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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실지 덕을 보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3일 노동신문은 기사<김덕훈 내각총리 강원도의 큰물피해복구정형을 현지요해>, <당중앙은 당원들을 믿고 돌격구령을 내렸다>, <당결정을 생명으로 간직하고>, <당성은 실천으로 검증된다>, <심장에 불을 어떻게 지폈는가>, <인민의 참된 충복으로 키워준 은혜로운 품>, <청년조직의 위력을 과시>, <실지 덕을 보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새 언제에 비낀 불굴의 정신력>, <애국의 삶은 만족을 모른다>등을 게재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김덕훈 내각총리 강원도의 큰물피해복구정형을 현지요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총리인 김덕훈동지가 강원도 김화군과 평강군의 큰물피해복구정형을 현지에서 요해하였다.

 

김덕훈동지는 김화군 읍지구 살림집건설장과 초서협동농장의 큰물피해복구현장을 돌아보았다.

 

군당위원회와 군인민위원회 일군들이 인민들에게 안정된 생활조건을 보장해줄데 대한 당중앙의 의도를 명심하고 피해지역 주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생활상애로를 풀어주며 큰물피해를 하루빨리 가시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보다 치밀하고 박력있게 벌려나갈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군민협동작전의 위력으로 살림집건설과 도로보수를 비롯한 복구공사를 다그쳐 당창건 75돐을 큰물피해복구결속의 자랑찬 성과로 맞이할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김덕훈동지는 평강군 압동축산농장과 상갑축산농장에서 일군들이 피해복구사업을 그 어떤 자연재해에도 끄떡없게 견고히 하도록 요구성을 높이며 농작물들의 생육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대책을 면밀히 세울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협의회들에서는 연관부문들이 자재보장을 제때에 따라세우고 철도수송조직을 짜고드는것과 함께 하천정리, 하수망보수를 선행시켜 태풍9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적문제들이 토의되였다.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오늘의 총진군에서 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이자

당중앙은 당원들을 믿고 돌격구령을 내렸다

당중앙의 피끓는 호소가 당원들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리고있다.

 

당 제8차대회를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노력적성과로 맞이하자!

 

혁명앞에 중대한 과업이 나설 때마다 당원들부터 소리쳐부른 우리 당중앙이 역사적인 당대회를 향한 새로운 진군로우에 돌격구령을 힘차게 내리며 또다시 뜨거운 믿음과 격려의 눈길로 수백만 당원들을 바라보고있다.조국의 운명이 판가름되던 결전의 시각 남먼저 기발들고 달려나가며 돌격로를 열어제끼고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초소들에 용약 진출하여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며 당중앙의 구상과 의도를 앞장에서 받들어온 어제날의 당원들처럼 뜻깊은 당대회를 자랑찬 성과로 맞이하기 위한 총돌격전에서 선봉투사의 영예를 남김없이 떨치기를 바라고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땅의 당원들 누구나 소중히 간직하고있으리라.

 

당창건 70돐 경축광장의 높은 연단에서 《전체 당원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모두 위대한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해 나아갑시다!》라고 당원들의 가슴마다에 숭고한 자각을 심어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절절하신 음성을.

 

그런 크나큰 믿음속에 사는 당원이라면 생각해보아야 한다.이 시각 당중앙이 전체 당원들에게 무엇을 절절히 호소하고있는가를 심장으로 새겨야 하며 거기에 실린 크나큰 믿음의 세계를 무겁게 간직해야 한다.

 

순결한 량심과 도덕의리를 지닌 당원들을 가지고있는것을 제일가는 재부로 여기시는 우리 원수님이시다.당원들을 믿을 때 그것은 불가항력이며 수백만 당원들의 심장에 불을 걸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신념으로 우리 원수님께서는 혁명앞에 가로놓인 난관을 굴함없이 헤쳐가고계신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어깨우에 실린 무거운 짐을 붉은 당원증을 품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어드리자.

 

이것이 참된 당원의 자각이고 량심이며 도덕의리이다.

 

당원의 숭고한 자각을 깊이 새겨주는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있다.

 

총진군의 나팔소리 높이 울리며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던 주체98(2009)년 2월,

 

온 나라 인민의 다함없는 축원의 마음이 물결쳐흐르던 뜻깊은 그날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설계도를 펼쳐주시며 일군들에게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오늘의 이 자리가 당회의장소는 아니다.그러나 나는 조선노동당원으로서 동무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

 

그러시면서 온갖 고난을 다 헤치며 당을 따라온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인민들을 위하여 강성대국을 꼭 일떠세우실 결심을 피력하시였다.

 

당원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우리 장군님처럼 그렇듯 순결한 량심으로 당원의 의무앞에 자신을 세워보며 살아왔는가.

 

조선노동당원으로서!

 

그 숭고한 자각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우리 장군님께서는 눈보라를 맞받아가는 혁명의 길, 신념의 길을 선택하시였고 이 길에서 붉은기를 들고나가다가 쓰러지면 후대들이 우리를 기억할것이라고 하시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눈물겨운 헌신의 자욱자욱에 발걸음을 따라세우지 못한다면 당원의 자각을 안고 산다고 말할수 없다.혁명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혁명시간에 삶의 순간순간을 잇지 못한다면 조선노동당원의 영예와 긍지에 대하여 떳떳이 말할 자격이 없다.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오늘의 총진군은 당중앙과 사상도 숨결도 발걸음도 같이하는 진짜배기충신, 실질적인 사업성과로 수령께 힘을 드리고 혁명의 전진을 떠미는 선봉투사를 요구한다.지금이야말로 1950년대의 신포향과 같은 당원들이 많아야 할 때이다.

 

포연속을 달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복구건설은 념려하지 마시라고 절절히 아뢰인 락원의 녀당원,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자동차에 피대를 걸고 쇠물을 뽑으며 전시생산을 보장한 10명 당원들의 모습은 오늘도 참된 당원들의 군상속에 력력히 빛나고있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 동무들 앞으로!》라고 웨치며 원쑤의 화점을 향해 달려나간 전화의 당원들, 강재 1만t증산을 호소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더없는 믿음으로 간직하고 《1만t의 강재증산을 당결정으로 채택합시다!》라고 주먹을 불끈 추켜들며 불같은 토로를 터치던 전후복구건설시기의 당원들…

 

전세대 당원들이 지녔던 수령에 대한 열렬한 충성심, 당정책관철에서의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적극 따라배울 때 당원의 본분을 다할수 있고 당중앙의 믿음에 보답할수 있다.

 

누구나 예술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에 나오는 염전처녀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할것이다.

 

당원들이 죽었어도 당세포결정서는 살아있다고, 전사한 당원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당결정서를 흥정할수 없다며 통강냉이 몇알로 끼니를 에워야 하는 전후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전쟁전에 채택한 당결정을 지켜 숨이 지는 순간까지 소금밭을 떠나지 않은 당원,

 

그것을 결코 역사의 갈피에 새겨진 이야기로만, 영화의 한 대목으로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그 처녀당원의 모습에 자기의 당적량심을 비추어보며 당결정을 어떻게 관철하고있는가를 심각히 총화해보아야 한다.

 

보답은 그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된 영웅적위훈만이 아니다.매일매일의 사업실적, 당정책관철을 위한 한걸음한걸음이 곧 당중앙의 믿음에 보답하는 길로 이어진다.

 

당 제8차대회까지는 불과 몇달밖에 남지 않았다.하루하루가 새롭고 한시간한시간이 소중하다.

