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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북 ‘김정일국방위원장 선군혁명영도사’ 강조

북 ‘김정일국방위원장 선군혁명영도사’ 강조
25일 노동신문은 기사 「위대한 혁명실천으로 빛나는 영광의 행로」를  게재했다.
신문은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초에 이르는 기간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시작된 역사적 시기로써 우리당의 선군혁명영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선군시대의 영광 찬란한 현재와 미래를 밑받침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군대의 와해는 당의 변질, 제도의 붕괴, 국가의 파멸로 이어진다’며 ‘군대가 당의 영도를 거부하고 인민의 원수의 편에 서서 사회주의붕괴에 앞장섰던 1990년대 역사의 비극은 현대수정주의가 살판치던 1960년대에 벌써 인민군대를 철저한 당의 군대, 투철한 수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킨 우리당의 영도의 현명성을 뚜렷이 실증해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푸에블로호사건’, ‘EC-121사건’ 등을 예로 들며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나라들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던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자라난 인민군대가 위대한 장군님의 영도밑에 마련도니 이런 경이적인 군사기적들로 세계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인 미제의 면상을 보기좋게 쳐갈기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계속해서 ‘1991년 12월24일 당중앙위원회 제6기제19차전원회의에서 김정일동지께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의 중임을 맡겨주셨다’며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 올바른 위인을 만나지 못하여 붕괴의 진통을 겪고있던 때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사령관의 군직이 또 한분의 걸출한 선군영장께로 굳건히 계승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위대한 혁명실천으로 빛나는 영광의 행로

선군정치가 시작되던 잊지 못할 나날을 더듬어

력사는 어제를 통해 오늘과 래일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초에 이르는 기간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시작된 력사적시기로서 우리 당의 선군혁명령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선군시대의 영광찬란한 현재와 미래를 밑받침해주고있다. 이 빛나는 년대기를 통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은 백두산이 낳은 또 한분의 천출명장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을 똑똑히 절감하게 되였으며 세계는 비범한 령장으로서의 우리 장군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특출한 실력을 력사적현실로 공인하게 되였다.

당의 령도는 혁명군대의 제일생명

주체53(1964)년 6월 19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 사명감을 안으시고 당중앙위원회 청사로 들어서시였다. 이 뜻깊은 순간은 그이의 선군혁명령도실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중대한 계기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색은 그 나날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정치사상적령도를 확고히 실현하기 위한데로 끊임없이 달리고있었다.

1960년대는 참으로 간고한 시기였다. 현대수정주의가 대두한 나라들에서는 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권을 포기하면서 제국주의자들과 흥정을 하고 타협을 하는 비굴한짓을 서슴없이 하고있었다. 지어 까리브해위기후 미제의 침략책동에 대처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켜나가는 우리 나라에 무기를 만들지 말라, 전쟁이 일어나면 어련히 대줄텐데 그 돈으로 알사탕을 만들라고 하면서 《알사탕작전》을 강박하였다.

수정주의자들의 이러한 책동은 어중이떠중이들의 흐리터분한 머리속에 당의 령도를 외면하고 개인에 대한 환상을 조성시키려는 위험한 사상독소의 쉬를 무섭게 쓸수도 있었다. 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권을 말살한다는것은 본질에 있어서 군대를 무장해제시키는것이였다.

인민군대에서 오래동안 복무한 일군들도 아직은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오직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이 당사업을 시작하시는 초창기에 벌써 천재적인 안목으로 실태를 예리하게 꿰뚫어보시고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군체계확립의 절박성을 포착하신것이였다.

