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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박창균〈〈박창균정신〉으로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자〉 ... 4주기 추모모임 열려

〈〈박창균정신〉으로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자〉 … 4주기 추모모임 열려

<<박창균정신>으로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자> … 4주기 추모모임 열려

 

 

12일 오후5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통일애국인사 박창균코리아연대상임대표 4주기 추모모임>이 열렸다.

 

4주기 추모모임은 코리아연대(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가 주최했으며, 통일애국인사, 종교계인사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먼저 조국의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열사들을 추모하며 묵상한 후 <통일애국인사 박창균코리아연대상임대표의 약력>이 소개됐다.

 

다음으로 추도사가 이어졌다.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이규재의장의 추모사를 민자통(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박근창서울회의의장이 대독했다.

 

범민련남측본부는 <박창균선생께서는 80년대 민자통건설과 범민족대회소집운동, 범민련남측본부고문 등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한길을 걸어오셨음을 기억한다.>며 <그길은 유신체제와 분단체제에 맞선 추호의 흔들림없는 선각자의 길이었으며 한시도 민족애를 잃지 않으셨던 통일애국의 한길>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통일의 길에 험난한 장애가 놓여있다.>면서 <박근혜<정권>은 역대최대규모의 한미합동북침전쟁연습을 비롯, 한미일동맹을 강화하며 동족을 향해 전쟁대결책동을 자행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공안정국조성과 노동탄압 등 1%의 부자를 위해 99%민중을 탄압하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박창균선생께서 우리민족끼리를 실현하는 일에 주저함 없이 행동으로 옮기신 것처럼 범민련남측본부도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이 조성되더라도 굽힘없이 통일애국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사회연구소 권오창이사장은 <동지께서 유명을 달리 하신지 4년이 지났다. 오늘따라 동지의 모습이 더욱 그립다.>며 <시대정신의 사표이고 사상의식이 선도자였던 동지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후배들의 마음을 더욱 그립게 하고 있다.>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오늘 전쟁적 상황이 이땅에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1990년대말 범민련의 투쟁이 다시 요구되는 이때에 동지께서 살아계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간절히 느껴지고 있다.>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북·해외 8천만민족이 다함께 어울려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앞당길 그날을 위해 후배들에게 전략전술을 동지께서 제시해 주시기를 삼가 빈다.>고 말했다.

 

6.15남측위학술본부 조영건명예위원장은 <박창균목사님과 깊은 인연이 있다. 혁신정당에 결합했고,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에 결합해 노년위원회 만들어 끊임없이 투쟁하셨다.>면서 <박창균목사님의 사진을 보니 영정사진이 아니라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창균목사님은 90여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결같은 세월을 산 선각자다. 우리는 박창균목사님에 대해 앞으로 자주통일애국자로 말해야 한다.>며 <박창균목사님의 기력이나 행동은 20대청년이었다. 청년을 그렇게 좋아하셨다. 또 끊임없이 배우고 익혔다. 집에 가구는 없고 온통 책이다. 날로 자신을 발전시켰고 검소검약했다.>고 회고하고, <6.15시대에 두번이나 감옥에 가셨다. 석방되고나서도 투쟁현장에 항상 계셨다. 박창균목사님의 자주통일의 염원은 그대로 산사람에게서 가서 산자를 따르며 투쟁을 격려고무해준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코리아연대 김병동공동대표는 <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의 영원한 상임대표, 박창균대표님과 영결한 지 4년, 지난 4년동안 코리아연대는 <박창균정신>으로 살며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다.>며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바치신 한생, <동지들! 우리에겐 투쟁, 전진밖에 없다>며 투쟁을 선도하고 지휘하신 모습, 뒷자리에 서는 법 없이 의로운 투쟁의 맨앞장에 당당히 서는 것이 바로 <박창균정신>>이라고 밝혔다.

 

이어 <코리아연대는 박근혜<정권>의 파쇼적인 공안탄압에 맞서 힘차게 투쟁하고 있다. 이상훈공동대표를 비롯한 8명의 동지들이 비록 저들의 탄압으로 인해 영어의 몸이 됐지만 불굴의 <박창균정신>으로 무장한 코리아연대회원들은 감옥안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공안탄압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리아연대가 벌여내는 힘찬 반미반전·반박근혜투쟁은 저들에게는 공포로, 투쟁하는 민중들에게는 희망으로 되고 있다. 코리아연대가 이처럼 공안탄압을 뚫고 정세가 요구에 조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박창균정신>으로 살며 투쟁하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엄혹한 정세는 바로 <강희남정신>·<박창균정신>·<이희영정신>을 요구하고 있다.>며 <<강희남정신>·<박창균정신>·<이희영정신>을 계승해 내외반통일세력의 도전을 짓부수고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자.>고 강조하면서 <박창균대표님께서 한생을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코리아연대는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조국과 민중을 위한 길에 어떤 시련과 난관이 닥쳐와도 절대 굴하지 않고 억세게 싸워나갈 것>을 굳게 결의했다.

 

다음으로 <식민의노래9_점령군> 시 낭독후 투쟁사가 이어졌다.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이적목사는 투쟁사를 통해 <박창균목사님은 조국통일투쟁의 거대한 강물에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삶을 불태우셨다. 범민련조직에 과감히 몸을 담아 세번의 옥고를 치루며 민족고난의 현장을 비껴가지 않으셨고, 민자통의장으로서 또는 코리아연대상임대표로서 레지스탕스와 같은 사상과 의지를 불태우시며 사셨다.>며 <지금은 모든 민중이 일어나 투쟁해야할 시기다. 박창균목사님의 정신을 이어 반미자주운동을 힘차게 벌여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쟁사에 이어 추모영상이 상영되자 참가자들은 추모영상에 눈을 떼지 못했고, 박창균상임대표를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민중의노래>를 함께 부른 후, 영정에 헌화하며 박창균상임대표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깊이 새겼다.

