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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자

3일 노동신문은 기사<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자>, <백두의 혁명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갈 계승자들의 대오>, <당의 손길아래 자라난 미더운 새 세대>, <수령과 호위전사>, <당사상전선의 전초병-모범선동원들>, <전군중적으로 더욱 활발히>, <경험교환운동을 방법론있게>, <인재는 나라의 귀중한 재부>,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이 안아온 창조의 열매>등을 게재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사설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자

우리 공화국은 위대한 혁명정신과 전통의 빛나는 계승속에 승승장구하는 사회주의국가이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제6차 전국노병대회에서 하신 축하연설에서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자!》는 전투적구호를 제시하시였다.이 구호는 전승세대의 영웅적인 삶을 가장 값높이 빛내여주는 우리 당의 뜨거운 사랑과 존경의 결정체이며 우리 인민을 새로운 위훈창조에로 고무추동하는 전투적기치이다.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 인민군장병들과 청년학생들은 구호의 참뜻을 심장에 새기고 실천활동에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우리 조국을 영원한 승리의 나라, 기적의 나라로 빛내여나가야 한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건설의 전구마다에서 자랑찬 승전고를 힘차게 울려나가도록 할것입니다.》

 

7.27이 가지는 중대하고 심원한 의미는 비할바없이 우세한 제국주의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나라의 존엄과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내고 세계전쟁사에 길이 빛날 군사적기적을 창조하였다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다.가열처절한 전쟁 3년간의 나날에 견결한 조국수호정신, 혁명보위정신을 지닌 영웅적인민이 자라났다.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이 발휘한 정신은 오늘도 내일도 귀중한 정신적재부이다.

 

자기 수령의 위대성에 대한 믿음과 필승의 신념, 자기 조국을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며 목숨바쳐 지키는 열렬한 애국심, 무비의 대중적영웅주의와 후대들에 대한 불같은 사랑, 이것이 전승세대가 지녔던 숭고한 혁명정신이다.항일선열들이 창조한 투쟁정신을 우리 인민의 특유의 기질로 공고화하고 영웅조선의 기상으로 높이 떨치게 한 여기에 1950년대의 조국방위자들이 우리 조국과 혁명앞에 쌓아올린 불멸의 공적이 있다.

 

전화의 열사들이 발휘한 숭고한 정신은 우리 인민을 새로운 투쟁에로 떠밀어주고 우리 조국을 비약과 혁신의 한길로 내달리게 하였다.

 

천리마정신도 위대한 조국수호정신의 계승이고 고난의 행군정신도 제국주의연합세력의 침략을 물리친 영웅전사들의 강용한 기상의 구현이다.연대와 세대가 바뀔수록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인민들의 애국열, 투쟁열을 끊임없이 분발승화시키는것이 전화의 용사들이 지녔던 혁명정신이다.전체 인민이 조국수호자들이 발휘한 혁명정신으로 살며 투쟁하는 길에 국가의 존엄이 있고 혁명의 승리적전진이 있으며 후손만대의 행복이 있다는 진리가 우리 혁명의 역사와 현실을 통하여 뚜렷이 확증되였다.

 

우리 당이 새로운 주체100년대에 들어와 여러차례에 걸쳐 전국노병대회를 소집하고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할데 대하여 강조하고있는것은 우리 인민과 자라나는 새세대들의 사상정신적풍모를 선열들의 높이에 올려세우고 그 위력으로 우리 식 사회주의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자는데 숭고한 의도가 있다.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은 우리 국가의 정치사상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갈수 있게 하는 사상정신적무기이다.

 

사회주의조선의 제일가는 국력은 수령중심의 단결의 정신,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의 위력이다.우리가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마련한 자위적국방력과 자립경제의 무진막강한 잠재력, 저력도 이 일심단결의 정신력에 의해 남김없이 분출된다.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은 후대들이 귀감으로 삼고 따라배워야 할 사상정신력의 강자들이다.전화의 용사들은 위대한 수령님만 계시면 전쟁도 이기고 복구건설도 문제없다는 신념을 안고 최악의 역경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수령의 명령지시, 당의 노선과 정책관철에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높이 발휘하였다.우리 인민모두에게 수령이 이끄는 혁명위업의 승리에 대한 신심을 북돋아주고 단결의 귀중함을 새겨주며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더 높이 발휘해나가도록 고무추동하는데서 전승세대의 삶은 생동한 모범으로, 혁명적인생관의 훌륭한 교과서로 되고있다.

 

위대한 단결의 정신은 위대한 기적을 낳는다.우리 공화국이 장구한 기간 제국주의연합세력과의 전면대결전에서 연전연승하고 불패의 사회주의보루로 위용떨칠수 있은것은 그 어떤 물리적힘보다 더 강한 정치사상적힘이 있었기때문이다.1950년대의 조국수호정신, 혁명보위정신이 꿋꿋이 계승되는 한 주체조선은 앞으로도 영원히 강위력한 정치사상강국, 백승의 나라로 위용떨칠것이다.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은 우리 인민의 강국의 꿈과 이상을 앞당겨 실현해나갈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전승세대는 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쓰디쓴 패배를 안긴 영웅세대일뿐아니라 조선은 백년이 걸려도 일떠서지 못한다고 떠벌이던 원쑤들의 정수리에 철추를 내린 창조의 거인들이다.전승세대가 모든 분야에서 주력으로 활약하던 시대에 우리의 사회주의건설에서는 가장 눈부신 전진과 비약이 이룩되였다.아무리 어려워도 그 누구를 쳐다본것이 아니라 자기 힘을 믿고 용기백배하여 돌진하는 자력자강의 정신, 남들이 한걸음 걸을 때 열걸음, 백걸음을 내달려 이상사회에 남먼저 들어서겠다는 민족적자존심,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부강할 조국의 내일과 후대들의 행복을 그리며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무한한 헌신성, 이것이 조국수호자들의 고결한 정신세계이다.

 

전쟁노병들이 유산으로 물려준 혁명정신은 우리의 가장 값비싼 자원이고 귀중한 밑천이다.전화의 나날이나 복구건설시기에 비하면 오늘의 시련과 난관은 아무것도 아니다.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적진에 뛰여들던 영웅적희생정신, 맨손으로 뜨락또르와 자동차, 3 000t프레스와 전기기관차를 만들어 조선사람의 슬기와 본때를 보여준 비상한 창조정신, 서로 돕고 이끌며 연대적혁신을 일으키고 인간사랑의 전설을 꽃피우던 집단주의정신은 오늘도 우리 인민의 투쟁과 생활속에 살아있다.천리마대고조시대의 투쟁정신, 창조기풍, 생활방식이 온 사회를 지배할 때 사회주의재부들이 무수히 늘어나고 우리 조국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고 한달이 다르게 일신되게 될것이다.

 

전승세대는 자기의 피와 생명을 다 바쳐 조국을 사수하고 자주강국의 터전을 튼튼히 다져 후대들에게 물려주었다.

 

오늘 우리 세대앞에는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투쟁정신으로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전진활로를 열어나가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있다.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한다는것은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간다는것이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과 무한한 충실성은 1950년대 시대정신의 근본핵이다.위대한 연대의 승리자들은 수령에 대한 믿음과 충성의 일편단심을 지니고 침략자들이 요란스럽게 떠들던 군사적《공세》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대국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압력과 궤변을 짓부시며 기적을 창조하였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세인이 칭송하는 불세출의 위인,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 계신다.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우리 혁명을 이끄시기에 천만대적이 덤벼든대도, 만난시련이 겹쌓인대도 두려울것이 없고 승리는 영원히 조선의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간직하여야 한다.위대한 김정은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사수하며 어떤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당의 노선과 정책, 결정과 지시를 당이 바라는 높이에서 가장 철저하고 완벽하게 관철하는 혁명적기풍을 계속 높이 발휘해나가야 한다.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이상과 포부에 자신들을 따라세우고 원수님의 강행군길에 심장의 박동과 전진의 보폭을 맞추어나가는 참된 혁명전사가 되여야 한다.

 

위대한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살며 투쟁한다는것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돌격투사, 세기적인 기적창조의 주인공이 된다는것이다.

