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북결의안’ 운운할땐가
– 새누리가 말아먹은 경제부터 살려내야
새누리당 박근혜비상대책위원장은 16일 대북규탄결의안채택을 제안했다.
박근혜는 “우리가 국회차원에서 북에 대해 미사일발사를 규탄하고 핵실험과 같은 추가적도발을 하지말 것,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새출발할 것을 촉구하는 대북결의안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미사일발사로 미국도 원조하기로 한 식량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며 “우리와 국제사회가 북한의 경제난을 해소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먹고 사는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해도 북한이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고 기회의 창을 닫아 버린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민생파탄낸 새누리가 북 ‘경제난해소’?
이번 대북규탄발언으로 박근혜의 권력유지를 위한 책략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났다.
우선 박근혜는 정세에 따라 대북입장을 수시로 바꾸며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2000년 6.15공동선언발표이후 통일분위기가 고조되자 2002년 5월 박근혜는 방북, 김정일위원장과 단독회담을 가졌다. 박근혜는 남북이산가족 상설면회소설치를 제안했으며 같은해 9월에는 박근혜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남북축구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12월19일 김정일위원장이 서거하자 박근혜는 입장을 바꿨다. 이날 민주통합당의 국회차원조문단구성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이번 대북결의안제안은 새누리당대선후보로서의 입지를 굳힌 박근혜가 최근 고조된 남북간 군사적긴장을 이용, 보수결집을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는 특히 민생에서 실책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박근혜는 북을 비난하며 ‘북의 경제난과 기본인권인 먹고 사는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이른바 탈북자 등을 통해 남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북의 식량공급은 정상화된 상태다.
2007년 6월8일 발표된 통일학연구소 한호석소장의 논문 「북(조선)사회주의계획경제의 성장과 그 정치적 의미에 대하여」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산곡물수입량이 2006년에는 전년보다 53% 떨어진 20만7250톤으로 감소했지만 식량생산에 필요한 화학비료생산량은 대폭 증가했다. 이 외에도 논문에 의하면 가축을 기르는 대중운동이 전개되고 중국에서 들여오는 돼지고기수입액은 2000년 75만달러에서 2003년 5642만달러로 폭증했다.
반면 새누리당과 이명박정부는 지난 5년간 경제와 민생을 완전히 파탄시켰다. 실제로 코리아연대가 4월6일 발표한 민생파탄백서는 이를 입증한다.
백서에 따르면 비정규직노동자는 이명박정부출범당시 563만명에서 2011년 8월기준 599만5000명으로 늘었고 농가부채는 2008년 2578만6000원에서 2010년 2721만원으로 증가했다. 2008년기준 농민들은 매일 3명씩 자살하고 있다. 이외에도 청년실업, 자영업자파산,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남(코리아)미FTA로 인한 민생파탄의 후과는 매우 심각하다. 박근혜도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박-박, 2대째 이어온 책략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한 박근혜의 책략은 앞서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권력유지를 위해 행한 것과 흡사하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장기군사독재를 자행해 남코리아의 민주주의와 통일에 막대한 후과를 미쳤다. 저곡가·저임금정책으로 심각한 민생파탄이 야기됐으며 특히 70년대 미국의 직접투자를 유치해 남코리아경제는 미국에 더 예속됐다.
박정희는 대북정책에서도 표리부동한 책략으로 일관했다. 외부적으로는 평화통일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북에 적대적, 반통일적 입장을 고수했다. 1972년에는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이듬해에는 분단을 고착시키는 남북유엔동시가입안을 제기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앞서 1963년 12월14일에는 북에서 박정희를 만나기 위해 내려온 대남밀사 황태성을 불법월경죄로 사형시켰다.
박근혜는 계속 정치책략의 달인 박정희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고 남의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새누리당대선후보 박근혜는 민생회복보다는 대권장악에만 열중하고 있다.
김진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