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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17일 수요일 4: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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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조국이여, 그대에겐 수백만의 리수복이 있다

4일 노동신문은 기사<사회주의승리의 필연성>, <연대적혁신의 열풍속에 보다 큰 승리를>, <다발적, 연발적인 건설성과를>,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겠다>, <온 나라 인민을 안고 걸으신 길>, <사회주의신념은 우리의 생명>,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해나가시는 나날에>, <신념과 지조를 끝까지 지켜싸운 열혈전사>, <조국이여, 그대에겐 수백만의 리수복이 있다>, <주타격전방을 함께 지켜선 입장에서>, <기술자, 기능공들에게 의거하면 길이 열린다>, <새 자원개발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업>, <공정마다에서 가능성을 찾아>, <예비는 애국으로 불타는 심장에 있다>, <삶의 향기>, <자주시대의 전진을 힘있게 추동하신 절세의 위인>등을 게재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철저히 무장하자!

사회주의승리의 필연성

오늘 우리는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전진활로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힘있게 벌려나가고있다.막아서는 도전과 난관을 과감히 짓부시며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거창한 위업을 실현해나가자면 전체 인민이 사회주의승리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간직하여야 한다.

김일성-김정일주의혁명이론은 사람,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사회주의의 본질적우월성과 함께 그 승리의 필연성에 대하여 완벽하게 밝히였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회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에 따라 발전하는것은 막을수 없는 역사의 기본흐름이며 인민대중의 본성적요구를 철저히 구현하고있는 사회주의가 승리하는것은 필연적입니다.》

사회주의는 가장 우월한 사회이며 사회주의가 승리하는것은 역사의 필연이다.한때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붕괴를 기화로 제국주의자들과 그 추종세력들은 《사회주의의 종말》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떠들었다.그러나 진리는 가리울수 없고 말살할수 없는것이다.사회주의는 그 과학성과 진리성으로 하여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가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의 지향이고 의지이기때문이다.

사회발전, 역사발전의 방향은 그 어떤 개인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에 의하여 결정된다.자주성을 본성으로 하는 인민대중은 자주성의 실현을 지향하며 이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끝장내고 사람들을 온갖 구속과 예속에서 종국적으로 해방시켜주는 사회주의에 의해서만 실현될수 있다.결국 사회주의는 그 누가 고안해낸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스스로가 선택하고 지향한것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적본성이 변할수 없는것만큼 사회주의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향도 변할수 없다.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지향인 동시에 의지이다.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단순한 염원이 아니라 장구한 기간 자주성을 위한 투쟁을 벌려오는 과정에 역사의 의지로 간직한 요구이며 리념이다.오늘 사회주의를 반드시 실현하려는 인민대중의 의지는 시대와 역사가 발전할수록,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강화될수록 더욱더 억세여지고있다.

현실은 사회주의가 인민대중의 변할수 없는 지향이고 의지이며 이것으로 하여 그 승리는 확정적이라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그것은 다음으로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에로 넘어가는것이 인류사회발전의 필연적요구이기때문이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적대계급사회에서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실현될수 없다.사적소유와 그 산물인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는 불피코 사회를 적대되는 계급으로 분열시키고 계급적대립과 사회적불평등을 가져오며 인민대중에 대한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와 압박을 동반하게 된다.특히 자본주의사회는 개인주의를 극소수 자본가들의 무제한한 탐욕으로 전환시키고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의 적대적모순이 극도에 이르게 한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은 오직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에서만 원만히 실현된다.집단주의는 자유와 평등, 협력과 단결을 낳고 인간의 자주성을 철저히 옹호하며 사회발전을 힘있게 추동한다.사람은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하여야 생존하고 발전할수 있으며 사회성원들의 집단적협력에 의해서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주적요구를 실현할수 있다.사회주의사회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인것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만 훌륭히 실현된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자면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로부터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 사회주의에로 넘어가야 한다는것이 인류사회발전의 역사적총화이다.

그것은 다음으로 새것은 승리하고 낡은것은 멸망하는것이 역사발전의 법칙이기때문이다.

역사발전과정에서 새것이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는것이며 낡은것이란 인민대중의 자주성의 실현을 억제하는것이다.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의 역사는 새것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며 이 과정에 새것은 반드시 낡은것을 이기고 승리하게 된다.

사회주의는 새것이며 착취사회, 자본주의는 낡은것이다.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세기적염원을 반영하여 일떠선 새 사회이며 자본주의는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를 억압하는 낡은 사회이다.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낡은 착취사회를 영원히 청산하고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이며 이 과정에 낡고 반동적인 착취사회가 멸망하고 새롭고 선진적인 사회주의가 승리하게 되는것은 역사발전의 법칙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앞으로 전진하는 법이다.전진도상에서 장애에 부닥친다고 하여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법은 없다.오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이 사회주의에로 나아가는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염원을 막아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지만 사회주의는 역사의 모진 시련과 난관, 우여곡절을 이겨내면서 승승장구해나가고있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사회주의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만장약하고 오늘의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위한 투쟁에 총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정면돌파전의 첫 승전고를 불씨로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불길을 더 거세차게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소식에 접하여

연대적혁신의 열풍속에 보다 큰 승리를

비료생산기지에 혈맥을 잇고

우리의 원료와 연료에 의거하고 모든 생산공정이 우리의 기술로 꾸려진 순천린비료공장이 준공하였다는 소식에 접한 우리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의 일군들과 탄부들은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있다.

우리 당이 펼친 웅대한 설계도따라 전체 인민이 혁명의 준엄한 난국을 맞받아뚫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나가는 총진군길에서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창조물로 일떠선 순천린비료공장,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은 위대한 당의 영도따라 정면돌파전을 과감히 벌려 사회주의건설의 새 승리를 이룩하려는 영웅적조선노동계급의 혁명적기상과 우리 국가의 막강한 위력에 대한 힘있는 과시이며 전체 농업근로자들과 인민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는 일대 경사이다.

역사적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정면돌파전의 첫 승전포성을 장쾌하게 울린 순천린비료공장의 준공을 통해 우리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승리는 영원하고 당의 영도따라 자력갱생의 기상으로 억세게 나아갈 때 그 어떤 투쟁목표도 점령할수 있다는것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석탄이 꽝꽝 나와야 긴장한 전력문제도 풀수 있고 금속공업을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연료, 동력수요를 충족시킬수 있습니다.》

우리 연합기업소안의 일군들과 탄부들은 우리의 원료, 우리의 기술에 의거하는 새로운 공업을 창설한 일군들과 과학자, 기술자, 건설자들의 모범을 따라 석탄생산을 늘이기 위한 공격전을 과감하게 벌려나감으로써 순천린비료공장을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필요한 석탄을 원만히 보장하겠다.

굴진을 채탄에 확고히 앞세워나가는것은 석탄생산을 더욱 늘이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이다.

우리는 굴진역량을 강화하고 앞선 발파방법을 적극 받아들여 굴진 순환당 진도를 높이며 고속도굴진운동도 힘있게 벌려 굴진을 채탄에 확고히 앞세울데 대한 당정책을 철저히 관철해나가겠다.

2.8직동청년탄광, 천성청년탄광의 벨트콘베아개건을 힘있게 다그쳐 석탄운반능력을 끌어올리며 석탄생산에서 제기되는 부속품들을 마음먹은대로 가공할수 있게 탄광공무기지들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을 드세게 밀고나가겠다.

석탄증산은 우리 일군들의 일본새에 크게 달려있다.

우리는 당과 혁명앞에 지닌 무거운 책임감을 깊이 자각하고 맡은 임무를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집행해나가는 혁명적기풍을 확립해나가겠다.경제조직사업을 실리가 나게 짜고들며 늘 생산현장에 내려가 탄부들에게 당의 의도를 알려주면서 생산지휘도 하고 자재보장사업도 기동적으로 벌려나가겠다.

그리하여 순천린비료공장과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를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석탄을 원만히 보장하겠다는것을 굳게 결의한다.

조국과 인민이 우리를 지켜본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시여 몸소 준공테프를 끊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우리 광산의 전체 노동계급의 심장은 격정과 흥분으로 높뛰고있다.

우리 힘, 우리 기술, 우리 식으로 건설한 순천린비료공장이 준공됨으로써 알곡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으며 당의 의도대로 새로운 공업을 창설하고 경제토대를 복원하는데서 본보기가 마련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린비료생산을 늘이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린비료공장들에 린정광을 넉넉히 대주어야 합니다.》

우리 광산은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한평생 온갖 심혈과 노고를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단위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학적인 통찰력과 천리혜안의 예지로 우리 나라에 없다던 린회석매장지를 찾아주시고 그 개발사업을 이끌어주시였으며 광산의 이름도 몸소 지어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광산에 몸소 찾아오시여 광산의 강화발전을 위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지난 1월 올해 첫 현지지도로 순천린비료공장건설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공장건설과 함께 린회석광산들을 하루빨리 환원복구할데 대한 강령적과업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을 위한 혁명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중앙과 도에서 강력한 당지도소조가 파견되여오고 전국의 련관단위들과 도안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환원복구에 필요한 기능공들과 설비, 자재를 우선적으로 보내주었다.광산노동계급도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정신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하면서 모두가 들고일어났다.

우리 광산을 비롯한 린정광보장단위들에서 생산이 활성화되여야 더 많은 린비료가 쏟아져나오게 된다.

우리 광산의 일군들은 생산과 경영활동을 짜고들어 진행해나감으로써 순천린비료공장에 더 많은 린정광을 보내주겠다.

빠른 시일안에 통합생산체계구축을 결속하고 설비관리, 기술관리를 보다 짜고들며 노동자들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여 설비들의 만가동을 보장함으로써 린정광생산을 활성화해나가겠다.

증산, 영유광산의 일군들과 노동계급에게도 호소한다.

우리모두 집단적혁신과 맹열한 증산경쟁으로 순천린비료공장의 숨결을 굳건히 지켜나가자.조국과 인민이 우리를 지켜본다.

정면돌파전의 첫 승전고를 불씨로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불길을 더 거세차게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소식에 접하여

다발적, 연발적인 건설성과를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 조국땅에 펼쳐지고있는 경이적인 현실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사회주의강국을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일떠세울수 있으며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 굳은 신심을 안겨주고있습니다.》

정면돌파전의 장쾌한 첫 승전포성을 가슴후련히 들었다.크나큰 긍지와 자부심, 필승의 신심과 낙관으로 온 나라가 끓고있다.

오늘도 우리의 눈앞에 선히 어려온다.지난 1월 새해의 첫 현지지도로 순천린비료공장건설장을 찾으시고 바람이 불어야 기발이 날리는것은 당연한 리치이라고, 적대세력들이 역풍을 불어오면 올수록 우리의 붉은기는 구김없이 더더욱 거세차게 휘날릴것이라고 하시면서 아무리 정세가 엄혹하고 가는 앞길에 난관이 막아나서도 우리 위업의 정당성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자기의 힘을 믿고 부단히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 적극성을 발휘해나간다면 우리의 이상과 포부는 반드시 우리의 손에 의하여 실현될것이라고 말씀하시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자애로운 모습이.

그로부터 불과 넉달, 길지 않은 나날이 흘렀다.