 

우리 조국의 산과 들, 고귀한 재부들에는 전화의 용사들의 뜨거운 피와 땀이 진하게 슴배여있다.그들이 목숨으로 지키고 한생을 바쳐 받들어온 우리 조국을 인민의 지상락원으로 보란듯이 꾸리는것은 전승세대에 드리는 가장 숭고한 경의이며 최대의 보답이다.

 

100%는 성차지 않아 한사람이 두몫, 세몫씩 해제끼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전환시키던 그때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빛내여나가야 한다.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하나의 건설물을 일떠세워도 조국의 존엄을 더 높이 떨치고 인민생활에서 실제적인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수 있게 하여야 한다.후대들이 두고두고 외우는 천리마시대의 주인공들처럼 연대와 연대를 뛰여넘으며 미래를 앞당겨오는 시대의 기수, 창조의 영웅이 되여야 한다.

 

청년들이 조국수호자들의 정신으로 심장의 피를 펄펄 끓이며 용맹을 떨쳐야 한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적의 화점을 가슴으로 막고 고지우에 남먼저 공화국기발을 꽂은 용사들은 다름아닌 청년들이였다.리수복, 조군실, 강호영을 비롯한 수많은 청년영웅들의 생은 비록 짧았지만 그들의 위훈은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빛나고있다.

 

모든 청년들은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을 서슴없이 바친 전화의 영웅들처럼 열혈의 충신, 참된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어머니당과 조국을 먼저 알고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할줄 아는 견실한 혁명가, 의리의 인간이 되여야 한다.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고 조국보위초소에서 청춘시절을 값있게 빛내여나가야 한다.당의 부름이라면 어렵고 힘든 전구들에 주저없이 달려나가고 과학기술의 목표를 점령해도 첨단수준을 돌파하며 대건설장마다에서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는 시대적인것을 창조해나가야 한다.

 

일군들은 전진하는 대오의 앞장에서 나아가는 야전형의 지휘성원이 되여야 한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시기는 혁명의 지휘성원인 일군들이 그 어느때보다 이신작칙할것을 요구하고있다.

 

우리 일군들은 사업결과를 평가하는 평론가가 아니라 진취적인 설계가, 유능한 작전가, 완강한 실천가가 되여야 한다.자신이 먼저 앞채를 메고 나가면서 사업을 더 대담하게, 더 적극적으로, 더 창조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한다.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사랑하고 위해주던 전화의 인민군대 지휘관들의 전우애, 동지애를 본받아 자기 지역, 자기 단위의 인민들과 종업원들의 운명과 생활을 책임지고 따뜻이 보살펴주어야 한다.

 

조국수호자들처럼 살며 투쟁해나가는 기풍이 확고한 국풍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

 

각급 당 및 근로단체조직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을 길이 전하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비롯한 교양거점들에 대한 참관사업과 전쟁노병들과의 상봉모임, 전시가요보급을 비롯한 여러가지 형식의 사상교양사업을 참신하고 실효성있게 조직진행하여야 한다.문학예술부문에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종군작가, 예술인들처럼 천만군민의 심장을 틀어잡고 영웅적위훈창조에로 고무추동하는 시대적명작들을 창작하여야 한다.전체 인민이 전쟁노병들을 자기의 친부모처럼 정성다해 모시는것을 숭고한 도리와 의무로 간직하고 온갖 성의를 다해나가야 한다.전쟁노병들이 노당익장하여 영광스러운 한생을 빛내여나가도록 건강과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어야 한다.

 

우리 세대의 투쟁을 전화의 불길속을 헤쳐온 영웅전사들이 지켜보고 우리의 삶과 위훈이 후대들의 맑은 눈동자에 새겨지고있다.

 

모두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의 영도따라 선열들이 바라던 강국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 주체혁명위업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기 위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

 

백두의 혁명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갈 계승자들의 대오

올해 6월부터 7월까지 1만 6 000여명의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년학생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답사

 

사나운 북방겨울의 눈보라를 길들이시며 백두전구에 지축을 흔드는 천리준마의 말발굽소리를 높이 울리신 강철의 영장의 자욱을 따라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겨울철답사에 이어 여름철답사를 진행하고있다.

 

올해 6월부터 7월까지 전국적으로 400여개 단체에 1만 6 000여명의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년학생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하였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백두산은 조선혁명의 발원지이고 승리의 상징이며 우리 인민의 마음의 기둥입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지난해 12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보시면서 혁명전통교양을 더욱더 강화하는것은 현시기 우리 혁명앞에 나서는 전략적과업으로 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의 선구자, 본보기인 인민군대가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혁명역사와 주체의 혁명전통이 뜨겁게 어려있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행군에 앞장섰다.

 

항일의 전구마다에서 인민군군인들은 조국해방의 역사적위업을 빛나게 실현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깊이 체득하고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깊이 간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한생이 어려있는 혁명의 붉은기를 대오앞에 휘날리며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인민경제대학, 평양교원대학 등 여러 단체가 여름철답사의 첫 자욱을 찍은데 이어 체육성, 체신성, 중앙은행, 조선태권도위원회를 비롯한 160여개 단체에 4 700여명의 일군들과 근로자들, 교원들과 학생들이 올해 6월 여름철답사행군에 참가하였다.

 

답사과정에 그들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을 뼈에 새기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자기의 영예로운 본분을 다해나갈 열의로 심장을 불태웠다.

 

특히 락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올라 그 어떤 폭풍에도 굽힘없는 결사의 의지와 불굴의 신념을 깊이 간직하고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갈 결의를 피력하였으며 답사숙영소들에 많은 지원물자도 기증하였다.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전승절에 즈음하여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쥔 사회주의조국방선의 수호자들, 대고조전투장마다에서 애국헌신의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는 각계층 근로자들이 백두의 행군길을 줄기차게 이어갔다.

 

기계공업성, 금성정치대학, 조선적십자종합병원, 무역은행, 국가과학원, 평양산원, 평양시인민위원회를 비롯하여 300여개 단체에 1만 1 800여명의 일군들과 근로자들, 청년학생들은 답사행군기간 혁명의 대백과전서이며 우리 민족의 만년재보인 백두의 혁명전통을 영원히 고수하고 전면적으로 구현해나갈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백두산에로의 행군길을 줄기차게 이어가며 답사자들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 대한 학습열풍을 세차게 일으켰다.

 

항일혁명선열들의 피어린 자욱이 그대로 새겨져있는 전구들에서 진행된 시랑송모임과 혁명가요합창경연,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발표모임, 문답식학습경연 등은 그들에게 절세위인들의 위대성과 투사들의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 열화같은 조국애, 혁명적락관주의를 뜨겁게 새겨주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찾는 답사자들의 가슴마다에는 불세출의 천출위인이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 따라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주체혁명위업의 천만리길을 끝까지 이어나갈 신념과 의지가 세차게 굽이쳤다.

당의 손길아래 자라난 미더운 새 세대

지난 5년간 수많은 청년들이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로 자원진출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가 진행된 때로부터 지난 5년간 전국각지의 수많은 청년들이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 달려나가 값높은 청춘시절을 빛내이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종합된 자료에 의하면 5 100여명의 청년들이 탄광과 사회주의협동벌을 비롯한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용약 진출하였다.

 

만경대구역에서 살던 홍일심동무는 들끓는 탄전에서 당중앙의 불빛을 지켜갈 결심을 안고 동생들과 함께 북창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송남청년탄광 김진청년돌격대에 탄원하여 청춘시절을 위훈으로 빛내이고있다.

 

염주군의 어느 한 단위에서 일하던 박옥금동무는 인민생활문제를 두고 늘 마음쓰시며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의 길을 걷고걸으시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헌신의 자욱에 심장의 보폭을 따라세울 일념 안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영도업적이 깃든 염주군 내중협동농장 청년분조에 자원진출하여 해마다 맡겨진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고있다.

 

김형직군 삼포고급중학교의 청년동맹일군으로 사업하던 허영삼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과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시며 넘으신 사연깊은 자취가 어린 하산령길을 잘 관리할 순결한 마음을 안고 10여명의 졸업반학생들과 함께 도로관리원으로 탄원하여 충성의 땀방울을 바쳐가고있다.

 

당의 품속에서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친 수많은 대학졸업생들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섬분교와 최전연지대, 산골학교들에 자원진출하였다.

