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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 항쟁의기관차〉 유로존의 역사적실험

유로존의 역사적실험

유로존은 대표적인 국제적인 화폐통합사례다. 이런 화폐동맹은 단일통화도입·단일통화센터설립등 공동의 금융통화정책을 실현하고 경제정책의 조정·합의와 같은 조건을 전제한다. 경제통합은 일반적으로 1) 회원국간관세장벽을폐지하는자유무역지대 2) 제3국에대한통합대외무역정책을실시하는관세동맹 3) 노동·자본·상품및서비스의자유로운이동이이뤄지는공동시장 4) 통합거시경제정책을실시하는경제동맹 5) 통합재정정책·실질적예산과정의조정과단일통화를도입하는단계로 구분된다. 유로존은 단일통화를 도입한 최고형태다. 그런데 이단일통화제도는 국가재정정책이 통합돼있지못한 기형적구조를 이루고있다. 그만큼 그형성과정이 정상적이지못했다. 1940년대말 2차대전후 <달러기근>속에 서유럽나라들간의 다무적청산결제와 참가국사이의 통화제한완화, 외화거래자유화를 목적으로 <유럽지불동맹>을 창설했다. 그러다가 성원국사이의 국제수지불균형과 채무지불을 금으로 하는 조건에서 각국의 금보유량의 불균형까지 심화시켜 결국 해산됐 다. 계속되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1979.3 유럽통화단위 <에큐(ECU)>가 만들어졌다. 에큐는 SDR(특별인출권)과 달리 금·달러에 의해 담보되는 현실적인 보장성을 가지고있었다. 이유럽통화제도도 준비자산으로 금을 이용했다. 강국·약국간의 차이와 달러의 불안정성은 달러와의 환율에서 각이하게 유럽나라들의 통화를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져 공동통화의 운영은 안정적으로 이뤄지지못했다. 1991.12 마스트리히트조약체결(1992비준)로 합의가 이뤄졌다. 1990년대초반 유럽의 외환위기는 화폐통합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지게 했다. 유럽통화연합은 최적통화지역의 기준을 충족하지못한채 출범 했으며 사후 그조건을 충족시키는 방식을 취하지않을수 없었다. 유럽통화연합의 3단계가입을 위한 경제수렴기준은 환율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상대적기준과 재정건전화를 위한 절대적기준등으로 구성됐다. 영국은 경제규모가 큰 나라지 만 외화준비율이 1970 12%에서 1980년대중반 2.5% 감소하는것과 같은 문제가 있어서 유럽통화제도에 가입하는것보다 런던금융시장을 통해 변동환율제하에서 금융업이윤에 더큰 이해관계를 보였다. 영국은 1989 경제성장률이 감퇴하고 악성인플레에 빠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입했다가, 1990년대초 독일통일로 독일이 엄청난 마르크화를 풀어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초고금리정책상황이 되고 여기에 소로스등 헤지펀드의 파운드화투매로 환율방어가 실패하자 결국 유럽통화제도에서 탈퇴하게 됐다. 자본주의경제위기는 경제통합을 통해 문제해결의 방도를 모색하지만 항상 각국의 이해관계는 불일치하며 강국의 횡포로 약국들은 불평등한 약정을 맺지않으면 안된다. 약국의 일방적희생으로 경기순환을 보장하는 것이다. 2019.8 <잭슨홀미팅>에서 영국은행 카니총재는 IMF(국제통화기금)를 중심으로 자본이탈에 대응하는 공동의 세계펀드를 만들어 달러에 의존하지않는 국제경제관계를 만들수 있다고 제안했다. IMF의 재원을 늘려 발전도상나라들이 보유해야할 준비금부담을 1/3로 줄일수 있다고 했으나 이주장은 발전도상나라들의 입장에서는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다. IMF와 함께 유로존은 세계단일통화로의 흐름을 촉진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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