 

당원들이여, 이 역사적인 시기에 당과 혁명앞에 지닌 영예로운 사명과 본분을 훌륭히 수행하자.혁명열, 투쟁열로 심장의 피를 끓이며 일터마다에서 전례없는 혁신을 이룩하여 자랑찬 노력적선물을 안고 당대회를 떳떳이 맞이하자.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오늘의 총진군에서 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이자

당결정을 생명으로 간직하고

승리의 꽃보라로

 

 

당에서는 지금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총공격전에로 우리 당원들을 부르고있다.

 

하다면 우리 당원들은 과연 어떤 성과를 안고 당대회를 맞이해야 하는가.

 

이 시대적물음앞에 대안의 당원들은 실천으로 대답해나섰다.

 

더 높은 생산성과로!

 

바로 이것이 당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직장에서는 당창건 75돐까지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을 위한 중요대상설비를 조립하고 이해말까지는 회양, 평강, 고성군민발전소의 여러 장치조립을 끝낼것을 당결정으로 쪼아박았다.

 

결코 헐한 과제가 아니다.그러나 우리 당원들이 있는 한 당결정은 무조건 집행될것이다.

 

나는 당결정관철을 위해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겠다.하여 내가 날리는 용접불꽃 한점한점이 그대로 당대회에 드리는 승리의 꽃보라로 되게 하겠다.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대상설비제관직장 용접공 임영식

 

 

분분초초를위훈으로

 

 

나는 어제도 이른새벽부터 농장벌에 달려나가 밤늦게까지 큰물피해를 가시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집으로 돌아왔다.정말 힘들었다.그러나 잠들수 없었다.이제 당창건 75돐까지는 며칠 남지 않았는데 하루하루가 이렇게 빨리 가니 안타깝기만 하다.

 

큰물피해를 가시고 농작물의 수확고감소를 최소화하여 우리가 손들어 채택한 당결정을 기어이 집행해야 하겠는데 시간이 모자란다.

 

이것은 나 하나만이 아니라 우리 분조, 우리 작업반 당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그래서 지금 농장원모두가 떨쳐나섰다.

 

나는 당원이라는 자각을 안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남보다 더 많은 땀을 바쳐 당결정관철을 위한 오늘의 분분초초가 그대로 알곡생산계획수행을 위한 위훈창조의 시간으로 되게 하겠다.

 

연안군 읍협동농장 제4작업반 농장원 리의순

 

 

등불

 

 

당 제7차대회가 열린 뜻깊은 해에 나는 영광스럽게도 조선노동당원이 되였다.

 

그후 주요단위들에 내려가 능력이 큰 순환비등층보이라를 설계하고 제작, 시공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풀어나간것을 비롯하여 다소나마 성과를 거두었다.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당 제8차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접한 후 나의 심장은 더욱 세차게 끓고있다.

 

돌이켜보면 당중앙은 우리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고있는가.

 

지금과 같이 경제사업에서 애로가 많을 때에는 과학기술이 등불이 되여 앞을 밝히고 발전을 선도해나가야 한다는것이 바로 당중앙의 의도이다.

 

당정책을 맨 앞장에서 결사관철해나가는 사람, 당결정관철에 한몸내대는 그런 당원이 바로 선봉투사라는 자각을 다시금 가다듬고 열배, 백배로 분발해나서겠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정신을 높이 받들고 화학공업발전에 이바지할 과학연구사업에 더 큰 박차를 가하여 당 제8차대회를 뚜렷한 결실을 안고 맞이하겠다.

 

국가과학원 열공학연구소 연구사 안복남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오늘의 총진군에서 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이자

당성은 실천으로 검증된다

상반년계획 149%로 넘쳐수행, 년간계획 94%계선 진입!

 

그저 쉽게 외울수 있는 수자가 아니다.그것은 제남탄광 6갱 차광수청년돌격대가 정초부터 벌린 결전의 순간순간과 맞바꾼것이다.

 

년간 굴진계획을 당창건 75돐전으로 완수하고 10월의 대축전장에 떳떳이 들어서리라 결의한 그들이였다.

 

그 앞장에는 언제나 당원들이 서있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체 당원들은 당의 믿음과 기대를 심장깊이 새기고 대고조의 선봉에서 오늘의 순간순간을 값높은 헌신과 위훈으로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지난 8월 5일이였다.독골지구 굴진2조가 작업하는 막장에 착암기소리가 기운차게 울리고있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펑!》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착암기를 틀어잡은 당세포위원장 김근일동무는 물론 함께 일하던 교대성원들의 초점이 한곳에 모아졌다.

 

(석수가 터졌구나.)

 

이어 착암기소리가 멎었다.순간 당원들의 얼굴에 락심한 표정이 어렸다.그러면 오늘계획은…

 

이때 누구인지 어디론가 뛰여갔다.인차 동발나무를 어깨에 멘 김근일동무의 모습이 나타났다.

 

당원들이 동발나무를 받아내렸다.

 

그들을 둘러본 당세포위원장은 흐르는 땀을 닦을새없이 호소했다.

 

《자, 전투를 벌립시다.》

 

말은 길지 않았다.작업분담은 따로 없었으나 당원들은 자기 할바를 찾았다.

 

막장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잠시도 지체할수 없었다.작업장바닥은 즉시에 죽탕이 되였다.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물구멍을 막는 동시에 죽탄으로 메워진 물도랑을 쨌다.허나 뿜어져나오는 물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한구멍을 막으면 또 옆으로 터져나왔다.누구나 죽탄속을 누비며 뛰여다녔다.당원들의 옷은 땀인지 물인지 모르게 이미 범벅이 되여버렸다.한참만에야 물이 줄기 시작하였다.긴장한 작업을 진행한 뒤였지만 누구도 한숨 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다시 막장을 뒤흔들며 착암기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날 전투소보에는 이런 글발이 나붙었다.

 

《굴진2조 하루계획 120% 수행!》

 

막장에서의 하루하루는 이런 결전의 순간순간으로 이어지고있다.

 

지난 8월 이곳 돌격대의 당원들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전원회의 결정을 크나큰 격동속에 접하였다.

 

당 제8차대회를 소집한다는 소식에 접한 순간 당원들의 심장은 세차게 끓어번졌다.

 

부름이 크면 대답도 크다.

 

당에 대한 불같은 충실성, 높은 당성을 지니고 그들은 또다시 내달리고있다.

 

당중앙의 부름이라면 산악같이 일떠서 결사관철의 투쟁기풍으로 위훈을 창조하는 이런 척후병, 이런 당원들이 그 어디에나 있어 오늘의 총진군의 발걸음소리 그리도 높은것 아니랴.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오늘의 총진군에서 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이자

심장에 불을 어떻게 지폈는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사업에서는 당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어야 합니다.》

 

불씨를 떠나 불길을 생각할수 없다.대중의 정신력을 분출시켜 혁명과업수행에로 추동하는 사상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얼마전에 있은 일을 놓고 나는 그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다.

 

화력탄이 원만히 보장되지 않아 연합기업소앞에 난관이 조성되였을 때였다.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직장앞에 맡겨진 어려운 과업을 당원들을 믿고 수행하기로 결심하고 그 준비에 품을 들이였다.

 

사상사업측면만 보더라도 위대성교양은 어떤 내용으로 일관시키며 선동활동은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겠는가 등 정치사업의 내용과 방법을 놓고 사색을 거듭하였다.

 

품들여 준비한 선동활동은 실천에서 은을 나타냈다.

 

당초급일군들이 쉴참을 리용하여 격식없이 진행한 위대성선전, 당세포별로 진행한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 《당 제8차대회를 향하여 노동당원들 앞으로!》에 대한 독보, 노래 《아 당원이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해설모임 등은 그 형식과 방법이 참신한것으로 하여 당원들의 심장을 세차게 울리였다.그날 당원들은 과감한 공격정신을 발휘하여 많은 량의 석탄을 모아들여 보이라의 가동을 보장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강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당일군들이 아무런 사전준비없이 현장에 내려가 빈구호나 웨치고 《나가라》 하고 지시나 한다면 거세찬 불길이 타오르겠는가 하는것이다.