 

당 제7차대회를 맞으며 전체 당원들에게 보낸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격정속에 받아안은 김형직사범대학 졸업생 로영일동무와 허철만동무는 우리 당의 후대교육사상을 현실로 꽃피우는 길에서 당원의 영예를 빛내일 맹세를 안고 섬초소학교 교원으로 탄원하였다.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한 림은정동무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숭고한 후대관, 미래관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산골학교학생들을 나라의 역군으로 키우는 길에서 삶을 빛내일 일념을 안고 외진 산골마을에 자리잡은 개천시 선무덕고급중학교로 탄원하였다.

 

이밖에도 전국의 사범대학, 교원대학을 비롯한 많은 대학졸업생들이 섬분교와 최전연지대, 산골학교들에 탄원하여 후대들을 위한 헌신의 걸음을 내디디였다.

 

인생의 귀중한 청춘시절을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아낌없이 바치며 위대한 조선노동당을 따라 곧바로 나아가는것은 연대와 세대를 이어 꿋꿋이 이어지고있는 조선청년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며 세상에서 오직 우리 청년들만이 지닐수 있는 아름답고 숭고한 사상정신적풍모이다.

 

혁명의 준엄한 연대들마다 당과 수령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온 전세대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본받아 청춘의 자욱을 가장 값있게, 떳떳하게 수놓기 위하여 시대가 부르는 초소로 자진하여 달려나가는 청년들의 대오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수령과 호위전사

항일혁명투사 리을설동지가 받아안은 숭고한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

 

백두에서 시작된 조선혁명의 장구한 로정에는 당과 조국에 무한히 충실한 참된 혁명가들의 자욱이 무수히 새겨져있다.

 

결코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들로 대오를 뭇고 시작한것은 아니지만 우리 혁명이 수천수만의 열혈투사들을 자랑스럽게 배출하게 된것은 그들모두를 품에 안아 키워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항일혁명투사 리을설동지도 위대한 태양의 그 품속에서 쇠소리나는 투사로, 유능한 군사일군으로 자라나 수령옹위의 제1선에서 당과 수령을 결사보위하여왔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은 인민대중을 승리와 영광의 길로 이끌어주는 영도자인 동시에 그들을 혁명가로 키워주는 스승이며 어버이입니다.》

 

햇병아리소년중대원으로 불리우던 항일유격대시절부터 조선인민군 원수로 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오로지 충성의 한길만을 걸은 리을설동지, 그의 한생은 평범하였던 인간이 위대한 수령의 슬하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값높은 삶을 빛내이는가를 보여준다.

 

항일의 로투사, 옛 경위대원

 

따사로운 해빛이 강산에 흘러넘치던 주체101(2012)년 4월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00돐경축 열병식에서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연설을 받아안고 온 나라가 환희와 격정에 설레이던 그때 리을설동지는 남다른 충격에 휩싸여있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가 삼가 올린 편지를 보아주시고 친히 회답서한을 보내주신것이였다.해빛보다 더 눈부시고 뜨거운 빛발이 친필의 글발마다에서 강렬히 뿜어나오는것만 같았다.

 

                       《리을설동지!

 

                       또다시 보내주신 편지를 고맙게

 

                       받아보았습니다.

 

                       로투사동지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혁명을 위해 나의 모든것을 다 바쳐

 

                       가겠습니다.

 

                       을설동지! 항상 건강해주십시오.

 

                       로투사동지들이 건강한 몸으로 계셔야

 

                       김정은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전투적인사를 올립니다.

 

                       경례!

 

2012년 4월 27일

 

김정은 드림.》

 

피눈물의 12월에 이어 벌써 두번째로 받아안는 우리 원수님의 회답서한이였다.

 

그의 나이는 어느덧 아흔한살, 최고사령부 검열관으로서 군복은 입고있지만 당과 혁명을 위해 이전처럼 일을 꽝꽝 하지 못하는 그였다.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은정넘친 회답서한을 쓰실 때마다 로투사라고 존대하여주시는것이였다.

 

그이의 한없는 믿음과 사랑에 접할수록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생각이 사무쳐오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남달리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누려온 나날이 감회깊이 되새겨졌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 만나뵈온것은 보천보전투가 있은 직후인 주체26(1937)년 여름 장백현 19도구 지양개에서였다.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의 승리를 경축하는 군민련환대회가 성황리에 진행된 그곳으로 참군의 꿈을 안고 찾아온 20여명의 소년들속에 리을설동지도 있었다.

 

어떤 지휘관들은 키가 총기장보다 더 작은 애숭이들이 어떻게 왜놈들과 싸우겠는가고 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른들이 눈우에서 자면 자기들도 눈우에서 잘수 있고 어른들이 전투를 할 때에는 자기들도 전투를 할수 있으니 유격대에 받아달라고 생떼를 쓰는 소년들이 못내 기특하고 미덥게 여겨지시였다.소년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고향과 부모, 생활경력에 대하여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모두를 혁명가로 키우실 결심을 굳히시였다.이렇게 되여 함경북도 성진군(오늘의 김책시)의 빈농가에서 태여나 가족과 함께 이국땅에서 떠돌이생활을 한 리을설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였고 항일무장투쟁사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긴 소년중대 대원이 되였다.

 

입대한지 얼마 안 있어 주력부대와 함께 백두산으로 진출하던 어느날 리을설동지는 행군의 휴식참에 위대한 수령님께 《장군님, 우리 조상들은 어째서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겼습니까?》라고 오래동안 품어온 의문을 말씀드리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철부지소년중대원이 걸어온 수난많은 길을 더듬어보시는듯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그것은 봉건통치배들이 사대주의를 하였기때문이라고, 사람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시면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된 가슴아픈 사연들을 들려주시였다.

 

리을설동지는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걸음걸음 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참된 투사의 신념을 체득하며 성장의 길을 걷게 되였다.

 

소년중대가 첫 전투에 참가하게 되였을 때에는 흥분으로 들먹거리는 리을설동지의 어깨를 다정히 눌러주시며 적을 단방에 쏘아잡을수 있게 정확히 조준하도록 일깨워주시고 눈보라를 헤치는 행군길에서는 그의 총도 친히 메여다주시며 하루빨리 훌륭한 유격대원으로 자라나도록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주체27(1938)년 12월부터 그 이듬해 3월까지 진행된 고난의 행군은 리을설동지에게 있어서 한생 잊을수 없는 혁명대학과정이였다.

 

한다하는 구대원들도 지탱하기 어려워했던 간고한 행군길에서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한치한치 걸음을 옮기던 리을설동지는 어느날 극심한 피로로 쓰러지게 되였다.한참만에 그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를 품에 꼭 안고계시는것이였다.그의 눈가에는 힘겹게 전진하는 대오에서 눈사람이 되여 기여가거나 의식을 잃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전우들의 모습이 안겨들었다.이러다가는 전 대오가 눈속에 묻혀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맥없이 눈을 감는데 문득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노래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적기가》를 입속으로 따라불렀다.다른 대원들도 목소리를 합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더욱 뜨겁게 껴안으시며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이 어려운 고비를 견디여내자.

 

우리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조국이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온갖 시련을 이겨내는 행군과정에 리을설동지는 몰라보게 자라났다.그는 신입대원이 옷을 모닥불에 태우고 우들우들 떠는것을 보자 강짜로 그 옷을 벗기고 자기의 군복을 입혀주었다.그리고는 불에 타서 구멍이 숭숭 난 그 옷을 입은채 대오의 앞장에서 생눈길을 헤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대정자에서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시면서 리을설동지가 발휘한 동지애의 모범을 높이 평가하시고 그후 《철혈》의 창간호에 그 사실을 싣도록 하시였다.

