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특집〈전쟁노병 전쟁포로 안학섭선생 즉각 송환하라〉 안학섭선생송환투쟁 전개 1

〈전쟁노병 전쟁포로 안학섭선생 즉각 송환하라〉 안학섭선생송환투쟁 전개 1

2025년 7월 생존중인 세계최장기비전향장기수 안학섭선생을 조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을 결성했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서울정부청사앞·용산대통령집무실앞·판문점등에서 기자회견 및 행진을 진행하며 안학섭선생을 조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43년옥살이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서울정부청사앞 기자회견·행진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7월18일 서울정부청사앞에서 <43년옥살이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회자는 <향년96세의 항미투사이자 통일운동가이며 조국의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온몸으로 품고 살아온 우리시대의 어르신 안학섭선생이다. 선생이 43년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견결히 지켜온 신념의 근저에는 조국과 민족, 민중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있다. 또하나의 조국은 그를 죄인으로 가두고 고문하기도 했지만 그는 어느하나의 조국도 마음에서 저버린 적이 없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조국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며 자신이 할수 있는 실천에 최선을 다해온 안학섭선생에게 이제 조국은 송환으로 귀환으로 응답해야 한다. 이재명정부는 어떤 정부보다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시대적 사명이 막중한 만큼 연로한 안학섭선생의 빠른 송환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안학섭선생사위 이적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는 <안학섭선생님을 모신지 10년이 넘었다. 42년6개월 그 장구한 세월은 세상에 그 누구도 겪어보기 힘든 오랜 감옥살이였다. 김선명선생님이 6개월 더 사셨다. 그러나 김선명선생님이 가시고 난 마당에서는 안학섭선생님이 생존해있는 세계최장기수이시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때 조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남쪽이 아직도 미군점령군에 의해서 점령된 땅이므로 나는 내 하나 일신상 편하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안된다 하시면서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셨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서 핍박받으며 싸우며 그렇게 당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오셨다.>고 되짚었다.

덧붙여 <그러나 남쪽의 조국은 선생님께 유독 핍박을 많이 가했다. 전쟁연습때만 되면 경찰들을 집에 보내서 감시·감독하고 사회안전법으로 감독하고 서명을 강요하고 여전히 창살없는 감옥에서 감옥살이를 했다. 조국을 가까이 보겠다는 일념으로 민통선에서 강 건너 조국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면서 지금까지 살아오셨다.>고 강조했다.

또 <언제 가실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보내주셔야 될 것 아닌가. 안학섭선생님은 제네바협정 포로협정에 의하면 118조에 해당한다. 118조는 전쟁이 끝나면 언제든 돌려보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정부는 돌려보내지 않았고 선생님을 포로대우도 하지 않았고 감옥에 가둬놓고 고문하며 전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신념의 강자는 그 고문에 넘어가지 않았고 끝까지 싸우면서 비전향으로 남았다. 아직도 꼿꼿한 자세 그대로 <내 소원은 점령군이 없는 나라, 내 조국은 하나> 딱 그것이다.>라고 전했다.잊

나아가 <이재명정부는 우리가 원하던 새로운 정부다. 국가보안법도 없애야 되고 미군철군도 당연히 요구해야 되고 또 미국에게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자주적인 정부가 되는 것이다. 안학섭선생님은 북송을 구걸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코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가겠다고 했다. 다리를 쓰지 못할지라도 걸어서 판문점을 넘어서 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요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요구한다. 안학섭선생님을 보내주시고 받아주시라>고 힘줘 말했다.

염성태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고문은 <안학섭선생님이 건강하셨는데 또 이렇게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 안학섭선생님을, 국민주권이 전부라고 스스로 칭한 이재명정권은 분명하게 이제 송환을 해야 되는 것이 책무고 의무다. 어떠한 변멍의 여지도 없다. 안학섭선생님 빨리 완쾌해서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살다가 하늘나라 가시는 게 우리들의 소망이다.>라고 발언했다.

계속해서 <제가 강희남목사님과 한 3개월 미군철군투쟁할 때, 항상 강희남목사님이 조국을 그리워하셨다. 결국은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안학섭선생님만큼은, 이재명정부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주라는 이름으로 안학섭선생님을 북으로 고향으로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역설했다.

한명희전민중민주당(민중당)대표는 <우리는 생존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님의 송환이 빠른 시간안에 이루어지길 바란다. <대한민국>정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선생님이 일생을 바쳐 소원하며 투쟁한 것은 바로 이땅의 자주와 통일이었다. 12살에 나라가 식민지인 것을 알게 된 안학섭선생님의 작은 가슴에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악랄하고 지속적인 전향공작에 온몸이 다 망가져가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양심에 따라 비전향장기수로 43년을 투쟁해온 그 차가운 감옥애서의 삶은 자주와 통일의 한길이었다. 고령에도 매주 광화문에서 민통선평화교회의 기도회와 민중민주당의 집회에 참여하시며 투쟁해오신 것도 모두 자주와 통일의 길에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함이었다.>고 강조했다.

더해 <미군이 나갈 때까지 남에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말씀을 선생님은 생의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다. 폐부종뿐 아니라 모든 신체기관이 약화돼 중환자실과 입원실을 들락거리면서도 언제나 투쟁의 현장에 계시고 싶어하셨다. 투쟁하다 쓰러져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늘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그렇게 보내드리고 싶지 않다. 조금더 건강하실 때 그토록 꿈에도 못잊는 조국의 품으로 먼저 간 동지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조국강토에서 선생님의 머지막생을 사시기 바란다.>고 역설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촉구한다!>를 낭독했다.

뒤이어 구호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항미투사 통일운동가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제네바협약 준수하여 안학섭선생 송환하라!>를 힘차게 외친 다음 <동지가>를 불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는 통일부에 송환추진입장을 담은 기자회견문을 제출하고, 안학섭선생의 빠른 송환을 촉구하며 정부청사일대를 행진했다.




〈통일운동가안학섭선생송환! 자주통일실현! 보안법철폐!〉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서울정부청사앞 집회·행진

7월19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서울정부청사앞 <통일운동가안학섭선생송환! 자주통일실현! 보안법철폐!> 집회를 열었다.

시작에 앞서 자주·통일과 민중민주의 새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투쟁하다 먼저 간 열사들을 기리며 묵념한 뒤 <임을위한행진곡>을 제창했다.