지난 1일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시여 몸소 준공테프를 끊으시였다는 소식은 우리 216사단안의 전체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의 가슴가슴을 크나큰 격정과 흥분으로 끓어번지게 하고있다.

지금 216사단안의 전체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은 삼지연시꾸리기 3단계공사에서 위훈창조의 열풍을 더욱 세차게 일으키고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지난해 백두성지 삼지연땅에 천지개벽의 눈부신 현실을 펼쳐놓고 사회주의조선의 대진군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수 없음을 온 세상에 과시한 우리들이다.

순천전역에서 울린 정면돌파전의 첫 승전포성을 삼지연시꾸리기 3단계공사에서의 자랑찬 성과로 이어나가자.

바로 이것이 사단안의 전체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의 억척의 신념이고 의지이다.

투쟁과업은 방대하고 애로와 난관도 적지 않다.그러나 순천린비료공장의 준공소식은 당중앙의 사상과 영도를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받들고 자력갱생의 위력을 총폭발시켜나갈 때 뚫지 못할 난관도, 점령 못할 목표도 없다는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혀주고있다.

우리는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소식에 접하고 비상히 앙양된 대중의 혁명적열의에 맞게 공사조직을 짜고들고 설비와 자재보장사업에 큰 힘을 넣어 건설성과를 끊임없이 확대해나가겠다.합리적인 공법을 적극 받아들여 건설물들을 높은 질적수준에서 완성하도록 하며 인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건설자재들을 극력 절약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겠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이후 이룩된 첫 승전포성에 화답하여 백두전역에서 주체조선의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기상을 과시하는 새로운 기적과 위훈을 창조해나가겠다.

정면돌파전의 첫 승전고를 불씨로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불길을 더 거세차게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소식에 접하여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겠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시여 몸소 준공테프를 끊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한 우리 황해남도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가슴가슴은 격정과 흥분으로 세차게 설레이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부문에서는 과학적영농방법을 적극 받아들이고 농사일을 책임적으로 하여 당이 제시한 알곡고지를 기어이 점령하여야 합니다.》

지금 도안의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순천린비료공장을 주체비료생산기지로 훌륭히 일떠세워주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현명한 영도밑에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원료에 의거한 주체적인 린비료공업이 창설됨으로써 한평생을 바치시여 사회주의자립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다져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알곡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다.

오늘의 대승리는 우리모두의 심장마다에 백배, 천배의 열의를 더해주고있다.도안의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 누구나가 알곡증산은 문제없다는 신심에 넘쳐있다.

당중앙의 사상과 영도를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받들고 자력갱생의 위력을 총폭발시켜나갈 때 강국의 존엄과 위상을 만방에 떨쳐갈수 있다는 승리의 신심을 백배해준 순천린비료공장건설자들의 그 정신, 그 기백을 본받아 한개 도의 농사를 책임진 일군으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가겠다.

농업부문에서 과학농법을 틀어쥐고 다수확열풍을 더욱 세차게 일으킬데 대한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우리 도에서는 올해에 앞선 영농방법도입면적을 지난해보다 훨씬 늘이였다.이에 맞게 현실에 깊이 들어가 대중의 심장에 불을 달고 모든 사업을 혁명적으로, 과학적으로 전개해나가겠다.무슨 일을 하나 해도 오분열도식으로가 아니라 끝장을 볼 때까지 근기있게 내밀어 과학적인 농사방법들이 현실에서 은을 내도록 하겠다.

당면하게는 농업근로자들의 정신력을 발동하여 강냉이심기를 다그쳐 끝내고 모내기를 적기에 질적으로 할수 있도록 선행공정을 추진하는데 박차를 가하겠다.

우리는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인 농업전선을 지켜선 무거운 책임감을 자각하고 알곡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려 뜻깊은 올해에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겠다.

영광의 자욱을 따라

온 나라 인민을 안고 걸으신 길

중화군에 깃든 절세위인의 불멸의 자욱을 더듬어

우리 조국의 날과 달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그 어느날이나 할것없이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수놓아져있기때문이다.

얼마전 우리가 중화군에 대한 취재길에서 되새겨보게 된 주체59(1970)년 3월 27일도 바로 그런 날들중의 하루이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중화군에 들어선 우리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읍남새전문협동농장이였다.

농장일군은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시려 그처럼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자욱이 자기 농장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정미소로 이끌었다.

정미소에 꾸려진 닭우리에는 수백마리의 닭들이 우리가 좁다하게 돌아치고있었다.

흐뭇한 광경앞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3월의 봄날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고 어느 한 닭공장을 찾으시였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곳 농장의 정미소로 향하시였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당시 우리 나라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아래 곳곳에 닭공장들이 일떠서 더 많은 고기와 알을 생산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있었다.그러나 개인세대들에서 닭을 기르는 문제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있었다.일군들부터가 닭을 기르자고 말만 했지 실지 닭먹이문제와 닭관리문제 등에 대하여서는 이렇다할 방도를 내놓지 못하고있었다.더우기 협동농장들의 정미소와 작업반들에서 닭을 기르는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우리 농장의 정미소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협동농장들의 탈곡장들에서는 닭을 50마리씩 기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정미소와 탈곡장들에서 닭을 기르는데서 나서는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일군은 그때부터 농장의 정미소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대로 많은 닭을 기르고있다고 하면서 해마다 마리수를 늘여가니 그 덕을 단단히 보고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그의 말속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잊지 못해하는 우리 인민들의 마음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시의 군수매양정사업소 정미공장과 명월협동농장에도 영도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깊어지는 생각을 안고 우리는 명월리로 취재길을 이어갔다.

명월리는 읍에서 시오리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구릉지대를 끼고 아담하게 펼쳐진 리의 전경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포전에서 우리와 만난 유정길관리위원장은 무척 감동깊은 표정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기 고장을 찾으시였던 50년전 그날에로 추억을 더듬어갔다.

한낮이 기울무렵 이곳 농장을 찾으시여 정미소마당가에 차를 세우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기계를 뜯어놓고 정비를 하고있던 정미소책임자의 기름묻은 손도 허물없이 잡아주시며 출미률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그러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벼겨에서 닭먹이가 나오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정미소책임자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농장의 일군들은 닭먹이는 낟알이여야 하는것으로만 알고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닭은 눈이 밝아서 톡톡 잘 쪼아먹는다고 하시며 손으로 형용까지 해보이시였다.

그제서야 벼겨로 닭을 기를수 있다는것을 알게 된 농장의 일군들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깊이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노고가 뜨겁게 어려와 머리가 숙어졌다.

이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정미소책임자에게 닭을 몇마리 기를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30마리를 기를수 있다고 하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60마리는 기를수 없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렇게 할수 있다는 정미소책임자의 대답을 들으시고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50마리로 규정해주시였다.

이때 벼겨가 있는 야적장으로 닭 한마리가 다가왔다.

어디 닭인가고 물으시는 어버이수령님께 농장의 일군이 개인집에서 기르는 닭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수행원들에게 개인닭이 유격전하러 나왔다고 호탕하게 웃으시고나서 닭을 기를수 있겠다고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과연 그 어느 나라 수령이 이처럼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자그마한 농촌정미소까지 찾아와 닭을 기를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준적이 있었던가.

정미소를 나서신 길로 농장의 제1작업반에도 들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작업반의 닭기르기정형을 알아보시고 전국적인 판도에서 그 마리수를 가늠해보시였다.

그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장에 알을 잘 낳는 종자닭 수십마리에 이어 매개 작업반에서 닭을 기를수 있도록 수백마리의 닭을 더 보내주도록 하시고 수십㎡에 달하는 야계사를 비롯하여 닭을 기를수 있는 온갖 조건을 다 마련하여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농장은 닭기르기에서 전국적인 시범을 창조하게 되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오직 인민의 행복을 위해 한평생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천만노고가 사무치게 어려와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우리는 관리위원장과 함께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자욱이 깃들어있는 제1작업반으로 발걸음을 내짚었다.

품들여 마련한 질좋은 흙보산비료를 포전에 실어내느라 여념이 없던 작업반장 허춘옥동무는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훔치며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을 떠나 명월리의 오늘을 생각할수 없다고 하면서 당의 뜻을 받들어 농사는 물론 축산에서도 더 큰 혁신을 이룩하겠다고 신심에 넘쳐 말하였다.

이것은 비단 그만이 아닌 이곳 일군들과 농장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그들의 불같은 마음을 읽을수록 우리의 눈앞에는 수십년전 그날 온 나라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가장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실 일념을 안으시고 불멸의 자욱을 새기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숭엄히 어려왔다.

봄기운이 완연한 드넓은 대지도 하많은 추억을 속삭이는것만 같았다.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길이 전하며 빛내여갈 인민의 불타는 마음으로 하여 사회주의협동벌은 더욱 끓어번지고있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을 펼치고

사회주의신념은 우리의 생명

영생불멸의 김일성-김정일주의총서인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에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 《사회주의교양을 강화하는것은 우리 시대, 우리 혁명의 절실한 요구이다》가 수록되여있다.

이 노작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95(2006)년 12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이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은 신념으로 하며 신념이 없이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나가는 혁명을 할수 없습니다.》

사회주의사회는 사회주의사상에 의하여 향도되고 사회주의사상을 기본추동력으로 하여 발전하는 사회이며 사상사업을 앞세우는것은 사회주의위업수행의 필수적요구이다.

사회주의교양을 강화하여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어떤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빛내여나갈수 있으며 사회주의위업을 끝까지 완성할수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오늘 우리 나라가 처한 안팎의 정세와 우리앞에 나선 중대한 혁명임무는 그 어느때보다도 간부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사회주의교양을 더욱 강화할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정세가 복잡하고 첨예할수록, 원쑤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악랄하고 투쟁이 간고할수록 사상사업을 더욱 튼튼히 틀어쥐고 혁명과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사상전을 강도높이, 진공적으로 벌려나가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사회주의는 사상을 틀어쥐면 승리하고 사상을 놓치면 망한다.이것은 역사의 교훈이다.사람의 사상에 공백이 있을수 없는것만큼 사회주의를 위한 우리의 사상사업에서는 그 어떤 동면도 침체도 허용될수 없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시기 사회주의교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간부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교양을 깊이있게 잘하는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사회생활의 모든 령역에서 온갖 낡고 반동적인것을 쓸어버리고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키는 가장 심각하고 첨예한 혁명투쟁이며 확고한 신념이 없이는 사회주의위업을 수행할수 없다.

신념이 강한 당은 변질되지 않고 신념이 강한 국가는 붕괴되지 않으며 신념이 강한 인민은 와해되지 않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은 사회주의위업의 정당성과 사회주의승리의 필연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며 사회주의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싸우려는 강의한 의지라고 하시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은 우리 간부들과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있어서 생명이라고 말할수 있다는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은 우리의 생명!

바로 여기에는 신념을 떠난 혁명가의 빛나는 생에 대해 논할수 없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사람들만이 그 어떤 고난과 시련도 과감히 뚫고 혁명의 길을 끝까지 갈수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 이 위대한 사상정신적힘이 있었기에 우리 인민은 역사의 모진 광풍속에서도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의 존엄과 기상을 높이 떨치며 부강조국의 만년토대를 튼튼히 다져올수 있었다.

