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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위가 아니라 역할이다

지위가 아니라 역할이다

 

 

왜 안철수인가. 의사가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해 무료로 나눠줘서? 경영에도 성공하고 학자로까지 진출해서? 그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건 따로 있다. 박원순, 지금 시장이 당시 안철수의 지지율에 비해 1/10정도 되는 한자리수 지지율로 출마선언을 했을 때, 그를 만나 채 1시간도 안돼 양보한 게 컸다. 그때부터 오히려 안철수는 서울시장감에서 대통령감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보는 눈높이도 크게 달라졌다. 정치에서 양보가 얼마나 중요하고 민심이 무엇을 보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조봉암은 처음에 신익희에게 양보했다. 당시 이승만에게 도전한 야당후보들은 조봉암의 후보양보로 크게 고무됐다. 헌데 신익희가 유세중 사망하는 바람에 자동으로 조봉암이 대통령후보가 됐다. 이승만이 엄청난 부정선거를 하지 않았다면 조봉암이 이길 수도 있는 선거였다. 김대중이 1987년 12월대선에서 김영삼에게 후보를 양보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때 바로 군정을 종식시켰을 거구 김영삼의 투항과 민자당의 출범도 없었을 거다. 과연 IMF(국제통화기금)위기가 왔을지도 의문이고 김대중의 집권후정책도 달라졌을 거다. 또 김일성주석 생전에 남북수뇌회담이 성사되고 통일과정이 부시정권 등장이전에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전진했을 거라 확신한다.

 

김일성주석은 늘 국가의 요직은 민족주의자들에게 양보했고 당의 요직은 다른계열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양보했다. 이른바 당권과 국권을 장악했지만, 김일성주석의 직계인 항일빨치산은 당이나 국가에서 결코 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항일시 풍찬노숙하며 가장 간고한 무장투쟁을 벌였던 항일빨치산들은 해방과 더불어 중앙무대가 아니라 지역으로 내려가 군을 건설하고 민중을 조직하는데 집중했다. 만약 당의 다수가 김일성주석의 직계였다면 1956년 ‘8월종파’사건이 벌어졌을 리 없다. 허나 그런 정변은 군대와 인민의 김주석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로 간단히 제압됐다. 김일성주석의 정치에서도 양보의 리더쉽은 언제나 중요했다.

 

김정일총비서는 김주석의 서거이후 무려 3년동안이나 국가의 최고직위를 계승하지 않았다. 당의 총비서직도 계승하지 않았다. 오직 김주석이 직접 임명한 국방위원장라는 직함과 자신의 실력으로만 아무 문제없이 북을 이끌었다. 나아가 아예 헌법을 고쳐 주석직을 없애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은 국방위원장직에 머물렀다. 이를 보고배운, 김정은제1비서는 아예 국가의 국방위원장직만이 아니라 당의 총비서직까지도 승계하지 않았다. 지위보다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상이 김주석, 김총비서, 김제1비서의 정신세계를 관통한다. 실력이 있다면 역할로 지위를 대신할 수 있고 실력이 없다면 지위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진보당(통합진보당)의 이른바 ‘당권파’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가장 큰 한계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정치는, 진보운동은 지위가 아니라 역할로 한다는 이치. 이 이치를 깨달으면 반드시 당권을 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어지고 패권다툼, 자리다툼도 불필요하다. ‘당권파’의 리더도 꼭 국회의원이 될 필요가 없으며 문제가 불거지면 흔연히 자리를 내놓을 수 있다. 당내 가장 큰 세력이 이런 모범을 보이면 자연히 좋은 분위기가 자리를 잡는다. 소수가 다수에 진심으로 복종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건 다수가 소수를 품는 포용력이다. 레닌도 그렇게 했고 김주석도 그렇게 했다. 혹 이런 자세를 존경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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