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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20일 토요일 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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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으로 끓는다

5일 노동신문은 <논설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은 숭고한 애국사업>,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으로 끓는다>, <관개시설정비보강에 역량을 집중>, <방조제와 내부망공사에서 연일 혁신>, <우리 수령님과 천삼리노인>,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시는 길에서>, <더없이 중요한 문제>, <백두의 만병초처럼>, <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여는 열쇠>, <신심드높이 탐구의 길을 꿋꿋이>, <성과에 만족을 모르는 창조기풍>, <끝없이 번영할 내일을 그리며> 등을 보도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논설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은 숭고한 애국사업

부닥치는 난관을 과감히 박차고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이룩해나가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는것이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공장과 일터, 거리와 마을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자기 단위와 지방의 특성이 살아나면서도 먼 앞날에도 손색이 없는 사회주의선경으로 꾸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생산문화를 확립한다는것은 일터를 깨끗이 거두고 설비, 자재를 정히 다루며 제품의 질과 문화위생성을 보장한다는것을 의미하며 생활문화를 확립한다는것은 거리와 마을, 가정을 비롯한 모든 생활환경을 잘 꾸리고 관리하며 옷차림과 언어예절, 공중도덕, 식생활을 비롯한 일상생활을 사회주의적생활양식에 맞게 문명하게 해나간다는것을 말한다.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은 사람들의 사상관점에 관한 문제이다.오늘의 정면돌파전은 조성된 엄혹한 난국을 사상의 위력으로 뚫고나가기 위한 혁명적진군이다.경제전선이 기본전선이라고 하여 사상문화건설을 절대로 소홀히 할수 없다.거리와 마을꾸리기, 옷차림과 몸단장, 생활양식을 비롯하여 문화분야에서도 새로운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는것이 정면돌파전의 요구이다.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한 사람, 미래를 낙관하고 승리에 대한 신심에 넘쳐있는 사람은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에서도 본보기가 되는 법이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당의 현명한 영도밑에 노동당시대를 대표하는 현대적인 공장, 기업소들과 사회주의문명이 응축된 인민의 이상향, 봉사기지들이 도처에 솟아나고 근로자들의 생산환경, 생활환경이 날을 따라 변모되고있다.이 땅의 소중한 창조물들을 정상유지, 정상관리하여야 당의 영도업적이 빛을 뿌리게 된다.생산문화, 생활문화를 세우기 위한 사업은 당의 영도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사업과 하나로 직결되여있는 중대한 사업이다.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세우는 사업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사업이 아니다.이 사업을 통하여 당정책을 받드는 관점과 애국심이 검증되게 된다.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은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남김없이 과시하기 위한 사업이다.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사업은 문명건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생산문화, 생활문화를 철저히 확립할 때 자본주의가 가질수도 흉내낼수도 없는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위력이 높이 떨쳐지게 된다.

오늘의 정면돌파전은 국가관리와 경제사업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원칙을 고수하고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발양시키기 위한 투쟁이다.이 장엄한 진군에서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세우는 사업을 강조한것은 적대세력들과의 첨예한 대결속에서 우리의것을 빛내여나가려는 우리 당의 투철한 입장의 발현으로 된다.당의 의도대로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세우는 사업을 박력있게 밀고나가야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량이 증대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명제품, 명상품들이 나오게 되며 인민들이 가장 우월한 인민적시책을 말이나 글로써가 아니라 페부로 절감하게 된다.그리고 인민들의 고상하고 문명한 생활터전도 마련되게 된다.

지금 봄철위생월간을 맞으며 전사회적으로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의 열풍이 세차게 일어번져 공장과 거리, 마을들이 이채로와지고 사람들의 옷차림과 머리단장, 식생활과 공중도덕을 비롯한 문화생활분야에서 개선이 이룩되고있다.우리의 일터, 우리의 마을을 알뜰히 거두고 사회주의생활양식에 맞게 생활하려는 우리 인민의 신념은 확고하다.사회주의를 사랑하는 우리 인민의 신념이 투철할수록 우리의 사회주의낙원은 더 아름답게 변모될것이다.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은 조국의 미래를 위한 사업이다.

혁명은 한두해에 끝날 사업이 아니며 오늘의 생산조건, 생활조건은 우리 대만을 위한것이 아니다.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혁명적기풍은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세우기 위한 사업에서도 높이 발휘되여야 한다.전세대가 일터와 설비, 기대, 거리와 살림집 등을 깨끗이 거두고 물려주어야 후대들이 문화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할수 있다.

우리 나라에는 모범기대창조운동과 충성의 7월11일붉은기동, 인민반쟁취운동의 발단으로 된 영웅26호선반이나 평양시 서성구역 하신동과 같이 역사와 전통이 있는 설비와 마을 등이 적지 않다.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에서 창조된 모범을 통하여 후대들은 전세대들의 고상한 생활기풍과 일본새를 알게 되며 그들처럼 거리와 마을, 일터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부강조국건설에 한몸 다 바칠 의지도 가다듬게 된다.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은 사회주의문명건설을 위한 숭고한 애국사업이다.오늘의 정면돌파전의 주인공들인 우리들이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에서 새로운 성과와 경험들을 창조하여 후대들에게 물려주면 그것이 곧 강국건설로 이어지게 된다.공장, 기업소를 건설해도 멀리 앞을 내다보며 하고 살림집들과 문화후생시설들을 꾸리고 관리해도 손색이 없게 하는데 우리 세대의 본분이 있고 참다운 애국이 있다.

지금은 봄철위생월간이다.오늘의 하루하루는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는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나날로 된다.부닥친 난관에 빙자하면서 일터와 거리, 마을을 대충 거두는것은 혁명가의 일본새, 생활방식이 아니다.이 사업은 또한 시간을 따로 내여 하는 사업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실속있게 해야 성과를 거둘수 있는 사업이다.

올해 봄철위생월간사업을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의 전파를 막기 위한 사업과 결부하여 진행하는것이 중요하다.

개체위생을 엄격히 지키는것과 함께 생산환경, 생활환경을 깨끗이 꾸리고 관리하는것은 전염병방역사업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이번 기간에 노동환경, 생활환경을 꾸리는 사업에서 보건위생학적요구를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인민의 생명건강을 첫자리에 놓고 모든것을 대하는 우리 국가의 본태와 우월성을 힘있게 과시하여야 한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는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명심하고 이 사업에 주인답게 참가하여야 할 것이다.

