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이 직접 조국으로 가겠다면서 판문점행을 시도했으나 군당국에 의해 저지당했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송환추진단)은 10시 임진강역에서 <전쟁포로안학섭노병즉각송환!> 결의대회를 한 뒤 임진강역에서 통일대교남단까지 약1시간가량 행진했다.
안학섭선생은 거동이 불편해 차량으로 함께 행진에 참가하고 통일대교남단에서 검문소까지는 이적·한명희공동단장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이동했다.
결의대회는 민중의례, 안학섭선생과 이적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의 발언, 한명희전민중민주당대표의 성명낭독, <동지가>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사회자는 <정전협정과 제네바협약은 전쟁이 끝나면 모든 포로는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반역정권은 이 당연한 권리를 짓밟으며 한국전쟁당시 전쟁포로로 체포된 안학섭선생을 무려 42년4개월간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공작을 해대면서 인권을 말살하고 출소후 지금까지도 감시하면서 인권을 유린했다. 이것은 제네바협약위반이며 국제법을 유린한 반인륜적 범죄이다.>라면서 <현재 전쟁포로이자 노병인 안학섭선생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제3국이 아닌 판문점을 통해 즉각 송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전쟁포로 안학섭노병을 즉각 송환하라!>, <국제협약 준수하여 안학섭노병 송환하라!>, <안학섭노병을 조국으로 송환하라!>, <마지막소원이다 안학섭노병 송환하라!> 구호를 외쳤다.
안학섭선생은 <스물셋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체포되어 물경 43년간을 모질고도 험한 감옥살이를 당해야 했다. 체포당시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941부대 분대장으로서 마땅히 전쟁포로의 신분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를 잡은 그들은 정규군이라는 신분을 무시하고 이적간첩죄를 뒤집어 씌웠다.>면서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권리인 전쟁포로로서의 본국송환을 요구한다. 내 조국은 지척에 있는 조선이다. 노병 안학섭은 이제 조국에서 귀대보고를 마치고 눈을 감고 싶다.>고 밝혔다.
안선생은 전향공작에 대해 <전향공작은 56년도부터 시작됐다. 나는 전향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수모와 고문, 폭력으로 치욕과 고통의 나날을 견뎌야 했다.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진짜 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거 보면 저 사람은 고문이 뭔지 아는가.> 한다면서 <하루는 물고문을 계속 하니까 7명이 (전향서를) 쓰고 나가더라.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지 않고 자기전향서를 쓰는 걸 보면서 참 괴로웠다. 그때는 할복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나더라.>고 토로했다.
계속해서 <고문을 견딘 근원은 내가 사람인데 느들한테 져? 도둑놈들한테 질 수는 없다. 이게 기본이었고 내 양심이었고 우리 선배들이 걸어온 길 나는 왜 못걸어, 그렇게 해서 오늘에 왔다.>고 힘줘 말했다.
송환을 요구한 배경에 대해서는 <미국놈들이 물러가든 내가 여기서 죽든 끝까지 싸우자고 떨어졌는데, 제가 요즘 몸이 좋지 않아서 자주 의식을 잃는다. 내가 일생을 식민지하에서,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미제국주의시대에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갖은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서 시체까지도 식민지땅에 묻히겠구나, 이건 너무 억울하다. 다행히도 자주독립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으니.>라면서 <요즘 자꾸 응급실에 실려가서 살아 나오니까 너무 원통한 생각이 나더라. 죽어서 시체까지 식민지땅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나 북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적민통선평화교회목사는 <선생님은 아시다시피 43년의 장구한 징역살이를 할때 그것마저도 부족해 가지고 고문, 폭력, 회유, 심지어는 미녀들까지 감방안에다 잡아놓고 전향공작을 벌였다. 하지만 그것을 다 이겨내고 나온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신념 하나 때문이었다. 그 신념으로 43년 징역살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국가는 또 제2, 제3의 가해를 가했다.>면서 <포로는 언제든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길이 지금 오늘 북행이다. 가로막아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결의대회후 곧바로 행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의 구호 <전쟁포로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안학섭노병을 조국으로 송환하라!>,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국제협약에 따라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마지막소원이다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시간이 없다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송환이 평화다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통일애국투사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안학섭노병 송환하고 한반도평화 실현하자!>가 울려 퍼졌다.
통일대교남단에 이르러 안선생이 하차해 검문소로 향하자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가 집중됐다.
일정시점부터 군사구역으로 취재가 제한됐으며 안학섭선생과 이적·한명희공동단장 3명만이 검문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안선생은 검문소앞에서 <독립된 내땅에 가려고 여기 왔다>고 밝히며, 통일대교진입을 가로막은 군·경에게 <우리땅이다. 미국놈들이 갈라놨다. 미국놈들이 관리하고 있다.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자기뱃속만 생각하지 말고 후대를 위해서 역사를 위해서 미국을 몰아내는데 합심, 협력합시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통일대교남단으로 발길을 돌린 안선생의 손에는 조선의 국기가 들려있었다.
안선생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호송돼 안정을 취했다.
이후 송환추진단은 통일대교남단에서 <투쟁승리보고대회>를 열었다.
이적공동단장은 <검문소에서는 더이상 전진이 어렵다고 그자리에 서라고 이야기했고 안학섭선생님은 약 10분간 조선을 향해 말씀하셨고 본인의 심경을 말씀하셨다. 본인은 전쟁포로이며 반드시 북으로 가야 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고 남쪽에서 수모당한 이야기들도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돌아오는 도중에 선생님은 인공기를 꺼내 들었다. 인공기를 들은 이유는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기 때문에 나를 조선으로 보내야 된다, 조선의 공민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인공기를 들고 인터뷰를 하셨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힘들어하셨지만, 기자들에게 오늘은 못들어가지만 또다시 싸워서 반드시 판문점을 향해서 제발로 당당히 걸어가겠다고 기록을 하셨다.>고 알렸다.
안선생이 준비했던 검문소앞 발언문의 대독이 이어졌다.
끝으로 참가자들은 <동지가>를 부르며 <우리의 동지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반드시 쟁취하자!>고 결의를 밝혔다.
한편, 19일 송환추진단은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북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미 송환추진단은 통일부와 군, 유엔사 측에 송환일정을 알리고 협조요청을 했다. 8월19일 통일대교 출입을 관리하는 제1보병사단 정보참모처는 송환추진단에게 <통일대교 출입은 통일부의 승인시 가능하다>고 회신했다.>면서 정부의 결단을 재차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