 

다음은 코리아연대 추모사전문과 박창균상임대표의 약력이다.

 

<박창균정신>으로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자
– 박창균대표 4주기 추모사

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의 영원한 상임대표, 박창균대표님과 영결한지 4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4년동안 코리아연대는 <박창균정신>으로 살며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습니다. 오늘 박창균대표님을 추모하는 뜻깊은 4주기는 <박창균정신>을 기리며 그 정신으로 실천해나가겠다는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자리입니다.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바치신 한생, <동지들! 우리에겐 투쟁, 전진밖에 없다>며 투쟁을 선도하고 지휘하신 모습, 뒷자리에 서는 법 없이 의로운 투쟁의 맨앞장에 당당히 서는 것이 바로 <박창균정신>입니다. 오늘 코리아반도의 정세는 매우 엄중합니다. 생존이냐 죽음이냐, 핵전쟁이냐 평화협정체결이냐 하는 엄혹한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반미반전반박투쟁을 힘있게 전개하여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과제가 우리 민족·민중앞에 놓여있습니다.

지난 2011년 11월26일 우리는 박창균대표님을 상임대표로 모시고 코리아연대창립의 고고지성을 울리었습니다. 그날 박창균대표님은 <너무 기쁘다. 동지들의 눈에서 조국통일의 창창한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지들만 있으면 못해낼 것이 없다>고 하시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그날 신심에 차 넘쳐 연설하던 대표님의 얼굴이 몇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세상이 아직 코리아연대의 존재를 모르던 그해 12월24일. 황혜로공동대표의 방북조문을 알리던 기자회견장에서 정권을 향해 <민간조문을 당장 허용하라>며 단죄하던 그 단호한 모습 또한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박창균대표님은 코리아연대의 상임대표로 우리의 마음에 늘 함께하십니다.

코리아연대는 박근혜<정권>의 파쇼적인 공안탄압에 맞서 힘차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상훈공동대표를 비롯한 8명의 동지들이 비록 저들의 탄압으로 인해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불굴의 <박창균정신>으로 무장한 코리아연대회원들은 감옥안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당면한 엄중한 정세를 맞받아 <키리졸브중단·북미평화협정체결·박근혜정권퇴진>을 요구하며 김대봉동지가 10일에 걸친 옥중단식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처럼 견결히 투쟁하는 소중한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서울구치소 앞에서는 <김혜영·이상훈·이미숙·지영철·김대봉·한준혜·최민·김경구석방!> 노숙농성이 200일 넘게 진행중입니다. 공안탄압에 직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코리아연대가 벌여내는 힘찬 반미반전·반박근혜투쟁은 저들에게는 공포로, 투쟁하는 민중들에게는 희망으로 되고 있습니다. 코리아연대가 이처럼 공안탄압을 뚫고 정세가 요구에 조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박창균정신>으로 살며 투쟁하기 때문입니다.

<평양점령>·<참수작전>·<족집게식타격>을 내용으로 하는 <작전계획5015>의 키리졸브연습이 시작된 코리아반도의 정세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입니다. 미국은 우리강토에 기어이 핵참화를 들씌우기 위해 획책하고 있습니다. <연례적>·<방어적>이라는 가면조차 벗어버린 채 북침핵전쟁야망을 불태우는 미국에 맞서, 북 또한 조평통대변인성명을 통해 <우리의 엄숙한 경고에 도전해나선 침략자, 도발자들은 가장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며 강경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평화를 사랑하고 민족·민중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떨쳐나서 반미반전반박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코리아연대는 <강희남정신>과 <박창균정신>·<이희영정신>으로 살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 엄혹한 정세는 바로 <강희남정신>·<박창균정신>·<이희영정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강희남정신>·<박창균정신>·<이희영정신>을 계승하여 내외반통일세력의 도전을 짓부수고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나갑시다. 강고한 투쟁으로 엄혹한 정세를 뚫어내고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싸워나갑시다. 박창균대표님께서 한생을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코리아연대는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조국과 민중을 위한 길에 어떤 시련과 난관이 닥쳐와도 절대 굴하지 않고 억세게 싸워나갈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2016년 3월12일
21세기레지스탕스 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

 

 

 

 

1925   함경북도 무산 출생
1951   한국신학대학(한신대) 졸업
1951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고시 합격
1952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장립
1960~1970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 아현동 행화정교회 시무
1965   한국신학대학 총동창회 회장 역임
1970년대초  통일사회당 입당
1972   세계사회당지도자 동경대회 한국대표로 참석
1974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1989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자통) 공동의장 역임
1989   국가보안법(민자통 조직사건)으로 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
1990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구성원으로 참여
1995   국가보안법(범민련 남측본부 사건)으로 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
1998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감사 역임
1999   범민족통일대축전 통일선봉대 총대장 역임
1999   국가보안법(범민련 남측본부 사건)으로 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
2003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결성 주도 및 상임고문 역임
2007~2010 민주노동당 노년위원회 위원장 역임
2010~2012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범민련 결성 20돌 기념사업회 국민위원회 고문,  련방통추 고문, 한국진보연대 고문 역임
2011~2012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상임대표 역임
2012. 3. 12 애타게 그리던 통일조국을 맞이하지 못하고 끝내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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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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