 

이것을 놓고 우리가 찾은것이 있다.

 

당원은 그 어느 초소, 어느 단위에나 다 있다.또 당원들의 투쟁열의는 높다.그런데 당원들이 선봉적역할을 하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것은 당일군들이 그들의 심장에 어떻게 불을 다는가 하는것과 관련된다.

 

우리 당일군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당원들의 심장에 불을 지피는 불씨가 되고있는가.

 

이것이 당일군의 존재가치를 평가하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 열생산2직장 초급당위원장 김인성

 

인민의 참된 충복으로 키워준 은혜로운 품

전 전천군상업관리소 소장 정춘실동지가 받아안은 고귀한 은정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노동당시대는 절세위인들의 슬하에서 자라난 무수한 혁명가들이 인민을 정히 받들고 인민의 커가는 행복과 더불어 보람찬 삶을 빛내이는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시대이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인민들을 위하여 한몸바쳐 투쟁하는 인민의 참된 충복이 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17살 애어린 처녀시절부터 크나큰 품에 안아 극진한 정을 다해 키워주시였고 오늘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값높은 영생의 언덕에 내세워주신 전 전천군상업관리소 소장 정춘실동지,

 

나라없던 세월 두메산골 처서군의 딸로 태여난 그의 한생에 끝없이 아로새겨진 영광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드시는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만 엮어질수 있는 전설적인 서사시이며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는 조선노동당이 있기에 영원한 메아리로 울려퍼지는 우리 식 사회주의찬가이다.

 

 

인민의 충복이 태여난 품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주체102(2013)년 10월 10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조선노동당창건 68돐을 경축하는 뜻깊은 예술공연이 진행되였다.

 

이날 공연장소에서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화폭이 펼쳐졌다.우렁찬 만세의 환호를 올리는 관람자들속에서 자강도의 녀성공로자들을 알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들을 손저어 불러주시였던것이다.

 

자나깨나 못 견디게 뵙고싶던 경애하는 원수님께로 한달음에 달려가 안기며 감격의 눈물을 쏟던 그 녀성들속에 정춘실동지도 있었다.

 

환하게 웃으시며 그들 한사람한사람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저저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바를 몰라하는 녀성공로자들…

 

정춘실동지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너무도 뜻밖에 차례진 영광의 순간이여서 미처 인사말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그였다.

 

그날 그는 베개잇을 눈물로 적시며 온밤 잠들지 못하였다.경애하는 원수님의 해빛같이 환하신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려오고 일찌기 10대의 처녀시절에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뵈옵던 그날에 다시 선것만 같아 마음을 진정할길 없었다.

 

주체47(1958)년 8월 5일, 한생토록 잊지 못할 영광의 그날도 이렇게 꿈만같이 찾아왔었다.자강도인민들을 잘살게 하시려 로고의 길을 이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천군의 자그마한 상점에까지 찾아오실줄 그때 누군들 생각이나 해보았던가.

 

지난날 자강도지방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뒤떨어진 산골이였으며 이곳 인민들은 제일 어렵게 살았다.공화국이 창건된 해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농가의 구차한 살림살이에 보탬을 주시려 집주인들이 기르고있던 여섯마리의 메새를 많은 돈을 주고 사가신 이야기가 바로 자강땅에서 태여났으며 1960년대 초엽의 어느날 한 농업협동조합을 찾으신 수령님께 그곳 당위원장이 《수상님, 우리 산골사람들이 살아갈수 있도록 무슨 대책을 세워주십시오.》라고 외람된 말씀을 올린 이야기도 여기 자강땅에서 생겨났다.

 

언제나 심중에 저려오는 자강도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시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춘실동지를 처음으로 만나시기 몇시간전에 어느 한 회의를 지도하시면서 상업일군들의 역할을 높일데 대하여서도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무거운 마음을 안으시고 회의장을 나서신 길로 자강도의 여러 단위를 현지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천연합직장상점(당시)을 찾으신 때는 날이 저물기 시작한 저녁녘이였다.인민들의 살림살이에 보탬을 주는것이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점에 진렬된 상품들을 세세히 여겨보시고 상업일군들의 수고도 따뜻이 헤아려주시였다.

 

바로 그속에 17살 처녀판매원인 정춘실동지도 있었다.나이는 몇인가, 부모는 무슨 일을 하는가, 애로되는것은 없는가 하나하나 물어주시며 인민들에게 더 잘 복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일깨워주신 어버이수령님.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놓고볼 때 두메산골의 한 처녀판매원이 하는 일이란 사실 반디불같이 작은것에 불과하다.그러나 그 작은 불빛들이 합쳐지고 커져서 자강도인민들의 생활에 윤택을 주고 따뜻한 온기를 보태주기 바라시는 마음이 간절하시여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귀중한 시간을 바쳐가시며 인민을 위한 복무의 참뜻을 깊이 새겨주신것이였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나 수도 평양에서는 전국상업일군열성자대회가 열리였다.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그 대회에서 정춘실동지는 첫 토론을 하게 되였다.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주문대장을 만들어 수만명이나 되는 군내청년들의 시집, 장가가는 날자를 적어두었다가 그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다 해결해준 이야기, 《상점에 오는 손님들에게 없다는 말을 하지 말자.》, 《직장에 진출하는 가정부인들이 바늘을 들지 않게 하자.》는 결의를 다지고 자체로 상품들을 만들기도 하고 홀로 밤길도 수백번이나 걸으면서 상품들을 구해다 공급한 이야기, 그 과정에 상점이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수여받은 자랑 등 그간 사업정형을 정춘실동지는 아버지앞에 아뢰는 딸의 심정으로 토론하였다.

 

그가 토론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서려고 할 때였다.

 

《춘실동무, 이리 오오.여기 와서 앉소.》라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대회장에 울리였다.그가 잠시 주저하다가 곁에 와앉자 《춘실동무에 대하여 좀 이야기하겠소.》라고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춘실동무는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 좋은 상업일군이라고 분에 넘친 평가를 하여주시였다.상업부문에서 그의 모범을 일반화하며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기풍을 확립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석단에 앉은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에게 《나는 춘실동무를 정당원으로 받아들일것을 제기하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대회장에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울리고 경탄과 부러움에 넘친 모두의 시선이 온몸에 닿을 때까지도 정춘실동지는 눈앞의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보증으로 영광스러운 조선노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20살의 꽃나이처녀는 이제 또 얼마나 꿈만같은 행복이 다가오고있는지 미처 다 알수 없었다.

 

그해 5.1절을 맞으며 평양시경축대회가 진행될 때 동무와 같은 우리 시대의 혁신자들이 주석단에 올라가야 인민들이 좋아한다고 하시며 영광의 자리에 정춘실동지를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9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에도 그를 대표로 불러주시는 하늘같은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나날이 한계를 모르고 커지면서 그 무엇에도 비길수없이 뜨거워진 정춘실동지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어버이사랑은 《우리 가정수첩》과 깊은 연관이 있다.《우리 가정수첩》은 상점일군들이 인민을 위하여 진심으로 복무하자면 매 가정에 어떤 상품이 얼마나 요구되는가, 그들의 살림살이형편은 어떠한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알아가지고 그에 맞게 상품공급을 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관철하는 과정에 정춘실동지가 판매원들과 함께 착상하여 만든것이다.

