력에 의해 함부로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본권의 한계를 처음부터 헌법의 개별적인 기본권 조항에서 명시함으로써 입법자의 재량의 여지를 줄이거나, 단지 법률에 의해서만 기본권제한이 가능하게 한 것 등이 그것이다.
7.1. 헌법적 한계
헌법에서 개별적인 기본권의 한계를 명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기본권의 헌법적 한계’라고 부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위의 국가보안법 제7조와 관련되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그것이다. 먼저 우리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1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제3항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4항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특히 제4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언론·출판의 헌법적인 한계로는 바로 타인의 명예나 권리 그리고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가 명시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위의 사유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즉 헌법제정권자가 기본권의 한계를 처음부터 헌법에서 정해 놓은 것은 물론 기본권의 남용 내지 악용의 소지를 줄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주된 기능은 역시 입법자에 대한 방어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입법자가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하고자 하는 경우에 이미 헌법제정권자가 명시한 기본권의 한계 내에서, 위의 사안에서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그리고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의 범위 내에서 이 기본권을 법률로 구체화 하고 현실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를 뛰어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제7조제5항은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른바 공안기관이 판단해서 반국가 단체와 관련한 모든 출판이나 언론보도와 그와 관련한 모든 행위는 처벌하겠다는 발상이다. 도대체 언론·출판의 자유의 헌법상의 한계로 명시한 ‘타인의 명예나 권리 그리고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가 이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7.2. 법률에 의한 기본권제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가장 원칙적인 방법은 필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 입법 자가 정한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득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못 하도록 되어 있다(헌법 제37조제2항). 이 이야기는 법률에 근거하기만 하면 무차별적으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의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7.2.1. 목적상의 한계
기본권을 법률로만 제한하고자 한 헌법제정권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본권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헌법에서 보호되고 있는 기타의 법익, 기본원칙, 제도 등을 조화시키고자 함이다.
물론 여기에 ‘국가의 안전보장’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들의 주된 논거가 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정권의 안전보장’은 엄격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졌다시피 국가보안법은 일제식민지치하에서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안유지법’에서 시작된 법이다. 처음부터 그 목적자체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법에서 출발하였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이후에는 ‘국가 안보’를 내세운 군사독재정권의 ‘정권안보’용 도구로 전락하였다. 이는 분명한 역사적인 객관적 사실이다. 또한 심지어 2012년 지금 현재에도 위의 이른바 ‘왕재산사건’에서 보았듯이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탄압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국가보안법은 ‘국가안보’를 위해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법이라는 논거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이 나타난다. 결국 기본권제한법률이 그 목적상의 한계를 이탈한 것이다.
7.2.2. 내용상의 한계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그 내용에서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다시말하면 기본권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와 정면으로 침해하는 기본권은 아무리 법률에 의한다고 해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헌법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특히 인간의 내면적인 정신세계를 보호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양심의 자유'(제19조)와 ‘종교의 자유'(제20조)이다. 즉 ‘나만의 세계’를 간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신적인 강제로부터 해방’을 인간의 존엄성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우리 헌법은 보고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과연 이러한 ‘나만의 세계’를 간직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정신적인 강제로부터 해방’을 인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커다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이법에 의하면 특정된 사상과 생각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기범이나 강간죄와 같은 파렴치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국가의 몇명의 권력자나 공안기관과 사상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특정된 폭동이나 폭력행위를 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생각대로 책을 보고, 쓰고 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이와 같은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분명 심각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임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7.2.3. 방법상의 한계
기본권제한법률을 제정하려는 입법자는 기본권제한을 통해서 추구하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야 하고(적합성의 원칙), 기본권 침해가 최소에 그치도록 해야 하며(최소침해원칙), 기본권제한을 통해 얻는 공공의 이익과 비교해서 더 큰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균형의 원칙)만 추진할 수 있다. 이를 전체적으로 과잉금지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중 하나의 원칙만 위배되면 결국 과잉금지원칙의 위반이고 이는 곧 헌법위반이라는 의미이다.
먼저 과연 ‘국가의 안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굳이 국가보안법이 요구되는가에 의문이 없지 않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고서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일반 형법조문에 의해서도 충분히 ‘국가안보’라는 법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벌들은 기타 다른 처벌규정과 비교해 보았을 경우 지나치게 강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안보라는 미명하게 국가보안법을 유지해서 얻는 이익과 이로 인해 침해되는 국민의 기본권 사이에 과연 균형성이 확보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예에서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이 어렵지 않게 도출된다. 결국 과잉금지위반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7.3. 죄형법정주의위반
지나친 국가형벌권의 남용을 막기 위해 죄형법정주의가 나왔다.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헌법상의 원칙이다. 물론 따라서 우리 헌법도 제12조와 제13조에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 죄형법정주의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명확성원칙’이다. 즉 무엇이 처벌대상이 되는 지 명확하게 법조문에 명시해서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고, 또한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함부로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이 조문을 해석해 형벌로 국민들을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하에 국가보안법 제7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7조 제1항의 찬양·고무를 살펴보자. 이 조항은 이미 1989년 헌법재판소에서‘ 그 문헌상 위헌이지만 한정적 해석하에 합헌’이라는 한정합헌결정이 선고된 바 있고 그 취지에 따라 1991년 법에서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행 국보법조항 중 가장 많이 비난받고 있는 조항이다 찬양·고무·동조의 개념은 여전히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7.3.1. 먼저 긍정적 평가이기만 하면 모두 ‘찬양’이고 동일한 내용의 주장이 확인만 되면 모두 ‘동조’인가? 아니면 적극적 평가와 가세의사가 필요한가?, 행위의 상대는 누구여야 하는가?, ‘찬양·고무·동조’의 의사는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범위까지 표현되어야 하는가? 등 끝없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기타의 방법으로’이라는 구절은 본조의 불명확성과 애매모호성을 더욱 증폭시킨다고 볼 수 있다.