사회를 맡은 민중민주당(민중당)반미반전특별위원회위원장은 <어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위한 투쟁을 선포했고 이재명정부에 송환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히고 전달했다. 정부는 정치적 손익을 따지지 말고 위급한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과감히 인도적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는 분단의 역사, 국가보안안법에 의한 탄압의 역사를 반드시 끝장내야 한다. 오로지 투쟁 말고는 답이 없다. 안선생님의 송환도 이땅의 자주·통일과 민중민주도 우리의 완강한 투쟁으로 앞당겨 실현하자.>

참가자들은 구호 <생존비전향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반파쇼반미투사 통일운동가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안학섭선생 투쟁정신따라 자주통일 실현하자!>, <반민주반통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를 힘차게 외쳤다.

안학섭선생송환투쟁단공동단장 이적민통선평화교회목사는 <안학섭선생님은 지금도 여전히 병상에 누워서 자신의 앞날보다는 조국의 앞날을 더 걱정하고 있다. 어젯밤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송환을 더 크게 생각하지 말라, 이땅에 있는 점령군을 몰아내는 것을 더 크게 생각하라. 나라를 위해서 점령군을 몰아내는 데 더욱 앞장서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평생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온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재산을 모아본 적도 없다. 자식을 낳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분의 삶을 되돌아보면 개인의 삶보다는 민족공동체와 투쟁의 공동체에 온몸을 다 바친 모습을 바라볼수 있다. 당신의 삶을 온전히 조국공동체에 바쳐놓고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신다. 미국은 이땅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우리가 이 소리를 하면 벌떡 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역사를 거꾸로 배웠다. 점령군의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이땅의 참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빨치산의 삶이, 10월항쟁의 삶이, 여순항쟁의 삶이, 제주4.3항쟁의 삶이 얼마나 거룩한 삶인가를 알수 있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결코 이적죄가 될수 없다. 우리민족을 위한 올바른 역사의 지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우리민중민주당동지들이 이 주장을 하면 끌고가서 조사를 하고 <국가보안법>을 갖다붙이는 패륜아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책상은 얼마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부역자노릇은 뿌리까지 캐내서 심판해야 한다. 우리는 그날이 곧 올 것이라고 본다.>면서 <안학섭선생이 조선으로 가야하는 이유는 단 1가지다. 그분은 이땅에서 할 만큼 행동했다.>고 힘줘 말했다.

현필경미군기지환수연구소소장은 <지금도 외세에 굴종해 자신 한몸의 이익을 위해 민족을 팔아먹고 민족을 모르는 미국의 노예들이 판을 치고 이들에 떠받들려 미국은 기울어가는 자기의 처지를 우리민중의 피와 희생을 강요해 코리아반도를 전쟁터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은 미군기지가 60개니 70개니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초기지방식으로 미국이 내놓으라면 어떤 땅도 내줘야 하고 군대의 숫자도 미군이 요구하는 대로 해야 하고 작전권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미국에 철저히 멍에가 씌워진 처지에 있다.>고 성토했다.

더불어 <우리는 아직도 외세의 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4차산업혁명이요 인공기지요 뭐라 해도 자주권이 없다면 소용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선생님의 삶을 본받아 우리는 더 열심히 투쟁하자. 신념의 강자, 자주통일의 전사 선생님이 송환돼 건강하게 통일을 맞이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염성태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고문은 <미제국주의가 없다면 벌써 우리는 남과 북이 하나가 돼서 통일된 국가의 삶을 누리면서 잘 살수 있었을 것이다. 미제국주의는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관리하고 지배하며, 우리국민들은 미제의 식민지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부분을 느끼지 못하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안학섭선생님의 송환문제도 미제국주의가 없다면 이렇게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선생님의 반미의식,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그 간절한 마음을 항상 읽을수 있었다. 우리동지들 힘차게 투쟁해서 가시기 전에 그리운 고향에 가서 행복하게 사시다 마지막 삶을 마무리할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명희전민중민주당대표는 <선생님은 제네바협정에 의해서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포로로 교환됐어야 했는데 남에서 <국방경비법>이라는 애매한 법으로 재판을 받고 43년간이나 징역을 살아야 했다. 친미예속적이고 반북적인 이승만과 그들을 잇는 친미군사파쇼독재정권, 그리고 코리아반도의 영구분단을 획책한 미국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양심에 따라 살기 바라는 안학섭선생님을 비롯한 장기수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뿐인가. 43년동안 감옥에 갖혀서 사는 것만도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데 무자비한 구타와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악랄한 고문으로 사상전향공작을 집요하게, 폭력적으로 자행했다. 선생님은 1995년 출소후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다. 무자비한 폭력앞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인간의 마지막투쟁은, 폭력에 굴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것이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조국을 사랑하고 민중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인간의 존엄성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을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으며 그 명분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더해 <누가 처벌받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무뎌져서는 안된다. 지나간 시간이라고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안학섭선생님의 송환투쟁을 진행하며 더욱 더 우리의 왜곡된 역사를 직시할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장기수선생님들이 죽음으로 지켜내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기를 수십번 수백번을 반복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지키고자 했던 민족의 존엄과 조국의 통일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안학섭선생님은 20년전에 1번 있었던 송환의 기회때 <아직도 투쟁하고 있는 남의 민중들과 함께 미군을 이땅에서 몰아내고 우리민족이 통일되는 날까지 투쟁하는 것이 생의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그 약속을 지금까지,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지키고 계시다. 이제 더 건강이 악화되기 전에 선생님을 보내드려야겠다. 국제법상으로도 민주주의 차원으로도 선생님의 송환을 가로막을 것은 없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은, 친미반북으로 똘똘 뭉쳐진 윤석열은 할수 없는 일이지만 내란을 종식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이재명정권은 할수 있는 일 아닌가. 역사가 선생님에게 저지른 죄에 책임감을 갖고 안학섭선생님의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추진단은 성명 <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를 낭독한 뒤 <동지가>를 불렀다.

참가자들은 집회에 이어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촉구하며 정부청사일대를 행진했다.




〈안학섭선생송환! 보안법철폐! 평화실현!〉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정부청사앞 집회·행진

7월26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서울정부청사앞 <통일운동가안학섭선생송환! 자주통일실현! 보안법철폐!> 집회를 진행했다.