정면돌파전의 전구마다에서 증산투쟁, 창조투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자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으로 끓는다

김책제철연합기업소 산소분리기설치공사장에서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서 산소분리기설치공사가 힘있게 벌어지고있다.종합된 자료에 의하면 지난 3월말까지 압축기장과 정화 및 예냉공정건설, 분리기계통의 강철구조물과 각종 설비조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결과 전반적인 공정들이 자태를 완연히 드러내기 시작하였다.공사장에서는 지금 각종 배관조립과 마감건축공사, 남은 설비조립이 입체적으로 진행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금속공업부문에서는 주체적인 제철, 제강기술을 더욱 완성하고 철생산능력을 확장하며 금속재료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여 인민경제의 철강재수요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올해를 금속공업부문이 들고일어나는 해로 되게 할데 대한 당의 뜻을 깊이 새겨안은 연합기업소의 일군들이 산소분리기설치공사를 힘있게 다그치기 위한 조직사업을 박력있게 해나가고있다.이들은 일별, 주별공사계획을 현실성있게 세운데 맞게 시공조직을 짜고드는 한편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면서 진격의 앞장에서 내달리고있다.

위훈창조에로 부르는 힘있는 직관선전물들과 곳곳에서 휘날리는 붉은기들, 방송선전차와 기동예술선동대의 적극적인 선동활동은 공사장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있다.

김철의 기상과 본때를 남김없이 과시할 일념 안고 공사에 떨쳐나선 연합기업소노동계급이 맡은 대상건설에서 위훈창조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키고있다.

송평대보수사업소와 보수3직장의 일군들과 노동자들은 지상확대식조립방법을 비롯한 앞선 건설공법을 적극 받아들여 압축기장 강철기둥보와 레루보, 지붕트라스조립공사를 끝내는 혁신을 창조하였다.이에 뒤질세라 열간압연직장과 산소분리기분공장의 일군들과 노동자들도 긴장한 투쟁을 벌려 천정기중기설치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내는데 이바지하였다.

성과가 확대될수록 연합기업소일군들과 노동계급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압축기장 벽체축조와 변전소건물증설을 비롯한 나머지대상공사들을 입체적으로 힘있게 다그치고있다.

연관단위 건설자들도 애국의 마음을 안고 헌신적인 투쟁을 벌리고있다.

설비조립연합기업소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서로의 창조적지혜를 합치며 치열한 격전을 벌려 지난 3월 중순까지 압축기장의 산소, 질소압축기와 정화 및 예냉공정의 여러 냉각탑, 각종 뽐프조립을 완성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연속공격전의 불길드높이 이들은 지난 3월말까지 산소분리기의 핵심공정인 분리기계통의 수십t에 달하는 하부탑설치를 끝냄으로써 전반적인 공사를 힘있게 다그쳐나갈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현재 이들은 여러 공정의 각종 배관조립과 나머지설비조립공사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청진금속건설연합기업소의 일군들과 건설자들도 분리기계통 설비조립에서 관건적고리로 되는 25t탑식기중기설치를 성과적으로 결속하고 순환수뽐프장 벽체축조와 분리기계통 벽판조립을 본격적으로 다그치고 있다.

정면돌파전의 전구마다에서 증산투쟁, 창조투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자

관개시설정비보강에 역량을 집중

평안북도의 시, 군들에서

농업전선을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으로 정해준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평안북도의 시, 군들에서 관개시설들을 정비보강하는 사업을 다그쳐 농사를 안전하게 지을수 있는 토대를 튼튼히 마련해나가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강하천들에 언제와 갑문을 비롯한 여러가지 시설물들을 건설하고 자연흐름식물길을 비롯한 관개수로들을 정상적으로 정비보강하면 큰물과 가물피해를 막고 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할수 있으며 전기도 생산하고 양어도 하고 풍치도 돋굴수 있습니다.》

도당위원회에서는 도안의 시, 군들에서 관개시설들을 정비보강하는 사업을 모내기전으로 끝내도록 조직정치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리고있다.

지난 2월초 도에서는 전동기수리기지를 튼튼히 꾸리고 고압전동기를 자체로 개조하고있는 철산군관개관리소에 대한 보여주기사업을 진행하여 시, 군관개관리소들에서 양수동력설비수리정비를 다그치도록 떠밀어주었다.

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는 관개시설을 정비보강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짜고들고있다.세멘트를 비롯한 필요한 자재를 보장해주는 한편 시, 군들에서 예비를 최대한 탐구동원하여 부족되는 자재를 해결하도록 하고있다.

도안의 시, 군들에서는 당창건 75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농사를 잘 지을 열의밑에 관개시설들에 대한 정비보강사업을 힘있게 전개하고있다.

3월 31일현재 도적으로 2 380여㎞의 물길정리가 결속되였다.시, 군협동농장들에서는 포전으로 흐르는 지선물길들을 정리하기 위한 작업이 끝났다.

관개구조물보수공사도 계획대로 추진되고있다.

시, 군들에서는 170여개소의 관개구조물보수공사를 결속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염주군과 용천군, 정주시를 비롯한 여러 시, 군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은 물길정리와 관개구조물보수공사에 한사람같이 떨쳐나 실적을 올리고있다.

도의 양수동력설비들에 대한 수리정비가 마무리되였으며 이 사업에서는 철산군관개관리소가 앞장섰다.이곳 일군들과 기술자, 종업원들의 경험은 다른 관개관리소들에 널리 일반화되였다.

백마-철산물길관리소에서는 수백㎞의 물길구간에서 위험개소들을 찾아내고 물길정리와 관개구조물보수를 모내기전으로 끝내기 위한 사업을 내밀고있다.

올해농사를 잘 지어 당이 제시한 알곡고지를 무조건 점령하려는 비상한 각오를 안고 도안의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성과를 계속 확대해나가고 있다.

정면돌파전의 전구마다에서 증산투쟁, 창조투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자

방조제와 내부망공사에서 연일 혁신

용매도간석지건설장에서

용매도간석지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있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황해남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의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올해에 4, 3구역방조제와 내부망공사를 기어이 끝낼 신심드높이 힘찬 돌격전을 벌리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갈데 대한 당의 호소를 받들고 종합기업소의 일군들은 작전과 지휘를 패기있게 해나가고있다.일군들은 도갱굴진에 기본역량을 집중하면서 굴착기와 화물자동차의 만가동과 자재보장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고있다.이와 함께 건설자들이 시공의 요구대로 공사를 진행하도록 요구성을 높이고있다.