 

그때 리을설동지는 얼마나 뜨거운것을 삼키였던가.일제를 쳐부실 열망뿐이였던 소년중대원들에게 적과 싸워 이기는 법,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는 법, 자신을 수양하는 법 등을 하나하나 배워주시고 열렬한 애국심과 혁명적신념, 숭고한 동지애를 깊이 심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떠나 그의 성장을 어찌 생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리을설동지가 경위대원으로 활동하던 시기 안도현의 한 밀영에서 사령부가 변절자 림수산이 끌고온 적《특수부대》의 포위에 든적이 있었다.당번보초였던 리을설동지가 식사를 하는 동안 친히 보초를 서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들었다.순간 강위룡동지와 함께 보초소로 번개같이 달려간 리을설동지는 적들을 향해 경기관총을 휘둘러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 사실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적들이 포위환을 좁히며 다가들자 리을설은 수류탄을 뽑아들고 우뚝 일어서서 〈이놈들아, 덤빌테면 덤벼들라.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고 부르짖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서슬푸르고 도고했던지 적들은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위룡은 나를 탄막속에서 완전히 뽑아내였다.》

 

리을설동지와 같은 어제날의 품팔이군, 문맹자, 머슴군들이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항일의 맹장으로, 혁명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신념이 대쪽같은 투사로 성장하였다.

 

로투사!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 정깊은 부름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서 조국과 혁명을 알고 불굴의 의지를 체질화한 혁명의 1세들에게 드리는 숭고한 경의였으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께 다진 맹세를 지켜 혁명가의 모범을 빛내여가기를 바라시는 따사로운 축복임을 리을설동지는 가슴깊이 새기였다.

 

태양을 옹위하는 길에서

 

주체73(1984)년 2월에 리을설동지는 호위총국장(당시)으로 임명되였다.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경위중대 기관총수로, 해방후와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후시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관장으로 사업한 그가 호위전사로 수령님곁에 다시 서게 된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격정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온 그를 만나신 자리에서 《을설이, 이제는 늙어서 죽을 때까지 나와 같이 있자구.》라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리을설동지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한생 품어주고 키워주신 그 손길로 생의 마지막까지 보살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에 목이 메이고 수령님 품을 떠나 내 어이 살랴 하는 생각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것이였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아뢰였다.

 

《수령님, 그 믿음에 보답하겠는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어떻게 되여 호위총국장의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였는지 다 알지 못하였다.

 

전 호위총국장이 다른 직무에 조동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 누구를 호위총국장으로 임명하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시 조선인민군 대연합부대장이였던 리을설동지를 임명하였으면 좋겠다고 선뜻 말씀올리시였다.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시며 리을설동무는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손에 무장을 잡고 싸워온 충실한 동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을설동지를 생각하실 때면 항일무장투쟁시기 그를 쏘련의 무전강습소에 보내시였던 일을 되새기군 하시였다.강습이 끝난 후 쏘련군대의 한 고위간부가 그에게 국제당의 요구이니 조선으로 나갈 차비를 하라고 하며 당신이 믿음직해서 그런다, 우리가 전략상으로 중시하는 성진이 당신의 고향이니 거기에 가 배겨있으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무전으로 우리에게 보고하면 된다고 하였다.국제당의 지시라고 하면 웬간한 사람들은 다 《예, 예》 하던 때였으나 리을설동지는 나는 우리 사령관동지한테서 강습이 끝난 다음 부대에 돌아와 무전교관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몸이라고 하면서 그 요구를 거절하였다.쏘련사람이 김일성동지의 허락은 차후에 받을테니 조선으로 나가라고 설복하였지만 그는 《나는 우리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명령밖에 모르오.그 명령을 집행하기 전에는 고향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갈수 없소.인젠 하루빨리 부대로 돌아가야겠으니 더 막지 마시오.》라고 하며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리을설이 사령관이 준 명령을 집행하기 전에는 그 어떤 임무도 받아들일수 없다고 한것은 우리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의 표현이였습니다.

 

리을설은 소년중대시절부터 현재까지 나를 위한 호위사업에 한생을 바치면서도 나의 뜻을 어기거나 임무수행에 태공한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자나깨나 오직 자기 수령만을 생각하고 수령의 건강과 신변안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왔습니다.

 

내가 1939년에 올기강에서 낚시질을 할 때에도 내뒤에서 기관총을 걸어놓고 호위사업을 한 사람은 경위대원 리을설이였습니다.》

 

조선인민군 대연합부대장으로 사업하던 시기에도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밖에 그 누구도 모른다는 절대적인 신념으로 살며 투쟁하였다.

 

1960년대말 직권을 악용하여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댄 한 군벌주의자가 있었다.어느날 그자는 부대에 나타나 리을설동지가 자기에게 굽신거리지 않는다고 트집을 걸다못해 군단장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다짜고짜로 영장을 떼려고 덤벼들었다.

 

그때 리을설동지는 군벌주의자의 손을 단호히 쳐갈기며 꾸짖었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나는 수령님께서 임명하신 군단장이야.그리고 이 영장은 수령님께서 직접 주신거구.그런데 네가 감히 나를 어째보겠다구.나는 당장 네놈의 군벌관료주의적망동을 수령님께 보고드리겠다!》

 

그의 기상에 질겁한 군벌주의자가 자기에게 신경병이 있어서 그랬으니 리해해달라고 애걸복걸하였으나 리을설동지는 《똑똑히 들으라.이 리을설은 위대한 수령님을 최고사령관으로 모신 군단사령관이야!》라고 다시 된타격을 안기였다.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호위전사들 누구나 오직 수령밖에 모르는 쇠소리나는 호위병들로 자라나도록 이끌어준 리을설동지였다.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리승엽이 최고사령부로 찾아온적이 있었다.그때 친위중대 보초병은 호위근무규정대로 그를 단속하고 오늘은 장군님을 만날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였다.리승엽이 시간을 다투는 문제인데 네가 책임지겠는가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하자 보초병은 그자의 가슴팍에 총구를 들이대며 총알같이 웨쳤다.《돌아가지 않으면 쏘겠다!》

 

후날 이 일을 알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을설동지에게 친위중대 대원들이 동무를 닮아 점점 배짱이 세지는것 같다고 교시하시였다.

 

리을설동지의 배짱은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다라는 신념으로 나날이 든든해지는것이였으며 살아도 수령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수령님을 위하여 값있게 죽어야 한다는것이 그의 투철한 인생관이였다.

 

주체41(1952)년 봄이였다.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우리의 생활을 더욱 검박하게 조직하고 모든 부문에서 더 절약하며 식생활도 보다 검소하게 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리을설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두고 걱정하자 수령님께서는 《일없소.잡곡을 섞으면 오히려 밥맛이 더 좋소.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하오.》라고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지휘처 문앞의 디딤돌이 낮아 호위성원들이 다시 만들려고 벽돌과 세멘트를 구해온것을 보시고도 저 디딤돌이 어쨌다고 귀중한 벽돌과 세멘트를 쓰겠는가, 미국놈들의 야수적인 폭격에 인민들이 집을 잃고 방공호에서 살고있는데 우리가 사다리를 놓고 오르내린들 그것이 무슨 불편으로 되겠는가, 한g의 세멘트, 한장의 벽돌이라도 아꼈다가 인민들의 집을 짓는데 쓰자고 절절히 당부하시였다.

 

강철의 영장이실뿐아니라 한없이 소탈하고 검박한 위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천품을 보여주는 이런 사실들에 접할 때마다 리을설동지는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모시고있는가를 심장으로 절감하였다.

 

오랜 기간 어버이수령님 가까이에서 사업하고 생활하는 남다른 행운을 지닌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이런 사연들이 천이던가, 만이던가.

 

하기에 밥술을 뜨거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위하겠는가를 생각하며 위급한 순간에는 서슴없이 한몸을 내댄 리을설동지였다.

 

그가 호위총국장으로 임명된 이듬해 4월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앞에서 수십년전의 일을 감회깊이 회억하시였다.

 

주체41(1952)년 8월 최고사령부를 겨냥한 미제공중비적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갱도입구로부터 불과 20m 되나마나한 곳에 반t짜리 육중한 폭탄이 떨어졌다.다행히도 불발이였으나 정황은 매우 긴박하였다.폭탄이 언제 터질지 알수 없었던것이였다.리을설동지는 비상회의를 열고 부관들과 호위성원들에게 결사전을 호소하여 목도로 그 시한탄을 메다가 뒤산너머 골짜기에 내던질것을 결정하였다.

 

위험한 불발탄을 어떻게 그 먼곳까지 날라가겠는가, 그 자리에서 터치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의 입장은 드팀이 없었다.불발탄을 그 자리에서 터치면 위대한 수령님의 숙소와 집무실이 손상되겠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설사 우리가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불발탄을 최고사령부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더 멀리 가져다 터쳐야 한다!

