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신자유주의
서방의 민주주의모델은 현재 코리아뿐만 아니라 많은 남반구국가들에 있어 서방국가와 그 동맹국들을 판가름하는 항구적 준거이다. 선거는 시민권, 개인의 정치권을 존중하는 것과 함께 ‘민주주의’의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
이러한 보편적 요구는 각각의 문화나 발전수준, 혹은 전략지정학적 수단에 관계없이 세계의 모든 국가를 판단하고 분류한다. 2차세계대전이후 남코리아에 몇십년동안 군사독재가 계속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모든 것을 용인하였다.
이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독재자, 더 일반적으로 오늘날 서방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페르시아만의 군주국과 같다.
우리는 선거민주주의와 인권이 정치적 호기에 따라 선택적 방법으로 이용되는 서양정치의 중대한 모순을 확인할 수 있다. 때때로 이 민주주의는 모든 개입을 정당화하며,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허용되기도 한다. 현실은 인간, 특히 남반구의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무관심을 나타내며, 서양열강은 이들을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서방국가들의 또다른 중대한 모순은 사리사욕을 위해 국제법, UN국제헌장 등 국제관계의 법적 제어를 이용하려는 그들의 의도이다. 서방국가들은 권리에 대해 무관심할뿐더러 당장의 이익을 취하는 방법만을 원하고 있다.
권리를 이용해 그바그보대통령이 집권하는 코트디부아흐(아프리카 상아해안)에 반대하면서도 이스라엘관행에 관련된 것이라면 항상 침묵을 지킨다. 또한 ‘도덕’을 강조하면서도 군사적 힘을 이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체제를 무너뜨린다. 시리아가 그런 경우였다.
서방국가들은 국제적 ‘도덕’을 내세워 편의에 따라 스스로를 도구화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진실성이란 이름으로 그들의 문제점을 숨기고, 구조조정계획이 사회, 경제, 문화적 권리를 강제함으로써 유지되는 후진성의 영향을 외면한다. 또는 오히려 그 활동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억압하며 ‘도덕선생’의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재정위기는 서방의 고질병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호전성은 서방경제가 처한 위급한 상태의 결과이다. 중국과 같은 신생권력들은 세계적으로 서방국가들의 이익에 큰 위협이 되고 있으며, 통일된 코리아 역시 커다란 경쟁국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서방국가들은 현재 획득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써야 하며 새로운 곳을 점령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코리아의 연방제평화통일처럼 서방국가의 위기를 촉발하는 모든 정책을 막아야 한다.
“내일은 너무 늦을 것이다” 서방의 공적·사적 권력은 정치적·군사적 모험에 물러서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하듯 미국의 새로운 전략지정학은 이슬람정치와의 타협을 두둔하고, 시리아 바쓰당과 레바논 헤즈볼라, 이란 등을 제외한 중동지역에 대한 보호를 고려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서방이 북코리아와 타협하거나 남코리아의 민주주의발전을 돕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전략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과 워싱턴은 1948년부터 남코리아에 존재해온 낡은 국가보안법이 유지되어야만 한다고 합의하였다. 이것은 남미를 비롯한 세계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을 통해 미국이 퍼뜨린 ‘국가보아문화’의 산물이다. 미국의 입장은 1988년에 맥나마라가 말한 것과 같다. ‘미국안보’, 즉 세계적으로 그들의 우위를 유지하는 작업은 공산주의자나 아랍민족주의자처럼 미국의 ‘힘의 논리’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억압을 요구한다.
반대자들의 위험이 있는 현실에서 억압체계를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방자본주의의 이익은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유리한 모든 억압적 체제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서방은 남코리아의 정치형법을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와 국제경제질서, 헤게모니의 요구에 맞게 완전히 조정되었다. 즉, 신자유주의경제로부터 그들의 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요구에 맞춘 것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경제는 정치적 자유와 거리가 멀다. 국가보안법은 남코리아 경제, 자유로운 세계화 성장의 경제표본으로 채택된 ‘모델’인 것이다.
서방국가들과 그들의 주요정치권력, 주요매체들이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와 억압정치체제의 결합은 미국과 유럽에서 점점 더 강화된다.
군사독재가 이루어진 몇십년동안, 어떤 신문도 남코리아를 지배하는 사나운 억압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에 의하면 북코리아는 모든 잘못을 정당화했고, 남코리아는 ‘민주주의의 길’에 있었다. 그 예로 1988년 12월, 서울에서 281명의 정치수들이 석방된 것은 매우 크게 다룬 반면 더 중요한 1980년 광주학살은 소극적으로 다루었다.
서울은 그들의 현행법에 상관없이 OECD회원국으로써 중요한 경제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을 ‘악의 축’, ‘스탈린주의’로 낙인찍고 있다.
서방 역시 안타깝게도 몇몇 진보주의자들까지도 부끄러움 없이 그들의 무지함을 내비치고 있다. 외교적 불인식과 북코리아에대한 항시적 고발, 남코리아에 대한 찬양 등의 방면에서 프랑스정부는 미국과 함께 매우 후퇴해 있는 상태다.
불행히도 서울의 권력관계변화를 제외하면 국가보안법은 앞날이 창창하며, 이는 코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위기를 맞아 급진좌파의 성장을 걱정하고 있는 서방민주주의를 비롯한 전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보안법은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모든 이들을 겨냥한다. 이법은 국가권력이 사라지길 바라는 모든 이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빗자루법’이다.
이 법과 국제법 합법성간의 모순을 밝히는 것은 물론 통일이 코리아반도민주주의화의 가장 좋은 방법임을 상기시키고, 코리아문제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서방주요언론의 무지를 알리는 것이 국민에게 이로운 일이다.
불행히도 코리아민중들이 겪고 있는 비극, 즉 계획적으로 코리아의 얼을 미국식 생활양식으로 부패시키는 한편 통일운동가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폭력적 억압을 가하는 현실은 국제법 합법성으로 이끄는 갈등관계를 뒤엎지 않고서는 멈출 수 없다. 물론 이 합법성의 이용 역시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 법적 기여는 이 불공정한 법의 해명을 포함한다. 여타 비슷한 법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은 형사상 처벌될 수 있는 범죄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이 법은 전체적으로 ‘반국가단체’, ‘혼란을 조성할 수 있는’ 등과 같은 모호한 개념을 쓰고 있다. 민주형법이 요구하는 명확성과 정확한 정의에 대한 의무가 지나치게 위반되었다.
서방의 영향하에 있는 국가들이 반드시 민주적이지는 않다는 것, 경제성장이 반드시 인류사회적 발전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것을 민주적이라 자부하는 법률가들에게 환기시켜야 한다.
호베흐 샤흐방 (니스대학국제법교수,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부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