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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광주의 전국화

1979년. 그 운명의 1979년을 박근혜만큼 되새겨보는 사람이 있을까싶다. 그해 민중은 10월항쟁(부마항쟁)으로 박정희<정권>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그러자 박정희는 마지막수단으로 계엄령을 실시했고 더 큰 저항을 맞았다. 결국 미국은 친미주구 김재규를 시켜 박정희를 끝장내고 다른한편으로 키워놓은 전두환일당으로 계엄정국을 이끌게 했다. 박근혜는 계엄의 후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 

민중은 결코 전두환의 계엄령에 굴하지않았다. 바로 1980년 5월항쟁(광주항쟁)이다. 첫번째항쟁은 개혁을 바란 대중항쟁이었지만 두번째항쟁은 개혁을 넘어선 민중항쟁이었다. 개혁을 넘어서 혁명으로 나아간 이유는 무장항쟁이었다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사회에서 무장항쟁이 어떻게 개혁을 위한 항쟁이겠는가. 혁명에서도 가장 도수높은 혁명을 위한 항쟁이다. 역사적으로 4.3항쟁도 그랬고 여순항쟁도 그랬다. 계급투쟁의 최고형태다. 

광주무장항쟁은 좌절됐다. 광주를 섬으로 만들어버리고 망국적 지역감정과 무자비한 살륙전으로 군사파쇼세력은 혁명을 좌절시키는데 성공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과연 미국이 항공모함까지 동원하며 이를 배후조종하고 전폭적으로 지지지원하지않았다면 어땠을까 연구해봐야 한다. 분명한건 지금의 코리아반도상황은 그때와 정반대라는거다. 전쟁이 벌어지면 양측이 될수밖에 없는 북과 미의 전쟁역량대비에서 상전벽해가 이뤄져있기 때문이다. 

광주항쟁은 6월항쟁으로 이어지면 결국 승리했다. 전두환·노태우군사통치를 끝장내고 다시는 계엄·쿠데타가 불가능한 시대를 열어놓았다. 헌법에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없애고 국회과반으로 계엄해제를 명하게 만들었다. 박근혜가 아무리 군사파쇼통치를 계승하며 마지막발악으로 뭐든 저지를 부류에 박정희를 빼닮았다 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혁명광주의 전국화가 이뤄지며 개혁정세가 아니라 혁명정세로 비약하게 된다. 미국이 바라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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