7.3.2. 본조항에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 라고 할 경우‘ 이롭게 하는 것’의 의미 역시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에 유리한 행위가 부분적으로 북한에 이롭게 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찬양·고무·동조의 대상자인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등의 활동에 아무런 한계나 제한이 설정되지 아니하여 문제이다. 예를 들어 ‘구성원’은 어느 범위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문제가 될 수 있다. 반국가단체의 조직과 임무 수행에 관련 된 자는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북코리아의 일반주민들도 모두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가? ‘활동’은 어느 범위까지 포섭하는 개념인가도 문제가 된다.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활동 불법적 내용을 담고 있지 않는 활동이나 무의식적 행위도 ‘찬양, 고무, 동조’의 대상인가?
7.3.3. 결국 본조는 ‘찬양·고무·동조’, ‘구성원’, ‘활동’, ‘기타의 방법’, ‘이롭게 한’ 등 그 의미 내용을 확정하기 어려운 다수의 다의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어 법공동체성원들로부터‘ 법 운영당국의 자의적인 법집행’이 행하여지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7.3.4. 본조의 ‘이적단체 구성죄’는 학생운동단체나 노동운동단체로부터‘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이적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 질서의 혼란을 조성 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 사실을 날조 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은 지나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조항이다.
7.3.5. ‘이적표현물제작’ 등은 문언상‘ 제1항 내지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라고 함으로써 구성요건의 추상성과 광범성, 그로 인한 자의적 적용가능성 등의 위험성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조항이다
7.4. 소결
국가보안법 제7조는 헌법상의 언론·출판·학문·예술과 관련된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 를 위축시킬 염려와 형벌과잉을 초래할 우려가 농후하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요건이 있기는 하나 이 기준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 역시 ‘명백·현존의 위험의 원칙’에 부합되지 아니하여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제7조는 폭력적 행위 여부라는 합리적 기준에 의하여 형사처벌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상·이념에 찬성하는지 여부의 기준에 따라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객관적 구성요건 보다는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범죄의 성립여부가 좌우되게 함으로써 법집행자의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큰 규정이며, 이는 앞에서 살펴본 적용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7조는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약함은 물론 헌법 제37조제2항 소정의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반인권적조항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제7조는 국제사회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9조’ 표현의 자유에 위반된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제7조에 대한 여러차례에 걸친 위헌심판제청 및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위 주관적 구성요건이 추가된 1991.5.31. 개정 전에는 각 그 소정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축소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바 있으나, 위 주관적 구성요건을 추가함으로써 그 뜻이 더욱 명확해졌고 확대해석의 위험이 거의 제거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주관적 목적요건추가의 법개정이후에도 제7조 위반으로 입건되는 남용사례가 조금도 줄지 않고 있고 제7조에 대한 위헌심판 헌법소원도 여전히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8. 마치며
앞에서 이미 잠시 언급한 함무라비법에서 유래된 유명한 원칙이 하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법칙’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법칙은 보복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도 역시 이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 왜 저명한 철학자가 이렇게 무자비한 원칙을 지지하는 지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얼핏 보면 실수로 다른 사람의 눈을 다치게 한 사람도 자신의 눈을 다치게 하는 형벌이 부과되기 때문에 잔인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적어도 다른 사람의 눈을 다치게 하였다면 그 이상의 형벌, 다시 말해 사형이나 노예로 처해져서는 안 된다는 형벌의 상한선을 둔 원칙이 바로 탈리오법칙의 핵심이다. 이를 법적인 용어로 치환하면‘ 책임주의’형벌원칙이라고 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의 범주를 벗어나는 형벌을 부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주의 형벌원칙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당연히 지나친 국가형벌권의 남용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잘못에도 형벌로 쉽게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완전성을 해쳐왔던 과거의 공권력 행사의 반성으로 이와 같은 책임주의 형벌원칙이 도출된 것이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의 적용사안을 보면 그야말로 국가형벌권의 남용의 역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싹을 잘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이로써 민주주의의 실현을 구현하고자 하는데 아직도 이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작지 않음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역시 앞에서 언급한 중국의 진나라가 ‘분서갱유’까지 단행하며 언론·출판·학문·예술의 자유를 막고 가혹한 형벌로 국가를 운영해 나가자 당시의 백성들은 진나라에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후 진말기에 등장한 한의 유방은‘ 첫째, 사람을 살해한자는 사형에 처한다, 둘째, 사람을 상해한자는 엄히 처벌한다, 셋째, 타인의 재물을 도둑질한 자는 옥에 가두고 곤장을 친다’는 ‘약법삼장’을 반포하고 나머지 진나라에서 실행되던 가혹한 형벌조항을 모두 삭제하였다. 이는 곧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으로 이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한은 진나라를 정복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의 한 단면이다. 유태계 이태리화학자이며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나치에 저항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수많은 유태인들이 독가스로 처형되는 와중에 정말 극적으로 생존한 일원중의 한명이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인 인간인가?』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는 악마가 있다. 악마보다 두려운 것은 악마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필자 역시 그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여기 무서운 국가보안법이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보다 무서운 것은 이 법이 지닌 폭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홍선기(프라이부르크대학공법전공박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