 

주체53(1964)년 4월 몸소 그가 일하는 상점에 또다시 찾아오시여 《우리 가정수첩》이 나오게 된 경위와 그 리용실태에 대하여 자세히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판매원들은 주민들의 세간살이를 자기 집일처럼 돌보고있다고, 모든 상업일군들이 이 동무들처럼 일하면 인민들을 고르롭게 다 잘살게 할수 있다고 하시며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자신께서는 현지지도를 하다가도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기 위하여 애쓰는 일군들을 만나면 제일 기쁘다고 하시면서 언제인가 농장원들의 밥사발을 좀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제기하는 한 농촌일군을 두고서도 못내 대견해하신 우리 수령님께서 군내주민들의 살림살이를 빠짐없이 장악하여 돌보는 정춘실동지의 일본새를 놓고 얼마나 만족이 크시였으랴.

 

그로부터 얼마후 자강도에서는 강계청년발전소조업을 경축하는 강계시군중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몸소 군중대회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강도에서 주석단에 앉힐 녀성영웅이 없다고 하는데 성간군 외서중학교 교원과 전천공업품상점 2중천리마작업반장과 같은 사람들은 영웅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입니다, 영웅이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런 동무들이 영웅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정춘실동지를 또다시 시대의 단상에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춘실동지가 무랍없이 올리는 청도 나무람하지 않으시고 다 들어주시였다.공부를 못해 힘들다고 그가 말씀올리던 일을 잊지 않고계시다가 외국에 참관단의 한 성원으로 보내여 안목을 틔워주기도 하시고 전국상업일군열성자대회때 하신 약속을 지켜 전천공업품상점에 다시 오신 그날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식료품상점에도 가주셨으면 하는 그의 청을 들으시고 바쁘신 걸음을 돌려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주체80(1991)년 9월 26일 고령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천공업품상점을 또다시 찾아주신데도 감동없이 들을수 없는 사연이 있다.그 시기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길에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정춘실동지는 부업밭에서 생산한 두 이삭짜리 강냉이와 누에고치를 가지고 한달음에 달려갔다.그가 가져온 강냉이와 누에고치를 받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이삭이 얼마나 큰지 오사리가 모자란다고, 누에고치도 뽕밭 한정보에서 1t 200㎏씩 생산하였으면 대단하다고 하시면서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다심한 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시며 뜻깊은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그날 정춘실동지는 여러해전에 크게 지은 전천공업품상점에 꼭 들려주실것을 간청올리였다.부모에게 응석을 부리는 어린애심정이 되여 그것이 어떤 로고의 길로 이어질것인가를 미처 생각 못하고 올린 청이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아무렴, 가야지.인민의 충복이 부탁하는건데 꼭 가겠소.》라고 자애로운 음성으로 약속해주시였다.

 

그때 평양에서는 중요한 대회가 곧 열리게 되여있었고 외국대표단들까지 수령님을 만나뵈올 시각을 기다리고있었다.그런 바쁜 일정으로 하여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강도당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까지 지도하여주신 다음 평양으로 떠나는 렬차에 오르시게 되였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렬차에서 다시 내려서시는것이였다.영문을 몰라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전천공업품상점을 돌아볼것을 정춘실동무와 약속했는데 하마트면 잊을번 했소라고 하시면서 평양에서 기다리는 외국대표단을 강계로 데려오도록 하시였다.인민의 복무자와 하신 약속을 위해 떠나던 길도 되돌아서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가슴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이렇게 전천공업품상점을 또다시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체로 번 돈으로 군내주민세대들에 질좋은 이불과 모포를 공급한 정춘실동지와 전천군상업관리소 일군들에게 대단히 고맙다고, 정말 훌륭하고 장한 일을 하였다고 거듭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인민이 하늘처럼 귀중하시고 인민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안겨주고싶은 그 마음이 정녕 끝이 없으시기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 정춘실동지를 그처럼 기특해하시며 애지중지 보살펴주신것이였다.

 

그 위대한 어버이사랑속에서 인민의 충복으로 자라난 사람이 어찌 정춘실동지 한사람뿐이랴.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는 참다운 혁명가의 전형들을 키워 인민이라는 바다에서 영원히 빛을 뿌리도록 하신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쌓아올리신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다.

 

 

동무를 전당은 적극 지지할것이라고 하시며

 

 

주체80(1991)년 12월 당보에는 정춘실동지가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올린 편지가 실리여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5살때 올감자 다섯말에 잘사는 놈의 종살이로 팔려갔던 자기를 품에 안아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덕을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지 못한다고 하면서 정춘실동지는 편지에서 이렇게 자기 심정을 아뢰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언제나 이 정춘실에게 힘과 용기가 모자랄 때에는 힘과 용기를 주시고 지혜가 부족할 때에는 지혜를 주시며 첫걸음마를 아이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주는 어머니심정으로 보살펴주셨기에 힘든줄 모르고 일해오고있습니다.》

 

온 나라를 커다란 감동과 수령흠모의 열기로 끓어번지게 한 그의 편지에서 이 한 대목이 얼마나 하많은 사연을 안고있는가에 대하여 그때 사람들은 다 알지 못하였다.

 

하늘높이 자라 무성한 잎새를 펼친 아름드리거목우에는 사시장철 빛과 열을 주는 태양이 있듯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신 은덕을 순간도 잊지 않고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도록 정춘실동지를 걸음걸음 이끌어주신분은 우리 장군님이시였다.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일군들에게 정춘실동무는 자신께서 보증을 서서 입당시켰지만 그를 참다운 인민의 충복으로 키운것은 당중앙위원회 김정일조직비서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정춘실동지를 만나주신 그날 주민들이 요구하는 상품이 무엇인가를 제때에 알고 그것을 가져다 팔아주는것이 상업일군들의 임무라고 하시며 인민의 충복이 지녀야 할 일본새를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가정수첩》을 보아주신 날에는 사회주의상업의 좋은 본보기라고 하시면서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인민의 참된 봉사일군답게 계속 일을 잘해서 위대한 수령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릴것을 약속하자고 하시며 정춘실동지의 손을 꼭 잡아주시던 날로부터 우리 장군님께서는 그 은혜로운 손길을 언제한번 떼여놓은적이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몸소 《우리 가정수첩》을 보아주신 때로부터 20돐이 되는 주체73(1984)년 4월 24일을 맞이하면서 정춘실동지와 종업원들은 자체로 생산한 누에고치로 비단이불을 만들어 군내주민세대들에 공급할 목표를 내세우게 되였다.두해 남짓한 기간에 그 많은 량의 비단이불감을 해결할수 있는 누에고치를 생산한다는것은 사실 아름찬 과제가 아닐수 없었다.정춘실동지와 상업관리소 종업원들은 하루에도 산을 몇개씩 넘으며 뽕을 따면서 당앞에 다진 결의를 지키기 위해 결사전을 벌리였다.이슬과 찬비에 마를새없이 젖어있는 옷을 계속 입고 다니느라 몸에 물집이 생겨 운신하기조차 힘든 속에서 비내리는 뽕밭에 다시 들어설 때도 있었다.쉴새없이 떨어지는 수억만개 비방울이 모두 뽕잎으로 되여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런 기적은 바랄수 없는것이였다.

 

하지만 하늘도 이루어줄수 없는 그 소원을 헤아려 풀어주신분은 우리 장군님이시였다.인민들에게 비단이불을 공급하려고 정춘실동지와 종업원들이 그처럼 애쓰고있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전천군내 모든 세대들에 고급담요와 비단이불을 선물로 보내주신것이였다.한날한시에 큰 경사를 맞이한 전천군인민들이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부를 때 정춘실동지를 비롯한 복무자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며칠도 아니고 몇달도 아니고 기나긴 한생을 정춘실동지는 이런 사랑과 믿음속에서 살았다.최고인민회의 제6기 제1차회의가 열리게 되였을 때에는 외국에 친선참관단의 한 성원으로 가있는 정춘실동지를 데려오시려 은정어린 특별비행기를 보내주시고 그가 회의에서 읽을 토론문까지 하나하나 보살펴주시며 위대한 수령님앞에 내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0(1991)년 12월에는 평양에 올라온 정춘실동지가 생일을 맞게 되였다는것을 아시고 은정깊은 생일상까지 차려주시였다.