그이께서 우리 혁명무력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불패의 혁명강군으로, 일당백의 무적의 대오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시고 밤늦도록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기울이신 크나큰 심혈은 우리 당의 선군혁명사에 력력히 아로새겨져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특히 주체58(1969)년 1월에 진행된 어느 한 회의를 통하여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체계를 철저히 세우기 위한 조직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나날 인민군대의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런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당의 령도는 혁명무력건설에서 나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혁명군대에 있어서 당의 령도는 생명과 같습니다.》

당의 령도는 혁명군대의 생명, 이것은 혁명군대의 존망이 바로 당의 령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는것을 집약적으로 밝혀주는 명언이였다. 그때로부터 먼 후날 방대한 군사무력과 오랜 건군력사, 수많은 핵무기보유를 자랑하던 이전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붕괴에 앞서 군대부터 와해된 사실은 당의 령도를 받지 못하는 총대는 막대기만도 못하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군대의 와해는 당의 변질, 제도의 붕괴, 국가의 파멸로 이어진다. 군대가 당의 령도를 거부하고 인민의 원쑤의 편에 서서 사회주의붕괴에 앞장섰던 1990년대의 력사의 비극은 현대수정주의가 살판치던 1960년대에 벌써 인민군대를 철저한 당의 군대, 투철한 수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킨 우리 당의 령도의 현명성을 뚜렷이 실증해주었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주체의 건군사에 쌓아올리신 가장 빛나는 업적중의 하나이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가 백방으로 강화된것은 우리 당이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공적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력사는 군건설에서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군인대중중심의 무력관을 최고의 높이에서 철저히 구현해나가시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력사의 시계가 바야흐로 1970년대를 가리키고있던 때였다. 이즈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진행된 어느 한 회의가 준 교훈에 대하여 생각하고계시였다. 지난날 아무리 혁명투쟁을 했고 공로가 있다 하여도 당의 사상으로 무장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당성을 단련하지 않는다면 저도모르게 변질될수 있었다. 이것은 총대를 직접 틀어잡고있는 군인들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한 문제였다. 더구나 전쟁참가자들이 기본전투단위에서 하나둘 떠나가고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있는 사정은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킬것을 절박하게 바라고있었다.

혁명무력발전의 이러한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9(1970)년 3월말 어느날 인민군총정치국의 책임일군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서 기본은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켜 참다운 주체형의 혁명가로 만드는것이라고, 혁명군대의 위력은 바로 군인들의 정치사상적우월성에 있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군대에서 기본은 그 어떤 무기나 군사기술이 아니라 군인대중이며 군인에게서 기본은 사상이다, 군인의 사상이 싸움을 결정한다는 우리 장군님의 군인중심의 무력관은 그때 벌써 현대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는 근본비결을 새롭게 밝혀주고있었다.

백두산선군령장의 주체적인 군인중심의 무력관에서 핵을 이루는것이 바로 모든 군인들을 참다운 김 일 성주의자로 만드는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할데 대한 우리 당의 최고강령을 제시하실 때에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는 바로 인민군대에서부터 시작되였고 군인대중자신의 심장에서부터 열매를 맺었다.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군인대중중심의 무력관에 기초하시여 인민군대를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드는것을 군건설의 총적임무로, 전군 김일성주의화를 군건설의 최고강령으로 제시하시고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위력은 백방으로 강화되였다. 그 거룩한 자욱과 더불어 우리의 총대에는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이라는 가장 고상하고 숭고하고 정의로운 사상감정이 빛발치게 되였으며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는 더욱 억척같이 다져졌다.

후날 외국의 한 이름난 군사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밝히신 군인대중중심, 사상중심의 무력관의 위대성에 탄복하여 이런 글을 썼다.

《김정일최고사령관의 령군예술이 오늘날 그토록 세계의 관심사로 되는것은 어디에 기인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무장력에 대한 그이의 견해와 관점이 신성하고도 위대한데 있다. 그이께서는 군인을 기본으로 무장력을 고찰하는 군인중심론을 주장하고계신다. 이를테면 전쟁승리의 기본은 무기보다도 그 담당자인 군인이라는것, 즉 군인을 무장력의 주체로 보는것이다.

이것은 김정일동지의 독창적인 무력관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전군에 대한 당적령도, 정치적령도의 전면적실현으로 우리의 총대는 자기의 혁명적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어버이수령님의 선군령도, 장군님의 선군정치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당의 혁명적무장력으로 더욱 강화발전되게 되였다.