시작에 앞서 자주·통일과 민중민주의 새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투쟁하다 먼저 간 열사들을 기리며 묵념한 뒤 <임을위한행진곡>을 제창했다.

사회를 맡은 민중민주당(민중당)반미반전특별위원회위원장은 <어제 취임한 정동영통일부장관은 <오늘의 통일부는 완전히 무너진 남북관계의 폐허 위에 서 있다. 이제 <한>반도평화와 남북관계복원, 통일부정상화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현시기 코리아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정동영의 통일부는, 이재명의 <대한민국>정부는 무엇을 할것인가.>고 물었다.

그러면서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념의 강자, 안학섭선생의 뜻을 이어 송환을 넘어 이땅의 자주와 평화, 민주와 통일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구호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이재명정부는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 <파쇼악법 민족반역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안학섭선생 투쟁정신 따라 평화세상 실현하자!>를 힘차게 외쳤다.

생존비전향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이 발언에 나섰다.

안학섭선생은 <20대에 의치를 했다. 식민지하에서의 <선물>이었다. 제 몸은 제 몸이 아니다.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이 자주독립국가라고 얘기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식민지다. 저는 식민지하에서 태어났다. 해방이라길래 해방인 줄 알았더니 해방이 아니었다. 식민지가 미국으로 이양됐다. 그래서 일생이 식민지하에서 잔뼈가 굵어졌고,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생을 식민지하에서 살다보니 너무도 억울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다행히도 자주민주독립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나마 북쪽에 있기 때문에 얼마남지 않은 여생, 이제 식민지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자주독립국가에 묻히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며 <미국이 우리나라 뭘 도와줬는가. 미국이 우리를 점령했고 군정을 포고했고 식민지라고 노골적으로 보고 있다. 미군만 나가면 근본고리는 서서히 또는 급격히, 자연스럽게 풀어지리라>고 역설했다.

이적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는 <선생의 신념은 오로지 이 땅의 자주와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양키추방>이라며 <조선으로 올라갔더라면 편히 먹고 살고 발뻗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거부했다. 남쪽은 우리의 동포들이 식민지에 허덕이고 있는데 나만 올라가서 편히 발벗고 살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남쪽에서 할 일이 더 많은데, 내가 북으로 가면 더는 할 일이 없다, 할 일이 있는 남쪽에서 양키 몰아내는 일에 주력하겠다, 이 신념으로 저와 10년 세월을 같이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미대사관앞에서 고함을 지르고 주먹을 흔들면서 당신께서 할수 있는 일은 다해왔다. 그리고 이제 나이 96세, 3년만 있으면 100세가 된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응급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가 조국을 위해 한 것이 없다,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다오>라고 하셨다. 그 피맺힌 눈물속에서 선생님의 한을 바라봤다. 42년4개월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 후회는 없었다고 하신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동족을 위해서라면 42년이 아니라 50년, 60년도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신념을 가지셨다. 온몸이 비틀리며 전향하라고 할 때도 나는 전향할수 없다, 내 조국은 하나다, 양키의 부역자들에 의해서 나는 항복할수 없다면서 그들과 싸우셨다.>고 힘줘 말했다.

민중민주당서울시당위원장은 <이재명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안학섭선생님이 원하시는 송환을 지체없이 진행해야 한다. 안학섭선생님은 제네바협정에 의해서 이미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포로교환이 됐어야 했는데 장장 43년징역을 살아야 했다. 친미예속적이고 반북적인 이승만과 그 뒤를 잇는 친미군사파쇼독재정권, 그리고 코리아반도의 영구분단을 획책한 미국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양심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안학섭선생님을 비롯한 장기수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수 있는,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힐난했다.

더해 <국제법상으로도 인도주의차원으로도 더이상 선생님의 소환을 가로막을 것은 없을 것이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은, 친미반북으로 똘똘뭉쳐진 윤석열은 할수 없는 일이지만 내란을 종식하고 평화를 지향한다면 이재명정권의 통일부는 할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역사가 선생님에게 저지른 죄에 책임감을 갖고 안학섭선생님의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선생님이 송환되시고 나서라도 이 자리에 있는 우리민중민주당과 우리동지들은 이 모든 역사의 비극의 원흉인 제국주의미군을 철거시키고 이를 실현시키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끝까지 가려 했던 그 길을 반드시 이룩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결의했다.

추진단은 성명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고 국가보안법 철폐하라!>를 낭독한 뒤 <동지가>를 불렀다.

참가자들은 집회뒤 정부청사일대행진에서 구호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반미투사 통일운동가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제네바협약 준수하여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이재명정부는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 <안학섭선생을 조국으로 하루빨리 송환하라!>, <안학섭선생 투쟁정신 따라 자주통일 실현하자!>, <안학섭선생 투쟁정신 따라 평화세상 실현하자!>, <안학섭선생 송환하고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반민주반통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반민족반통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파쇼악법 민족반역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모든 양심수 석방하라!>를 힘차게 외치며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촉구했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안학섭선생즉각송환! 국가보안법철폐!〉 집회·행진

8월2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서울정부청사앞에서 <안학섭선생즉각송환! 국가보안법철폐!> 집회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우리민중, 민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신념을 지키며 투쟁한 열사들을 기리며 묵념한 뒤 <임을위한행진곡>을 제창했다.

사회를 맡은 민중민주당(민중당)반미반전특별위원회위원장은 <이재명정권은 우리사외의 진보와 민주,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정권이라면 안학섭선생송환이라는 실천으로 그 정권의 성격을 명확히 사람들 앞에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안학선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것, 바로 그것이 경색된 최악의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가장 시급한 방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발언에 앞서 참가자들은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통일애국투사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 <제네바협약에 따라 안학섭선생을 무조건 송환하라!>, <안학섭선생 송환하고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구호를 외쳤다.