건설자들은 불리한 조건을 뚫고나가면서 합리적인 작업방법들을 받아들여 매일 굴진계획을 넘쳐 수행하고있다.또한 굴착기와 화물자동차, 불도젤들의 만가동을 보장하기 위해 서로의 힘과 지혜를 합쳐가고있다.

채석장을 타고앉은 주택건설분사업소와 금양간석지건설분사업소의 건설자들은 앞선 착암방법과 발파방법을 받아들이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돌격전을 들이대고있다.20여일동안에 굴진을 끝내고 7만산, 3만산발파를 성과적으로 진행한 이들은 기세를 늦추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있다.

장석공사를 맡은 건설직장과 옹진간석지건설분사업소, 선박분사업소의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애국의 땀방울을 아낌없이 바치고있다.

맡은 임무의 중요성을 명심하고 떨쳐나선 기계화분사업소의 건설자들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굴착기와 화물자동차들의 실동율을 높이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있다.

결사관철의 정신이 나래치는 속에 3월 한달동안에만도 1만 7천여㎥의 토량을 처리하여 방조제보강공사와 2만 4천여㎡의 장석공사를 진행하는 성과가 이룩되였다.

내부망공사를 맡은 건설자들은 수백정보의 포전정리와 3천여m의 포전도로를 건설하였으며 흄관생산과 구조물공사에서도 성과를 거둔 기세로 계속 혁신하고있다.

우리 수령님과 천삼리노인

안변지방은 감고장으로 유명하다.그중에서도 천삼리의 감풍경은 안변땅의 특별한 자랑으로 되고있다.

여기에 적는 글은 노동당시대와 더불어 천지개벽한 천삼리, 감풍경으로 온 나라의 이목을 끄는 이 고장의 전변사에 아로새겨진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주체48(1959)년 6월 어느날이였다.안변군 천삼농업협동조합(당시)을 찾으시여 조합살림살이형편을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직 조합의 살림살이가 펴이지 못한 때여서 마을에는 햇곡식이 나기 전에 식량이 떨어지는 집들이 더러 있었다.

조합의 일군들은 먼길을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기 저어하며 망설이고있었다.이윽고 한 일군이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식량이 떨어진 집이 없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금년에 정보당 퇴비는 얼마나 냈는가고 물으시였다.이번에도 그 일군이 50t씩 냈다고 대답올렸다.

그러나 조합일군들은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시려고 포전길을 쉬임없이 걷고걸으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농촌실태를 환히 꿰들고계신다는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마당을 거니시였다.이윽고 이 마을에서 모범농민이 누구인가고 물으시고 그를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부르신 그 농민으로 말하면 오경봉이라고 하는 노인이였는데 주체42(1953)년초에 있은 전국농민열성자대회때 수령님께서 만나주시였던 실농군이였다.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일군은 논벌에 나가있던 노인을 데리고 어버이수령님께로 달려왔다.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노인을 반갑게 맞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자신께서 앉으시였던 의자를 내주시고 옆에 있는 의자에 옮겨앉으시였다.그러시고는 황송하여 주춤거리는 노인에게 자애깊은 음성으로 어서 앉아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시며 거듭 자리를 권하시였다.

노인은 감격한 나머지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것도 잊은채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그러는 노인에게 그사이 앓지는 않았는가, 일이 힘들지 않는가고 다정히 물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기 일군들에게 알아보니 조합의 농사도 잘되고 조합원들의 생활도 괜찮다는데 정말 그런가고 물으시였다.

노인은 머뭇거리면서 주위사람들을 둘러보았다.무엇인가 말씀드리려고 하면서도 망설이는 노인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노인과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면서 다들 바람이나 쏘이라고 하시였다.

그 자리에 참석하였던 리당일군도 자리를 뜨려고 하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당위원장동무는 남아서 같이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 수령님과 오경봉노인사이의 담화가 시작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곳 일군들이 식량이 떨어진 집도 없고 퇴비도 정보당 50t씩 냈다는데 사실인가고 물으시였다.

노인은 지난해농사를 잘 짓지 못해서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더러 있다고 대답올리고 실은 올해에 퇴비를 정보당 10t도 되나마나하게 내였다고 말씀드리였다.

노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노인에게 해방전에는 어떻게 살았으며 해방후 토지분여는 얼마나 받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지금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던 노인은 고개를 숙인채 눈만 슴벅일뿐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가슴속에 품고있던 하많은 사연을 정작 말씀드리자니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던것이다.

리당일군이 그를 대신하여 천삼땅에서 여러대를 살아오던 오경봉노인의 일가가 해방전 빚때문에 오막살이집마저 빼앗기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고향에 다시 돌아온 일이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시고 땅없는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실 때 노인이 농촌위원회 위원이 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여다니던 일들에 대하여 자상히 말씀드리였다.그리고 그가 분여받은 땅에서 농사를 잘 지어 수십가마니의 쌀을 나라에 바친 사실에 대해서도 아뢰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으로 애국적인 농민이라고, 훌륭한 농민이라고 하시면서 노인과 같은 애국적인 농민들이 많았기때문에 해방직후 나라의 어려웠던 재정문제가 풀렸다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후퇴시기에는 무엇을 했는가고 물으시였다.노인은 아들 3형제를 군대에 내보낸 뒤 며느리들과 함께 적후투쟁을 하는 인민군대들에게 식량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유격대에 짐을 져다주거나 연락편지를 날라다주기도 하였다고 하면서 그런 일까지 말씀드리는것이 게면쩍어 어줍은 웃음을 지었다.

노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그것이 유격투쟁이지 다른것이 유격투쟁이겠는가고 치하해주시였다.그리고 전후에 겹쌓이는 애로와 난관을 물리치며 농업협동조합을 뭇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는 또 사회주의건설의 선구자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애국적인 농민, 훌륭한 농민, 사회주의건설의 선구자!

노인은 몸둘바를 몰라하며 어버이수령님께 한 일이 없다고 거듭 말씀드리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노인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담배를 꺼내시여 노인에게 권하시였다.

