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절충이 아니라 조화가 돼야 한다

[글] 절충이 아니라 조화가 돼야 한다

절충이 아니라 조화가 돼야 한다

 

 

1990년대는 통일운동의 시대였다. 운동이 있으면 논쟁도 있다. 범민족대회와 민족공동행사, 그리고 ‘하나의대회’라는 행사에 대한 논쟁. 범민련과 민족회의, 자통협이라는 조직에 대한 논쟁. 이 두 논쟁이 생산적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늘 그렇듯 아쉬움이 크다. 다 우리 운동의 이론이나 역량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런 논쟁이 없고 이런 한계가 없을 때가 아마 세상이 바뀔 때리라. 그렇게 커나가는 거니 과정에서의 아픔을 성장통으로 여기자.

 

작금의 ‘애국가’논쟁이나 새로나기특위의 쇄신안을 보면 같은 느낌을 준다. 다 이유와 배경이 있다. 하나하나 깊이 볼 일이다. 다만 어렵더라도 원칙성과 융통성은 변증법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렇게 안될 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이 조화 자체가 원칙인데, 문제는 늘 원칙에서 일탈하며 생긴다. 때로 문제는 사달로 비약된다. 그래서 어려운 거다.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겠지만, 우리 운동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이 반복된 일이다.

 

강기갑 대 강병기의 경선이 됐다. 좋은 후보들이 나섰고 구당권파측에서 후보를 내지 않아 참 다행이다. 일단 최악의 경우가 없어졌다는 건 진보당의 내공을 보여준다. 구당권파측에서 현명하게 판단했다. 물론 강병기후보를 부·울·경측만이 아니라 구당권파측이 민다는 데 한계가 있긴 하다. 아마 구당권파측에 이런 한계가 없었다면 애초에 ‘진보당사태’도 없었을 거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게 우리의 수준이다.

 

혁신의 관점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는 명백하다. ‘조화’와 ‘절충’의 차이는 종이한장처럼 보여도 진리와 오류의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양비론’이 가지는 절충주의적 함정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진리의 편, 진실의 편에 서야 한다. 혁신의 바탕에 진리와 진실이 있다. 혁신이 사는 길이고 진보당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이다. 당심과 민심이 향한 이 길을 옳게 봐야 한다. 조직선거로 당심과 민심을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반복되는 거다. 모두가 불행해진다.

 

이 이야기도 해야 한다. ‘애국가’논쟁은 부패스캔들로 만들려는 데 맞서 이념논쟁, 정치탄압으로 흐름을 바꾸려 하는 건데, 좋다고 본다. 조중동은 이용하려고 한 거니 그렇다 치되, 한인섭의 지적과 진중권의 비아냥은 생각해 볼 일이다. 한편, 혹 이 논쟁으로 대표경선을 조직적 혁신에 대한 논점에서 정치적 쟁점에 대한 논점으로 이동시킬 의도라면 좋지 않다. 왜냐면 자파를 살리려다 당과 진영이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는 되지만, 여하튼 소아를 대의보다 앞세운 거다. 바로 민주당이 날카롭게 나오지 않는가. 야권연대를 누가 깨고 있는지 돌아보라. 결국 고립을 자초하는 수다.

 

이번 경선의 초점은 반패권이다. 기간 가장 큰 문제는 이거다. 자주계와 평등계 양측에 다 이런 모습 있었다. 일부 자주계의 패권주의보다 일부 평등계의 분파주의가 더 심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분당이후 지금까지는 앞의 패권주의가 문제의 근원이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본질을 흐리지 말자. 그렇게 해서는 전체에게도 안좋지만 본인들에게도 안좋다. 이 조직적 문제의 혁신이 초점이다. 이게 풀리면 다른 계, 다른 측에서의 문제도 보다 쉽게 풀린다.

 

새로나기특위의 활동에서 다른 건 다 무난한데, 북관련 내용은 정말 문제다. 이게 자칫 이번 경선의 초점을 흐릴까 걱정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유연성을 발휘한 거라도 문젠데, 그 진정성마저 없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사달까지 날 수 있다. ‘원칙성과 융통성의 조화’라는 원칙이 제대로 구현돼야 한다. 더 연구해야 한다. 이 정도의 거친 표현으로는 ‘조화’가 이뤄질 수 없다. ‘절충’이 낳는 한계와 오류 속에서 평지풍파만 일어난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패권주의문제는 진실이지만, 북관련쟁점내용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갈수록 힘을 발휘하지만 진실이 아니면 갈수록 문제만 발생한다. 북관련쟁점내용이 노렸던 대중성을 획득하는가 그렇지 못해 내분만 심화시키는가는 수준이 좌우한다. 지금 정리된 수준으로는 전자로 될 수 없다. 100의 깊이를 가진 내용을 10정도로 건드려서는 예술로 꽃필 수 없다. 예술이 돼야 한다. 말하려면 제대로 말해야 한다. 그 수준이 안되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침묵이 낫다.

 

경선은 잘못된 걸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 반대가 되면 당연히 안되고 사달이 날 수 있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노력마저도 의심받고 수포로 될 수 있다. 자신 없으면 차라리 유보하라. 괜히 소모적 논쟁만 일으키고 초점만 흐린다. 정세도 매우 유동적이다. 정세가 바뀌면 사라질 쟁점이기도 하다. 당이란 전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략이 우선이다. 그래야 당답게 이끌 수 있다. 당은 전략으로 단체와 전선을 이끄는 최고수준의 조직이다. 그래서 언제나 전략적 사고가 우선돼야 한다.

 

조덕원

 

관련기사
- Advertisement -
플랫포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