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기관차6 – 바이러스] 환율전쟁과 세계단일통화

환율전쟁과 세계단일통화

환율전쟁은 인위적으로 환율시세를 낮추는 방법으로 무역에서 상품수출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해 대외상품시장을 쟁탈하려는 경쟁을 말한다. 1992 유럽외환위기는 독일통일직후 서독·동독의 통화통합과정에서 독일이 대량의 화폐를 풀고 그에 대응해 고금리정책을 실시하며 발생했다. 이를 기회로 소로스등 헤지펀드들이 파운드화를 공격적으로 매도하면서 환차익으로 20억달러를 벌어들여 영국 파운드화가 유럽통화제도에서 탈퇴하게 됐다. 이는 생산과 소비와는 전혀 무관한 국제금융통화관계만을 이용해 대량의 재부가 국가에서 사기업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단적이고 간명하게 보여준다. 1985 플라자합의는 미·영·프·독·일간에 이뤄진 환율에 관한 합의다. 1971 달러금태환중지와 1974~75 인플레이션공황, 1979 2차 석유위기가 연속되면서 인플레이션압력이 심화됐다. 미국은 인플레를 억제할 목적으로 금융긴축정책을 실시했고 달러의 가치가 상승했다. 인플레는 잡았지만 무역적자는 심화됐다. 미달러의 액면가가 높았기에 수출은 감소하고 수입은 확대됐다. 미국내적으로는 <스타워즈>계획의 군비정책과 공화당특유의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가 심화돼 경제는 무역적자·재정적자의 <쌍둥이적자>압박을 받고있었다. 미국은 인플레압박으로 금리인하를 실시할수 없었고 산업계는 자국산업보호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래서 플라자합의로 미달러가치를 낮추기 위해 독일마르크화와 일본엔화를 평가절상하기로 결정했다. 플라자합의는 개입재원을 미·일각각30%·독25%·프10%·영5%를 분담하기로, 또 미국의 인플레압력이 해 소되면 5개국은 인플레율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1986.3 이나라들은 정책금리를 모두 같이 0.25~0.5% 인하했다. 거시경제정책적으로 미·프·영은 재정적자축소·물가안정을, 독·일은 내수확대를 최우선목표로 했다. 미국의 수출은 늘었다. 수출 경쟁력을 잃은 일본산업계는 엔화를 가지고 미국자산사들이기에 나섰고 해외여행붐이 일어났다. 이후 경기둔화를 우려해 금리를 낮추자 일본부동산가격이 올라 거품이 형성됐다. 1989~90 이제는 부동산거품을 우려해 금리를 높이자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업계가 연쇄도산하고 대기업이 파산했다. 플라자합의당시 일본총리 야스히로는 <엔화절상폭이기껏해야10~20%에그칠것이라고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정도는 충분히 감내할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는것이다. 그렇게해서 일본의 <잃어버린20년>이 시작됐다. 자본과 상품의 이동은 상호적이어서 그착취가 교묘히 은폐된다. 환율전쟁을 통한 무역전쟁은 기업들의 수출은 늘어나지만 수입상품의 소비가는 상승해 민중들에게 그비용이 전가되는 가장 악랄한 방법이다. 중미무역분쟁이 중미환율전쟁을 불러오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계속 나온다. 중국은 일본과 다르다. 환율전쟁은 곧 화폐전쟁이다. 중국은 디지털화폐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자국화폐의 영향력을 확대하려한다. 이는 누가 통화권을 쥐느냐하는 또다른 차원의 화폐전쟁이다. 화폐는 생산·분배·교환·소비의 경제생활이 원활하게 이뤄질수 있게 한다. 화폐가 민중이 생산한 사회적재부를 극소수개인의 치부에 이용되는 경제에서는 환율전쟁·화폐전쟁이 불가피하며 이런 경제에서의 경기불안정은 해소될수 없다. 2차세계대전이후 달러중심의 기축통화제도가 수립된것처럼 세계적인 환율전쟁의 끝에 세계단일통화제도가 겹쳐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