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기관차6 – 바이러스] 금본위제로의 회귀?

금본위제로의 회귀?

금은 오랜 세월에 걸쳐 화폐로 기능해왔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세계시장이 형성되고 여러형태의 국제경제교류가 확대됐으며 자본수출에 의한 생산의 국제화도 이뤄졌다. 경제관계의 확대는 이를 매개할수 있는 유일한 세계화폐를 요구했다. 세계화폐는 오직 금만이 될수 있었다. 금본위제에서 통화는 발행량만큼의 금저장이 담보된다는 전제에서 해당가치의 금으로의 자유로운 태환, 금의 자유로운 주조, 금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필요유통량에 접근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1821 영국은 금의 일정량을 파운드화에 고정시키는 금본위제를 도입했다. 당시 파운드화는 세계무역의 60%를 차지했으며 런던금융시장은 전세계투자액의 절반을 소화하고있었다. 1867 파리에서의 국제회의는 금이 유일한 세계화폐임을 인정했다고 이어 각국에 금본위제가 확대됐다. 금이 화폐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며 금화는 액면가에 관계없이 순금의 무게에 의해서만 유통되는 유일한 세계기준통화였다. 금본위제에 기초한 국제통화금융관계는 경제에 대한 국가적간섭이 상대적으로 크지않았던시기 자본주의생산과 국제경제관계의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줬다. 화폐유통과 지불, 국제결제의 균형을 보장하는데서 자연발생적조절자의 기능을 수행했다. 이런 독점전자본주의시기 금본위제는 국제적협정에 의해 확립된것이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것으로서 국제적의무를 지니지않았다. 그래서 1차대전당시 전쟁준비로 불환지폐가 남발되자 모든 자본주의나라들에서 금본위제가 파탄됐다. 인플레가 격화되자 <통화안정화>라는 명목으로 긴축이 실시되면서 금통화본위제가 확립된다. 1860·70년대~1914 금본위제로 안정적인 국제경제관계와 재정정책을 수행할수 있었지만 1914 1차대전을 계기로 한 무분별한 군비경쟁에 의해 금본위제가 무너졌다. 1929 상대적과잉생산공황의 경제파탄까지 경험한 세계는 2차대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미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통화제도를 수립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자유태환이 불가능한 불태환은행권으로서 1971.8 달러의 금태환중지선언은 필연이었다. 금에 매여있는 이체제를 바꿔보고자 자본주의열강들은 <랑부이에선언>으로 금을 통화의 가치기준으로 삼는것을 중단하고 이를 이유로 IMF의 보유금을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열강들은 화폐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금을 열심히 사들였다. <중과러가만약먼저금본위제를채택한다면세계최대강국으로치고올라가는것은시간문제일지도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전격적인 금본위제로의 회귀도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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