안학섭선생은 <저는 여기 나올 때 완전무장하고 정복을 하고 부대원을 인도하고 나왔다. 국제포로기준에 의하면 전시고 또 완전히 인민군대정복을 하고 나왔기 대문에 포로로 규정해서 포로로 교환했어야 하는데 정규군포로는 북으로 보내고 나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저는 무참히 인권을 유린당했다.>면서 <이걸 무엇으로 보상하겠나. 당연히 보상해야 하는데 안하고 있다. 지금도 저는 계속 감시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나라냐. 이것이 잘 사는 것인가. 유엔에서 북의 인권문제를 논의한다는데 웃기는 소리 말아라. 너희들부터 고쳐라.>라면서 <저는 일생동안 식민지하에서 태어나서 식민지하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갖은 학대를 받았다. 이제 몸이 말을 안듣는다. 요즘에 그걸 묻더라. 왜 2000년도에 안가고 지금 얘기하냐. 아니 집 안방에 강도를 놔두고 집을 비워주나. 미국 물러가라는 말을 여기서 해야지 어디서 하나. 그래서 안갔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미군 물러갈 때까지 싸우려고 했는데 지금 몸이 아주 좋지 않다. 폐기종뿐만아니라 위장도 그렇도 심장도 말을 안듣는다. 요즘 내가 아마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나도 모른다. 깨보니까 응급실이더라. 그런 형편이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생, 식민지하에서 그동안 압제를 당한 것도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데 이제 죽어서 시체까지 식민지땅에 묻히는 것이 너무 원통하다. 다행히 자주독립한 조선이 있고 감옥에서 같이 생사를 하던 동지들이 묻혀있는 곳으로 갔으면 하는 희망이다. 거기 가더라도 미제가 물러가길 바라는 심정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이적추진단공동단장은 <안학섭선생은 포로가 맞다>고 운을 떼며 안학섭선생이 남에 내려오던 당시 60일간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안학섭선생은 60일동안 배고픔에 시달렸어도 민가에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일화였다.

특히 <남하하는 도중에 같은 편인 인민군이 소를 빼앗아가더라. 나중에 잡아먹고 당에서 보상해주겠다는 인수증까지 써줬다고 하지만, 안학섭군인은 당에서 이런 짓 시키지 않았다, 당에서 명령을 받고 하느냐, 내가 보고하겠다고 하니까 그 소고삐를 안학섭군인에게 넘겨줬다고 하더라. 그 소를 인민에게 넘겨주자 그렇게 울고 불고 좋아했다고 한다. 교과서에서 인민군 하면 무조건 양민들을 학살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폭압적인 군대로 배워왔다. 그러나 이 단 두마디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느낄수 있는지 알수가 있다.>고 했다.

이단장은 <우리는 안학섭이라는 사람이 왜 비전향을 했는가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면서 <고문을 당하고 얻어맞고 피고름을 쏟아내고 강제급식을 당해도 절대 살수 없다하고 전향을 거부한 것은 바로 내 조국이 있고 내 정치적 의식이 있고 내 철학이 있기 때문에 나는 정치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미제에게 굴복당할수 없다, 그것이 안학섭의 신념이었다.>고 강조했다.

민중민주당인천시당위원장은 <정동영통일부장관이 <북한주민 접촉신고 처리지침 폐기안에 결재했다>며 민간에 전면접촉을 허용한 것이다 설명했으나, 그 말이 진심임을 입증하려면 당장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공안탄압을 주도하는 안보수사과를 해체해야 한다. 또한 제1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안학섭선생님의 몸에 남아있는 고문·폭력에 의한 상처는 파쇼악법과 파쇼기관이 저지른 것이며 한사람에게 가한 반인권·반민주·반통일적 악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학섭선생님의 폭력·고문에 굴하지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신념과 투쟁의지와 정신은 내란을 막아낸 민중항쟁에 깃들어있고, 우리의 <국가보안법>철폐·안보수사과해체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며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철폐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창영미군철수투쟁본부공동대표가 성명 <현존하는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를 낭독한 뒤 다같이 <국가보안법철폐가>를 불렀다.

추진단은 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이어갔다.




〈제네바협약준수 전쟁노병안학섭선생송환! 국가보안법철폐!〉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용산집무실앞 기자회견

88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추진단)은 용산 대통령집무실앞에서 <제네바협약준수 전쟁노병안학섭선생송환! 국가보안법철폐!> 기자회견을 열었다.

먼저 참가자들은 제국주의의 땅에서 해방을 위해 싸우다 순국했고 분단된 땅에서 통일을 위해 싸우다 먼저 간 선열애국동지들을 기리며 묵념한 뒤 <임을위한행진곡>을 불렀다.

사회를 맡은 지창영미군철수투쟁본부공동대표는 <(안학섭선생은) 총을 들고 미군을 쫓아내기 위해 싸웠다. 전쟁포로이다.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송환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43년 가까이 이땅에서 감옥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미군 없는 세상을 위해서 여생을 살고 싶다면서 송환기회를 뿌리치고 이 땅에 남아 투쟁해왔다. 이제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판단해서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전쟁노병 안학섭선생 즉각 송환하라!>, <제네바협약 준수하여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96세노병의 마지막소원이다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안학섭선생 송환으로 남북평화 길을 트자!>, <안학섭선생 송환하고 한반도평화 실현하자!>, <반민족반통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구호를 외쳤다.

이적추진단공동단장은 <안학섭선생님은 지금도 군인이다. 아직도 자대에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를 하지 못했다. 제대하지 못한 노병은 세계에서 최장기수인 안학섭선생님밖에 없을 것이다. 본인이 원해서 제대를 못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억압과 <대한민국>의 잘못된 재판으로 희생을 당한 것이다.>라면서 <안학섭선생님은 정복을 입고 완전군장을 한 채 분대원들을 거느리고 남하를 했다. 그리고 장장 60일동안 설악산에서 싸웠다. 그 설악산에서 2명의 분대원들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생포당하게 된다. 그렇게 생포당하면 당연히 포로로 대우해야 하고 본대로 돌려보내주는 것이 마땅했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국방경비법에 의해 징역 42년4개월, 세계 역사상에도 없는 살아있는 생존최장기수가 됐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곳은, 이 땅은 내 조상의 땅이로되 체제는 미국이 지배하는, 미점령군이 지배하는 땅이다.>라면서 <돌아갈수 있는 기회가 1번은 있었다. 그러나 미점령군에 지배당하고 있는 땅에 군인으로 파병이 됐으면 적어도 점령군은 쫓아내고 자대로 귀대해야 되지 않는가. 이것이 마땅한 것이다 하여 그대로 이 땅에 주저앉았다.>고 성토했다.