굳이 사양하는 노인의 거쿨진 손에 몸소 담배를 쥐여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성냥을 켜드시고 바람에 꺼질세라 두손을 모으시여 불까지 붙여주시였다.

담배연기를 한모금 달게 들이마신 노인은 팔소매를 눈가에 연신 가져다대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 한없이 고마우신 어버이수령님, 어제날의 천덕꾸러기였던 나를 오늘 이토록 높이 내세워주시고 손수 담배불까지 붙여주시다니!)

노인은 북받치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전쟁시기 평양에서 농민열성자대회가 열렸을 때 위대한 수령님을 한번만이라도 뵈옵고싶던 평생소원을 풀었다고, 그런데 오늘 수령님을 또다시 뵈옵고나니 정말 인젠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고 진정을 터놓았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왜 그런 말을 하는가고 하시면서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오래 앉아계시면 자주 만날수 있다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지금 상점에 물품이 제대로 나오는가, 천들이 비싸다고 하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노인은 다른 상품은 모르겠지만 광목천같은 수수하고 든든한 천이 적게 나온다고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수첩을 꺼내시더니 진짜실농군이 다르다고, 앞으로 더 많이 보내주겠다고 하시며 무엇인가 적으시였다.

그때 일부 일군들은 농민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지도 않고 이제는 생활이 향상되였으므로 고급비단천을 요구한다고 말하고있었다.그 사실여부를 알아보시기 위해 수령님께서 노인에게 천값을 물으신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경봉노인에게 이곳 농민들의 생활을 추세우자면 부수입을 높여야 하겠는데 무슨 방도가 없겠는가에 대해서도 물으시였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 한동안 뒤머리만 쓸어내리던 노인은 이 고장 사람들은 그전부터 집집마다 감나무를 심어왔다고 말씀올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감나무라…》 하고 조용히 되뇌이시더니 감나무가 어디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멀지 않은 곳에 갓 심은 감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흐느적이고있었다.노인이 가리켜드리는 그 감나무를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집주변에는 물론 등성이나 야산에도 저런 감나무를 많이 심으라고 하시면서 현금수입을 높일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노인의 두손을 꼭 쥐시고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고 마을을 떠나시였다.

그후 조합에서는 변혁이 일어났다.오경봉노인은 물론 모든 조합원들이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조합을 추켜세우기 위하여 더 힘껏 일하였다.

몇해후 10월 어느날 또다시 천삼리를 찾으시여 오경봉노인을 만나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나이가 나이니만치 일이 힘들겠는데 좀 쉬여야 하지 않겠는가고 정답게 말씀하시였다.

자애에 넘치는 그 말씀에 목이 메여 한동안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있던 노인은 좀 힘들만 하면 수령님께서 찾아오시여 이렇게 고무를 주시기때문에 힘든줄 모르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진행되는 경축행사에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평양으로 향하던중 오경봉노인은 몸이 편치 않아 도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이 일을 두고 마을사람들 누구나 섭섭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웬일인가.며칠후 노인이 평양에 올라가 경축행사에 참가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사연인즉은 이러하였다.

강원도에서 올라온 대표들을 만나시여 숙소가 불편하지 않은가, 앓는 동무는 없는가고 일일이 알아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도의 한 일군에게 올라올 사람들이 다 왔는가고 물으시였다.그 일군은 오경봉노인이 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다고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면서 그 노인은 나를 만날적마다 무엇인가 도움을 주자고 애를 쓰는 진실한 농민이라고, 그 노인도 인젠 늙었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노인이 연세로 보아 이제 평양에 올라오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올라와보겠습니까. 평양에 데려다가 큰 병원에서 치료를 시키고 행사에 꼭 참가시킵시다.》

이렇게 되여 노인은 평양에 올라와 치료를 받고 경축행사에 참가하게 되였으며 은정깊은 선물까지 받아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던것이다.

주체65(1976)년 10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천삼마을을 찾으시였다.

허리에 두손을 얹으시고 감나무동산을 둘러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천삼리에 처음 왔을 때 본 감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자고 하시며 관리위원회가 자리잡고있는 등성이로 앞장서 오르시였다.

뜨거운 감회를 안으시고 가지가 휘도록 열매가 주렁진 감나무를 살펴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경봉노인을 찾으시였다.

농장일군들은 선뜻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어버이수령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감사의 눈물을 머금고 수령님을 길이길이 잘 모셔달라고 당부하며 눈을 감던 노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여 가슴이 저려들었던것이다.

일군들은 어버이수령님께 노인이 나이가 많아 일을 할수 없는 형편이였으나 수령님의 은덕이 깃든 천삼땅을 떠날수 없다고 하면서 자식들의 성의도 마다하고 그냥 마을에 남아있다가 2년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몹시 가슴아파하시며 아까운 노인을 잃었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평생을 땅과 함께 살아온 한 평범한 노인을 그리도 잊지 못해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얼굴로는 뜨거운것이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우리 수령님과 천삼땅의 평범한 한 노인사이에 맺어졌던 가슴뜨거운 인연,

이런 이야기가 어찌 천삼땅에만 새겨져있으랴.

이민위천으로 빛나는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실록의 갈피갈피를 가득 채우고있는 전설같은 인민사랑의 이야기는 조국땅 그 어디에나 깃들어있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들과 뜻과 정을 나누시고 인민에게 의거하여 혁명을 이끌어 세기의 기적을 창조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절세의 위인이시였다.

하기에 날이 갈수록 우리 인민은 사무치는 그리움속에 어버이수령님을 목메여 부르며 그이의 염원을 활짝 꽃피워갈 굳은 마음을 더욱 가다듬는 것이다.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시는 길에서

순간도 미루어서는 안된다시며

주체51(1962)년 가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일군과 함께 평양역 앞거리를 지나실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러한 간판도 없고 창문을 천으로 가리워놓은 한 건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

가만, 저기에 상점이 있었는데라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에게 상점이 왜 없어졌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이 미처 대답을 드리지 못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점을 다시 내오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때로부터 며칠후 그 일군을 집무실로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방금 그앞을 지나왔는데 아직도 창문에 천을 가리운걸 봐서 상점을 다시 내오지 않은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가고 하시였다.