오늘도 적대세력들은 어떻게 하나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노작에서 밝혀주신 철리를 깊이 간직한 신념의 강자들이 경애하는 원수님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나아가기에 사회주의강국의 령마루를 향한 우리 조국의 전진은 순간의 주저나 답보도 없이 그렇듯 줄기차게 이어지고있는것이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며 그 승리도 과학이라는 절대불변의 신념을 간직하고 사회주의 오직 한길로 나아가는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을자 이 세상에 없다.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해나가시는 나날에

류다르게 시작된 협의회

주체70(1981)년 5월 은덕군(오늘의 경흥군) 읍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협의회가 시작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제일 오래 생활하였다는 한 일군에게 이 고장 이름을 왜 아오지라고 부르는가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가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다른 일군이 옛날에 이곳이 너무도 사람 못살 고장이여서 석탄을 캐러 오는 품팔이군들을 보고 《아, 오지 말라.》라고 했는데 그것이 굳어져서 아오지라는 이름이 되였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전에 탄부들이 오소리굴같은 막장에 기여들어가 감독놈들의 채찍밑에서 원시적노동을 강요당하다나니 너무도 살기 어려워 지명을 그런 뜻으로 해석한것 같은데 사실은 그 이름이 조선봉건왕조시기전부터 불리워지고있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협의회장으로 들어와 위대한 수령님께 무엇인가 조용히 설명해드리였다.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예측이 맞았다고, 어쩐지 아오지라는 이름이 우리 말같지 않아서 평양에 알아보게 했는데 방금 회답이 왔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사실 아오지라는것은 우리 말이 아니였다.

이에 대하여 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래침략자들이 지어놓고 달아난 이름을 우리가 어떻게 그대로 두고 부를수 있겠는가고, 이 지방에 아오지라는 말을 붙인 지명과 공장이름들을 다 우리 나라 말로 고쳐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철저히 구현할 때 자주적존엄과 민족적긍지를 안고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갈수 있다는 귀중한 철리가 일군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뜻깊은 순간이였다.

옷차림을 우리 식으로

주체54(1965)년 3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 양복점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인민들의 옷주문과 가공실태를 료해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한 재단사가 요즘 다른 나라 사람들속에서 바지가랭이를 넓게 만들어입는것이 유행으로 되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심중한 어조로 유행을 따른다고 하여 우리 사람들이 입을 옷까지 외국식으로 만들어주어서는 안된다고 하시였다.

순간 재단사는 얼굴이 붉어짐을 금할수가 없었다.

제딴에는 인민들에게 세계적유행에 맞게 옷을 만들어주는것을 자랑처럼 생각하고있던 그였기때문이다.

이윽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이 입는 옷은 조선사람의 풍습과 기호에 맞고 노동과 활동에 편리하게 우리 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바지가랭이를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너무 넓게 만들거나 좁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데 대하여 다정히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그의 생각은 깊어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에는 사회의 풍조와 사람들의 문명, 정신도덕상태가 반영된다.

그러고보면 옷은 나라와 민족의 정치적리념과 생활양식, 민족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신도덕적으로 건전하고 혁명성이 남달리 강하며 소박한 우리 인민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유행을 따르게 하려 했으니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이날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재단사는 옷차림문제가 단순히 옷을 어떻게 차려입는가 하는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업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라는것을 페부로 절감하게 되었다.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신념과 지조를 끝까지 지켜싸운 열혈전사

혁명투사 권영벽동지의 한생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늘 마음속에 새겨두시고 뜨겁게 추억하신 열혈투사들중에는 권영벽동지도 있다.

그는 우리 혁명의 가장 준엄한 시기에 오직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 한분만을 변함없이 믿고 따르면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일편단심 사령관동지께 무한히 충직한 참된 혁명가였다.

《나를 낳아준것은 어머니이고 혁명투쟁에서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준 사령관동지는 나의 스승이며 어버이이시다.나는 일편단심 사령관동지께 충성을 다하리라.》

그의 수첩에 적혀있던 이 글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혁명의 수령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그이께서 이끄시는 혁명위업에 한생을 바치는것을 드팀없는 인생관으로 삼은 권영벽동지의 고결한 정신세계가 비껴있다.

권영벽동지는 주체24(1935)년 3월초 요영구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되였다.

그날 권영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 이렇게 말씀올렸다.

《나는 적들과의 결전에서 뒤자리에 설 생각이 없습니다.아버지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맨 앞자리를 차지할 작정입니다.선두에서 결사전을 벌려야 할 이 몸이 어찌 살아날 생각부터 하겠습니까.그런 우연은 바라지 않습니다.》

권영벽동지는 그날의 맹세를 지켜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운명의 어버이로, 자애로운 스승으로 우러러모시고 높이 받들었으며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명령지시를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철저히 관철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그는 자기가 한다고 말한것은 몸이 열쪼각이 나도 기어이 해내는 사람이였다.언행의 일치, 아마 그것이 권영벽의 사람됨을 단마디로 규정지을수 있는 특징이며 인간적매력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1930년대 후반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많은 정치공작원들을 장백과 국내의 여러 지역에 파견하여 당조직을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그들가운데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선전과장으로 사업한 권영벽동지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해같은 믿음을 목숨보다 귀중히 간직한 권영벽동지는 공작지에 나간 첫날부터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웠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주체26(1937)년 초봄까지 장백현의 거의 모든 중심부락들에 수많은 당소조들과 조국광복회 지회, 분회들이 조직되게 되였다.

그는 김일성장군님의 로선과 방침을 군중이 알게 하는것은 우리들의 가장 선차적인 과업이며 이 과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습을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회들에 나가지 않는 날 밤이면 그밤대로 조국광복회 회원들이 학습에 이용할 교양자료를 집필하였고 그것을 한자한자 원지에 옮겨 등사기로 찍어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걸음걸음 위험이 뒤따르는 적구에서 용의주도하고 능숙하게 지하공작임무를 수행하고있는 권영벽동지를 더없이 미덥게 생각하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곁으로 몸소 불러 세심한 지도를 주시고 뜨거운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그럴 때마다 권영벽동지는 자기를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으로, 어엿한 혁명가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을 더욱 불태웠다.

주체26(1937)년 5월 어느날 권영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보천보시내와 적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정찰자료들을 수집할데 대한 과업을 받아안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구로 떠나는 그에게 회중시계를 선물로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고귀한 사랑을 또다시 받아안은 권영벽동지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직접 보천보시가를 정찰하여 사령부에 보고하였고 조국진군에 오를 부대의 길안내도 맡아 수행하여 전투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권영벽동지는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라면 무조건 끝까지 책임지고 수행하는 투철한 혁명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혁명임무에 대한 결사관철의 정신을 지니고 영용하게 정치공작활동을 벌려나가던 권영벽동지는 주체26(1937)년 10월 일제경찰놈들에게 체포되였다.

권영벽동지가 조국광복회의 주요인물이라는것을 알게 된 일제교형리들은 그를 굴복시키려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놈들은 그를 체포한 첫날부터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의 위치와 혁명조직을 대라고 하면서 악착스러운 고문을 들이대였다.

권영벽동지는 고문으로 받는 아픔보다도 자기자신과 동지들이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꾸려놓은 조직들이 파괴되는것이 더 가슴아팠다.

그는 감옥에서 자기가 할수 있는 최선의 길은 다문 한사람이라도 더 살려내서 조직을 지키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그는 《모든것을 나에게 밀것!》이라고 적은 백글(손톱으로 쓴 글)쪽지를 리제순동지에게 보내였다.그리고 모든 일은 다 자기가 했다고 하면서 조직성원들을 보호하였으며 감방안에서 잠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기간 옥중에서 투쟁을 벌리던 권영벽동지는 주체34(1945)년 3월 10일 일제야수들의 교수대에서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혁명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권영벽동지의 생애는 비록 짧았지만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다한 그의 투쟁과 위훈은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 빛을 뿌리고 있다.

조국이여, 그대에겐 수백만의 리수복이 있다

당의 호소를 받들어 송남청년탄광의 침수갱들을 복구한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의 충성과 영웅적위훈에 대한 이야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갱을 꽉 채웠던 감탕이며 걸음걸음 앞길을 가로막던 집채같은 암반들도.

떼를 무어 버럭을 나르며 한치한치, 뼈를 묻을수는 있어도 물러설수는 없다고 웨치면서 불사신처럼 전진하던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의 모습도.

그러나 20여년세월 침수되였던 고난의 흔적을 말끔히 가셔낸 송남청년탄광은 당의 부름이라면 물불을 가림없이 심장을 내대는 우리 열혈청춘들의 피땀에 젖은 자욱자욱을 고이 간직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들은 당과 혁명의 요구, 조국의 부름에 언제나 피끓는 심장으로 화답하여온것처럼 오늘의 역사적진군에서 청춘의 힘과 지혜, 열정을 다 바쳐 당의 청년전위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여야 합니다.》

정면돌파전의 첫해에 제일먼저 진격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결사의 낮과 밤을 이어온 그들의 전장을 밟아볼수록 우리 청년들은 모두 영웅청년들이라고 하시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뜻깊은 말씀이 되새겨진다.

위대한 김정은시대의 청년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며 조선청년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자랑스러운 미덕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것인가.

《돌파했습니다!》

조건이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렸다면, 편한 때만 골라 일했더라면 아마 십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2년전 11월 당의 호소를 받들어 송남청년탄광으로 달려온 전국각지의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은 20여년간 침수되였던 갱들을 복구하고 많은 채탄장을 마련하여 탄광의 석탄생산을 지속적으로 늘일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았다.가장 엄혹한 난관속에서 경제건설의 전초선을 지켜 한개 탄광을 개발한것과 같은 위훈을 세웠다.

그들의 땀이 별처럼 빛나는 수천척 지하막장은 무엇을 전하는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 퍼내고퍼내도 바닥이 나지 않는 감탕, 때없이 덮쳐드는 붕락… 침수복구현장에서 일하는 결사대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것은 밥보다 공기였다.그런데 뜻밖의 일로 압축기가 멎었다.

앞장에서 돌격로를 열어나가던 송남청년탄광 김진청년돌격대 리명혁소대원들도, 함께 전진해나가던 함경남도소대의 결사대원들도 모두가 주춤했다.

조건은 극악했다.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전호를 비우지 않았다.

전화의 용사들은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고지를 지켜 싸우지 않았는가.

그들은 조를 무어 결사전에 나섰다.한조가 동발세울 자리를 파고 나오면 다른 조는 동발을 세우고 다음조는 버럭을 싣고 그다음엔 버럭을 나르며.

함마질은 5번이상 더 할수 없었다.차오르는 숨에 물도 두모금이상 들이킬수 없었다.그러나 그들의 작업은 이어달리기처럼 계속되였다.

그 시각 함경남도소대의 최일동무는 흥덕구역청년동맹위원회 일군들과 전체 동맹원들의 마음이 어린 편지의 글줄을 외워보고있었다.

《…동무를 믿고 떠나보낸 조직과 동지들이 항상 곁에 있다는것을 잊지 말고 당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제일선에서 언제나 진격의 기수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다.고향이, 조직과 집단이, 조국이 결사대원들을 지켜보고있었다.우리 당의 믿음에 한치의 드팀도 없이 보답하리라는것을 굳게 믿고있었다.