 

그로부터 두해가 지나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은정속에 평양에서 병치료를 받게 된 정춘실동지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담아 한자두자 쓴 편지를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올리였다.

 

《…저를 친자식처럼 맡아서 키워주시고 온 나라에 영웅으로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영상이 계속 눈앞에 떠올라 눈물만 납니다.…》

 

자그마한 가식도 없이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아뢰여올린 소박한 편지였으나 그것은 이 세상의 수백수천마디 아름다운 어휘로써도 대신할수 없는 뜨거운 경의였고 충성의 맹세였으며 축복받은 인생의 아름다운 노래였다.

 

이렇듯 자애로운 사랑과 하늘같은 믿음속에서 성장한 정춘실동지의 삶은 지난 1990년대초 위대한 장군님께서 발기하신 정춘실운동과 더불어 영광의 절정에서 빛나게 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꼭 맞는 방침이라고 하시면서 적극 지지해주신 이 운동이 발단된 당시로 말하면 동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수십년간 존재하여온 사회주의가 련이어 무너진 시기였다.행성의 곳곳에서 인민이라는 말이 점차 사라져가던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발기하신 정춘실운동은 조선은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킬것이라는, 조선노동당은 영원히 인민과 운명을 함께 할것이라는 우리 당의 립장에 대한 엄숙한 천명과도 같았다.반동과 배신이 몰아온 검은구름이 인류의 머리우에 무겁게 드리우고 세계의 초점이 조선의 선택에로 집중되고있던 때에 우리 당의 립장이 다시한번 힘있게 표명되는 대중운동의 전형으로 상업일군에 불과한 자기를 내세워주시였으니 정춘실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대해같은 믿음에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우리 인민이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피눈물의 해에 정춘실운동선구자대회를 열도록 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회에 참가했던 정춘실동지가 불타는 맹세를 담아 삼가 편지를 올렸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친필서한을 보내주시였다.

 

《나는 동무를 믿습니다.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나라와 인민의 충복으로 사업하고있는 동무를 전당은 적극 지지할것입니다

 

1994.12.14

 

김 정 일 》

 

하늘처럼 믿고 살아온 위대한 수령님을 잃고 피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찾고 부르던 정춘실동지에게 있어서 위대한 장군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은 정녕 단 한시라도 떨어져서는 삶을 이어갈수 없는 은혜로운 생명소였다.

 

주체96(2007)년 8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영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전천군상업관리소를 또다시 찾으시여 정춘실동지를 만나주시였다.삼복철강행군길을 이어가시느라 겹쌓인 피로는 그 얼마이시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그의 건강부터 념려해주시면서 그간 해놓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과 당의 영도업적을 길이 빛내이려고 정성다해 일떠세운 혁명사적비를 보아주시며 형식도 좋고 내용도 좋다고 치하해주시고 전천공업품상점의 매대들을 돌아보시면서는 소장동무가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애를 쓰고있다는것이 알린다고, 사회주의의 본태가 살아있다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날 정춘실동지에게 열렬한 애국자, 불굴의 녀성혁명가, 참된 인민의 충복이라는 값높은 평가를 안겨주시였다.한생 베풀어주신 사랑과 믿음은 산처럼 높고높건만 비단우에 꽃수를 덧놓아주시듯, 아름답게 활짝 피우신 꽃나무에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지우시듯 하늘같은 은정을 주고 또 주시는 어버이장군님.

 

노동당시대가 정춘실동지와 같은 혁명가들이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의 삶을 구가하는 광활한 무대라면 그 아름다운 자욱자욱들을 비쳐주는 눈부신 빛발은 이렇듯 위대하신 어버이의 사랑과 믿음이였다.

 

 

충복의 삶은 영원히 빛난다

 

 

정춘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못다한 충성까지 합쳐 경애하는 원수님을 더 잘 받들어모시려던 소원을 채 이루지 못하고 주체104(2015)년 7월 7일 우리곁을 떠나갔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정춘실동지가 서거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못내 애석해하시면서 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애국렬사릉에 그의 유해를 안치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그리고 정춘실동지의 장례식을 그의 한생이 흘러간 전천군에서 진행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과 우리 당의 뜻을 받들어 애오라지 인민을 위해 헌신해온 충복을 맞이하는 전천군사람들의 마음은 뜨거웠다.둘러보면 크고작은 산봉우리밖에 눈에 차는것이 별로 없는 자그마한 산간벽촌에서 그처럼 절세위인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우리 당과 국가의 역사에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긴 영웅이 배출되였다는것은 실로 가슴벅찬 일이 아닐수 없었다.

 

어린시절 제비다리같이 가냘픈 자기의 두다리를 감싸줄 온전한 치마 한벌 줄수 없었던 그 고장에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인민의 행복을 주렁지우려 정춘실동지는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였다.심한 호흡부전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수 없는 상태에서 평양에 있는 큰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였을 때 정춘실동지는 부축하는 사람들을 물리치며 《나는 못 간다.난 전천땅을 못 떠난다!》고 소리치다가 의식을 잃었다.

 

일생을 같이하여온 남편도 한해전에 세상을 떠나고 당의 배려로 평양에서 대학을 다닌 자식들도 슬하를 떠난지 오래되였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기어코 전천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데는 사연이 있다.

 

주체80(1991)년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만나주신 자리에서 지난 기간 우리 일군들이 정춘실동무가 일을 잘한다고 하면서 간부로 등용하여 평양으로 소환하겠다고 하는것을 자신께서 그만두게 하였다고 하시면서 정춘실동무는 그냥 전천군에 있으면서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잘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이 교시를 영원히 전천군인민들이 사랑하는 충복으로 살기를 바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당부로 새겨안은 정춘실동지였다.하기에 그는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올린 편지에서도 자기의 소원은 병원이나 료양소가 아니라 인민의 충복답게 일하다 일터에서 숨지는것이라고 진정을 아뢰였다.

 

전천땅 그 어디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었던가.한 손님이 요구하는 상품을 구입하러 하루밤에 산짐승들이 어슬렁거리는 80리길도 서슴없이 다녀오던 처녀시절의 모습이 그 땅에 간직되여있고 판매원들과 함께 집집의 문을 두드리며 주민들의 생활에 부족되는것은 무엇인가, 새로 더 차려줄 살림도구들은 어떤것인가를 《우리 가정수첩》에 또박또박 적어가던 정깊은 얼굴도 그 땅에 속속들이 어려있다.

 

한번 외우기만 해보아도 우리 식 사회주의의 참모습이 후덥게 안겨오는 《우리 가정수첩》은 정춘실동지가 위대한 수령님들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창조한 사회주의상업의 대발명이고 영원한 본보기이다.매 세대 가족성원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직장직위와 함께 그들의 세간살이실태가 자세히 적혀있고 돌생일, 결혼식을 비롯한 의의있는 날들과 월수입상태, 앞으로 어떤 집세간을 갖추어줄것인가를 타산한 계획까지 반영된 그 수첩을 보면 봉사구역안의 매 가정의 현재 살림살이형편과 생활향상계획을 환히 꿰들수 있었다.주민들의 상품수요를 충족시키는것은 물론 인민생활을 고르로우면서도 계획적으로 높일수 있게 하는 《우리 가정수첩》은 당정책을 진심으로 받드는 충신, 인민을 위하여서는 그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참된 충복들만이 착상할수 있고 스스로 떠맡아 끝까지 지켜갈수 있는 멸사복무의 기록장이다.