일군은 어느 기관이 사무실로 쓰느라고 상점을 없앴는데 당장 사무실을 옮길 자리가 없어 하루하루 미루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무실은 아무데나 옮겨도 되고 그 일은 하루이틀 미루어도 일없지만 상점을 내오는 문제는 한순간도 미루어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인민들이 사소한 불편이라도 느낄세라 그토록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불합격된 시범주택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천리마거리건설이 한창 진행되고있던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점심식사도 뒤로 미루시고 건설장을 찾으시였다.

건설장의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을 완공된 한 아빠트로 안내해드리였다.

그 아빠트로 말하면 시범적으로 꾸린 주택이였다.위대한 수령님을 안내해드리며 일군은 그이께서 만족해하실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살림집의 내부를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세면장에 들리시여 이모저모로 살펴보시다가 좁아서 답답한감을 주고 불편할것 같다고, 좀 넓힐수 없겠는가고 하시였다.

이뿐이 아니였다.

세면대의 높이를 가늠해보시고서는 세면대가 높으면 아이들이 세수할 때 물이 팔굽으로 흘러내려 옷을 적실수 있으니 세면대를 낮추도록 하시였고 창문을 몇번씩이나 여닫아보시고서는 창문짬사이로 바람과 먼지가 들어와 사람들의 건강에 지장을 주겠다고 걱정하시였다.

일군은 다시금 깊이 새기였다.

인민들에게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것을 안겨주시려는 우리 수령님의 높은 뜻을.

고층살림집이 서게 된 사연

주체59(1970)년 3월 어느날 이른새벽 일군들과 사리원시내를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내의 중심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맞은편 공지를 가리키시며 저기에 10층짜리 고층살림집을 앉히면 좋겠다고 하시였다.

한 일군이 그곳이 좋은 주택부지이기는 하나 그렇게 하면 안될것 같아 설계에서 빼놓았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의아해하시며 일군에게 무엇때문에 그렇게 했는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일군들은 그 자리에 고층살림집을 앉히면 맞은편에 있는 정권기관청사의 품위가 떨어질것 같아 그 부지를 그대로 두고있었다.

이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며 인민이 주인인 우리 나라에서는 정권기관청사가 근로자들의 살림집보다 낮은것이 흠이 아니라고 교시하시였다.

이 세상에 제일 귀중한것은 인민이며 인민의 이익우에는 그 무엇도 놓일수 없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이렇게 되여 얼마후 그 공지에는 정권기관청사보다 훨씬 높은 고층살림집이 일떠서게 되었다.

인민은 못 잊습니다

더없이 중요한 문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여주신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는 당과 국가가 인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보아주는 가장 우월한 인민적보건제도입니다.》

주체34(1945)년 12월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거리의 불빛도 하나둘 꺼지고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었건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의 불빛은 꺼질줄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민주조선건설을 위한 사색과 심혈을 기울이고계시였던것이다.

끝없이 제기되는 방대한 일들을 처리하시느라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수령님께서 깊이 관심하신 문제가 있었다.그것은 나라의 방역사업과 관련한 문제였다.

보건부문의 한 일군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정국에 제기한 방역사업비문제를 요해하시고나서 곧 재정부문의 일군을 부르시였다.

이윽고 방에 들어서는 재정부문 일군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건국에서 요구하는 돈을 해결해줄수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그이께 보건국에서 요구하는 액수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현재 재정상관계로 그것을 지출하지 못하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갓 해방된 나라의 곳곳에서 절실하게 제기되는것이 재정문제였다.

공장을 돌리자고 해도, 농촌을 추켜세우자고 해도 자금이 있어야 하였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에게 방역시설을 갖추는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해방을 갓 맞은 우리 나라의 형편은 외부로부터 전염병이 들어올 위험성이 매우 많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만일 무서운 전염병이 들어와 퍼진다면 우리는 많은 인명피해를 입을뿐아니라 그렇게 되면 우리의 혁명사업도 그만큼 큰 손실을 입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우리가 혁명하는것도 오직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것이 아닌가.

인민들의 건강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나라의 보건사업을 위해 그토록 심혈을 바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의 가슴은 불덩이를 안은듯 뜨거워올랐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건국이 제기한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우리가 좀 곤난이 있더라도 우선 이것부터 해결해주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지난날 우리 인민의 비참한 처지를 그 누구보다도 가슴아프게 체험하시였기에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민들의 생명안전과 건강증진을 위해 그처럼 아낌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

이렇게 되여 우리 조국에서는 한푼한푼의 자금이 그처럼 귀중한 때에 인민들의 생명과 건강과 관련한 방역사업에 막대한 자금이 지출되는 가슴뜨거운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해결해주신 방역자금!

정녕 그것은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천만금도 아끼지 않으신 절세위인의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였다.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백두의 만병초처럼

혁명투사 장철구동지의 한생에서

우리 인민은 오늘도 항일혁명투사 장철구동지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백두의 만병초를 눈앞에 그려보군 한다.

사나운 칼바람, 눈보라속에서도 꿋꿋이 피여있는 백두의 만병초와 같이 모진 시련과 역경속에서도 혁명신념과 절개를 굽히지 않고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성으로 한생을 빛내인 항일의 여투사!

위대한 수령님께서 크나큰 사랑과 믿음의 손길로 혁명의 길에 떳떳이 내세워주신 장철구동지는 유례없이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온갖 지성을 다한 사령부작식대원, 유격대의 《어머니》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장철구동무는 나에 대한 충실성이 아주 높은 동무였습니다.》

주체25(1936)년 3월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사단을 무으시기 위하여 마안산에 나오시였다.

그날은 장철구동지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난것과 같은 행운의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100여명의 대원들에 대한 《유죄》를 증명하는 어마어마한 법적증거물인 《민생단》문서보따리를 불살라버리시고 그들모두를 주력부대에 받아들이시는 대용단을 내리시였다.