그 믿음을 안고 평양시소대는 탄부들도 선뜻 손을 대기 어려워하는 채탄막장으로 진지를 옮겼다.동발생산만 맡아해온 그들이여서 막장일은 말그대로 생소했지만 그들은 용감하게 돌진했다.

한덩이의 석탄이라도 있는껏 깡그리 캐내면 나라에 보탬이 되는 탄밭이 되지만 버리면 페갱이 되지 않겠는가.

상상도 못했던 큰 고굴과 맞다든 어느날 소대장 리성남동무는 전진할것인가 단념할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대원들에게 불같이 말했다.

《돌파하겠다는 정신만 있으면 길은 무조건 열리는 법이요.우리야 결사대의 선두에서 내달려야 할 수도청년들이 아닌가.》

스스로 숱한 갱목들을 수집하여 방틀을 쌓으며 한걸음한걸음 전진한 거리도 어느덧 수십m, 마침내 큰 탄밭을 기어이 찾아냈을 때 그들은 탄덩이를 그러안고 목메여 만세를 불렀다.

거리가 먼것은 문제가 아니다.석탄만 있으면 된다!

자기 교대를 마치고도 다음교대를 위하여 두 탄차분의 석탄을 더 마련할 때까지 그들은 싸우는 고지에 탄약상자를 나르는 심정으로 쉬임없이 달렸다.

(우리 집 불빛, 우리의 심장인 평양의 불빛을 지키리라!)

청년동맹초급일군소대가 확실히 다르다고 송남탄부들모두가 칭찬하는 내각소대의 우철주, 장정영동무들은 한 교대에 14탄차의 석탄을 생산했다.

우리는 그 비결을 굳이 묻지 않았다.삽질, 곡괭이질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굳은살이 두텁게 배긴 그들의 손이 다 말해주었던것이다.

곡괭이질을 하다 손수레가 오면 삽질을 하고 손수레가 달리면 또 곡괭이질을 하고… 한 탄차를 채우자면 손수레로 왕복 40번나마 달려야 하였는데 1분, 1분 시간을 재여보며 단축한 20분이라는 시간을 확정했을 때 그들은 환성을 질렀다.교대마다 창조되던 새 기록을 또 돌파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날 그들은 소대원들 누구나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빨간 수첩을 펼쳐들었다.《침수갱복구굴진속도는 원수님께로 달리는 우리들의 마음의 속도》라고 쓴 첫장을 정히 펼치고 그들은 기록했다.충성의 하루를.

《일할 땐 결사전을 하는 심정입니다.》 하던 그들의 소박한 목소리와 더불어 탄차의 탄높이이자 당을 받드는 우리 충성심의 높이라고 말하던 소대장 임유성동무의 목소리가 귀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것은 다 양보해도 광차만은 양보 못한다, 이것은 당시 어느 소대의 결사대원들에게나 꼭같은 마음이였다.

광차가 있어야 캐낸 석탄도, 쌓아놓은 버럭도 실어낼것이 아닌가.

《인차대신 탄차를 달라!》는 결사대원들의 목소리가 어디서나 들려오던 어느날 청년전위결사대 참모장 김동철동무는 탄차안에 들어가 웨쳤다.

《나를 향해 석탄을 쏟으라!》

온몸에 석탄을 뒤집어쓰며 조금 쏟게 하고는 발로 꽝꽝 다지고 한돌기 쌓고는 또 다지고… 그렇게 본래보다 수십㎝나 더 높이 석탄을 쌓은 탄차를 떠나보내며 그는 결사대원들에게 절절히 호소했다.

부족한 탄차를 찾지 말고 있는 탄차에 양심껏 더 많은 석탄을 담자.

이렇게 되여 한 탄차당 수백kg의 석탄이 더 실리게 되였으니 승벽심강한 결사대원들이 1등의 명예보다 높아질 석탄산을 그려보며 탄차마다에 바친 진주보석같은 양심과 헌신을 무엇으로 다 계산할수 있을것인가.

사정을 모르는 자연과의 엄혹한 전투를 치르며 석탄을 생산한다는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인지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말할수 없다.

뜻밖의 붕락으로 물을 퍼올리던 뽐프도 멎고 막장이 언제 열리겠는지도 가늠할수 없던 그때 양강도소대 결사대원들이 요구한것은 무엇이였던가.

《압축공기만 보내달라!》

한시바삐 구원되자면 뒤돌아서서 붕락구간부터 열어야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오직 앞으로만 나아갔다.죽음이라는 말을 모르는 불사신처럼.

숨기지 않는다.한순간 그들의 마음속에도 동요가 있었음을.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았다.희망과 포부가 하늘에 닿았던 그들에게는 부끄럼없이 만나리라 다짐했던 그리운 혈육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18살 난 대원인 리성진동무의 눈앞은 더 캄캄했다.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 결연히 함마를 잡는 김현철분대장이며 미더운 동지들의 눈빛을 대하는 순간 그의 입가에서는 저도 모르게 소대의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한때는 애도 태웠던 소대의 막내가 선창을 뗀 혁명가요 《적기가》를 함께 부르며 4명의 결사대원들은 백두산을 안고 한마음으로 일떠섰다.

나가자, 숨쉬는 한 전진해야 한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물속에서 하루계획을 2배로 넘쳐 수행하며 수십시간, 그들은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렀던가.

그 노래를 다 합치면 주제는 하나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였다.

마침내 붕락된 막장이 열렸을 때 양강도소대의 막내결사대원을 제일먼저 뜨겁게 안아준 사람은 긴장한 구조작업을 앞장에서 지휘해온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였다.

《장해, 우리 성진이 정말 용타.리수복영웅도 18살이였지.》

우리의 결사대원들이 열어간 그 길에 불뿜는 적의 화점은 없었다.그러나 그들이 불굴의 의지와 신념으로 헤쳐온 매 순간순간은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며 적의 화점을 피끓는 가슴으로 막아 승리의 진격로를 개척한 1950년대 영웅전사들의 높뛰는 박동으로 달음쳐온 나날이였다.

20년나마 침수되였던 갱이라 동발들은 땅속에 뿌리내린듯 가로세로 깊이도 박혔는데 물에 꽝꽝 불어난 나무를 물속에서 톱질하는것도 기진맥진할 일이였지만 손끝에 피가 나도록 바닥에서 뜯어낸 버럭을 광차에 실어 맨몸으로도 숨이 헉헉 막히는 구간을 밀고 가는것은 더욱 헐치 않았다.전차가 들어올수 있는 구간까지 물속을 헤치며 어깨에 피멍이 지도록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광차를 전진시켜나가는 결사대원들의 모습은 직사포를 고지에로 끌어올리던 전화의 병사들의 군상그대로였다.

기다린듯 시련은 다가만 서는데 무엇보다 결사대원들의 가슴을 타들게 하는것은 시간이였다.

우리는 당앞에 최단기간내에 침수갱복구를 끝내겠다고 맹세다지지 않았던가.

침수갱복구의 척후에 선 김진청년돌격대의 오철룡참모장이나 리명혁소대장은 더 빨리 나갈수 없는것이 울고싶도록 안타까왔다.

그러던 어느날 리명혁동무의 머리에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사람보다 앞서 잠수뽐프를 전진시키자.

잠수뽐프만 먼저 끌고 나가서 저수움을 파고 설치해놓으면 물이 없는 곳에서 작업을 할수 있었고 또 매번 양수기를 설치하느라 소비하던 시간도 절약할수 있었다.리명혁동무와 그의 소대원들은 판가리결전에 나섰다.

사방에 짐이 실린 자그마한 도갱으로 사람이 들어갔다나왔다해도 머리칼이 곤두설 일인데 육중한 뽐프를 한두m도 아니고 수십m나 날라간다는것은 사실 목숨을 내대야 할 용단이였다.오간것은 뜨거운 눈빛뿐이였지만 결사대원들은 들었다.서로의 심장의 목소리를.

《우리 원수님께로 간다고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그들의 몸에서 리수복영웅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수 있으랴.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배출된 영웅들가운데서 대다수는 청년들이였다.

정면돌파전의 첫해에 제일먼저 돌파구를 열고 우리 당에 첫 승리의 보고를 드리자는 피끓는 호소를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은 회의실에서 듣지 않았다.마대전도 같이하고 어깨나란히 광차도 함께 밀며, 혈육의 정으로 남모르는 아픔까지 속속들이 헤아려주면서 꼭같은 결사대원이 되여 관통의 날을 앞당겨온 강영진동무를 비롯한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일군들의 불타는 충성의 마음에서, 헌신적인 일본새에서, 가식없는 진심에서 온몸으로 들었다.

철야전투가 벌어졌다.어디서나 들려왔다.한m 더, 한 광차 더!

《몇m 전진했습니까?》

매 교대마다 인사말은 같았지만 대답은 같지 않았다.

황해남도소대가 5m를 전진했다면 자강도소대는 5.7m, 함경남도소대는 7m를 돌파했다.다음번 교대에 조금이라도 더 늘어난 실적을 인계하지 못한다면 청년전위결사대원의 자격이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던것이다.

한편 김진청년돌격대의 최광일소대와 자강도소대 결사대원들은 결사대 지휘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연 2갱에서 관통의 시각을 마중해가고있었다.

가파로운 사갱을 따라 감탕마대를 지고 오르다 쓰러지기를 그 몇번, 하지만 소대장 장철동무를 비롯한 자강도소대의 결사대원들은 마대만은 놓지 않았다.고난의 나날 쌀배낭이 아니라 거름짐을 지고 포전으로 달려나갔던 부모세대들이 우리 장군님 따라 걸어간 신념의 자욱우에 강계정신창조자들의 후손들인 그들은 우리 원수님 받들어 애국의 자욱을 새겼다.

드디여 황해남도소대가 12m의 새 굴진기록을 창조한 순간 청년갱과 2갱에서 일하던 결사대원들은 번뜩이는 안전등의 불빛을 마주보았다.

《관통이다! 만세!》

《난 오늘 청년갱으로 퇴근한다!》

기쁨과 환희로 충만된 결사대원들이 청년갱에서 2갱으로, 2갱에서 청년갱으로 서로 찾고 부르며 넘어가고 넘어왔다.결사대 지휘관들과 송남청년탄광 일군들, 결사대원들은 한덩어리가 되여 울며 웃었다.

넘어온 시련의 고비는 그 얼마, 바쳐온 피땀은 또 얼마였던가.

격정으로 온 갱이 설레이던 그때 오철룡동무는 결사대원들이 늘 하루일을 총화짓군 하던 대형직관판앞에 조용히 서있었다.전세대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과 함께 빛나는 김진청년돌격대 대원이였던 청년전위결사대 명예대원 채국진동무에게 그는 눈물에 젖은 손으로 경례를 했다.

(국진아, 우리 청년전위결사대는 오늘 그처럼 바라던 관통을 했다.)

청년갱에서부터 2갱까지 1, 500여m!

힘껏 달리면 불과 몇분만에 다달을 거리를 그들은 근 450일동안 해를 두고 왔다.보이지 않는 탄우를 헤치며 육탄용사가 되여 화선길을 헤쳐왔다.

1, 500여m, 진정 그것은 우리 원수님을 마음속에 그리며 달린 그리움의 주로였고 그이께서 바라신다면 사선천리, 불길만리도 웃으며 용진해갈 신념의 주로였으며 김일성-김정일주의 만세를 심장으로 부르며 당과 조국을 위하여 수백만의 리수복이 될 우리 청년들의 맹세가 수놓아진 애국의 주로였다.