계속해서 <지금은 임무를 다 하였다. 올해 96세이다. 폐부종으로 앓고 있다. 언제 심장이 멎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제 죽음만큼은 내 사랑하는 조국, 북반부에 묻히고 싶다는 그 간절한 소원을, 세계인류에게 호소한다. 그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정부는 당연히 송환을 해야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노전사를 받아줘야 한다. 우리는 전쟁포로로 붙잡혀서 적어도 70년이상 이곳에 억류돼있는 안학섭노병을 남북양측에서 받아줄 것을 촉구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명희추진단공동단장은 <2000년 송환때 이 땅에서 미군이 완전히 나갈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내가 할 역할이다 말씀하신 것은 이미 그동안 선생님의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폐부종으로 폐에 물이 차면 호흡이 곤란해져 병원에 입원하셨다가도 좀 나아지시면 광화문투쟁현장에 나오시는 선생님을 우리는 늘 걱정스러워하면서도 막지 못하는 것은 선생님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분투하시는지를 알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생의 마지막까지 투쟁하다 가겠다 하신 그 약속은 이미 지키신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주와 통일에 대한 헌신과 열정으로 우리 후배들을 반미투쟁의 길로 이끌어오시고 든든하게 뒤에서 밀어주셨다. 이제 선생님이 죽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선생님의 동지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드려야 한다. 통일부는 선생님의 요구대로 3국이 아닌 판문점을 통해 송환할 것을 결단하고 실질적인 협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를 낭독했다.

지난 집회에 이어 안학섭선생이 병환중에도 기자회견에 참가해 발언했다.

안학섭선생은 <기자들이 많이 묻는데 왜 2000년도에 북으로 갈 때 안갔는가 한다. 여기서 오해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북으로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떨어져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악선전만 하니까 전부 그거에 속은 거다, 그래서 가서 실지 보겠다, 보고서 오겠다 하고 간 거다. 그리고 정세를 단기적으로 낙관적으로 본 거다. 그래서 어떤 동지는 한달 있다가 한달 가서 보고 듣고 오겠다고 했고 어떤 동지는 늦어도 3년내에 자유왕래가 된다고 봤다. 저는 그렇게 안봤다. 만일 정세가 순조롭게 발전해서 몇개월 또는 3년내에 자유왕래가 된다면 그때 가도 늦지 않으니까 나는 그때 가겠다 하고 떨어진 거다. 내가 북이 싫어서 안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먼저 가신 김선명선생이 저하고 옆에 방에 있었는데 전부 토의했다. 만일 북에서는 우리를 인정했으니까, 남에게 파견했다는 걸 인정했으니까 우리를 소환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한 대책도 토론했고 우리 둘이 안거니까 내적 문제인데 그래서 안가기로 했다. 그런데 최고장기수 두사람이 다 안가면 적들에게 역이용당한다. 악선전에 이용당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가라고 하니까 이 동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갔다 오겠다면서 갔다.>고 말했다.

이어서 <또 어떤 후배가 얘기하더라.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다 빠져나가면 구심점이 없어서 당분간 방황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 내가 여기 나온 목적이 뭔데. 이 땅에 미국놈뿐 아니라 일본놈, 외국놈을 외국군대를 둬서는 안된다, 이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여기 주둔하고 있는 조건에서 내가 안방을 내주고 그냥 간다는 것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남았다). 북에 가서 누구더러 미군 물러가라고 하나. 미군 물러가라고 한마디를 하더라도, 한사람을 붙들고 그것이 아니라는 걸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해야지 북에 가서 누구에게 하냐. 그래서 저는 안간 거다.>라고 밝혔다.

안선생은 현기증으로 발언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마디만 더 하겠다면서 <사람의 양심이 있다. 사람은 생명이 2가지가 있다. 정치적 생명과 생물학적 생명. 나는 인간이다.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기 위해서 여기 남았던 것이다.>라고 분명히 전했다.

참가자들은 힘차게 <동지가>를 불렀다.

추진단은 집회후 대통령실에 송환촉구입장서를 전달했다.




〈노병안학섭선생송환! 한반도평화실현! 국가보안법철폐!〉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용산집무실앞 집회

8월9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추진단)은 용산 대통령집무실앞에서 <노병안학섭선생송환! 한반도평화실현! 국가보안법철폐!> 집회를 진행했다.

먼저 참가자들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열사들을 기리며 묵념한 뒤 <임을위한행진곡>을 불렀다.

사회를 맡은 민중민주당(민중당)반미반전특별위원회위원장은 <국제법상으로도 인도적 차원으로도 안학섭선생의 즉각 송환은 합당하며 인륜에 맞는 처사이다. 통일부가 실무검토를 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다양한 국내외 언론이 안학섭선생을 인터뷰하고 있다. 내외의 뜨거운 관심은 안선생의 송환문제가 개인의 인권, 코리아반도의 평화를 위한 긴절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정치적 실리를 따지지말고 조건 없이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즉각 송환하라!>, <전쟁노병이자 전쟁포로인 안학섭선생을 즉각 송환하라!>, <제네바협약에 따라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안학섭선생을 국제협약에 따라 즉각 송환하라!>, <노병의 마지막염원이다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통일애국투사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반인권반인륜파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반민족반통일파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안학섭선생 송환하고 한반도평화 실현하자!>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추진단공동단장 이적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는 <러시아외무상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다. 이재명정권도 앞선 정권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라는 말을 했다. 김여정부부장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다. 남조선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이야기다. 남조선이 무엇을 바꿀수 있겠나. 예속의 땅, 지배의 땅, 지배의 체제에서 무엇하나 할수가 있나. 할수 있는 것이 있다면은 지금 다수의석을 지니고 있는 민주당이 국회에서 의결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대로의 이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세력들이다.>라고 짚었다.

