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5주년이다. 일제는 우리민족의 모든 권한을 박탈했으며 군사·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착취를 자행했다. 우리민족은 일제의 잔학상을 딛고 정의의 민족해방투쟁으로 1945년 8월15일 마침내 광복을 이룩했다. 일제의 무단통치·민족말살정책의 핵심에는 치안유지법이 있다. 1925년 시행된 치안유지법은 일제<천황>통치체제유지를 위해 조작된 법으로 조선민족해방운동을 반체제운동으로 분류했다. 알려진 것만 1928년~38년사이 약 2만8000명이 검거됐으며 이법이 적용돼 사형이 처해진 사례는 조선인뿐이었다. 치안유지법은 독립운동가·조선민중을 무자비하게 살육·탄압하는 법적 근간이 됐다.
1945년 8월15일은 미완의 해방이다. 미군정의 남코리아점령은 분단의 시작이자 파쇼통치의 시작이었다. 맥아더포고령에 의해 일제통치시스템은 미제통치시스템으로, 일제주구는 미제주구로 탈바꿈했다. 미군정을 등에 업고 수립된 이승만반역정권은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광범위한 투쟁을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안법(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여순항쟁직후인 1948년 12월1일 제정한 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본딴 희대의 파쇼악법이다. 이승만은 보안법제정과 동시에 132개 정당사회단체를 해체시키고 당시인구의 1.5%에 해당하는 11만명을 구속시켰다. 특히 이승만과 달리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이승만의 최대정적으로 부상한 조봉암진보당당수를 보안법위반으로 사형시킨 것은 희대의 파쇼적 정치탄압으로 기록돼있다.
이승만반역권력, 박정희·전두환군사파쇼권력을 거쳐 <이명박근혜>악폐권력까지 보안법은 반역세력의 권력유지를 위해 철저히 악용됐다. 박정희시기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인혁당사건은 보안법에 근거한 간첩조작사건이자 사법살인사건이다. 국제법학자회는 사형집행일인 1975년 4월9일을 <사법사상암흑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전두환파쇼권력은 보안법·반공법을 사실상 통합하며 보안법에 막강한 권한을 실었다. 그 결과 1984년 7월부터 1987년 6월까지 3년간 매일 평균 0.9명의 보안법구속자가 발생했다. <이명박근혜>악폐권력은 어떠한가. 이명박시기에는 전임정권에 비해 보안법적용이 4배이상 급증했으며 박근혜권력 4년차의 <보안법위반관련심의>요청은 3년전과 비교해 300%나 증가했다.
문재인·민주당정권은 보안법철폐를 최우선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보안법은 태생부터 조국분단·파쇼통치를 위해 등장한 희대의 반통일악법이자 반민주악법이다. 문재인대통령은 후보시절 보안법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21대총선으로 민주당정권이 구성돼며 보안법철폐를 위한 조건이 마련됐다. 특히 남과 북이 전민족적 지지와 공감을 얻으며 체결한 4.27판문점선언·9월평양공동선언을 온전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구시대악법 보안법부터 최우선으로 철폐해야 한다. 보안법철폐는 자주통일·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 선결조건이자 우리민중에게 가장 절박한 당면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