정면돌파전의 자랑찬 승전포성을 울린 지난 2월 12일 청년전위결사대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를 우러러 엄숙히 승리의 보고를 드리였다.

《청년전위결사대는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기어이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켰습니다!》

믿음은 새 인간을 키운다

조선노동당의 역사에는 청년들을 시대의 영웅으로, 당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운 자랑찬 역사가 응축되여있다.

우리 당은 수백만 청년대군의 무궁무진한 힘을 믿고 세계를 압도할 휘황한 설계도를 펼치고있으며 당중앙이 작전하는 모든 사업의 중심에는 청년들이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위대한 당의 그 믿음은 얼마나 많은 청년들을 주체혁명위업수행의 선봉투사로, 미덕의 선구자로, 참된 새 인간으로 키워주었던가.

지난 2월 16일 송남청년탄광에서는 관통의 기쁨안고 광명성절을 뜻깊게 맞이한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다.

막장에서 살다싶이 하는 결사대원들을 친자식처럼 여기며 아침저녁으로 지원물자를 안고 찾아오던 북창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의 일군들이 너도나도 달려왔다.

전세대앞에, 후대들앞에 얼마나 큰일을 해놓은 청년들인가!

그날 함경남도소대장 리광철동무가 소대원들과 어깨겯고 부른 노래는 실로 많은것을 추억하게 했다.

60여년전 송남청년탄광의 첫 개발자들이 불렀던 그 노래를 부르며 청년전위결사대는 첫걸음을 뗐었다.

직업도 나이도 경력도 서로 달랐던 그들이 이제는 한모습, 탄부가 되였다.

우리 나라의 첫 청년기업소인 송남청년탄광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도업적을 옹호고수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신념의 결전인 침수갱복구의 나날에 그들은 자기의 더운피와 땀, 결사의 헌신으로 낡은 기준, 낡은 기록을 돌파했을뿐아니라 자신과 난관을 이기는 법을 배우며 누구나 강쇠가 되였다.당의 믿음에 보답할줄 아는 훌륭한 청년전위들로 성장했다.

함경북도소대가 설비관리를 맡아본지 이틀째 되는 날이였다.

갑자기 압축공기가 멎는 바람에 막장에서 일하던 소대장은 부랴부랴 압축기장으로 달려왔다.숨이 턱에 닿아 보전공을 데려온 어린 처녀 향심이는 너무도 안타까와 울고있었다.

압축공기가 귀중한 동지들의 생명선임을 어이 모르겠는가.

교대시간이 지났건만 애어린 처녀는 움직일줄 몰랐다.수리가 끝난 다음에도 그는 여전히 한자리에 있었다.압축기가 한시간동안 잘 돌아가면 나가겠다고, 다음교대 성원에게 인계를 바로해주기 위해서도 잘 배워두겠다며 그는 진지하게 압축기를 파고들었다.그후 그는 끝내 압축기소리만 들어도 고장원인을 척척 찾는 기능공이 되였다.

《우리 결사대에 나이많은 대원과 나이어린 대원은 있어도 자기 초소를 지키는 일에서는 구대원과 신대원이 따로 없었습니다.죽으나사나 당의 믿음을 지키겠다는 하나의 신념만 있었습니다.》

남광혁소대장의 이야기는 또 한명의 결사대원의 얼굴을 떠올려주었다.

황해남도소대의 최강군동무, 그는 결사대가 자랑하는 만근혁신자이다.

처음엔 석탄을 몇삽도 담기 전에 마대아구리를 오무리던, 불러도 시원히 대답을 하지 않던 나약하고 우울한 대원이였다.그가 후에는 마대끄트머리를 겨우 잡을 때까지 석탄을 담는 《한삽 더!》의 주인공이 되였고 《작아도 고추알》이라 불리우는 일욕심많은 교대장이 되였다.

온 결사대의 열렬한 박수갈채속에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선물을 받아안은 날 그는 너무도 꿈만같아서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내가 받아안을 선물인가.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일찌기 부모잃은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여준 소대장이며 생일날이면 선참으로 찾아와 축하해주던 결사대 대장, 친형제처럼 아껴주던 내각소대 대원들이며 정든 동지들의 얼굴들이 한꺼번에 다 떠올랐다.

진정 피를 나눈 어머니도 줄수 없었던 사랑으로 그를 품어안아 청년전위결사대의 붉은 기발아래서 새 인간으로 태여나게 해준 고마운 당의 믿음을 순간인들 잊으랴, 세월이 간들 잊으랴.

버럭마대를 지고 온종일 달린 날이면 피멍든 어깨와 잔등이 너무도 아파 엎디여서만 잘수 있었던 간고한 나날들을 돌이켜보며 그는 고백했다.

《내가 힘들다고 버럭마대를 집어던지면 결사대원이 맞는가 하고 생각하니 죽어도 버럭마대를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식사도 보장하고 대원들의 치료도 해주느라 누구보다 바쁘건만 짬시간이면 막장에 달려내려가 일손도 도와주며 따뜻한 맏누이구실을 해온 황해북도소대의 강옥주동무도, 송남인민들이 우리 평양의사선생님이라고 정담아 부르며 잊지 못하는 평양시소대 군의 홍진혁동무도 자기보다 남을, 동지와 집단을 위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결사대시절을 정깊게 추억하며 말했다.

우리 원수님 아시는 결사대원이였다는 긍지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진정 우리 어버이의 믿음은 얼마나 많은 평범한 청년들을 두려움모르는 투쟁의 기수로, 정신력의 강자로 키워주었던가.

어느날 막장으로 향하던 강원도소대의 송진철동무는 들보가 벗겨진것을 발견했다.순간 번개처럼 뇌리를 치는 생각-붕락될수 있다!

그는 지체할새없이 메고 가던 동발을 그앞의 들보에 버팀목처럼 벋쳤다.앞서가던 소대장 최억철동무가 어느새 달려와 어깨를 들이밀었다.

들보에 실리던 막중한 짐이 땅속에 박아넣을듯이 그들을 점점 더 무겁게 내리눌렀다.숨쉬기조차 가빠졌다.소대장은 무작정 송진철동무를 작업장으로 떠밀었다.한시바삐 대원들을 불러 동발을 다시 세워야 했다.

만일 붕락으로 전차길이 막히면 소대가, 온 결사대가 하루를 잃을수 있었다.우리 원수님께 충성의 보고를 드리는 날이 드티여지는데 하루가 무엇인가, 한초가 새롭다!

짐이 오면 쇠동발도 구부러진다.하물며 혼자서 그 모든 짐을 감당해야 하는, 고스란히 선자리에서 묻힐지도 모를 그때 최억철동무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그 모든것을 잘 알면서도 지휘관을 사지판에 홀로 두고 떠나야 했던 대원의 심정은 또 어떠했겠는가.

송진철동무는 태여나서 수백m의 거리를 그처럼 빨리 달려본적이 없었다.

결사대원들이 달려와 동발을 다시 세우기까지 그렇게 결사의 15분이 흘렀다.그 15분이 얼마나 길었던지 최억철동무는 마치도 15년을 산것 같았다.그때에야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내가 죽을수도 있었구나 하고.

사실 그것은 탄광의 대보수소대가 해야 할 일이였다.하지만 그들은 누구의 일감이냐를 따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 우리 결사대원들이 해야 할 일로 주저없이 맡아안았다.그런데 그보다 더 감동적인것은 결사대가 송남탄전을 떠나는 날까지도 그 미거가 알려지지 않았다는것이였다.

최억철동무가 조용히 하던 말이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나라의 전기문제때문에 늘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 시각도 우리들을 믿고계시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난관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극한점마다에서 《나》가 아니라 당이 안겨준 청년전위결사대원이라는 소중한 부름을 먼저 생각한 청년들, 순간이나마 자신을 위해 물러설 뒤자리를 생각했다면 그들이 어찌 붕락을 맞받아 서슴없이 청춘의 심장을 내댈수 있었으랴.

돌이켜보면 그들의 전장은 결사의 각오가 없인 한시도 지켜낼수 없는 결전장이였을뿐만아니라 떡쇠를 강쇠로 벼려 참된 새 인간들이 태여나게 하는 용광로였고 자력자강의 투사들을 키워내는 교정이였다.그 교정을 누구나 최우등생으로 나설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힘은 우리 청년전위들을 정면돌파전의 척후에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크나큰 믿음이였다.

우리는 그이의 마음속에 있고 그이는 언제나 우리를 굳게 믿어주신다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 그것은 참된 새 인간을 키우는 자양분이였다.

하기에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을 위해 늘 남모르는 진정을 기울여온 북창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의 책임일군은 한해가 다르게 새 모습으로 성장하는 그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당의 결심은 곧 현실이고 실천이라는것을 증명한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이 석탄산을 높이 쌓아온 나날은 당정책을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하나도 빠짐없이 결사관철해온 나날이였다고.

평안북도소대의 전투기록장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있다.

《송남땅에 와서 우리는 9마리의 새끼토끼로부터 축산을 시작하였다.이제는 돼지와 오리, 게사니와 닭을 비롯하여 130여마리의 대식솔로 늘어났다.우리의 생활은 앞으로 더욱 풍성해지리라.》

풀과 고기를 바꿀데 대한 당정책을 받들어 자기 손으로 블로크를 찍어 쌓았다헐었다하며 땀흘려 번듯하게 축사를 지은 날 그들은 손때묻혀 키우던 집짐승들을 저마끔 가슴에 안고 보란듯이 사진을 찍었다.

대원들이 축산덕, 콩덕을 자랑할 때면 김명복소대장은 얼마나 기뻤던가.

난생처음 강아지랑 게사니알도 받아보았다며 마음먹고 달라붙으니 축산도 별게 아니더라고, 제손으로 제 살림을 꾸리며 자급자족이라는 말의 참뜻을 새겼다는 황해남도소대장 김영철동무의 솔직한 심정은 토끼기르기에서 앞장서온 황해북도소대장 김원석동무를 비롯한 결사대 소대장들의 꼭같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 마음은 소대마다에 있는 절약함들에도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오늘의 시대에 내세워야 할 본보기는 절약정신을 체질화한 애국적인 근로자라고 가르쳐주시지 않았던가.

늘 물과 버럭속에서 일하다보니 결사대원들에겐 한달에 2컬레의 장화도 모자랐다.못쓰게 된 장화만 다 모아도 얼마나 많은 유휴자재가 될것인가.

파철 한토막, 파유리 한쪼각도 절약함에 차곡차곡 모아 마련한 자금으로 결사대원들은 압축기도색도 곱게 하고 소대살림에도 보탬을 했다.그 애국심으로 그들은 정성들여 가꾼 잣나무림에서 마련한 많은 잣을 국토환경보호성 중앙양묘장에 보내주었다.남포시소대원들을 비롯한 결사대원들 누구나 침수복구현장에 묻혔던 레루는 물론 수많은 레루못들을 수집하여 청년갱의 전차길을 새로 닦아놓았다.

결사대원들의 보석같은 마음이 보이는 곳마다에서 우리는 들었다.

《우리 결사대 지휘관동지들이 발기한 일입니다.》

당정책옹위전의 전열에 선 집단에는 미더운 기수들이 있는 법이다.