활활 타번지는 불길속에서 그처럼 저주하던 《민생단》문서들이 타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는 장철구동지의 뇌리에는 지나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주체19(1930)년 7월 남편을 따라 혁명의 길에 나서던 일, 그로부터 4년후 연길현 왕우구유격구부근의 한 마을에서 부녀회사업을 하던중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억울하게도 《민생단》의 루명을 쓰고 체포되던 일, 무죄로 석방은 되였으나 늘 《민생단》혐의자라는 딱지가 붙어다닌것으로 하여 겪던 마음속괴로움…

《민생단》문서를 태우며 솟구치는 그 불길은 장철구동지에게 있어서 가슴속에 얼어붙어있던 응어리를 순간에 녹여버리고 새로운 삶의 숨결을 안겨주는 재생의 불길이 아닐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장철구동지는 또다시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철구동지를 친히 사령부에 부르시여 사령부작식대원으로 일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의 믿음과 사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이날 장철구동지는 북받치는 감사의 정으로 눈굽을 적시며 이렇게 마음속맹세를 다지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는 장철구동지의 영원한 충성의 맹세, 의리의 맹세였다.

장철구동지는 한생토록 이 맹세를 지키였다.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단 한순간도 변함이 없었으며 그 길에서 한치의 탈선도 몰랐다.

장철구동지는 사령부작식대원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입맛을 돋구어드리고 그이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지성을 다 바치였으며 친어머니와 같은 극진한 사랑으로 대원들을 보살펴주었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사령부의 작식을 위해 늘 남보다 더 큰 짐을 지고다니였고 대원들이 다 자는 깊은 밤에도 다음날의 식사준비를 위해 산나물을 다듬고 망질과 키질을 하면서 밤을 새우군 하였다.

그는 노상 불앞에서 살다싶이 하였다.그때문에 옷도 남보다 갑절 빨리 해지였다.

언제인가 한번은 밀영에서 오락회가 벌어졌는데 장철구동지가 지명을 받았다.

전우들은 모두 그의 노래를 듣고싶어하는데 장철구동지는 훌쩍 일어나 숲속으로 달아나버리는것이였다.

그 돌발적인 행동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숲속으로 뛰여가는 그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그 어머니가 대중앞에 나서지 못한것은 옷차림때문일것이라고, 동무들도 보았겠지만 철구어머니는 기운 옷을 입고있다고, 기운 자리가 열군데도 더 될거라고 하시면서 그런 옷으로 군중앞에 나서야 할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시였다.

자기보다 먼저 동지들을 생각하고 혈육보다도 더 살틀한 정으로 대원들을 돌봐준 장철구동지였기에 누구나 그를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서 작식을 한다는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였다.그러나 그는 어떻게 하나 사령관동지의 식사에 한가지 찬이라도 더해드리려는 일념으로 늘 아글타글하였다.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썩장을 만들었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좋아하시는것이라면 100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구해왔다.식량이 떨어지면 적후에까지 내려가 얻어오군 하였다.

한번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장백현 19도구 구장집에서 병풍쌈을 잡숫고 오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부루쌈보다 낫더라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었다.

여담삼아 하신 말씀이였지만 장철구동지는 그길로 수십리나 되는 19도구까지 달려가 병풍을 한임이나 뜯어가지고 돌아와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였다.

이렇듯 장철구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한몸을 내댈줄 아는 진짜배기충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철구는 말그대로 유격대의 《어머니》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나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친어머니가 돌아갔을 때처럼 비통한 감정에 휩싸이였다.그는 모든 정성을 다하여 나를 친동기처럼 극진히 돌봐주었다.그것은 사실 친어머니의 사랑에 못지 않은 사랑이였다.》

한생을 변함없이 순결하고 진정어린 헌신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실한 장철구동지,

주작봉마루에서 그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고있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수령의 믿음을 받아안는것보다 더 큰 행복과 영광은 없으며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그 믿음을 귀중히 간직하고 의리로 보답할 때 인간의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게 빛난다고.

과학자, 기술자들이여! 정면돌파전의 활로를 열기 위한 애국적인 결사전에 총매진하자

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여는 열쇠

우리 당은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고있다.

과학자, 기술자들이 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열어제껴야 사회주의건설의 매 전선에서 승리를 이룩할수 있다.사회주의강국의 이상과 목표도 오직 과학의 첨단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고심어린 탐구와 투신에 의해서만 실현될수 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과학자, 기술자들은 당이 마련해준 과학기술용마의 날개를 활짝 펴고 과학적재능과 열정을 총폭발시켜 누구나 다 높은 과학기술성과들을 내놓음으로써 부강조국건설에 이바지하는 참된 애국자가 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은 부족하고 어려운것이 많은 속에서도 순천린비료공장과 평양종합병원건설을 비롯하여 각지의 중요대상들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결사적으로 풀어나가고있다.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을 막기 위한 비상방역사업에서도 과학자, 기술자들은 인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이 중요한 사업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돌리고있는 당에 대한 무한한 신뢰심과 불타는 충성심을 안고 한몫 단단히 하고있다.

오늘의 정면돌파전은 이처럼 훌륭한 과학기술성과로 진격의 활로를 앞장에서 열어제끼는 과학자, 기술자들을 부르고있다.

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기 위하여 과학자, 기술자들이 걸어야 할 탐구의 길은 멀고 험하다.학문에 대한 애착심이나 과학에 대한 성실성만으로는 끝까지 갈수 없는 생눈길이다.

수십종의 내열불수강을 개발하고 내열불수강제품들을 짧은 기간에 제작하여 순천린비료공장건설에서 절박하게 제기된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열어제낀 국가과학원 흑색금속연구소 일군들과 과학자들의 결사의 탐구전, 두뇌전이 말해주는 철리가 있다.

과학자, 기술자들이 제구실을 바로하지 못하면 나라가 허리띠를 조이게 되고 기술노예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것이다.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가 아니라도 이 길을 걸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보수나 대가를 바라거나 그 어떤 학적명예만을 위해 떠난 길이라면 열백번도 주저앉았을것이다.그러나 끝까지 걸었다.당과 조국이 우리의 성공을 기다리기때문이였다.

지혜는 심장을 덥히지 못해도 뜨거운 심장은 지혜와 재능을 보태준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열쇠는 과학자, 기술자들의 심장에 있다.다시말하여 과학자, 기술자들의 심장속에서 끓고있는 열렬한 애국심이다.

과학자, 기술자들은 왜 당에서 오늘날 자신들에게 다름아닌 애국적인 결사전을 호소하였는가에 대하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국의 미더운 아들딸들인 국방과학자, 기술자들이 바로 애국적인 결사전으로 만난을 이겨내며 국력강화를 위한 첨단돌파의 쾌승을 안아왔다.