 

비장한 각오를 품고 위험한 불발탄이 실린 무거운 목도를 앞장에서 메고 한치한치 나아가던 리을설동지의 모습을 정녕 잊을수 없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가 수십년세월 한번도 입밖에 낸적이 없는 그날의 위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옆에 면구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는 리을설동지를 자신의 곁으로 부르시였다.

 

《리을설동무, 우리 같이 그때를 회상하면서 기념사진이나 한장 찍읍시다.》

 

그날의 기념사진, 그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머나먼 혁명의 길을 함께 걸어온 전사에게 베푸신 뜨거운 사랑이였으며 그가 변함없이 한길을 가도록 떠밀어주시는 크나큰 고무였다.

 

절세위인들의 남다른 믿음속에 충성의 자욱을 새겨가던 리을설동지는 자기 한생에서 가장 가슴아픈 일에 부닥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신것이였다.

 

피눈물의 7월이 흐르던 어느날 밤 리을설동지는 펜을 들었다.

 

《위대한 장군님

 

조의기간 늘 장군님곁에 있으면서도 죄스러움이 앞서고 어떤 말씀을 올려도 장군님의 가슴만 더 아프게 해드릴것 같아 마음을 쓰다가 오늘에야 이 글을 올리는 저를 욕 많이 하십시오.

 

정말 그때 죄많은 이 늙은이는 장군님 발밑에 엎드려 빌고 또 빌고싶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모셔온 로투사라고 하시며 호위사령관의 중책을 맡겨주시였는데 그 신임에 보답하기는커녕 장군님앞에, 선열들과 인민들앞에 대를 두고 씻지 못할 큰죄를 지었다고 절절히 아뢰인 리을설동지,

 

하지만 그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실 금수산기념궁전(당시)공사를 그가 책임지고 하도록 하여주시였다.

 

정녕 그것은 한생토록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에서 받들어온 로투사를 수령님의 영원한 호위전사로 내세워주시는 최상최대의 신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속에 리을설동지는 주체84(1995)년 가을 조선인민군 원수칭호를 수여받았다.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

 

주체104(2015)년 11월 7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끝없이 충직한 호위전사이며 로혁명가인 리을설동지가 94살을 일기로 서거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리을설동지는 총을 잡고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투철한 신념과 백옥같은 량심을 지니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충정다해 받들어온 수령님과 장군님의 제일혁명동지, 제일혁명전우였습니다.》

 

리을설동지는 평범한 나날에나 시련의 시기에나 변함없는 자세로 당과 수령을 보위한 최고사령부의 문전보초병이였다고, 리을설동지의 한생이야말로 혁명의 수령을 총대로 보위한 참된 호위전사의 빛나는 한생이라고, 리을설동지를 잃고 제일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것이 한평생 수령님과 장군님을 따라 혁명의 천만리길을 헤쳐오며 고생을 많이 한 로투사에게 더 좋은 내일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였다는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우리 혁명의 원로이며 당과 조국앞에 큰 공적을 세운 항일혁명투사들이 편히 앉아 이 세상 만복을 누리게 하시려는것이 우리 원수님의 열화같은 진정이였다.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서 혁명가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릴수 있는 영광과 행복을 다 누려왔다.그가 90이 넘도록 생을 이어올수 있은것도 위대한 장군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을 떠나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금수산기념궁전공사가 한창이던 주체85(1996)년 3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을설동지에게 어느 한 나라에 다녀올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이번 기회에 그 나라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아보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치료를 받고 돌아오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입니다.》라고 못박으시였다.

 

그가 떠나던 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행장에까지 몸소 나오시여 어서 비행기에 오르라고, 자신께서는 호위사령관이 탄 비행기가 떠나는것을 보고야 들어가겠다고 하시며 그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비행기가 리륙하여 점점 멀어질 때까지도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비행장에 서계신 위대한 장군님,

 

어찌하여 그이께서 그처럼 바쁜 때에 그를 외국으로 떠밀어보내시고 비행장에까지 나오시여 오래도록 바래워주시였는지 리을설동지가 알게 된것은 얼마후였다.그를 검진한 병원에서는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려있으며 시급히 수술해야 한다고 결론하였던것이다.

 

리을설동지는 본인도, 안해와 자식들도 모르는 병조를 가려내여 제때에 치료를 받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이 사무쳐와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50여일이 지나 조국에 돌아온 리을설동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위대한 장군님께서 또다시 비행장에 나오신것이였다.

 

바래워주시던 그날처럼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술을 성과적으로 받고 돌아온 사령관동무를 보니 한시름놓인다고 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호위사령관동무는 일생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어린 나이때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산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싸우면서 고생을 하였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미제국주의자들과 싸우면서 배에 박힌 파편때문에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페수술을 받느라고 고생을 하였습니다.호위사령관동무의 복부를 보면 성한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순간 로투사의 뇌리에는 수십년전의 못 잊을 사연이 어제런듯 갈마들었다.

 

해방직후 함흥에 파견되여 사업하던 그가 반동놈들의 흉탄에 심한 부상을 입은적이 있었다.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경남도 도립병원(당시)에서 구급치료를 받도록 하시였으며 한달후에는 평양으로 소환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리을설동지가 도착하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처가 다 나았는가부터 물으시였다.그가 다 나았다고, 마음쓰시게 하여 죄스럽다고 아뢰였지만 수령님께서는 그의 상처자리까지 손수 만져보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김책동무로부터 동무가 반동놈들의 총탄에 맞아 사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걱정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성한 몸으로 돌아왔으니 인젠 발편잠을 자게 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나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속에 그는 또다시 새 삶의 박동을 받아안은것이였다.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그가 여든번째 생일을 맞을 때에는 량면수예병풍 《소나무와 학》을 선물로 보내주자고 하시며 그러면 아마 로당익장할것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

 

열화같은 그 사랑을 그대로 이어주신분은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항일혁명투사들이 몇명 남지 않았다고 하시며 그들의 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고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도록 하신 원수님의 각별한 손길이 있어 그는 생의 말년에도 하루하루를 값있게 빛내일수 있었다.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70돐에 즈음하여 제정된 김정일훈장을 제일먼저 수여받았다.좀해서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지만 그날만은 마음속에 끓어넘치는 격정을 감추지 못하였다.해방후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사연깊은 콩나물잔치상을 차려주시던 일이며 10여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화국2중영웅인 그에게 또다시 영웅칭호를 수여하려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 영웅칭호보다 더 높은 칭호가 없는것이 유감입니다.》라고 교시하신 사실을 되새기는 로투사의 주름진 두볼로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을 모두 합쳐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속에서 리을설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받드는 길에 온넋을 바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로투사들이 앉아만 있어도 힘이 된다고 하시였지만 편안히 앉아서 당의 혜택만을 받을수 없었던 그는 녕원발전소와 희천발전소, 과학기술전당건설장을 비롯하여 당의 구상이 현실로 꽃펴나는 시대의 전구들을 쉬임없이 찾아다니였다.그때마다 그는 승용차에 사륜차를 싣고 다니였다.생의 마감을 며칠 앞둔 날에도 사륜차에 몸을 싣고 건설장을 돌아보며 군인건설자들을 고무한 로투사였다.

 

한생토록 체험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위인상을 세세년년 전해갈 한마음으로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쉬임없이 붓을 달려 우리 혁명의 귀중한 재보로 되는 많은 도서들을 남기였다.

 

우리의 경애하는 원수님은 충성과 위훈, 보답으로 한생을 빛내여온 로투사들이 살아서만이 아니라 죽어서도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도록 하여주시는 은혜로운 태양이시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리을설동지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시고 몸소 령구를 찾으시여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시였으며 장의식에까지 참가하시였다.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정한 로투사의 묘소에 흙을 얹어야 할 시각이 다가왔을 때 한 일군이 준비한 삽을 경애하는 원수님께 정중히 올리였다.하지만 그이께서는 그것을 밀어놓으시고 친히 두손에 흙을 담아드시였다.

 

그이의 뜨거운 손에 실려 투사의 묘소에 정히 얹혀진 그것이 정녕 무심한 흙이였던가.혁명의 원로들을 무한히 존대하고 귀중히 여기시며 영원한 삶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뜻한 체취이고 온기였으며 숨결이 아니였던가.