이른새벽, 깊은 밤 언제나 결사대원들의 숨결을 가슴에 안고 돌격의 선두에서 분투해온 결사대 지휘관들, 그들은 결코 막장의 가장 위험한 구간만을 열지 않았다.200여명 결사대원들의 마음의 문을 열었다.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고 숨김없이 자기들의 애로를 말하는 대원들의 꾸밈없는 그 목소리에서 결사대 대장 김청송동무와 정치지도원 리명찬동무는 자기들의 일감을 찾았다.당의 사상관철전의 앞장에서 기관차가 되여 달리는 그들의 진심은 가장 위력한 돌격구령이였으며 당정책관철의 한길로 끝없이 줄달음치게 해준 힘있는 추동력이였다.

하건만 리명찬동무는 자기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사코 사양하며 온 결사대가 사랑하는 한 녀성을 소개해줄것을 절절히 부탁했다.

청년전위결사대시절을 두고두고 간직하라고 수많은 사진을 정성껏 찍어준 녀성, 20대나이에 부모잃은 11명 아이들의 어머니구실, 결사대원들의 친누이구실을 할래 어려움도 많건만 온 집안의 모든것을 다 바쳐 하루에도 세번씩 교대시간마다 막장지원길을 걸은 그는 김동철동무의 안해 손수경동무이다.그것이 무슨 자랑할만 한 일이겠느냐며 그는 말했다.

《우리 시어머니랑 북창의 녀인들이 걷는 길을 저도 갈뿐입니다.》

잠시나마 마른 땅에 앉으면 잠들어 아예 못 일어날가봐 우정 식사마저 번지며 막장을 떠나지 않는 결사대원들을 보면 매일 가지 못하는것이 미안했다는 김진청년돌격대 가족소대, 함경북도와 내각소대 결사대원들의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갸륵하고 수많은 약재를 성심성의껏 마련하여 보내준 김청송동무의 안해와 매 결사대원들의 몸에 꼭 맞게 옷을 지어입히고싶어 남모르는 고심을 기울인 리명찬동무의 가정이며 먼길을 달려와 며칠동안 이동미용봉사를 해준 평안북도소대장의 안해의 소행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당중앙위원회와 평안남도당위원회, 각 도청년동맹위원회 일군들은 물론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꼬마재간둥이들에 이르기까지 결사대원들의 힘과 용기가 되여준 그 많은 고마운 사람들을 우리는 여기에 다 쓰지 못한다.

명백한것은 그들도 바로 위대한 당의 믿음을 충직하게 받든 미더운 새 세대와 한전호에서 싸운 결사대원이라는것이다.

송남땅을 떠날 날이 가까와올수록 결사대원들에게는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자기들을 살붙이처럼 위해주고 돌봐준 송남인민들과 더 흥할 청년갱의 내일을 위해, 고귀한 혁명정신을 심어준 전쟁로병과 영예군인들의 가정을 도와, 명예대원 채국진동무의 어머니를 찾아 그들은 한가지라도 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땀과 정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4월초 청년전위결사대원들이 고향으로 떠나가던 날 송남땅사람들은 눈물에 젖어 그들을 바래우며 다시금 심장깊이 새겨보았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청년전위결사대원들모두에게 안겨주신 고귀하고 값높은 칭호-청년미풍선구자!

당이 부르는 곳에 청춘의 활무대가 있고 위훈과 미덕의 선구자들이 있거니, 사회주의 내 조국의 앞날은 얼마나 창창한것인가.

* *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온 나라가 다 알도록 크게 내세워주신 장하고도 미더운 청년전위결사대원들, 그들은 결코 200여명이 아니다.

그들의 숨결 높뛰는 고향과 일터, 들끓는 전구마다에서 하나가 열, 열이 백으로 늘어날 청년전위결사대의 대오는 얼마나 끌끌할것이며 당의 부름에 오직 《알았습니다!》밖에 모르는 우리 청년들이 정면돌파전의 격전장마다에서 자랑스럽게 터쳐올릴 《돌파했습니다!》의 대답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찰것인가.

온 세상이 부러워하도록 높이 떠받들어주고싶은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청년들, 이런 미더운 청년대군을 가지고있는것은 조선의 힘이고 인민의 자랑이며 바로 여기에 존엄높은 우리 국가의 강대성과 양양한 미래가 있다.

오직 당이 가리키는 길로만 나아가겠다는 투철한 혁명정신, 전세대들의 땀이 스민 사회주의전취물을 대를 이어 굳건히 수호하고 빛내여나가겠다는 불변의 혁명신념으로 심장을 끓이는 이런 충직한 청년들이 우리 당의 두리에 천겹만겹으로 뭉쳐있는데 천만산악이 막아선들 두려우랴.

조국이여, 그대에겐 수백만의 리수복이 있다!

주타격전방을 함께 지켜선 입장에서

흥남비료연합기업소에서 영양액비료공장건설 적극 추진

흥남비료연합기업소 일군들과 노동계급이 영양액비료공장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있다.

착공의 첫삽을 박은 때로부터 짧은 기간에 기초공사와 골조공사를 결속한것을 비롯하여 건축공사가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있다.

또한 덩지큰 수십종의 설비, 장치물제작도 마감단계에서 진행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력소비를 줄이고 공해를 없애는 방향에서 화학공업의 기술개건을 다그치며 국내자원에 의거하는 새로운 화학제품생산기지들을 전망성있게 건설하여야 합니다.》

흥남비료연합기업소에 년간 수천t능력의 영양액비료공장이 건설되면 농업생산에 필요한 영양액비료를 보장하는데 크게 이바지할수 있게 된다.

수천㎥의 기초굴착과 수백㎥의 콩크리트치기, 1만 수천㎡에 해당한 내외부미장작업, 수십종에 달하는 설비, 장치물제작설치를 비롯하여 수행하여야 할 공사량은 방대하다.

흥남의 노동계급은 농업생산을 늘이는데서 영양액비료공장건설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자각하고 공사를 성과적으로 결속하기 위한 총돌격전에 과감히 진입하였다.

현장을 타고앉은 일군들은 일정계획을 면밀히 세우고 필요한 설비와 자재를 우선적으로 보장하는데 큰 힘을 넣고있다.

또한 앞선 작업방법을 적극 받아들이기 위한 조직사업을 빈틈없이 짜고들고있다.

보수분사업소를 비롯한 여러 단위 노동자들은 증기에 의한 콩크리트양생방법 등 앞선 작업방법을 적극 받아들여 건설물의 질과 작업속도를 다같이 높이고있다.

설비보장을 맡은 단위의 일군들과 노동자들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설비의 국산화비중을 높이는 방향에서 설비, 장치물제작을 내밀고있다.이 과정에 자체의 힘으로 만들수 없다고 하던 많은 설비, 장치물들을 제작함으로써 공장건설을 힘있게 다그칠수 있는 전망을 열어놓게 되였다.

련관단위들에서 영양액비료공장건설에 필요한 각종 설비, 장치물을 빠른 시일안에 보내주기 위해 적극적인 투쟁을 벌리고있다.단천광업건설연합기업소와 안주뽐프공장을 비롯한 여러 단위에서는 수십건의 가치있는 기술혁신안들을 도입하여 중요대상설비를 생산보장하였다.

지금 영양액비료공장건설성과는 더욱 확대되고있다.

기술자, 기능공들에게 의거하면 길이 열린다

길주기관차대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일군들은 말로써가 아니라 실지로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과학자, 기술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연구사업을 적극 밀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길주기관차대에서 기관차실동기대수를 늘여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대한 물동수송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

비결은 이곳 일군들이 단위의 기술역량에 철저히 의거하여 기관차수리정비에 필요한 부속품, 자재들을 자체로 생산보장하기 위한 사업을 방법론있게 짜고든데 있다.

몇해전 어느날이였다.

책임일군의 방에서는 기술자, 기능공들이 참가한 가운데 협의회가 진행되고있었다.

토의문제는 기관차의 심장부와도 같은 견인전동기수리에 절실히 요구되는 고압분말운모절연테프를 자체의 힘으로 만드는것이였다.

이 문제를 놓고 협의회를 진행하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대에서 늘어나는 물동수요를 원만히 보장하자면 현재 있는 기관차들의 실동률을 높이는것이 급선무였다.하지만 수리기지의 물질기술적토대가 미약하였다.

대의 일군들이 방도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있을 때 길주철도분국 책임일군이 대의 기술자, 기능공들에게 의거하는것이 해결책이라고 귀띔해주었던것이다.

이를 계기로 대의 일군들은 지난 시기 과학기술중시를 말로만 외워온 자신들의 사업태도를 돌이켜보았고 기술자, 기능공들의 역할을 높여나갈 결심을 하게 되였다.이렇게 되여 열린 협의회였다.

분위기는 자못 엄숙하였다.일부 기술자들속에서 우리의 힘과 기술로 절연테프를 만들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적인 말들도 울려나왔다.

그도그럴것이 이 절연테프는 지난 시기 수입하여 쓰다나니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고 생산공정을 꾸리자면 여러가지 기술적문제들도 해결해야 했던것이다.

그러나 대의 일군들은 여기에 흔들리지 않았다.아무리 어려워도 가야 할 길이였고 또 그 길만이 단위의 발전을 가져오고 당정책을 받드는 길임을 자각하며 일군들은 신들메를 더 바싹 조여맸다.

기술자, 기능공들도 나약했던 자신들을 뉘우치며 기술혁신사업에 강심을 먹고 떨쳐나섰다.

그러나 고압분말운모절연테프를 만드는 사업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생산공정설계로부터 각종 설비, 장치물제작, 원료보장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자체의 힘으로 해결한다는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대의 일군들은 기술자, 기능공들에게 대의 운명을 걸고 사업조건은 물론 생활상문제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돌려 그들이 아무런 걱정과 불편도 없이 맡은 일에 전심전력하도록 떠밀어주었다.

그 나날에 일군들이 기술자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적은 얼마였고 계속되는 실패로 그들이 주저앉을세라 마음쓰며 힘과 용기를 북돋아준적은 얼마였던가.

일군들의 이런 적극적인 지지방조밑에 기술발전부원 송혁철동무를 비롯한 대의 기술자들은 전반적인 생산공정설계를 손색없이 완성하였고 정열적인 탐구활동을 벌려 운모지생산에서 애를 먹던 운모가루결합첨가제도 지방공업공장의 부산물로 만들어내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대에서는 반년 남짓한 기간에 고압분말운모절연테프를 생산하는 성과를 안아오게 되였다.

대에서 만든 절연테프는 분석결과 수입산 제품보다 내압성과 내열성을 비롯한 기술적지표들이 우월하다는것이 확증되였으며 전국적인 과학기술축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대의 일군들은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체의 기술역량을 강화해나갈 때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후 대에서는 기술자, 기능공들과의 사업을 더욱 짜고들어 수리기지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보다 큰 성과들을 련이어 안아왔다.

기관차집전기탄소습판을 자체로 제작, 플라즈마절단기를 개조…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하나하나 갖추어놓은 물질기술적토대에 의거하여 현재 대에서는 기관차수리정비를 제때에 질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기관차실동기대수를 원만히 보장해나가고있다.