계속해서 <어제 마침 뉴욕타임스기자가 찾아와서 앞으로 남북이 자주화되고 협력관계로 간다면 어떤 방식을 하면 좋겠냐.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는 데는 어떤 방식을 하면 좋겠냐. 그것은 당연하다. 민주당이 성의를 보여라. 이재명정권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 무엇을 보일 것인가. 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국가보안법>개폐이다. 그리고 전쟁연습을 중단해야 된다. 역사교과서 바뀌어야 한다. 지금 북침이냐 남침이냐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이어 <역사왜곡을 과감히 뜯어고치는 교과서개편이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런 정도의 수준만 보여도 조선은 성의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남쪽정부를 신뢰할수 있다. 안학섭선생님송환과 장기수선생님들송환은 남쪽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에서 결정할 일이다. 어제 통일부 국장과 과장이 와서 하는 이야기도 그랬다. 우리는 당신네들한테 바랄 것이 없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목사는 <트럼프가 결정해야 된다. 트럼프가 결정할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노력해라. 외교력을 발휘해라. 이번에 이재명대통령하고 만나는 것이 절호의 기회 아닌가. 거기서 트럼프가 딱 한마디만 하면 된다. <국가보안법>은 반인권법이다, 왜 그런 것을 가지고 있냐라고 말할수 있도록 미리 물밑작업을 해라.>라면서 <<대한민국>정부가 성의를 가지고 출발을 해야만이 대북관계가 원만히 이뤄짐을 잘 알고 있다>, <안학섭선생님은 42년4개월을 감옥살이하고 약70년을 <대한민국>국토에서, 아니면 미국이 지배하는 영토에서 투쟁하고 살아왔다. 보내드리자. 보내드리는 것이 우리의 승리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추진단공동단장 한명희전민중민주당대표는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대한민국>이 안학섭선생님에게 잘못을 범했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사상전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년동안 독방생활, 운동시간 및 치료의 제한 등 비인도적 처우를 받는 동시에 교도관들로부터 구타 당하는 등 가혹행위를 당했고, 나아가 교도소측이 동원한 폭력재소자들로부터도 전향 강요를 받으면서 고문과 구타 등을 당한 전향공작에 대해 헌법 제19조가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선생님에게 가해진 부당한 대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생님이 강조하시듯이 선생님은 전시에 인민군정복을 입고 내려온 전쟁포로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선생님을 어떻게 대했나. 전쟁포로로 제네바협약에 따라 북으로 송환하지 않고 국방경비법 <이적>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누가 이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지키고자 한 것은 오로지 조국의 자주와 통일뿐이었던 선생님의 신념을 혹독한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공작으로 짓밟고 꺽으려 한 그 무서운 죗값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선생님이 이 남쪽땅에서 하실수 있는 일은 다하셨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죽은 동지들 옆에 묻히기라도 하고 싶다는 안학섭선생님의 염원을 통일부와 이재명정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전쟁노병 안학섭, 생존한 세계최장의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선생에게 진 큰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조건을 만들어가며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안학섭선생은 통일애국투사이다. 평화와 통일의 한길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동지이기도 하다.>면서 힘차게 <동지가>를 불렀다.

지창영미군철수투쟁본부공동대표가 성명 <전쟁노병이자 전쟁포로 안학섭선생을 국제협약에 따라 즉각 송환하라!>를 낭독한 뒤 집회를 마쳤다.




민중민주당 안학섭상임고문북송추진기도회 연대

8월9일 민중민주당(민중당)은 용산집무실앞에서 미군철수운동본부가 개최한 <1141차 자주통일 시국기도회>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무기장사 안보장사 점령미군 쫒아내자!> 가로막을 펼쳤다.

이적미군철수투쟁본부공동상임대표는 <안학섭상임고문께서 북쪽으로 올라갈 때까지 안학섭상임고문북송추진기도회로 이름을 바꿔 기도회를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이어 <송환이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송환운동을 통해서 안학섭이라는 투사가 이 땅에 왔다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민족을 위해서 투쟁하다 가셨다는 것을 남기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만약 가지 못하시더라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미군추방을 함께 외치며 동지들과 함께 손잡고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결의했다.

민중민주당서울시당위원장은 <미국과 <한국>의 합동군사연습은 대조선국지전도발의 온상일 뿐>이라며 <윤석열집권이후 2023년에 123회, 2024년에 134회의 전쟁연습을 실시했다>, <제국주의세력들이 대조선국지전을 끈질기게 준비하고 도발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군철거를 하지 않고 제국주의세력을 옹호하는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는 이재명 정권은 평화세력이 될수 없다>면서 <진정한 평화와 자주는 미군철거와 보안법쳘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전쟁포로 안학섭선생 〈8월20일 직접 판문점으로 가겠다〉

8월13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추진단)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송환일정을 발표했다.

이날 전쟁포로 안학섭선생은 20일 오전10시 임진각에서 직접 걸어 판문점으로 향할 것이라고 알렸다.

추진단측은 <전쟁포로 안학섭선생님의 자기권리행사를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 전쟁포로는 본인의사만 있으면 조국으로 갈수 있으며 정부는 협조해야 하고 판문점을 관리하는 유엔사는 전쟁포로가 갈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면서 <누구도 막을수 없는 권리이지만 현실은 북미·남북관계, 정치외교적 관계를 명분으로 안선생님의 권리가 박탈 당하고 있어 우리는 오늘 중대한 결심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특히 오늘의 발표는 <정부가 발표하지 않으면 절대 조선이 알수 없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우리의 송환일정을 발표하고 조선이 이를 알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안학섭선생님의 건강이 급격하게 안좋아지고 있어 숨쉴수 있을때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명희추진단공동단장은 통일부에 보낸 통지문을 발표했다.

앞서 11일 추진단은 통일부에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통지문>을 보냈으며 안학섭선생의 판문점송환에 대한 정부의 협조를 촉구했다.

통지문에서는 법적, 외교적 근거로 포로교환협정, 정전협정, 남북기본합의서, 국제인도법·제네바제3협약을 들며 오는 20일 오전11시 판문점에서 송환할 것을 요구했다.

추진단은 통지문을 통해 △전쟁포로 안학섭선생이 2025년 8월20일(수) 오전11시 송환될 수 있도록 정부는 판문점남북연락사무소에 연락해 송환 날짜와 방식을 조율할 것 △2025년 8월20일(수) 오전11시 남측호송팀이 전쟁포로 안학섭선생을 모시고 군사분계선으로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할 것 △임진각에서 가까운 판문점 표지시점으로 북측호송팀이 합류할 것을 북측에 요구할 것 △판문점송환시 유엔사와 협의할 것 △우리의 요구사항을 공식발표할 것 등을 정부에 공식요구했다.