 

이 숭엄한 화폭앞에서 투사의 유가족들만이 아닌 온 나라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이 격정의 눈물을 쏟았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어느 한 군관학교의 명칭에 리을설동지의 이름을 달도록 하시여 그의 고결한 정신이 더욱 빛나게 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이 바라보이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항일의 옛 전우들과 나란히 수령결사옹위의 영원한 초병으로 자리잡은 로투사!

 

숭고한 도덕의리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호위전사는 살아서도 영광, 죽어서도 영광을 누리고있는것이다.

 

리을설동지의 값높은 한생은 우리모두에게 새겨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이야말로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을 열혈혁명가, 불굴의 투사로 키워 가장 고귀한 삶을 안겨주는 위대한 태양의 품이라는것을.

 

그렇다.대를 이어 절세의 위인을 높이 모시여 수천수만의 충신들이 끝없이 자라나고 백두에서 시작된 우리 혁명의 충실성의 전통이 굳건히 이어지며 우리 조국은 그 어떤 풍파속에서도 줄기차게 전진해나가는 것이다.

당사상전선의 전초병-모범선동원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겉모양은 소박하고 수수해도 심장의 고동은 언제나 당의 뜻으로 높뛰고 온몸이 혁명열, 투쟁열로 불타는 일군, 이것이 우리 당이 바라는 선전일군의 모습입니다.》

 

대중의 심장에 불을 다는 불씨가 되여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당사상전선의 전초병-모범선동원들의 열정에 넘친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있다.

 

아래에 그들의 헌신적인 투쟁기풍과 일본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높은 실력, 꾸준한 노력

 

모란봉뻐스사업소 인흥대대 운영3소대 김명희동무

 

김명희동무는 50대를 넘긴 평범한 녀성이였다.단발머리처녀시절부터 36년간을 차장으로 일해온 그의 머리에 어느덧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차장이 되였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그가 한 말이 인상깊었다.

 

《학교졸업을 앞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르셨던 사적뻐스를 탄적이 있었는데 그때 차장의 모습이 몹시 부러웠습니다.그래서…》

 

소박한 말이였지만 그의 정신세계가 그대로 비낀 진심어린 고백이였다.

 

이런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안고 사회생활의 첫 자욱을 내짚은 그는 3년후부터 당조직의 추천으로 선동원사업을 시작하게 되였다.

 

선동원이 된 그날 긍지에 앞서 걱정이 더 많았다.하지만 짬시간이면 책에 정신을 쏟으며 선동자료를 수집하였고 화술기량을 높이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나날 제일 안타까운것은 시간이 모자라는것이였다.하루를 분초로 쪼개가며 꾸준히 노력한 끝에 소대선동사업은 물론 차내선동사업까지 자신있게 할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

 

그는 선동원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에 실천으로 보답해갈 열의밑에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실효성있는 선동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

 

수만건의 위대성자료와 덕성자료, 1만여건의 상식자료와 과학기술자료를 갖추고 구수하고 설득력있게 해설하는 김명희동무의 선동활동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있다.그는 동지를 위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소대를 화목한 집단으로 만들었고 사업소가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하고있다.

 

이처럼 수십년을 하루같이 당이 맡겨준 초소에서 참신한 선동활동을 벌려가는 김명희동무를 두고 사업소종업원들은 물론 오가는 려객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특파기자 최수복

 

뜨거운 인정미를 지닐 때

 

인포청년탄광 2갱 굴진2소대 권광렬동무

 

대중을 당정책관철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당사상전선의 전초병인 선동원들은 이에 대해 늘 사색하며 심신을 바쳐야 한다.

 

언제인가 탄광에서 북창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탄부휴양소로 가는 도로에는 삼복의 무더위속을 뚫고 자전거를 몰아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2갱 굴진2소대 선동원 권광렬동무였다.

 

사연이 있었다.그날 아침 소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권광렬동무는 다른 교대에서 일하던 곽동무가 탄부휴양소로 떠났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순간 그는 곽동무가 휴양준비를 제대로 해가지고 갔겠는가 하는 근심이 앞섰다.교대를 마치고 집으로 달려간 그는 성의껏 물자들을 마련해가지고 길을 나섰다.

 

뜻밖에 휴양소에 찾아온 선동원을 본 곽동무는 처음에 어리둥절하였다.그러나 사연을 알고는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사실 그는 소대적으로 볼 때 이름난 혁신자라고 볼수 없었다.그런데도 당조직에서는 휴양소에로 떠밀어주었다.

 

다른 단위의 혁신자들과 즐거운 휴양생활을 할 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당조직과 집단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죄스러움도 없지 않았다.그런데 이렇게 선동원까지 몸이 온통 물주머니가 되여 달려왔으니 그가 받은 감흥이 왜 크지 않겠는가.

 

곽동무의 눈에 뜨거운것이 맺혔다.그날 곽동무는 앞으로 꼭 혁신자가 될 굳은 결심을 다졌고 그후 열심히 일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였다.

 

이런 진실한 사랑과 정을 지닌 권광렬동무이기에 선동원으로 일해온 지난 15년간 소대를 탄광의 기둥소대로, 소대원들을 초급일군, 혁신자로 키우는데 적극 이바지할수 있었다.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고 대중을 위해주고 아껴줄 때 그들모두를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킬수 있다.바로 이것이 권광렬동무가 선동원사업을 벌리는 과정에 찾은 교훈이다.

 

특파기자 허일무

 

헌신, 그것은 말없는 선동이다

 

염주군 신정협동농장 제2작업반 6분조 장명숙동무

 

산골군에서 나서자란 장명숙동무가 이 농장에 새살림을 펴고 농사일을 하기 시작한것은 수십년전이였다.

 

그는 밤늦게까지 열심히 농사일을 배웠고 이른새벽 남보다 일찍 포전에 나오군 하였다.이악쟁이새색시에 대한 소문은 농장에 널리 퍼져갔다.

 

다음해 로력혁신자로 성장한 그에게 당조직에서는 선동원사업을 맡겨주었다.심장이 쿵쿵 높뛰였다.본토배기실농군도 아닌 자기가 선동원사업을 꽤 해낼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던것이다.그의 심정을 헤아려본 당조직에서는 장명숙동무에게 선동원이 해야 할 사업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는 모든 일에서 분조원들의 거울이 되기 위해 애썼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적표식비, 영생탑주변관리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언제나 실천적모범으로 대중을 이끌어나갔다.담당한 포전에 수십t의 질좋은 거름을 내고 새땅을 찾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알곡증산의 앞장에 섰다.

 

장명숙동무가 수십년간 선동원사업을 하면서 항상 가슴속깊이 안고산 고귀한 지침이 있었다.농촌선동원들은 선동을 작업반이나 분조성원들을 다 모여놓고도 하고 두세사람이 모인데서도 하며 일터에 나갈 때에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며 쉴참에도 하고 작업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도 하는 식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정상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뜻깊은 가르치심이였다.

 

그는 농사일에 앞장서면서 당초급선전일군이라는 자각을 안고 분조원들을 한사람한사람 단합시켜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가정사정이 어려운 세대들을 제일처럼 도와나섰고 뒤떨어진 분조원들을 꾸준히 교양개조하여 로력혁신자로 내세웠다.

 

부모없는 한 처녀를 몇년동안 자기 집에 데려다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주고 그가 시집을 갈 때에는 부엌세간에 이르기까지 깊이 마음쓰던 선동원의 진심은 마을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선동원의 본분을 다해온 그를 당에서는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군대회에 불러주었다.