비범한 지략과 령군술, 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자리잡고있는 보통강기슭에는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위대한 선군정치의 전리품으로 끌려와있다.

미국력사에 최대수치의 대명사처럼 불리우는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과 대형간첩비행기 《EC-121》사건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선군정치의 첫 시기 인민군대에 대한 군사작전적령도로 어떤 특출한 공적을 쌓으시였는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을 주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1960년대말에 벌써 인민군대지휘성원들은 나를 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최고사령관으로 대하고 받들었습니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그때부터 시작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령장의 실력은 군대에 대한 정치사상적령도와 함께 실전지휘를 통하여 명백하게 증명되는 법이다.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우리 나라 령해에 처음으로 나타난것은 1968년 1월초였다.정탐과 적대행위를 목적으로 특별히 만들어진 1 000여t급의 이 배는 1월 23일 우리 나라 령해에 깊숙이 들어왔다.

적들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예리하게 주시하고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아침 인민군총참모부의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대로 해군사령부에서 그 배를 단속처리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배가 도주하거나 저항할수 있는 경우를 예견하여 나포전투를 빈틈없이 조직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해군에서 경비함과 어뢰정의 협동작전을 잘하며 공군에서는 그들의 전투행동을 지원할데 대한 비범한 작전적명안을 밝혀주시였다.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작전을 처음부터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휘하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도주하는 배를 추적한다는 정황보고를 받으시고 적들이 발악적으로 저항해나올수 있으므로 그때에는 단호한 행동으로 무자비하게 제압하도록 하시였다.

우리의 용감한 일당백해병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강력한 화력으로 적들의 저항을 제압함과 동시에 단호한 행동으로 적의 함선에 뛰여올라 80여명을 포로하였다. 이렇게 나포된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는 원산항에 끌려오게 되였다. 이것은 주권국가인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의 행사였으며 민족적존엄과 나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응당한 자위적조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제의 무장간첩선을 나포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세계《최강》을 떠드는 미제의 배를 나포한것은 력사상 있어본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 해병들이 정말 장하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극도로 당황한 미제는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면서 한차례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방대한 무력을 끌어들이였다. 전쟁이 터지는것은 시간문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뛰여난 군사적지략과 령군술로 총참모부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우리는 원쑤들의 《보복》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침략자들을 타격소멸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있다가 적들이 덤벼들면 그 즉시에 소멸해치워야 한다고 구체적인 작전적방안을 제시하시였다.

《푸에블로》호나포와 적들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군사작전적령도는 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11달만인 1968년 12월 23일 미제가 세계의 면전에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령해침입을 전적으로 시인하고 이를 사과하는 동시에 다시는 우리의 령해를 침범하지 않는다는것을 담보하는 사죄문에 서명하는 통쾌한 승리를 안아왔다. 당시 미국대통령 죤슨은 사죄문을 읽고나서 《미국이 생겨 력사에 남긴 사죄문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강철의 령장으로서의 특출한 천품과 자질, 걸출한 군사적실력은 이듬해인 주체58(1969)년 4월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작전의 승리로 다시한번 세계를 깜짝 놀래웠다.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매일과 같이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우리 나라 동해안일대의 령공에 침입시켜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주체58(1969)년 3월 23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한 작전일군을 만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제침략자들이 지난해에 바다에서 된타격을 받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제는 공중으로 접어들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함께 수령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이번에 하늘에서 된매를 안기자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직 똑똑한 작전방안을 세우지 못해 고심하고있는 일군에게 적들의 《EC-121》정찰기가 전자기재를 장비하고있는 대형정탐비행기인것만큼 그것을 잡으려면 묘한 수를 써야 한다고 하시면서 《EC-121》대형간첩비행기는 비행기로 잡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작전에 인입할 비행기도 선정해주시고 비행기편대도 무어주시였으며 비행사들이 전투정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는데서 나서는 전술적문제들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57돐을 경사롭게 기념하고있던 주체58(1969)년 4월 15일 어리석게도 인민군대가 명절기분에 해이되여있으리라고 오판한 미제침략자들은 이날 점심때를 리용하여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우리 령공에 침입시켰다. 만단의 출격태세에 있던 우리의 추격기비행사들은 즉시에 리륙하여 결정적인 타격으로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공중에서 박산냈으며 거기에 타고있던 30여명의 적들을 황천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현대공중전에서 우리 식 공중전법의 빛나는 승리였으며 위대한 령장의 슬하에서 날로 강화되고있는 우리 공군무력의 자랑찬 과시였다.

