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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 항쟁의기관차〉 미증유의 1929상대적과잉생산공황

미증유의 1929상대적과잉생산공황

1929세계경제공황은 자본주의역사이래 처음으로 겪은 가장 파국적인 경제재난이었다. 자본주의경제가 수립된 이후 세계최초의 경제공황은 1825 영국에서의 공황으로 알려졌다. 19세기중엽 주요자본주의나라들에서 일반적과잉생산공황의 전제가 성숙됐다. 1857경제공황은 최초의 세계공황이라고 불린다. 크림전쟁종전후 러시아가 곡물수출을 재개하자 농산물의 상대적과잉이 발생하고 미국산농산물수출에 차질을 초래한다. 이영향으로 미금융업체 오하이오라이프앤드트러스트가 파산한다. 이후 900곳의 기업이 도산하고 철도부지주변부동산가격하락·소비둔화·생산격감의 경기악순환에 빠진다. 공황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프랑스·덴마크·오스트리아로 퍼졌으며 1857말에는 전세계은행 135개가 파산했고 4200만달러가 증발했다. 이시기 경제공황은 7~13년을 주기로 발생했는데 1873경제공황은 그중에서도 그범위와 심도, 지속기간등에서 특히 심각했다. 경제사가들은 1929경제공황이 발생하기전까지 1873경제공황에 <Great>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몇나라는 순환주기가 뚜렷하지않다는 이유로 1890년대까지도 불황이 계속된것으로 본다. 이공황을 계기로 주요자본주의나라들에서 자본의 집적·집중이 이뤄지면서 산업자본주의로부터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촉진됐다. 19세기말 호경기를 거쳐 발생한 1900~03 공황은 카르텔이 모든 경제생활의 기초로 된 조건에서 일어난 독점자본주의시기의 공황이다. 자본주의의 전반적위기가 심화되면서 경제공황은 시장문제의 첨예화, 만성적인 조업단축과 대중적실업증대등으로 더욱 심각해진다. 1920년대 <상대적안정기>에 미국의 해외수출은 자본주의세계경제의 확대재생산과정에 깊이 개입되고있었으며 1928이후 뉴욕의 증권시세가 폭등되고 투기적인 증권투자가 급격히 증가됨으로써 미국의 자금시장이 긴장해지고 장기자본수출이 감소되는 한편 단기자본이 밀려들게 됐다. 그결과 유럽국가들의 국제수지를 급격히 약화시키게 되고 동시에 미국내에서 심화되고있던 경기감퇴와 경제공황의 폭발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됐다. 1929 세계경제공황으로 1929~33 미국실업률은 3%에서 25%로 증가하고 공업생산량은 약1/3이 줄었다. 금리인상으로 빚을 갚기 힘들어졌고 캐나다로부터 농산물이 유입되며 상대적과잉으로 목재업·광업·농업등이 물가하락으로 인한 어려움에 처했다. 1929~33세계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전반적위기단계에서 폭발한 과잉생산공황으로 아직 1차세계대전의 파괴에서 완전히 회복되기전에 폭발한데다 공업공황과 농업공황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미증유의 재앙으로 기록됐다. 거기에 미국의 금융공황과 유럽국가들의 금융공황이 상호작용해 세계적인 금융공황으로 확대됐으며 1920년대에 회복된 미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금본위제가 붕괴됨으로써 치명적인 후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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