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를 버리고 마음을 잡아라
백지연은 매우 세련된 방송인이다. 드림웍스의 카젠버그를 만나서 “나를 기억하느냐”고 물은 뒤, 그렇다는 답이 나오자, 바로 포옹한다. 프랑스식 비쥬가 아니라 그냥 포옹이다. 이후 모든 과정은 백지연의 뜻대로 흘러간다. 그런 백지연과의 인터뷰, 첫 방송인터뷰인데도 내내 이석기당선자는 쫄지 않는다. 말도 더듬지 않고, 매우 논리적으로, 임기응변도 강하다. 백지연은 인터뷰 내내 이석기를 괴롭히더니 기분 상하지 않게 마무리한다. 살아있고 흥미로운 인터뷰다.
문제는 이석기의 인터뷰를 본 소감. 논리는 있되 감동이 없다. 왜 이석기의 인터뷰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지금 당원들과 유권자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아서일까, 5.22중앙위폭력사태 때문일까, 안타까운 분신사건을 겪은 뒤라서일까. 냉정히 이 모든 걸 접고 봐도 인터뷰의 한계는 뚜렷하다. 이석기가 “내겐 사퇴할 권리가 없다”며 “내가 아니라 당원들이 실세”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냉소만 나온다. 과연 이 인터뷰를 보고 그 진정성을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구당권파 빼고.
지금 인터넷에는 누군가의 국회의원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생명이 끝장나고 심지어 육체적 생명마저 불타야 하는가라는 탄식과 비난의 여론이 팽배하다. 이 여론을 조중동이 조작했다고 보면 정말 오판이다. 보수언론이 아니라 진보언론의 비판이 더욱 날카롭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진보언론의 비판은 ‘민중의소리’에 대한 견제도 아니고 오랫동안 벼르고벼른 보복심리도 아니다. 진보세력내의 견제심리는 좀 있을 거다. 그러나 이걸 본질로 본다면 진짜 한심한 거다. 현 사태를 정치공학적으로 대하는 한 당심과 민심의 간절한 아우성은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요즘 ‘한심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김정은제1비서가 만경대유희장에서 보도블럭사이의 잡풀을 뜯으며 한 말이 연상된다. ‘실무적인 문제이기 전에 사상관점에 대한 문제’라는 말과 함께. 지금의 상황은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문제다. 진심으로 당심과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며 그 마음을 따라 모든 기득권, 욕심을 버리며 늘 백의종군하는 자세. 이런 자세야말로 당원들과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참된 진보운동가의 면모가 아닌가. 내심 자신을 따르는 대오나 자신이 굳게 믿는 신념만을 되새기고 있을 수 있다. 허나 현실에서는 스스로 그 대오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그 신념을 손가락질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과 자기대오를 중심으로 판단을 내린 후 그에 맞게 논리를 개발하는 한, 절대로 진리에 접근할 수도 만인의 마음을 얻을 수도 없다. 소아와 대의를 구별하지 못하고 욕심과 진심을 구별하지 못하며 놔야 할 때와 잡아야 할 때를 구별하지 못하는 한, 큰일도 정치도 진보도 불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무서운 말이다. 산전수전, ‘지하전’ 다 겪었다고 하지만 세상의 가장 중요한 이치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다. 당과 운동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놓고 어느새 의원등록까지 마쳤다는 보도에 당심과 민심은 ‘한심하다’며 침을 뱉고 돌아서고 있다.
다행히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5.12폭력사태까지도 그냥 넘어갈 순 있다. ‘한대련’이라는 글자가 나오기 시작하고 민주노총이 새로운 당을 만들 수 있다고까지 한다. 이것도 무시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선자의 말대로 ‘귀한 동지’의 생명이 불타는 상황이다. 제2, 제3의 유사사례가 안나온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본인 표현처럼 ‘쿨’하게 사퇴하고 극한 상황을 종료시킬 때다. 그러면 본인도 대오도 당도 운동도 더 이상의 안타까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안철수는 20분만에 서울시장직을 내놓았고 유시민은 처음부터 비례12번이었다. 논리를 버리고 마음을 잡아라. 운동을 시작할 때의 바로 그 첫심정으로 돌아가라.
조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