우리의 용감한 비행사들이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격추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는 《날아가는 〈푸에블로〉호가 격추되였다.》고 하며 죽가마끓듯 하였다.

악에 받친 미제는 방대한 침략무력을 동반한 정치외교적 및 군사적위협공갈로 우리 나라의 정세를 또다시 전쟁접경에로 몰아갔다.

이때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일군들을 만나시여 미제국주의자들의 전쟁도발책동에 주동적으로 대처할수 있도록 만단의 전투동원준비를 빈틈없이 갖출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장악하며 그에 대처한 작전계획을 잘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미제침략자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과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때에는 살아서 항복서라도 쓸수 있었지만 이번에 무분별하게 달려들면 불을 즐기는 부나비의 신세가 되게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단호히 선언하시였다.

우리를 《보복》하겠다고 떠들던 미제는 저들의 강경에 초강경으로 대응하시는 위대한 선군령장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 우리 인민의 철저한 반미의지앞에 기가 꺾이여 제풀에 주저앉고말았다.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나라들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던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자라난 인민군대가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밑에 마련된 이런 경이적인 군사기적들로 세계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인 미제의 면상을 보기 좋게 쳐갈기고있었다.

력사는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에서 시작되고 시대의 흐름속에서 심화발전되여온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가 하나의 완전한 국가정치방식을 탄생시키고있음을 알리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특출한 정치군사적실력과 주체의 선군혁명령도사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심장깊이 체득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은 그이를 당과 군대의 최고수위에 높이 받들어모실것을 열렬히 희망하였다. 이러한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군건설과 군사활동에서 쌓으신 탁월한 업적과 그이께서 지니신 남다른 정치군사적실력에 탄복하시여 당과 함께 인민군대사업을 직접 맡아 지도할데 대한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후날 이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1960년대말,1970년대초부터 나에게 당과 군대사업을 직접 맡아 지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과 군대사업을 직접 맡아 지도하시게 됨으로써 선군의 정치리념을 전사회적범위에서 구현해나가는 선군정치가 시작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을 심화발전시키시여 선군의 진리를 밝히시고 그것을 핵으로 하여 새로운 사회주의의 기본정치방식을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으신것은 세계정치계에서 으뜸가는 정치원로이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만이 이룩하실수 있는 최대의 공적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불세출의 선군령장께서 계시여 찬란한 주체혁명위업완성의 확고한 승리를 락관하시며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 위대한 김정일동지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이전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 옳바른 위인을 만나지 못하여 붕괴의 진통을 겪고있던 때 우리 나라에서는 최고사령관의 군직이 또 한분의 걸출한 선군령장께로 굳건히 계승되고있었다.

그날은 주체80(1991)년 12월 24일이였다.

다음날인 12월 25일 근 70년간 사회주의혁명의 보루로 서있던 이전 쏘련에서 붉은 기발이 서서히 내리워졌다.

* *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사는 그자체가 혁명군대건설의 빛나는 모범으로, 귀중한 교본으로 되고있다.

1990년대는 우리 당의 선군정치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고난과 시련속에서 검증하는 엄혹한 시기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의 보검으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새 력사를 펼치시기 위하여 주체84(1995)년 1월 1일 다박솔초소로 향하시였다.

본사기자 김준혁

본사기자 백영미

(노동신문, 2013.12.25) 

이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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