대의 이러한 현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일군들이 과학기술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기술자, 기능공들의 사업을 적극 떠밀어줄 때 단위사업에서 자랑찬 성과를 안아올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철저히 의거하여 증산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리자

새 자원개발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업

정면돌파전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오늘 어디에서나 절박하게 요구되고 선차적으로 제기되는것은 원료와 연료이다.

원료와 연료는 생산의 물적요인의 하나로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경제를 안전하고 전망성있게 발전시키는데서 가장 기초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산업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생명체에 비유한다면 원료와 연료는 피라고도 말할수 있다.생명체에 있어서 서로 다른 형의 피가 잘못 섞이면 생명이 위험하게 되거나 끝나는것처럼 원료와 연료는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산업의 성격과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원료와 연료를 남에게 의존하는것은 경제의 명줄을 남에게 거는것과 같은것이라고 간곡하게 가르쳐주시였다.

원료와 연료문제를 대하는 관점과 입장이야말로 인민경제의 주체화를 실현하고 자립성을 강화할데 대한 당정책을 대하는 관점과 입장을 결정하는 심각한 사상문제로 된다.

원료와 연료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새로운 자원을 개발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절약하는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에서는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그리고 모든 공민들이 절약투쟁을 강화할것을 강조하면서 절약정신을 체질화한 애국적인 근로자, 로력절약형, 에네르기절약형, 원가절약형, 부지절약형기업체를 오늘의 시대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생산적잠재력과 내부예비를 남김없이 동원하여 생산을 늘이는것과 함께 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에네르기자원과 원료, 로력이 제한된 우리 나라에서 한W의 전기, 한g의 석탄, 한방울의 연유나 물이라도 극력 절약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사색하고 투신하는 사람이 애국자이고 그런 단위가 애국집단이다.

지금 일부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원료와 연료를 생산하는데는 관심을 돌리지만 그것을 절약하기 위한 사업에는 낯을 적게 돌리고있다.

강물도 쓰면 준다는 말이 있다.한쪽에서는 수천척지하막장에서 애써 석탄을 캐고 다른 한쪽에서는 채 타지 않은 석탄을 공장굴뚝으로 날려보낸다면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될것이며 언제 가도 긴장한 원료와 연료문제를 원만히 풀수 없게 된다.

그렇다.원료, 연료자원을 새로 개발하는것 못지 않게 중요한것은 절약이다.

에네르기절약문제 하나만을 놓고보자.

어느 한 나라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에네르기를 10% 절약하면 10% 생산하는것보다 사회경제적효과가 더 크고 원가도 훨씬 적게 든다고 한다.화력발전소를 새로 건설하고 거기에 쓸 석탄을 생산하는 탄광을 개발하며 그것을 운반하는 철도를 개설하거나 능력이 큰 수력발전소를 건설하자면 오랜 기간이 요구되지만 에네르기를 절약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데는 1~2년이라는 기간이면 충분하고 한꺼번에 투자를 하지 않고 분산적으로, 기동적으로 실현할수 있기때문에 투자의 효과성이 매우 높다.이로부터 일부 나라들에서는 에네르기절약을 원유, 가스, 석탄, 원자력 다음가는 제5의 에네르기자원이라고 부르고있다고 한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원료와 연료절약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의를 똑똑히 명심해야 한다.특히 원료와 연료를 절약하기 위한 투쟁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

최근년간 적극 연구도입되고있는 순환비등층연소기술만 놓고보더라도 그 기술을 화력발전소들에 받아들이면 석탄을 절약하면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수 있다.실지 여러 생산단위에서도 순환비등층연소기술을 받아들여 크게 덕을 보고있다.송배전부문에서도 전력의 도중손실을 줄일수 있는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있으며 금속, 화학, 건재공업 등 전기를 많이 쓰는 공업부문 단위들에서는 페열을 이용하기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있다.전기보이라를 쓰는 단위들에서 황해북도지능제품제작소에서 개발한 능동형전기보이라를 받아들이면 전기를 30~40%, 최고 50%까지 절약할수 있으며 모든 운전사들이 연유절약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조금만 노력하여도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연유를 절약할수 있다.

나래도자기공장과 송도원종합식료공장에서와 같이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한 수자를 중시하면 원료를 최대한 절약하면서도 인민들의 호평을 받는 명제품, 명상품들을 더 많이 내놓을수 있다.

원료절약, 연료절약의 예비는 어디에나 있다.그러나 그것은 절약정신이 몸에 배인 애국적인 근로자의 눈에 제일먼저 보이게 된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와 모든 공민들이 애국의 한마음을 안고 원료와 연료를 절약하기 위한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 때 자립경제의 위력은 더욱 힘있게 과시될 것이다.

과학기술에 철저히 의거하여 증산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리자

공정마다에서 가능성을 찾아

만포8월2일세멘트공장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부예비를 남김없이 동원하여 최대한으로 증산하고 절약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만포8월2일세멘트공장에서 단위의 실정에 맞게 예비를 찾아내고 더 많이 절약하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내밀고있다.

증산과 절약의 예비를 과학기술에서 찾은 이곳 일군들은 자체의 기술역량에 의거하여 생산공정마다에서 가능성을 현실로 전환시켜나가고있다.

공장에서 몇해전부터 이용하고있는 능력이 크고 현대적인 주머니식제진설비만 놓고보아도 그렇다.이 설비는 지금 공장에 여러모로 큰 리익을 가져다주고있다.가장 중요한것은 높은 제진효율로 굴뚝을 통해 날아나는 먼지를 말끔히 잡아냄으로써 생태환경을 적극 보호할수 있게 된것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좋은 점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잡아낸 먼지의 이용이다.먼지의 주성분은 세멘트크링카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소성원료이다.

주머니식제진설비의 가동을 정상화하기 위한 기술사업을 짜고들어 세멘트생산과정에 나오는 먼지를 적극 회수이용하면서부터 공장에서는 지난 시기에 비하여 많은 양의 소성원료를 절약할수 있게 되였다.이것은 곧 그만한 원료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던 많은 전기를 절약하는것으로도 된다.

이뿐이 아니다.이곳 일군들과 기술자들은 세멘트크링카생산공정상특성으로 하여 생겨나는 로밑페설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수 없겠는가 하는것을 깊이 연구하던 끝에 그것으로 인조석고를 만들어볼 생각을 하게 되였다.

많은 양의 석고를 먼곳에서 날라다 써야 하는 공장실정에서 일군들은 인조석고를 자체로 만들어 이용하는 문제를 석고를 절약하고 생산정상화를 담보하기 위한 절실한 문제로 내세우고 기술역량을 총발동하였다.

로밑페설물에 일종의 화학물질을 첨가하여 인조석고를 얻어내는 원리는 간단한것이였지만 그것을 현실에 도입하는데서는 여러차례의 실패를 겪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곳 일군들과 기술자들은 거듭되는 실패에 손맥을 놓은것이 아니라 더욱 완강하게 달라붙었다.과학적원리가 명백한 이상 실현방도는 반드시 있다는 확신밑에 실패에서 원인을 찾으며 끝장을 볼 때까지 시험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여러해동안에 걸치는 고심어린 노력끝에 이들은 페설물을 깨끗이 처리하면서 다량적으로 인조석고를 생산하여 석고문제를 자체로 해결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고야말았다.공장에서 페설물을 이용하여 절약한 석고량은 대단한것이다.

공장일군들과 기술자들은 이러한 성과에 조금도 만족하지 않고있다.

생산공정마다에 남아있는 절약의 모든 예비를 빠짐없이 찾아 과학기술의 힘으로 현실화하여 나라살림살이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을 주기 위해 오늘도 이들은 창조적지혜와 애국적열정을 합쳐가고 있다.

과학기술에 철저히 의거하여 증산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리자

예비는 애국으로 불타는 심장에 있다

안주뽐프공장 4.15기술혁신돌격대원들

안주뽐프공장 주물직장에 가면 이곳 4.15기술혁신돌격대원들이 자체의 힘과 기술로 개조한 3중공기예열원통식 열풍용선로를 볼수 있다.

발열량이 낮은 무연탄을 이용할뿐아니라 이전보다 적은 양의 석탄을 소비하면서 주물품제작에 필요한 쇠물을 마음먹은대로 꽝꽝 생산해내고있는 이 열풍용선로는 공장에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보배로 되고있다.

하기에 용선로를 마주할 때면 일군들을 비롯한 공장의 4.15기술혁신돌격대원들은 고심어린 사색과 탐구, 열정을 기울여온 설비개조의 무수한 낮과 밤을 긍지스럽게 돌이켜보군 한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증산과 절약의 가장 큰 예비는 기술혁신에 있습니다.》

공장의 용선로가 오늘과 같이 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그 나날 용선로는 자기의 구조를 여러번이나 바꾸었다.

용선로의 첫 개조때부터 설계를 맡아해온 한정선설계원은 이렇게 말하였다.

《처음에는 콕스를 쓰던 용선로를 우리 나라의 무연탄을 쓸수 있도록 개조하였고 그후에는 귀중한 석탄을 효과적으로 이용할수 있게 보다 합리적으로 개조하였습니다.그때 정말 책도 많이 보았고 밤도 많이 밝히였습니다.》

몇해전 공장의 일군이 또다시 용선로개조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일부 4.15기술혁신돌격대원들은 의아한 심정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그럴만도 하였다.이미 개조과정을 통하여 용선로는 많은 기술적진보를 이룩하였던것이다.

콕스가 없으면 돌릴수 없다고 하던 용선로에서 발열량이 낮은 무연탄을 가지고도 쇠물생산을 정상화할수 있게 하였다는것이 얼마나 큰것인가.

성과에 만족하고있던 돌격대원들에게 일군은 절절하게 말하였다.

물론 생산에 지장을 주는것이 없는데 또 개조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할수도 있다.그러나 우리가 쓰는 한g의 석탄도 다 귀중한 나라의 재부가 아닌가.그것을 아껴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기술혁신에서 성과가 크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겠는가.

나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수 있게 석탄을 더 절약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자는 일군의 호소는 돌격대원들을 분발시키였다.

절약이자 곧 증산이고 애국이다.

이런 의지로 심장의 피를 끓이며 돌격대원들 누구나 사색과 탐구를 이어나갔다.

한정선설계원을 비롯한 4.15기술혁신돌격대원들은 이미 머리속에 환한 용선로의 설계도면과 여러가지 참고자료를 다시금 따져보면서 지혜를 합쳐 절약방도의 실마리를 찾아나갔다.일하면서도 걸으면서도 지어는 잠자리에 들 때에도 오직 절약방도에 대해서만 사색을 이어갔다.

이렇게 아글타글 애쓰며 탐구하는 과정에 이들은 다중으로 된 열교환장치의 구조를 보다 간단하게 하면서도 공기의 열받이면적은 훨씬 더 늘임으로써 용선로의 페열을 효과적으로 이용할수 있는 방도를 기어이 찾아내고야말았다.

설비개조에 필요한 자재와 기재들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주는 공장일군들의 적극적인 방조속에서 4.15기술혁신돌격대원들은 장치제작과 조립에서 연일 혁신을 창조하였다.