 

주체68(1979)년 10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회의를 지도하시면서 자강도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서 뽕나무를 많이 심어 누에고치생산을 늘일데 대하여 다시금 간곡히 교시하시였다.그 회의에 참가하여 자강도인민들의 생활문제때문에 그토록 심려하시는 수령님의 교시를 눈물속에 받아안은 정춘실동지는 회의장을 나서는 길로 뽕나무를 잘 키우는 어느 한 농장으로 달려갔다.농업부문 일군도 아니고 경제지도일군도 아닌 상업일군이 제일먼저 달려온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그곳 농장 일군들에게 정춘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는 일은 인민의 봉사자들인 우리 상업부문 일군들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말해주었다.

 

애써 마련한 뽕나무모를 화차에 싣고 온 그가 종업원들과 함께 뽕나무밭으로 개간한것이 전천군 읍에서 시오리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장풍덕이다.옛날부터 바람이 잦을새없다 하여 장풍덕이라 불리워온 그곳에 그해따라 눈이 얼마나 많이 왔던지 상품공급사업밖에 해본것이 없는 상업일군들을 데리고 무릎치는 눈을 헤치며 개간전투를 벌리자니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새벽부터 밤늦도록 종업원들과 함께 잡관목을 베여버리고 뿌리를 들추어내며 개간작업을 하고 밤에는 또 밤대로 뽕나무기르기, 누에치기와 관련한 기술학습을 하느라 정춘실동지는 이를 악물고 일하였다.그런 간난신고끝에 첫해에 개간한 5정보의 땅이 후에는 수십정보로까지 늘어났다.여기에서 해마다 뽕나무도 키우고 정보당 12t이상씩 강냉이도 생산하여 군내인민들의 생활에 보탬하였으며 나라살림에도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일년내내 수수한 작업복차림으로 거름을 나르고 수십년전 찬비를 맞으시며 자기들의 상점을 찾아주시였던 어버이수령님을 생각하며 폭우속에서도 밭머리를 떠나지 못하던 정춘실동지를 겉모습만 보고서는 누구도 그가 김일성훈장수훈자이며 2중노력영웅,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고 선뜻 믿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무에서 나오는 당으로 사탕을 만들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 온 산판을 샅샅이 훑으며 뼈심을 들여 얻어낸 당으로 여러가지 식료품을 생산하여 인민들이 맛보도록 하였고 전군중적운동으로 외화를 많이 벌어 인민생활을 향상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면 난생처음 해보는 해리서, 은흑색여우사육에도 대담하게 달라붙어 기어이 성공시키였다.

 

당정책이 열가지이건, 백가지이건 끝까지 이악하게 관철하면서 정춘실동지가 이렇게 인민들의 생활을 돌보고있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는 참다운 인민의 충복이고 진정한 공산주의자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어느해 11월 당, 국가, 경제지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실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춘실동지에 대한 기사가 한면이나 되게 실린 신문을 전체 참가자들앞에서 독보하게 하시고 신문에 실린 기사내용은 그가 해놓은 일의 몇분의 1도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그와 같은 인민의 충복이 매개 군에 한명씩만 있어도 정말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매개 군에 그와 같은 인민의 충복이 한명씩만 있으면 인민생활문제가 적지 않게 풀릴수 있을것입니다.그와 같이 일 잘하는 일군이 한 200명 있으면 나라의 모든 일이 잘될것이며 사회주의건설도 더욱 앞당겨질것입니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정춘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키워주신 조선노동당원답게, 우리 당이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인민의 충복답게 맹세와 실천을 일치시키였다.나라가 준엄한 시련을 겪던 고난의 시기에도 변함없이 《우리 가정수첩》에 의한 봉사활동을 벌려온 그를 치하하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전사, 제자의 자세와 립장은 정춘실동무와 같이 시작과 끝이 한결같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정춘실동지가 전천군인민들과 영결하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은정속에 애국렬사릉으로 향하던 길, 그것은 진정 떳떳한 전사의 길이였다.인민에게 한생의 피와 땀, 넋과 량심을 깡그리 바치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 우리 당의 품속에 영원히 안긴 혁명가의 행복한 길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인민은 곧 위대한 수령님이시였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으며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힘들 때마다 품속에서 소중히 꺼내보던 수령님의 존함을 입당보증인란에 정중히 모신 당원증이 정춘실동지에게는 곧 인민의 얼굴이였고 장군님을 모시고싶은 간절한 소원안고 몸에 침대가 꽂힌것도 잊은채 오래도록 서있던 눈보라길이 그에게는 인민에게로 닿는 길이였다.《장군님 뵙고싶어 죽을번 했습니다.》라고 산같이 쌓아온 그리움을 터치며 몸이 불편하던것이 어떤가에 대하여 물어보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지금은 일없다고 다리를 들어 힘차게 굴러보이던 그 순결한 마음, 운명하기 며칠전까지도 일터로 향하던 그 백옥같은 진정이 한생 인민의 행복을 가꾸어온 정춘실동지의 신념이였다.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드시는 또 한분의 절세위인을 높이 모신것은 우리 인민과 함께 정춘실동지와 같은 충복들이 받아안은 최상최대의 행운이고 영광이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안겨주시던 사랑을 이어주시며 몸소 정춘실동지가 삼가 올린 편지에 은정어린 친필서한도 보내주시고 피눈물의 12월에 일흔번째 생일을 맞이한 그를 잊지 않고계시다가 은정어린 생일상도 보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이께서 높이 추켜드신 인민대중제일주의의 기치는 그대로 위대한 수령님들을 따라 인민의 충복들이 걸어온 길에 얹어주시는 숭고한 경의이고 그이께서 앞장에서 헤쳐가시는 위대한 멸사복무의 려정우에는 참다운 애국자, 혁명가들의 대오가 더욱 무성하게 자라나고있다.

 

인민이라는 성스러운 그 이름과 더불어 조선노동당이 영원하듯이 위대한 인민의 태양이 빛나는 내 나라의 무궁번영속에서 혁명가의 빛나는 전형-인민의 충복들은 영생할 것이다.

 

거듭되는 자연의 광란으로부터 인민의 생명재산을 지키고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자

청년조직의 위력을 과시

황해북도청년동맹위원회에서 은파군 대청리일대를 비롯하여 큰물피해를 입은 지역들에 대한 복구사업에서 청년들이 한몫 단단히 하도록 하는데 힘을 집중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동맹조직들을 강화하고 청년들을 교양하는 사업의 성과여부는 청년동맹일군들의 역할에 달려있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은파군 대청리일대를 돌아보시며 큰물피해를 입은 인민들의 생활을 안착시키는 문제로부터 큰물피해복구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소식에 접한 도청년동맹일군들은 현지로 달려나갔다.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자애로운 풍모를 심장깊이 새기며 그들은 큰물피해복구에서 청년조직의 전투력을 힘있게 떨쳐갈 결의를 다지였다.

 

도청년동맹위원회 일군들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사랑에 충성으로 보답할 일념에 넘쳐있는 리의 청년들의 비상한 열의에 맞게 그들을 힘있게 고무추동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들었다.

 

큰물피해복구가 동맹조직들의 전투력을 더욱 높이고 청년들을 사상정신적으로 보다 철저하게 준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되게 하자.

 

위원회에서는 이런 결심밑에 그를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들었다.

 

도청년동맹위원회에서는 대청리초급청년동맹조직과 그곳 청년들을 불러일으키는 사업에 힘을 집중하였다.