한공동단장은 <정세가 풀리고 통일부에서 할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안학섭선생은 올해 96세로 병원에서는 <언제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통일부에 인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먼저 나설 것을 요구해왔다. 여전히 정세가 풀리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 통일부의 입장이다. 무작정 기다릴수 없다. >면서 <지금이라도 전쟁포로로서 가신다고 하면 당연히 보내드려야 한다. 선생님이 간다고 하면 갈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8월20일 임진각에서 걸어서 판문점으로 간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수 없다. 북에서 받아준다고 하면 가는 것이다. 선생님이 전쟁포로로서 갈수 있는 권리를 끝까지 행사할 것이다. 그것을 막고 있는 유엔사가 움직일수 있도록 정부에서 외교채널을 통해서 움직여주길 다시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내외의 여러 언론에서 취재하며 송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안학섭선생즉각송환! 미군철거! 보안법철폐!〉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용산집무실앞집회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8월15일 용산 대통령집무실앞에서 <안학섭선생즉각송환! 미군철거! 보안법철폐!> 집회를 열었다.

안학섭선생이 집회에 함께 했다.

사회를 맡은 민중민주당(민중당)충남도당사무처장은 <선생님의 송환투쟁은 수많은 장기수선생님들의 목숨으로 지켜낸 민족의 존엄과 조국통일의 뜻을 계승하는 길이다. 우리는 안학섭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반드시 이 땅에 미군을 몰아내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해 미완이 아닌 완전한 해방의 새날을 앞당길 것이다.>라고 결의했다.

추진단은 <전쟁포로 안학섭노병을 즉각 송환하라!>. <국제협약에 따라 전쟁포로 안학섭을 송환하라!>, <분단원흉 전쟁화근 미군 철거하라!>, <반민족반통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민중민주당서울시당위원장은 추진단이 11일 통일부에 보낸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통지문>을 낭독했다.

추진단공동단장 이적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는 <오늘 안학섭선생께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은 일제36년 분단80년의 연결선상에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43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빼앗아가버렸다. 바로 미제다. 미제가 이 땅을 지배하면서 한 사람의 인권과, 그리고 수많은 동지들의 인권을 짓밟았다. 안학섭은 개인이 아니라 역사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안학섭은 적들에게 잡혔을 때도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데 우리는 그 의미를 둔다.>며 <안학섭을 우리가 내세우는 것은 우리민족의 정신이고 우리민족의 표상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누가 감히, 43년동안 무릎을 꿇지 않고 나는 미제를 따르지 않겠다, 미제예속국가에 굴복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할 사람이 세상 어느 천지에 있었는가.>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민주당반미반전특별위원회위원장은 <김여정부부장은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재명정권의 진짜 <희망>은 무엇인가. 남북관계의 양극단에 전쟁과 평화가 있다. 3차세계대전의 정세에서 전쟁은 <한국>전, 동아시아전이고 평화는 곧 평화적인 조국의 통일이 될 것이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전대통령이 <우리민족의 운명은 우리스스로 결정한다>고 전민족앞에서 밝힌 것과 달리 미국의 간섭을 허용하고 비핵화워킹그룹에, <착공없는착공식> 등으로 남북합의사항들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이재명대통령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줄 확실한 실천은 미군철거와 국가보안법철폐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당면해서 이재명정권은 안학섭선생님의 송환을 빠르게 이뤄내야 할 책무가 있다.>며 <고귀한 한생을 살아온 안학섭선생님의 송환길에 우리도 같이, 선생님의 말씀처럼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동행하겠다. 동지로서, 통일애국투사를 따르는 후배들로서 의리를 다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쟁포로 안학섭노병을 조국으로 보내드릴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지창영미군철수투쟁본부공동대표는 성명 <전쟁포로 안학섭노병을 즉각 송환하고 국가보안법 철폐하라!>를 발표했다.

추진단은 <동지가>를 부르며 집회를 마쳤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결의대회·행진 〈내고향 조선 가겠다〉

8월20일 오전 10시 임진강역에서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은 <전쟁포로안학섭노병즉각송환!>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어 임진강역에서 통일대교남단까지 행진했다.

이날 안학섭선생은 통일대교를 통한 판문점행을 시도했지만, 검문소앞에서 가로막혔다.

안선생은 검문소앞에서 10분간 조선을 향해 <한국>식민지에서 당한 모욕과 고통에 대해 발언했다.

통일대교남단으로 돌아온 안선생의 손엔 조선의 국기가 들려있었다.

이후 투쟁승리보고대회가 진행됐다.

결의대회에서 성명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즉각 송환하라!>를 발표했다.

〈북으로 간다, 길 비켜라〉 전쟁포로 안학섭선생 판문점조국귀환 시도

8월20일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이 직접 조국으로 가겠다면서 판문점행을 시도했으나 군당국에 의해 저지당했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송환추진단)은 10시 임진강역에서 <전쟁포로안학섭노병즉각송환!> 결의대회를 한 뒤 임진강역에서 통일대교남단까지 약1시간가량 행진했다.

안학섭선생은 거동이 불편해 차량으로 함께 행진에 참가하고 통일대교남단에서 검문소까지는 이적·한명희공동단장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이동했다.

결의대회는 민중의례, 안학섭선생과 이적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의 발언, 한명희전민중민주당대표의 성명낭독, <동지가>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사회자는 <정전협정과 제네바협약은 전쟁이 끝나면 모든 포로는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반역정권은 이 당연한 권리를 짓밟으며 한국전쟁당시 전쟁포로로 체포된 안학섭선생을 무려 42년4개월간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공작을 해대면서 인권을 말살하고 출소후 지금까지도 감시하면서 인권을 유린했다. 이것은 제네바협약위반이며 국제법을 유린한 반인륜적 범죄이다.>라면서 <현재 전쟁포로이자 노병인 안학섭선생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제3국이 아닌 판문점을 통해 즉각 송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전쟁포로 안학섭노병을 즉각 송환하라!>, <국제협약 준수하여 안학섭노병 송환하라!>, <안학섭노병을 조국으로 송환하라!>, <마지막소원이다 안학섭노병 송환하라!> 구호를 외쳤다.