개조된 열교환장치를 자기 위치에 정확히 설치하기 위한 조립작업은 10여m나 되는 용선로의 우에서 진행되는것으로 하여 위험을 동반하였지만 돌격대원들은 순간의 주저나 동요도 몰랐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으로 하여 개조사업은 짧은 기간에 끝나게 되였고 용선로는 더욱 용을 쓰기 시작하였다.

페열을 최대한 이용하여 무연탄의 연소효율을 높일수 있게 용선로를 개조한 결과는 좋았다.

개조전에 비하여 50℃나 더 높은 공기예열효과가 나타났다.결국 발열량이 낮은 무연탄으로 쇠물생산을 정상화할뿐아니라 많은 석탄을 절약할수 있게 되였다.또 로의 온도가 올라간것만큼 용해속도가 빨라지고 쇠물의 질이 좋아져 생산성도 부쩍 높아지게 되였다.

이렇게 보이지 않던 절약예비를 또다시 찾아내고 생산은 생산대로 추켜세우니 기술혁신의 보람은 얼마나 큰가.

용선로를 여러번이나 개조하는 과정을 통하여 공장의 4.15기술혁신돌격대원들은 절약의 예비는 다름아닌 애국으로 불타는 심장에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삶의 향기

꽃의 향기가 순간이라면 인간의 향기, 삶의 향기는 영원하다.

얼마전 본사편집국앞으로 보내온 출판지도국 오가산전자출판물기술교류소의 한 종업원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일군이라면 사서라도 해야 할 고생이 있다.자기 단위 종업원들의 마음속고충과 생활상애로를 풀어주기 위해 애쓰는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 보람이고 기쁨이다.이 말은 우리 소장동지가 기업소초급일군들앞에서 늘 입버릇처럼 외우군 하는 말입니다.》

종업원모두가 우리 소장동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며 믿고 따른다는 정영철동무를 취재하기 위하여 그가 소장으로 사업하고있는 출판지도국 오가산전자출판물기술교류소를 찾았던 우리는 예상치 않았던 일에 부닥치게 되였다.

우리의 취재목적을 알게 된 그가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 다짜고짜로 우리를 어느 한 사무실로 이끄는것이였다.

《나대신 우리 동무들을 소개해주십시오.나이는 비록 많지 않아도 모두가 일 잘하고 집단주의정신이 높고 마음씨도 비단결같지요.참 좋은 동무들입니다.》

하여 우리의 화제는 종업원들에게로 돌아가게 되였다.

자기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그처럼 흥심없어하던 그가 종업원들에 대해 묻자 대번에 활기를 띠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 종업원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생각도 이 소장보다 깊고 맡은 일에 자기의 열정과 진심을 깡그리 바친다.정말 일할 재미가 있다.특히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태양의 모습으로 영생하시는 금수산태양궁전과 혁명의 성지 백두산지구를 잘 꾸리는 사업, 평양양로원을 비롯하여 당의 영도업적이 깃들어있는 단위들을 도와주기 위한 사업에 종업원모두가 한사람같이 떨쳐나 많은 지원물자를 보내주었다.

자기 단위 종업원들에 대한 소장의 자랑은 언제까지라도 끊기지 않을것 같았다.

그때였다.이곳 부문청년동맹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며 한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사업소에 기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정미는 인간의 향기입니다.향기로운 꽃에는 나비와 벌이 많이 모여들듯이 인정미가 있는 일군에게는 많은 사람이 따르기마련입니다.》

뜻밖에 나타난 그의 덕분에 우리는 화제를 정영철동무에게로 돌릴수 있게 되였다.

아름다운 소행이란 만발한 꽃과 같아서 어디서나 그 향기를 맡을수 있는 법이다.

《종업원들의 고충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면 만사를 제치고 나서는 우리 소장동지의 그 인정미를 어찌 타고난 품성이라고만 볼수 있겠습니까.》

그도 역시 정영철동무를 우리 소장동지라고 불렀다.

그의 말만 듣고도 정영철동무의 사람됨을 짐작할수 있었다.

《우리 기업소에 삼지연시꾸리기공사장에 탄원한 종업원이 있습니다.달마다 그에게 많은 지원물자를 보내주고서도 아파하지는 않는지, 애로되는것은 없는지 세심하게 관심해주던 우리 소장동지가 언제인가는 그의 집을 방문하고 어머니가 육신을 쓰기 힘들어한다는것을 알고는 다음날에 삼륜차를 보내주었습니다.사실 그 삼륜차는 한쪽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장동지를 위해 집에서 마련한것이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몇해전 기업소에 오누이끼리 살고있는 한 청년의 입직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어떤 사람들이 아무래도 마음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겠는데 고려해보는것이 어떤가고 하였을 때 정영철동무는 그를 꼭 우리 기업소에 받아들이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에 진짜 보탬이 되는 일이다.우리가 그들오누이의 친부모가 되여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주자.

정영철동무는 그달음으로 그의 집에 찾아가 집도 번듯하게 새로 꾸려주고 가구와 의복류를 비롯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것을 일식으로 마련해주었으며 그후에도 그들이 당에 충성다하도록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주었다고 한다.

우리와 만난 또 다른 녀성종업원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해전 기업소에서 부모없는 저의 결혼상을 차려주었다.남편될 사람도 부모가 없었지만 우리는 양부모가 다 있는 처녀, 총각들도 부러워할 뜻깊은 결혼식을 하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우리 소장동지가 아주머니와 함께 새살림에 필요한 생활용품들과 부엌세간, 문화기재들을 마련해가지고 먼저 와있다가 친부모들을 대신하여 우리를 반겨맞아주었다.

꼭 부모들이 다시 돌아온것만 같아 저도모르게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며 그들의 품에 안기여 울고 또 울었다.…

이런 후더운 정, 이런 따뜻한 공기가 어찌 그날들에만, 그 한사람의 집에만 흘렀다고 하랴.

우리의 귀전으로는 제일 기쁜 때가 어떤 때인가고 묻는 우리에게 종업원들이 일을 잘해서 평가를 받을 때, 종업원들의 자녀들과 형제자매들이 끌끌하게 자라 인민군대에 입대하고 상급학교에 갈 때라고 하던 정영철동무의 말이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울려왔다.

그런 기쁨은 종업원들을 제 친혈육처럼 여기는 일군이 아니면 느낄수 없는 감정인것이다.

우리 역시 기쁜 마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다음번에는 우리 종업원들을 취재하러 오십시오.》

소장은 이런 말로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였다.그 말이 지금도 귀전을 감돈다.정말 돋보이는 일군이였다.

비록 긴말을 나누지 못했지만 그가 걸어왔고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이 눈에 선하였다.조국과 인민을 위한, 사회와 집단, 동지들을 위한 멸사복무의 길에서 헌신분투하는 삶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그 길이.

자주시대의 전진을 힘있게 추동하신 절세의 위인

오늘도 세계 진보적인류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쌓아올리신 불멸의 사상이론적업적에 대하여 끝없이 칭송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세계관, 인민대중중심의 혁명이론과 방법인것으로 하여 자주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쉽게 공감하고 자기것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가장 정당하고 보편적이며 생활력있는 혁명사상이다.》

위인의 위대성은 사상이론의 위대성이다.

천재적인 사상이론가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류사상사의 최고봉을 이루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심화발전시키시여 세계 혁명적인민들에게 가장 과학적인 혁명리념과 불패의 사상이론적무기를 안겨주시였다.

주체71(1982)년 3월 31일, 이날은 인류자주위업수행을 위한 진보적인류의 투쟁에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되는 날이였다.

바로 이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발표하시였다.세계적판도에서 폭풍같은 반향이 일어났다.

어느 한 나라의 종합대학 교수는 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참다운 인간위업에 대한 노래의 노래이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노래의 노래이며 인류의 참다운 이상과 끝없는 번영에 대한 노래의 노래이라고 자기의 흥분된 심정을 터치였다.

세계의 출판보도물들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에 대하여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고 수많은 나라들에서는 탐독열풍이 일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의 견인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진보적인류는 말할것도 없고 부르죠아철학을 리념으로 삼고있던 자본주의나라 인사들까지도 그이의 노작에 담겨진 백과전서적인 내용에 매혹되여 자기의 신조를 버리고 열렬한 주체사상신봉자로 되였다.

그러한 사람들가운데는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였던 교수 박사 삐에르 부도도 있었다.그로 말하면 완고한 부르죠아철학가, 독실한 그리스도교신자, 희곡작가로서 프랑스철학계와 문학계에 널리 알려졌고 《프랑스인물사전》에도 올라있던 사람이였다.그런것만큼 부르죠아철학에 대한 그의 신조는 그 누구도 허물수 없는것으로 인정되여있었다.그러던 그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특별한 매혹을 가지고 읽고읽은 책이 있었다.바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였다.

이미전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노작들을 연구해오는 과정에 그는 인류가 자기의 참다운 철학을 가지게 되였다고 절감하게 되였다.그의 이 견해는 불후의 고전적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더욱 확고한것으로 되였다.노작을 통하여 그는 주체사상에 대하여 더욱 잘 알게 되였고 그럴수록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정이 북받쳐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그후에 그는 흥분된 심정을 담아 자기의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의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건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학자로서,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을 가지고 진리를 탐구하려거든 뿌리깊이 남아있는 서방식거만과 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집어던지고 조선에 와서 주체사상을 배우라.…》

비단 그 한사람뿐이 아니였다.

에꽈도르의 볼룬따드출판사 총사장이였던 움베르또 오르띠스 플로레스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그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자기 출판사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제일먼저 출판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가 딸의 결혼식을 앞둔 때였다.노작을 출판하자면 딸의 결혼식을 미루어야 했다.결혼식을 또 미루게 되면 딸애가 얼마나 서운해하겠는가고 생각하니 미안스러운 마음을 어찌할수 없었다.그런데 그때 불쑥 딸이 나타나더니 그의 심정을 헤아린듯 자기는 위대한 장군님의 노작을 출판하기 전에는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결혼식때문에 걸출한분의 위대한 사상이 늦게 알려지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다고 자기의 심정을 터놓는것이였다.그는 후에 자기가 쓴 글에서 《나에게 자식이 그때처럼 돋보인적은 없었다.》고 회고하면서 위대한 주체사상과 인연을 맺고사는 자기의 남다른 삶에 대하여 긍지높이 토로하였다.

불후의 고전적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위대한 장군님의 불면불휴의 철학적인 사색과 탐구의 고귀한 결실이였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이 발표된 후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이 세계적판도에서 더욱 광범히 전개되였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사상연구소조들이 결성되고 주체사상을 따라배우려는 진보적인류의 지향이 보다 강렬해지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주체철학에 대한 옳바른 관점과 이해를 가질데 대하여》,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노작들을 련속 발표하시여 주체사상에 대한 이해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명백히 밝혀주시였다.

주체철학의 기본원리와 그를 구현한 주체의 사상이론들,그것을 혁명실천에 구현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도들이 전면적으로 집대성되여있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노작들은 주체사상연구와 학습의 백과전서적인 교과서가 되여 진보적인류의 심장속에 주체의 진리가 깊이 뿌리내리게 하였다.

참으로 누구에게나 접수되고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며 인류가 참다운 인생의 봄을 맞을수 있는 길을 밝혀주는 위대한 장군님의 불후의 고전적노작들은 오늘뿐아니라 먼 후세에도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는 인류의 고귀한 재부이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세계자주화위업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사상이론적업적은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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