애국적인 결사전에 총매진하자, 이것이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이 시대앞에 지닌 성스러운 의무이며 매일, 매 순간 스스로 자신에게 내려야 할 신념과 양심의 명령이다.

조건은 의연히 어렵고 걸음걸음 막아서는 난관도 만만치 않다.그러나 조건이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리거나 난관앞에 겁을 먹고 동요하는것은 주체조선의 과학자, 기술자의 본태가 아니다.불리한 조건을 유리하게 전변시키는 슬기로운 인재, 실패와 난관을 굴함없이 맞받아나가는 담대한 배짱가, 조국에 보탬이 될수 있다면 죽음도 각오하고 한몸을 내대는 투철한 애국자들에게는 먼길도 지척으로 보이고 첨단의 요새도 발아래로 보이게 된다.

과학자, 기술자들은 과학전선의 돌파구는 다름아닌 자신들의 불보다 뜨거운 애국의 심장으로 열어제껴야 한다는것을 자각하고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야 한다.

과학자, 기술자들의 애국적열정을 최대로 발양시키는데서 일군들의 책임성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년간 경이적인 국방과학연구성과들을 이룩한 국방과학자, 기술자들의 뒤에는 당의 원대한 구상을 훌륭한 실천으로 꽃피울수 있도록 세계를 굽어보는 안목을 주고 성공에로 끝까지 떠민 미더운 일군들이 서있었다.

당의 품속에서 교양육성된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애국심이 높고 두뇌가 총명하기때문에 목표를 정확히 설정해주고 신심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힘껏 떠밀어준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놀래우는 훌륭한 창조물을 내놓을수 있다.

각급 당조직들과 일군들은 과학자, 기술자들이 우리 당의 정면돌파사상과 정신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고심참담한 탐구의 길에서 절대로 중도반단하지 않도록 이끌어주고 고무해주며 책임져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과학자, 기술자들이 가치있는 과학적발명과 훌륭한 대성공으로 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힘있게 열어제끼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과학자, 기술자들이여! 정면돌파전의 활로를 열기 위한 애국적인 결사전에 총매진하자

신심드높이 탐구의 길을 꿋꿋이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모든 과학자, 기술자들은 뒤떨어진 부문이 주체조선에는 하나도 없어야 하며 그 무거운 임무가 바로 자신의 어깨우에 놓여있다는것을 자각하고 남이 한걸음 걸을 때 백걸음, 천걸음 걷는 심정으로 뛰고 또 뛰여야 합니다.》

자신의 심장을 어머니조국과 하나의 피줄기로 이어놓고 훌륭한 과학연구성과를 내놓기 위해 남이 한걸음 걸을 때 백걸음, 천걸음을 걷는 심정으로 애국적인 결사전을 벌려나가는 과학자, 기술자들의 정신세계는 하나와 같이 훌륭하다.시련속에서도 신심드높이 탐구의 길을 꿋꿋이 걸을수 있게 하는 그 깨끗한 충성과 애국의 넋을 우리는 공로있는 과학자들의 마음속에서 읽어보게 된다.

믿음에는 보답이 따라야 한다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기술개발원 나노기술연구소의 연구집단에는 재자원화와 에네르기전환기술개발을 위하여 아글타글 애쓰고있는 2.16과학기술상수상자이며 공훈과학자인 김승철동무가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고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장한 일을 하였다고 높이 평가해주신 연구집단의 한 성원이였던 그는 자나깨나 오직 그 크나큰 믿음에 보답하려는 생각뿐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과학연구사업을 하자면 무엇보다 각오가 투철해야 한다.당과 조국이 바란다면 죽으나사나 뼈를 깎아서라도 기어이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무조건성의 정신이 어디서 나오겠는가.이번에 우리 연구집단은 비상방역사업에 이용할 4세대소독제를 짧은 기간에 생산보장하여 당에 기쁨을 드렸다.그 과제를 맡았을 때 우리는 자재와 자금, 기술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지난 시기 세계가 공인하는 첨단의약품을 개발할 때에도 그렇고 알곡증수에 이바지하는 미양원소비료를 개발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과학의 진리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피타는 노력에 의해서만 밝혀진다.그 피타는 노력을 낳는 원천이 우리에게는 믿음에는 보답이 따라야 한다는 사상적각오이다.

우리 식 창조의 비결은 높은 실력

2.16과학기술상수상자이며 인민과학자 원사 교수 박사인 농업연구원 농업화학화연구소 소장 김치영선생은 한생을 농약연구에 바쳐오면서 나라의 농업과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관록있는 노과학자이다.그는 최근년간에도 고효율적이면서도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첨단록색화학농약들을 우리 식으로 개발하였다.70대에 들어섰지만 노쇠를 모르고 청춘의 기백과 열정에 넘쳐 우리 식의 현대적인 농약공업창설을 위해 앞장에서 헌신분투하고있는 그는 기회가 있을 때면 젊은 과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군 한다.

세계와의 경쟁속에서 우리 식으로 착상하고 우리 식으로 창조한다는것이 쉽지 않다.과학연구사업은 욕망만으로는 절대로 안된다.실력이 있어야 한다.실력향상사업은 하루 세끼 밥을 먹는것과 마찬가지로 일생동안 어느 하루도 중단해서는 안된다.아는것이 곧 힘이고 창조이다.당의 믿음에 보답하자고 해도, 세계를 굽어보는 안목을 가지자고 해도, 남들을 압도하는 우리의것을 내놓자고 해도 실력이 높아야 한다.과학자라면 응당 자기 실력에 순간도 만족해서는 안되며 실력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분발하고있는가를 매일 스스로 자각하고 통제하는 품성을 지녀야 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켜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 공훈과학자 후보원사 교수 박사 유봉숙동무가 재자원화와 국산화를 위해 해놓은 일은 적지 않다.그는 어떻게 훌륭한 연구성과를 이룩할수 있었는가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느 한 대동력기지에서 습식제진장치에 필요한 고무류동구때문에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사실 고무류동구를 만들자면 공해를 조성하는 그을음을 써야 한다.그렇게 만들었댔자 원가도 높고 질도 좋지 못하다.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우리에게 흔한 재료로 대신할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연구하게 되였다.연구사업을 시작할 때까지만 하여도 우리가 성공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현장의 노동계급이 하루하루 우리의 연구결과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것만 같았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재자원화, 국산화, 원가절약, 이보다 더 현실에서 절박하게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가 어디에 있겠는가.우리는 현장기술자들과 힘을 합쳐 불과 석달만에 해내였다.이 석달은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라는것을 다시한번 체험속에 절감한 나날이였다.각오와 노력이 합쳐지면 불가능이란 없다.