 

어느덧 장명숙동무의 나이는 50대에 이르렀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보답해갈 강렬한 열망이 불타고있다.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의 우월성과 위력을 더 높이 발양시키자

전군중적으로 더욱 활발히

오늘 우리 당은 질좋은 생활필수품들을 많이 생산하여 인민생활향상에서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나가고있다.소비품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키자면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을 더욱 활기있게 벌려나가야 한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은 군중의 창발성을 발동하고 내부예비를 동원리용하여 다양한 소비품을 생산할수 있게 하는 폭넓은 대중운동이며 그 정당성과 생활력은 이미 실천을 통하여 뚜렷이 확증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일용잡화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자면 일용잡화를 전문공장에서뿐아니라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생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금속공장, 기계공장을 비롯한 여러 부문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직장이나 작업반을 잘 꾸리고 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페설물로 여러가지 일용잡화를 생산하며 가두인민반들에도 가내작업반을 조직하고 일용잡화를 생산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은 공장, 기업소들에서 추가적인 투자가 없이도 내부예비를 적극 탐구동원하고 가내작업반, 리용생산반 등에서도 실정에 맞게 공업부산물과 농토산물, 자연원료와 재배원료를 리용하여 인민생활에 필요한 소비품을 다종다양하게 만들수 있는 대중운동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1980년대에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이 늘어나 전국적범위의 소비품생산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전국경공업대회에서 1980년대처럼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을 활발히 벌려 갖가지 질좋은 소비품들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느 부문, 어느 단위를 막론하고 기본제품생산과 생활필수품생산을 다같이 밀고나가 맵시있고 쓸모있는 각종 소비품들을 생산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을 전군중적운동으로 계속 활력있게 진행해나가는것은 인민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깊은 관심을 돌리며 필요한 소비품들을 충분히 보장해주려는 당의 뜻을 현실로 꽃피우기 위한 영예롭고 보람찬 사업이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당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에 더 큰 박차를 가할 때 인민생활향상에 적극 이바지할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도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에 모든 부문, 모든 단위가 주인답게 떨쳐나서는것이다.

 

소비품에 대한 수요가 날로 높아가고있는 오늘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자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고 열성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는 가치있는 소비품을 다종다양하게 만들어낼수 있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을 늘이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드는 한편 생산자들의 의욕을 높여주어 너도나도 인민생활에 도움이 되는 제품개발에 뛰여들게 하는것이 중요하다.여기서 힘을 넣어야 할것은 인민의 요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일상생활에서 어떤 제품이 필요한가를 제때에 포착하여 생산자들의 지혜를 적극 발동시키는것이다.쓸모가 같은 소비품의 경우에도 형태와 색갈, 크기와 재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서로 다른것만큼 생산자들의 풍부한 경험과 창발성을 잘 살려나가야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을 활기있게 밀고나갈수 있다.

 

특히 유리한 조건과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있는 연합기업소를 비롯한 공장, 기업소들에서 부단히 새로운 목표를 내걸고 분발할 때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이 늘어나게 된다.

 

중앙과 지방, 생산협동조합 할것없이 모든 단위가 주인답게 떨쳐나 큰것도 생산하고 작은것도 생산하며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어내는 식으로 소비품생산의 된바람을 일으켜나가야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의 위력이 힘있게 과시될수 있다.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을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려나가는데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제품의 질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는것이다.

 

인민들이 쓰고 리용하는 모든것은 그 어느것이나 최상의것이여야 한다는것이 우리 당의 뜻이다.

 

인민소비품생산에서 전환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으로 들끓고있는 오늘 모든 일군들과 생산자들이 인민의 평가를 창조의 기준으로 하여 목표를 높이 세우고 분발해나서야 8월3일인민소비품의 질제고에서도 개선을 안아오게 된다.누구나 어디서나 착상하고 발명하고 창조하는 기풍을 세워나간다면 자그마한 가내작업반이나 생산협동조합에서도 인민의 호평을 받는 명제품, 명상품을 얼마든지 생산해낼수 있다.자그마한 문손잡이 하나를 생산하여도 편리하고 쓸모가 있으며 우리 인민들의 기호에 맞게 특색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의 생활력이 발휘될수 있다.

 

공장, 기업소, 가두인민반 할것없이 모든 부문과 단위의 광범한 군중이 떨쳐나 질좋은 소비품들을 더 많이 생산할 때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에 깃든 우리 당의 영도업적이 끝없이 빛나고 인민생활향상에서 실질적인 전진이 이룩되게 될 것이다.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의 우월성과 위력을 더 높이 발양시키자

경험교환운동을 방법론있게

함경북도에서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을 늘이고있다.올해에 들어와 현재까지 수십만점의 질좋은 인민소비품을 생산하였으며 새 제품개발에도 힘을 넣어 성과를 거두고있다.

 

비결은 이곳 일군들이 도안의 인민소비품생산단위들에서 창조된 좋은 경험을 서로 교환하고 실정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목적지향성있게 내민데 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국가적이익, 당과 혁명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앞선 단위의 성과와 경험을 널리 일반화하며 집단주의적경쟁열풍속에 더 높이, 더 빨리 비약하여야 합니다.》

 

도의 일군들이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을 늘이기 위한 경험교환운동을 심화시키는데서 주목을 돌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선 자기 지방의 원료와 자재를 최대한 동원리용하여 생활필수품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보장하도록 한것이다.

 

빨래비누와 학습장생산을 실례로 들수 있다.

 

몇해전 청진시 신암구역가내작업반관리소에서는 피마주기름을 가지고 빨래비누를 생산하는 공정을 확립하였다.

 

도의 일군들은 이 경험을 다른 생산단위들에 일반화하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었다.

 

결과 많은 단위들이 빨래비누생산을 늘일수 있는 방도를 찾게 되였고 자체실정에 맞게 새로운 길도 탐구하게 되였다.

 

올해에 들어와 청진시 라남구역, 길주군, 명간군, 경흥군을 비롯한 여러 구역, 군가내작업반관리소에서 여러가지 동물성, 식물성기름을 리용하여 빨래비누를 만들고있는것이 좋은 실례로 된다.

 

학습장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에도 일군들은 길주군가내작업반관리소의 경험을 일반화하기 위한 사업을 견습, 기술교류 등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활발히 진행하였다.하여 학습장생산을 늘일수 있게 하였다.

 

도일군들이 경험교환운동을 전개하는데서 관심을 돌린것은 다음으로 인민소비품생산단위들에서 새 제품개발사업에 힘을 넣도록 한것이다.

 

일군들은 구역, 군가내작업반관리소들에서 경쟁력있는 새 제품을 내놓기 위한 계획부터 똑똑히 세우도록 요구성을 높이였다.그에 기초하여 새 제품들이 개발될 때마다 해당 생산단위에 대한 참관을 조직하고 참관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평가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하였다.그를 통하여 자체실정에 맞게 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려는 의욕과 경쟁열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일군들의 이러한 조직사업은 응당한 결실을 안아왔다.

 

화대군가내작업반관리소에서 만든 오사리신발깔개, 청진시 포항구역과 수남구역, 송평구역가내작업반관리소에서 생산한 주산주머니, 여러가지 형태의 화분 등 많은 새 제품들에 대한 좋은 반영이 제기되고있는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지금 함경북도의 일군들은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의 생활력을 더 높이 발양시키기 위한 사업을 계속 방법론있게 진행해나가고 있다.

인재는 나라의 귀중한 재부

착상력과 실천력이 강한 공학자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 실장 리형연동무는 사람들속에서 전형적인 공학자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공업의 이론, 기술 및 생산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부문인 공학을 전문으로 연구하자면 착상이 좋아야 할뿐아니라 투지가 강하고 정열적이며 이악해야 하는데 리형연실장이 바로 그런 개발창조형의 과학자라고 연구소의 일군들은 한결같이 말하고있다.

 

어느 한 광산에서 착암수로 일하다가 당의 은정속에 평성석탄공업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국가과학원의 과학자가 된 그는 진취적이고 이악한 노력으로 연구사업에서 인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30대 중엽에는 한개 연구집단을 책임진 실장으로서 락원의 노동계급과 지혜와 힘을 합쳐 새형의 유압식착암기를 창안제작하는데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데 이바지하였다.

 

착상력과 실천력이 강한 공학자로서의 그의 높은 실력과 기질은 당의 신임에 의하여 새로 조직된 자연에네르기연구소의 지열장치연구집단을 책임지게 된 후에도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그가 주개발자가 되여 우리 식으로 연구해낸 무동력양수설비인 수차식물뽐프는 최근년간 각지의 많은 협동농장들에 도입되여 큰 은을 내고있다.물속에 항시적으로 잠긴 상태에서 물을 푸는 특수한 운영조건으로 하여 제작과 관련한 요구수준이 높고 류체, 기계, 재료, 전기를 비롯한 여러 부문 기술공학의 집합체로 되는 수중전동뽐프를 100% 우리의 지혜와 기술, 우리의 힘으로 수입제품에 못지 않게 연구제작하는데서 핵심적역할을 한 과학자도 바로 리형연실장이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악하게 노력하여 올해에는 광산을 비롯한 여러 단위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대형수중전동뽐프의 연구도입에서도 뚜렷한 전진을 이룩한 그는 지금 연구집단의 과학자들과 함께 지열발전체계의 개발사업을 내밀고있다.