 

일군들은 리초급청년동맹위원회의 사업정형을 깊이 요해한데 기초하여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현지말씀관철에서 쇠소리나는 청년조직의 위용을 떨치도록 도와주는 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하였다.

 

우선 대청리 피해지역에 아로새겨진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현지지도사적을 놓고 위대성교양의 열풍을 세차게 일으키도록 하였다.

 

리초급청년동맹조직이 사상교양단체로서의 위력을 떨치는 가운데 리안의 청년들이 산악같이 떨쳐나섰다.그들은 낮에는 농작물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 밤에는 밤대로 제방보수공사장에 나가 야간돌격대활동을 벌리였다.

 

군안의 많은 청년들도 돌격대를 뭇고 제방보수공사에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대청리일대의 피해복구전투장들이 청년판으로 들끓었다.

 

도청년동맹위원회에서는 그들의 소행을 통한 긍정감화교양의 불길을 지펴올리고있다.

 

위원회에서는 여러 계기를 통하여 대청리 청년들을 비롯한 은파군안의 청년들속에서 발현되는 긍정적인 소행을 제때에 통보해주면서 도안의 각급 청년동맹조직들이 청년들을 큰물피해복구에로 적극 추동하도록 하고있다.

 

도청년동맹위원회에서는 큰물피해복구를 통하여 동맹조직들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하고 당창건 75돐과 당 제8차대회를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노력적성과로 맞이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에 계속 박차를 가하고있다.

 

실지 덕을 보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지금 어디를 가보나 종업원들을 위한 후방기지며 문화후생시설들이 있다.그러나 그 창조물들에서 종업원들이 얼마만한 덕을 보는가 하는데서는 차이가 있다.

 

무엇때문인가.봉화화학공장 초급당위원회 일군들의 사업기풍과 일본새를 보면 그것을 알수 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높은 혁명성과 창조성, 무한한 헌신성을 발휘하며 인민생활과 관련된 한가지 일을 하여도 뼈심을 들여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내밀어 훌륭한 결실을 가져오고 인민들이 실지로 덕을 볼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초급당위원회일군들의 사업기풍에서 좋은 점은 우선 종업원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일판을 통이 크게 벌리고있는것이다.

 

몇해전 초급당위원장은 원래 있던 축사를 헐어버리고 수백마리의 돼지와 닭, 오리를 기를수 있는 축산기지를 통이 크게 건설하자는 안을 제기하였다.

 

후방부문 일군들은 놀라와했다.축산을 전문으로 해왔다는 부업작업반의 초급일군들도 그랬다.

 

일부 일군들은 토대도 빈약한데 이미 있는 축산기지를 잘 운영하여 축산물생산을 늘인 다음에 보아가면서 일판을 크게 벌리는것이 좋을것 같다고들 했다.

 

초급당일군은 그들에게 소규모적인 방법으로는 종업원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줄수 없다, 대담하고 통이 크게 일판을 벌려 생산물을 늘여야 그만큼 종업원들에게 차례지는 몫도 클것이 아닌가고 하였다.그러면서 축산기지를 어느 위치에 건설하며 한두해사이에 그 덕을 보게 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방도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진지한 토의끝에 축산물생산과 남새생산을 대대적으로 할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고 통이 큰 작전이 펼쳐졌다.

 

건설현장에서 살다싶이 하면서 후방부문 일군들과 종업원들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는 초급당일군들의 화선식정치사업은 큰 은을 내기 시작하였다.하루빨리 건설을 다그쳐 끝내고 더 많은 고기와 알을 생산하여 종업원들에게 보장하기 위해 앞채를 메고 뛰는 초급당일군들의 뒤를 따라 돌격대원들이 현장에서 헌신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갔다.

 

결국 그들은 단 몇달사이에 초급당위원회 결정서에 반영한대로 한해에 수십t의 고기와 수십만개의 닭알을 생산할수 있는 축산물생산기지와 수백t의 갖가지 남새를 생산할수 있는 튼튼한 남새생산기지도 꾸려놓게 되였다.

 

무슨 일을 한번 시작하면 종업원들이 실지 덕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내미는것은 초급당일군들의 사업기풍에서 찾아보게 되는 또 하나의 좋은 점이다.

 

부업작업반에서는 축산물생산기지와 남새생산기지에서 생산한 고기와 알 그리고 신선한 남새를 훌륭히 꾸려진 영양제식당에 매일 정상적으로 보내주고있는데 그 량은 날을 따라 늘어나고있다.지금은 종업원들의 가정세대들에까지 공급하고있다.바로 여기에는 종업원들이 실지 덕을 볼수 있게 후방사업을 근기있게 내밀고있는 초급당일군들의 일본새가 그대로 비껴있다.

 

그뿐이 아니다.정양소와 휴양소를 번듯하게 꾸려놓고 여기에서도 축산물생산과 남새생산을 늘여 그 덕을 보게 하였다.탁아소를 개건하고 직장들에 목욕탕을 잘 꾸려놓았다.그리고 종업원들의 가정세대들에 땔감을 정상적으로 공급하고있다.

 

하기에 공장을 찾는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사회주의본태가 살아있는 공장이라고.

 

이곳 초급당위원회 일군들의 실천과정을 통해 무엇을 알수 있는가.

 

대담하고 통이 큰 목표를 세우고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내밀어 후방토대를 마련해놓을 때 종업원들이 실지 그 덕을 볼수 있게 된다는것이다.

 

새 언제에 비낀 불굴의 정신력

당중앙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정면돌파전을 과감히 벌리고있는 우리 인민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이 신념과 의지는 그 어떤 난관도 이겨내는 불가항력적인 힘을 낳고있다.

 

평안남도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불굴의 정신력으로 청천강반에 새 언제를 번듯하게 건설하였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원들과 근로자들모두가 당의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을 깊이 인식하고 결사관철하는 당정책의 견결한 옹호자, 철저한 관철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얼마전 청천강-평남관개물길의 시작점이라고 할수 있는 언제건설장은 앙양된 분위기로 들끓었다.평안남도의 도, 시, 군일군들과 근로자들이 토언제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나왔던것이다.굴착기와 삽차, 화물자동차를 비롯한 강력한 기계화수단들도 집중적으로 동원되였다.

 

사실 언제건설은 청천강-평남관개물길건설 평안남도려단에서 맡은 과업이였다.지난 기간 려단은 물과의 치렬한 격전을 벌리면서 청천강을 가로막는 콩크리트언제건축공사를 끝냈다.

 

이 구조물과 련결하여 토언제를 또 쌓아야 하였다.수백m의 길이에 10여m의 높이를 가진 이 언제는 청천강물이 이미 건설한 언제를 에도는것을 막고 새 물길에 흘러들게 하기 위해 쌓는것이였다.

 

물길건설을 빨리 완공하느냐 마느냐가 이 공사에 크게 달려있었다.

 

공사량은 매우 방대하였다.하지만 려단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은 든든한 배심을 가지고 중심강토기초굴착부터 완강하게 해나갔다.

 

기일을 앞당기는데 모든것을 지향시킨 려단에서는 현장지휘부와 해당 부문 일군들,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방조밑에 많은 노력과 자재, 시간을 절약할수 있는 혁신적인 공법을 받아들이였다.

 

굴착을 한 다음 기초구뎅이에 진흙을 다져넣어야 했다.그런데 여기에 물이 찬것이 문제였다.

 

대원들은 물을 다 퍼낼 때까지 기다릴수 없었다.

 

물이 두려워 조국의 재부를 창조하는 길에서 순간이나마 주저한다면 우리를 어찌 청천강용사라고 하랴.