안학섭선생은 <스물셋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체포되어 물경 43년간을 모질고도 험한 감옥살이를 당해야 했다. 체포당시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941부대 분대장으로서 마땅히 전쟁포로의 신분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를 잡은 그들은 정규군이라는 신분을 무시하고 이적간첩죄를 뒤집어 씌웠다.>면서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권리인 전쟁포로로서의 본국송환을 요구한다. 내 조국은 지척에 있는 조선이다. 노병 안학섭은 이제 조국에서 귀대보고를 마치고 눈을 감고 싶다.>고 밝혔다.

안선생은 전향공작에 대해 <전향공작은 56년도부터 시작됐다. 나는 전향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수모와 고문, 폭력으로 치욕과 고통의 나날을 견뎌야 했다.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진짜 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거 보면 저 사람은 고문이 뭔지 아는가.> 한다면서 <하루는 물고문을 계속 하니까 7명이 (전향서를) 쓰고 나가더라.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지 않고 자기전향서를 쓰는 걸 보면서 참 괴로웠다. 그때는 할복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나더라.>고 토로했다.

계속해서 <고문을 견딘 근원은 내가 사람인데 느들한테 져? 도둑놈들한테 질 수는 없다. 이게 기본이었고 내 양심이었고 우리 선배들이 걸어온 길 나는 왜 못걸어, 그렇게 해서 오늘에 왔다.>고 힘줘 말했다.

송환을 요구한 배경에 대해서는 <미국놈들이 물러가든 내가 여기서 죽든 끝까지 싸우자고 떨어졌는데, 제가 요즘 몸이 좋지 않아서 자주 의식을 잃는다. 내가 일생을 식민지하에서,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미제국주의시대에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갖은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서 시체까지도 식민지땅에 묻히겠구나, 이건 너무 억울하다. 다행히도 자주독립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으니.>라면서 <요즘 자꾸 응급실에 실려가서 살아 나오니까 너무 원통한 생각이 나더라. 죽어서 시체까지 식민지땅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나 북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적민통선평화교회목사는 <선생님은 아시다시피 43년의 장구한 징역살이를 할때 그것마저도 부족해 가지고 고문, 폭력, 회유, 심지어는 미녀들까지 감방안에다 잡아놓고 전향공작을 벌였다. 하지만 그것을 다 이겨내고 나온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신념 하나 때문이었다. 그 신념으로 43년 징역살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국가는 또 제2, 제3의 가해를 가했다.>면서 <포로는 언제든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길이 지금 오늘 북행이다. 가로막아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결의대회후 곧바로 행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의 구호 <전쟁포로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안학섭노병을 조국으로 송환하라!>,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국제협약에 따라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마지막소원이다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시간이 없다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송환이 평화다 안학섭노병을 송환하라!>, <생존비전향 세계최장기수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통일애국투사 안학섭선생을 송환하라!>, <안학섭노병 송환하고 한반도평화 실현하자!>가 울려 퍼졌다.

통일대교남단에 이르러 안선생이 하차해 검문소로 향하자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가 집중됐다.

일정시점부터 군사구역으로 취재가 제한됐으며 안학섭선생과 이적·한명희공동단장 3명만이 검문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안선생은 검문소앞에서 <독립된 내땅에 가려고 여기 왔다>고 밝히며, 통일대교진입을 가로막은 군·경에게 <우리땅이다. 미국놈들이 갈라놨다. 미국놈들이 관리하고 있다.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자기뱃속만 생각하지 말고 후대를 위해서 역사를 위해서 미국을 몰아내는데 합심, 협력합시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통일대교남단으로 발길을 돌린 안선생의 손에는 조선의 국기가 들려있었다.

안선생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호송돼 안정을 취했다.

이후 송환추진단은 통일대교남단에서 <투쟁승리보고대회>를 열었다.

이적공동단장은 <검문소에서는 더이상 전진이 어렵다고 그자리에 서라고 이야기했고 안학섭선생님은 약 10분간 조선을 향해 말씀하셨고 본인의 심경을 말씀하셨다. 본인은 전쟁포로이며 반드시 북으로 가야 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고 남쪽에서 수모당한 이야기들도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돌아오는 도중에 선생님은 인공기를 꺼내 들었다. 인공기를 들은 이유는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기 때문에 나를 조선으로 보내야 된다, 조선의 공민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인공기를 들고 인터뷰를 하셨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힘들어하셨지만, 기자들에게 오늘은 못들어가지만 또다시 싸워서 반드시 판문점을 향해서 제발로 당당히 걸어가겠다고 기록을 하셨다.>고 알렸다.

안선생이 준비했던 검문소앞 발언문의 대독이 이어졌다.

끝으로 참가자들은 <동지가>를 부르며 <우리의 동지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반드시 쟁취하자!>고 결의를 밝혔다.

한편, 19일 송환추진단은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북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미 송환추진단은 통일부와 군, 유엔사 측에 송환일정을 알리고 협조요청을 했다. 8월19일 통일대교 출입을 관리하는 제1보병사단 정보참모처는 송환추진단에게 <통일대교 출입은 통일부의 승인시 가능하다>고 회신했다.>면서 정부의 결단을 재차 촉구했다.

〈조국은 나의 생명〉 안학섭선생 송환투쟁심경 밝혀

820일 안학섭선생은 판문점을 통한 조국귀환을 시도했다.

안선생이 원래 검문소앞에서 발표하려던 글을 건강상 이유로 눈이 보이지 않아서 읽지 못하고 투쟁승리보고대회에서 대독했는데, 여기서 전문을 공개한다.

안학섭

조국은 나의 생명입니다.

내 생명이 시작된 곳이 조국인 것처럼

내 생명이 마치는 곳도 조국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는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뿐인 목숨을 걸어도 갈 수 없었던 조국입니다.

조국안에서 살며 조국안에서 죽음을 마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고 힘든 일인줄 몰랐습니다.

태어나보니 조국은 일제식민지였고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자 할 땐 미제식민지였습니다.

나를 품어 나를 살게 해준 조국, 그 조국의 존엄과 명예를 위한 길은 가장 영광된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선택한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길을 살게 한 조국을 단 한번도 원망해본 적이 없습니다.

조국은 나 자신이며 내가 바로 조국입니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더이상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는 오늘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니, 돌아가겠습니다.

앞길을 막는 자들이 있다고 해도 나는 또다시 목숨을 걸고 조국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조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마지막 투쟁은 어머니조국으로 돌아가는 투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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