 

어떤 첨단과학기술이라도 얼마든지 우리의것으로 연구도입할수 있다는것이 과학연구사업에서 언제나 새것을 지향하고 우리 식 착상과 창조를 주장하는 리형연실장의 과학적신념이며 배심이다.

 

본사기자 려명희

 

불같은 탐구정신을 발휘하며

 

혜산농림대학 농림과학연구소 실장 공훈과학자 박사 부교수 정금천동무는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절실히 필요한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여 경제발전을 힘있게 추동하는데서 한몫 단단히 하고있는 재능있는 과학자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던 잊지 못할 순간이며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시계표창을 수여받던 감격의 시각이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평범한 자기를 국가적인 대회에도 불러주고 크나큰 영광을 안겨준 당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그는 지난 기간 높은 실력과 진취적인 탐구정신을 지니고 현실에서 제기되는 의의있는 과학기술적문제해결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왔다.

 

삼지연시를 혁명의 성지답게 훌륭히 꾸리기 위한 당의 원대한 구상을 높이 받들고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에 달려나간 그는 감자저장에서 기술적인 난문제가 제기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고 더우기는 전혀 파악이 없는 생소한 분야였지만 누구든 반드시 해야 하며 또 기어이 성공해야 한다는 각오를 안고 그는 고심어린 탐구와 완강한 투지로 이악하게 노력하여 우리 식의 감자소독제를 개발하였으며 감자저장방법과 감자소독방법을 우리의 힘과 기술로 해결하여 저장실수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이바지하였다.

 

높은 교육자적자질을 지닌 10월8일모범교수자이기도 한 그는 지난 기간 10여명의 학위소유자들을 키워내였으며 10여종의 교과서, 참고서를 집필하고 많은 소논문을 발표하여 후대교육사업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두뇌전, 탐구전을 벌리는 나날에 그는 국가발명증서를 비롯하여 수십개의 과학기술성과와 관련한 증서를 받았다.

 

주체조선의 과학자라면 무슨 일에서나 기어이 성공해야만 한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보답의 한길만을 변함없이 걷겠다는것이 과학자의 드팀없는 의지이고 신념이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 2017년 도최우수과학자, 기술자의 영예를 지닌 그는 자기 땅에 발붙이고 눈은 세계를 굽어보며 오늘도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줄기차게 전진하고 있다.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이 안아온 창조의 열매

새형의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가 수도의 거리를 누비며 달리는 모습을 류다른 흥분과 기쁨속에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평양조명기구공장 등기구직장 일군들과 노동자들이다.바로 그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의 전조등을 만든 주인공들이기때문이다.

 

그 전조등 하나하나에는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력갱생의 창조물을 내놓기 위해 헌신해온 이곳 일군들과 노동계급의 애국의 열정이 깃들어있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지난해 4월 공장에서는 일군들의 협의회가 열리였다.

 

전조등의 반사경과 반사체의 증착을 위한 설비들을 일식으로 갖추어놓기 위한 문제를 가지고 조직한 모임이였다.

 

당시 공장에서는 반사경과 반사체를 다른 단위의 도움을 받아 증착하고있었다.

 

그러나 그 단위의 증착설비는 용도가 다른것으로 하여 반사면의 질을 원만히 보장할수 없는것은 물론 전조등생산도 마음먹은대로 내밀수 없었다.

 

그래서 공장에서는 자체의 힘으로 증착설비를 일식으로 갖추어놓기로 하였다.

 

하지만 여러대의 설비를 마련하고 어려운 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것으로 하여 협의회장에는 이윽토록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때 등기구직장장 김용수동무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그 과업을 우리에게 맡겨달라.전조등제작을 100% 우리의 힘과 기술로 기어이 해내겠다.

 

일군들은 직장장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사실 전조등의 각종 부분품들을 만드느라 누구보다 일손이 바쁜 그들이 반사경과 반사체의 증착문제를 다른 직장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고 하여 탓할 사람은 없었다.

 

일군들의 눈앞에는 전조등생산을 위해 헌신해온 등기구직장의 일군들과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들이 새형의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의 전조등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받은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전이였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지금까지 직장에서 생산하던 제품이라야 형광등, 콤팍트등이 전부였다.그런것으로 하여 전조등제작을 꽤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것이다.

 

전조등생산에 필요한 생산공정을 꾸리자면 적지 않은 자금이 드는것은 물론이고 많은 시간이 요구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직장의 일군들과 노동자들이 한사람같이 궐기해나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앞에 맡겨진 과업을 우리의 힘과 기술로 기어이 제기일에 완수하자.

 

이들은 집체적지혜와 창조적적극성을 높이 발휘하며 설계도면을 한장한장 그려나갔고 부분품제작을 위한 형타들을 하나하나 만들었다.

 

직장일군들과 노동자들의 불같은 열의에 의해 부분품들이 하나둘 완성되였고 전조등제작에로 이어졌다.

 

이런 그들이 이번에도 또다시 어려운 과업을 도맡아나선것이다.

 

협의회에서는 등기구직장의 일군들과 노동자들을 대담하게 믿고 그들에게 이 과업을 맡기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여 증착설비를 일식으로 갖추어놓기 위한 사업이 시작되였다.

 

직장의 일군들과 노동자들은 낡은 설비들중에서 필요한 설비를 개조하는 한편 없는 설비를 새로 만들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다.

 

애로와 난관이 거듭 앞을 막아나섰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날 직장장은 여러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기계를 운반하는 작업반장 강국성동무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

 

터갈라진 입술, 충혈된 눈…

 

며칠째 현장에서 살다싶이 하며 두몫, 세몫 일감을 찾아하는 그의 건강이 걱정되여 집으로 등을 떠밀어보내였었다.

 

《어떻게 된 일이요?》

 

직장장의 엄한 목소리에 강국성동무는 오히려 직장장을 《공격》했다.

 

《정말로 휴식해야 할 사람은 바로 직장장동지입니다.》

 

뜨거운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바로 이런 뜨거운 마음들이 합쳐지고 지혜와 열정이 남김없이 발휘되는 속에 드디여 증착설비들이 일식으로 갖추어졌고 첫 시운전을 하게 되였다.

 

그런데 설비의 가동상태를 살피던 그들의 눈빛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증착이 기술적지표가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던것이다.결국 실패였다.

 

현장에는 긴장한 공기가 차흘렀다.

 

이때 당세포위원장 한상철동무의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이쯤한 일에 주저앉겠는가.무슨 일에서나 신심이 중요한것이다.우리가 처음 전조등을 만들 때에도 그 무슨 경험이나 기술이 있어서 달라붙은것이 아니다.무조건 제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각오,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들은 낮에는 설비들을 해체하여 실패원인을 분석하였고 밤에는 제기되는 기술적문제를 풀기 위해 참고서들과 기술서적들을 탐독하였다.그 나날 연구기관들을 찾아 이들이 걸은 길은 또 얼마인지 모른다.

 

지난 4월 직장의 작업현장에서는 46번째로 되는 증착설비의 시운전이 진행되였다.

 

일군들과 노동자들은 가슴을 조이며 설비의 가동상태를 지켜보았다.

 

이때 직장장의 격동된 목소리가 현장에 울려퍼졌다.

 

《동무들, 성공이요, 성공!》

 

일군들과 노동자들은 너무 기뻐 환성을 올리였다.자기들의 힘과 기술로 만든 설비에서 증착되여 나온 반사경을 번갈아 쓸어보며 그들은 눈굽을 적시였다.

 

하여 직장에서는 전조등을 100% 자체의 힘과 기술로 생산하면서도 제품의 질을 높이고 생산을 힘있게 내밀수 있는 밝은 전망을 열어놓게 되였다.

 

이 나날에 직장의 일군들과 노동자들이 다시금 절감한것이 있다.

 

무슨 일이든 당의 뜻대로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모두가 하나의 지향으로 숨쉬며 일할 때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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