 

대원들은 물속에 서슴없이 뛰여들었다.

 

이처럼 불굴의 정신력으로 언제건설을 본격적으로 밀고나갈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청천강용사들이 결사관철의 기상을 떨치며 총돌격전을 벌리고있는 사실을 알게 된 평안남도일군들과 근로자들의 가슴가슴은 지원열기로 더욱 끓어번지였다.

 

열두삼천리벌에 생명수를 보장하는 이 물길건설을 하루빨리 완공하는데서 우리 도가 응당 앞장에 서야 한다.

 

도당위원회에서는 력량과 수단을 집중하여 언제건설을 최단기간에 끝내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박력있게 벌리였다.

 

이렇게 되여 도, 시, 군책임일군들이 앞장에서 현지로 나와 지휘부들을 전개하였으며 도안의 근로자들, 기계수단들이 공사에 진입되였던것이다.

 

공사장의 곳곳에는 호소성이 강한 글발이 새겨진 직관판들이 게시되고 붉은 기발들이 휘날리였다.

 

도에서는 대중의 앙양된 열의에 맞게 단계별사회주의경쟁을 조직하고 총화평가사업을 실속있게 하였다.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는 속에 시, 군들에서 경쟁적으로 언제를 쌓아갔다.

 

성천군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공사에서 본보기를 창조하며 앞서나갔다.은산군에서는 중기계들을 언제건설장에 집중시키고 가동률을 높여 맡은 과제를 제기일에 끝냈다.개천시, 평성시, 안주시, 청남구의 일군들과 근로자들도 분발해나섰다.

 

회창군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작업량이 제일 많은 구간을 맡았지만 조건타발이 없이 백배의 마력을 내여 공사를 책임적으로 해나갔다.

 

남달리 불리한 구간을 맡은 맹산군과 문덕군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오직 자기 힘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립장에서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여 공사를 결속하였다.

 

륜전기재들이 켠 조명등의 불빛으로 하여 밤이면 불야경이 펼쳐졌던 공사장, 여기서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비가 올 때에도 작업이 중단되지 않았다.운전사들은 좀 에돌면 평탄한 길이 있었지만 1분1초라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청천강을 헤가르면서 운행길을 달리였다.

 

밤낮이 따로 없는 백열전을 벌린 일군들과 근로자들, 돌격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공사를 몇달이나 앞당겨 끝내는 혁신이 창조되였다.

 

애국의 삶은 만족을 모른다

우리의 주인공은 뜨거운 열을 내뿜는 로앞에서 쇠물을 끓이는 용해공도 아니고 철생산에 필요한 광석을 캐내는 광부도 아니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 석회석분광산 기계화소대장인 리만길동무,

 

낡은 굴착기들을 살려냄으로써 나라의 철강재생산에 크게 이바지한 그를 두고 황철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참된 애국자라고 사랑을 담아 부르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리만길동무가 채광작업의 기계화수준을 높일것을 결심한것은 4년전이였다.

 

당시 광산에서는 철생산원료의 하나인 석회석생산을 늘이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고있었다.

 

철강재생산의 주체화, 현대화가 실현되여 하루쇠물생산량이 종전보다 훨씬 늘어났던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새 기계설비들을 사올 형편도 못되였다.광산의 설비자재사업을 담당한 리만길동무는 석회석생산에 필요한 기계설비들을 꽝꽝 대주지 못하는것이 마치 자기 잘못인것만 같아 하루하루를 자책과 안타까움속에 보냈다.

 

(당에서는 별로 한 일도 없는 나를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는데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한 일이 무엇인가?)

 

30여년전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산에 배치받은 그는 한때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이 없이 일했었다.사실 그의 꿈은 황철의 이름난 용해공이 되는것이였다.

 

한번은 그가 자기의 이런 속생각을 광산의 오랜 채광공에게 내비친적이 있었다.

 

《용해공이 돼야만 위훈을 세운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네.우리 채광공들은 나라의 강철기둥을 고이는 주추돌이라는 자각을 안고 일한다네.》

 

강철기둥을 고이는 주추돌!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수록 리만길동무에게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철생산을 위하여 묵묵히 한생을 바쳐가는 이들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돋보였다.

 

(나도 한생을 이들처럼 살리라!)

 

그후 그는 광산의 전기기계수리작업반에서 이악하게 일하였다.그 나날에 기술기능이 높아져 웬만한 전기설비들은 물론 운반설비들도 자체로 척척 수리해내여 사람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전기기계수리작업반 반장으로, 광산설비자재부원으로 철생산에 묵묵히 헌신의 땀방울을 바쳐온 그를 당에서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 값높은 이 부름을 불러볼수록 리만길동무는 철강재생산에 바친 자신의 땀방울이 적게만 생각되였다.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 이바지했다고 자부하기 전에 순간순간 애국열로 심장을 불태우는것이 진정한 애국자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때부터 그는 채광작업의 기계화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도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지난해 어느날 사업상용무로 어느 한 단위에 출장을 갔던 리만길동무는 그곳에 사장되여있는 한대의 낡은 유압식굴착기를 보게 되였다.

 

비록 일부 부분품들이 파손되긴 하였지만 유압장치를 비롯한 주요부분품들은 잘 손질하면 꽤 쓸것 같았다.그의 머리속에는 유압식굴착기를 전기로 움직일수 있게 개조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번개치듯 떠올랐다.

 

출장지에서 돌아와 기술문헌들을 깊이 연구해보니 가능성이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하루빨리 굴착기를 살려냄으로써 석회석생산을 늘일 불같은 결심이 바위처럼 들어앉았다.

 

얼마후 굴착기는 광산의 전기기계수리작업반에 옮겨졌다.그때 설비를 본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그만큼 주행장치와 작업장치를 비롯하여 굴착기의 요소요소가 다 낡았던것이다.사람들은 이것을 원상그대로 살려낸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리만길동무는 배심을 가지고 굴착기수리에 달라붙었다.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굴착기의 부분품들을 하나하나 해체하면서 동작원리를 파악하느라 무진 애를 썼고 수리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를 마련하기 위해 때식조차 잊고 뛰여다니였다.

 

이런 그에게 있어서 제일 안타까운것은 유압장치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것이였다.리만길동무는 유압설비전문가들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배우는 한편 수백리 떨어진 어느 한 대학에 부탁하여 유압장치와 관련한 도서를 얻어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리만길동무가 입술이 터갈라지고 눈에 피발이 선채 밤이 퍽 깊어서야 집에 들어선적이 있었다.병으로 사망한 안해를 대신하여 집살림을 도맡아하던 누이가 기름에 어지러워지고 쇠붙이에 찢겨진 그의 험한 옷차림을 보고 조용히 돌아앉아 눈굽을 찍었다.

 

집살림을 위한들 저렇게 극성이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진 누이가 빨래감을 걷어안으며 나직이 말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몸이야 좀 돌보면서 일해야지.》

 

《누님, 고마와요.그러나 몸이 열쪼각이 난대도 굴착기를 살려내서 석회석만 꽝꽝 생산할수 있다면 난 더 바랄게 없어요.》

 

한생을 초석처럼 나라의 강철기둥을 떠받들려는 고결한 마음, 바로 그 진정에 의해 전혀 살릴 가망이 없다고 하던 굴착기는 새것처럼 개조되여 생산의 동음을 힘차게 울리게 되였다.연합기업소에서는 설비개조에 적극 기여한 그를 기계화소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때로부터 몇달후 광산은 상반년도생산계획을 지난 시기에 비해 훨씬 앞당겨 수행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리만길동무가 강철생산을 위해 바친 30여년간에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그러나 보다 소중한것은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헌신하는 그의 애국적인 인생관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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