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검은손의 선택
프랑스에서 올랑드가 대선에 당선된 건 필연이다. 사흐코지의 실정과 스캔들에 유권자들이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크게 봐서 신자유주의정권에 차이가 없다지만, 이렇게라도 정권을 바꿔야 뭔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유권자심리가 있다. 올랑드는 카리스마나 매력이 적어서 초반에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올랑드의 우향우노선에 대한 진보활동가들의 실망도 컸다. 허나 대세는 유럽재정위기를 푸는데서 전환이 필요하고 사흐코지정권에 대한 심판이 필요했기에, 중간층을 집요하게 겨냥한 올랑드는 언론의 우호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으며 집권에 성공했다.
미국에서 오바마라는 아프리카계 대통령의 등장도 마찬가지다. 2008년 9.15금융위기가 터진 조건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민주당의 정책이 상대적으로 맞다는 유권자심리가 있다. 다들 1929년부터 시작된 경제공황을 수습했다고 믿는 민주당정권의 뉴딜정책의 현대판을 기대했다. 물론 오바마는 ‘헬리콥터 벤’을 FRB의장에 임명하며 엄청난 돈을 찍어대며 위기를 수습한다. 이 돈이 보너스로 흘러가고 헤지펀드를 통해 신흥개발국가들의 주식시장을 장악하는 달러캐리가 된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역할을 잘 한 오바마의 임기를 연장시키겠는지 여부가 이제 며칠후면 드러난다.
프랑스와 미국의 선거가 단순히 유권자들의 민주적인 투표행위로만 이뤄진다고 보는 순진한 사람은 없으리라. 자본주의사회에서 선거는 돈과 언론이 좌우한다. 유권자들은 엄청난 자금과 매체들에 둘러싸여 자신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고 반드시 관철할 정치인들이 누구인지를 혼동한다. 잘못된 선거운동에 나서거나 잘못된 투표행위를 하거나 잘못된 투표거부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진행되기에 더더욱 사람들은 갈수록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그러다가 파시즘의 유혹에 넘어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전주(錢主)’, 엄청난 돈으로 정치인들과 언론들을 꼭두각시로 부리는 검은 실체가 있음을 잘 모른다.
남코리아도 비슷한데, 보수정치세력들과 보수언론들의 본질이 외세에 철저히 예속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 유권자들의 심리를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미명하에 왜곡하며 결국은 또다시 5년을 한탄과 자조 속에 살아야 하는 신세가 누구로부터 만들어진 걸 잘 모른다. 아직도 남코리아정치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파워게임속에서 이뤄진다고 믿는 순진한 안목으로는 과학적인 정세분석과 전략수립이 불가능하다. 역대의 반민주정권들이 민중항쟁으로 무너지거나 그 대통령들이 총을 맞거나 감옥에 가도 여전히 남코리아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개혁대통령들마저 철저히 통제되다가 끝내 비명에 세상을 떠난 까닭도 알지 못한다.
가령 선진당이 새누리당에 흡수통합되는 일이 양당간의 야합과 거래의 산물이라고만 본다면 단견이다. 뉴라이트가 번성하고 극우반북단체들의 발광하는 현상도 저절로 이뤄진 거라고 본다면 오산이다. 1997년 동아시아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현재의 재정위기를 그냥 위정자들의 무능이나 우리경제의 약점으로만 설명한다면 뭘 모르는 거다. 모두 남코리아의 실질적인 지배세력에 의해 철저히 계산되고 치밀히 계획된 ‘기획’과 ‘작전’의 산물이며 그 시나리오의 절정에 늘 ‘대선’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과 매체가 지지율과 선거공학으로 몰고가는 와중에 무엇이 본질이고 근원적 문제인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주체역량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 참민주와 자주통일의 세상을 앞당기겠다는 결의로 마무리돼야 한다. 민주주의·자주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세력을 강화발전시키는 방향에서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을 밀접히 결합시키는 원칙을 항상 견지해야 한다. 여전히 준비하는 시기임을 명심하고 당면과업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궁극적인 투쟁을 전망있게 맞이해 나가야 한다.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주체역량이 강화되고 그 역할이 높아지고 최종적인 승리도 앞당길 수 있다. 사회운동에서 저절로 이뤄지는 게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검은손의 선택도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조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