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기관차8 – 해방] <암살> 처단

안다는것은 중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앎은 때로 결정적이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운명을 좌우한다. 앎은 과학이다. 이는 단순히 수단만을 의미하지않는다. 오히려 목표가 보다 중요하다. 어떤 목표를 세워 누구와 함께 노력했는가에 따라 인생자체가 달라진다. 역사속에서 애국자와 매국노, 혁명가와 변절자의 삶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유가 다른데 있지않다. 삶과 운명의 기로에서 애국과 혁명의 길을 선택하는것은 전적으로 신념에 달려있다. 신념있는 사람은 의리를 저버리지않는다.

몰랐으니까, 해방될줄 몰랐으니까는 이유가 되지않는다. 변절의 핑계에 불과할뿐 용서의 근거가 될수 없다. 알아야했다, 해방될줄 알아야했다. 과학적이론에 기초할때 과학적신념을 가질수 있다. 단순한 애국자가 아니라 참다운 혁명가가 되려면 이는 필수적인 요구다. 항일혁명의 길에 나섰다면 동지와 민중을 믿고 그에 의거하며 설사 자기대에 이루지못해도 해방을 향한 정의의 길에 디딤돌 하나를 놓겠다는 양심적인 각오가 서있어야한다. 변절의 논리에는 언제나 양심이 결여돼있다. 기회주의란 양심을 저버린 인간들의 공통된 행동양식이다.

식민지현실은 가혹하다.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 죽는다. 전쟁성노예로 20만이 희생되고 징용·징병으로 840만이 끌려갔다. 나라가 망하면 민중은 상가집의 개만도 못한 신세가 된다. 식민지조선에게는 두가지길이 있었다. 하나는 애국과 혁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매국과 변절의 길이다. 전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빛의 길이고 후자의 길은 안락의 길이지만 어둠의 길이다. 매국노와 변절자에게는 조국과 민중의 저주, 역사와 민심의 단죄만이 있을뿐이다. 이 두길사이 중간의 길은 없다. 이길 이 아니면 저길이다.

해방은 해방이되 절반에 그친 미완이었다. 친일파는 친미파가 돼 오히려 출세하고 득세했다. 반민특위는 허울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못했다. 면죄부를 받고 재판장을 나온 변절자는 <좋은세상>이라고 말한다. 친일파와 변절자에게 <좋은세상>은 민족과 민중에게 <나쁜세상>이다. 결국 <세상>의 법정안에서 단죄되지못하자 <세상>의 법정밖에서 처단됐다. 청산은 <나쁜세상>이 <좋은세상>으로 바뀌기전에는 개별적이지만 바뀌고난후에는 일반적일것이다. 누가 보든 말든 신념을 따라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의 길을 따라 해방의 여명이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