과학자, 기술자들이여! 정면돌파전의 활로를 열기 위한 애국적인 결사전에 총매진하자

성과에 만족을 모르는 창조기풍

김책공업종합대학 재료과학기술학부의 과학자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학자, 기술자들의 혁명적열의를 높이고 그들의 창조적지혜를 적극 발동한다면 나라의 과학기술을 빨리 발전시킬수 있으며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칠수 있습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재료과학기술학부 재료연구소 연구집단이 신발창의 경량화실현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달라붙은것은 몇해전부터였다.

신발을 경량화하는데서 신발창을 가볍게 하는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지만 당시까지는 신발창을 생산할 때 수입산발포제를 이용하였으며 발포율도 높지 못했다.

인민들이 선호하고 즐겨찾는 신발을 꽝꽝 생산하자면 반드시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에 의거하여 신발창경량화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를 해결해야 하였다.

(주체조선의 과학자들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 수입산발포제에 의거하여 신발창을 만들게 할수 없다.신발창경량화는 곧 자재절약사업이며 국산화과정이다.)

이런 불같은 애국심을 안고 연구사 이강현동무를 비롯한 연구집단은 신발창을 우리의 힘과 기술로, 우리 식대로 경량화할수 있는 생산공정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사업에 달라붙었다.

이들은 현장기술일군들과의 긴밀한 협의밑에 값이 눅고 자원량이 무진장한 원료를 발포제로 이용하는 발포공정을 확립할 안을 내놓고 낮에 밤을 이어 탐구를 거듭하였다.

결심을 내릴 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결과를 내놓을것 같았지만 기술의 장벽이 그렇게 쉽게 뚫리지 않았다.

피타는 사색과 탐구, 밤을 지새우며 진행한 문헌연구, 발포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현장기술자, 노동자들과 진행한 수십차의 실험들…

어려운 탐구의 나날이 흐르는 속에 마침내 이들은 우리 식의 새로운 신발창발포공정을 확립하고 생산현장에 시험적으로 도입하였다.

허나 첫 시험도입결과는 기대했던것과는 달리 그리 좋지 못했다.생산공정의 안정성이 낮은 수준에 있었던것이다.

《아무렴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이쯤한 난관에 맥을 놓고 주저앉는다면 우린 아마 두고두고 후회할것입니다.》

당정책을 관철하는 길에 일단 몸을 잠근 과학자로서 깨끗한 양심을 바치자고 호소하는 리강현동무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연구집단성원들은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 과학자들이 마련해가는 모든 창조물들에 순결한 양심과 애국의 열정이 비낄 때 그것이 먼 후날에도 빛을 뿌릴수 있는것 아니겠는가.

이들은 주저없이 다시 달라붙었다.

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들이 내세운 기준이 있다.그것은 앞선 나라들의 기술을 그대로 모방하는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새 기술을 개발하는것을 원칙으로 내세운것이다.

종전에 쓰던 원료보다 더 흔하고 다루기 쉬운 원료를 발포제로 이용하면서도 보다 더 합리적인 공정을 확립할수는 없겠는가.

생산과 운반, 보관에 품이 많이 들던 원료대신 다룰 때 까다로운 요구조건이 전혀 없는 원료를 이용한다면 원가도 보다 절약할수 있지 않겠는가.

착상을 새롭게 하고 이들은 사색과 탐구의 낮과 밤을 보내며 고심어린 연구사업을 벌리였다.

그 과정에 끝끝내 목적하는 과학적원리를 밝혀내고야말았으며 필요한 설비를 자체로 만들어 현장에 도입하였다.

이곳 연구집단은 기세를 늦추지 않고 발포의 질을 더욱 높이면서도 신발창생산에 드는 자재를 보다 절약하기 위한 연구사업에 또다시 달라붙었다.

생산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한번의 실패도 없이 단번성공하기 위하여 이들은 토론과 논쟁을 거듭하였고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

지난해 10월, 이들은 마침내 우리 식의 신발창경량화를 위한 가치있는 연구성과를 이룩하고 생산현장에 시험적으로 도입하였다.

오늘도 생산현장들에서 울려나오는 진심어린 축하의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신발창이 가벼워지고 발포상태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공정이 간단하니 정말 실리가 있습니다.》

비록 요란한 연구성과는 아니지만 거기에는 불타는 애국심과 티없이 깨끗한 과학적양심이 비껴있다.누구나 본받아야 할 훌륭한 창조기풍이 어려있는 것이다.

인민들이 좋아하는 산업미술작품들을 더 많이, 더 훌륭하게

끝없이 번영할 내일을 그리며

중앙산업미술국을 찾아서

며칠전 우리는 주체적산업미술의 발전면모에 대하여 더 잘 알고싶어 중앙산업미술국을 찾았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경제건설을 다그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산업미술을 발전시키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어느 단위, 그 어느 일터에 가보아도 그러하듯이 중앙산업미술국에도 절세위인들의 다심한 영도의 손길이 뜨겁게 깃들어있었다.

나라의 산업미술발전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9(2010)년 3월 중앙산업미술지도국(당시)을 조직해주시고 군인건설자들을 파견하시여 산업미술창작기지를 건설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런 사연깊은 곳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맞으며 국가산업미술전시회가 진행될 때 전시회장을 돌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산업미술은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을 추동하는 척후대의 사명을 수행한다고 하시면서 나라의 산업미술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산업미술창작사업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애국사업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온 나라의 산업미술부문 창작가들이 떨쳐나섰는데 열의가 대단합니다.》

우리와 만난 부원 최성우동무가 하는 말이였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시기 산업미술부문에서 이룩된 성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지난 한해동안에만도 산업미술부문에서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마크도안, 백두산천지 지상궤도식삭도도안, 새형의 무궤도전차색장식도안, 양덕온천문화휴양지마크도안, 말린꽃축하장도안 등 많은 산업미술도안들이 창작되였다.버섯공장과 장공장을 비롯한 삼지연시안의 지방산업공장들의 마크, 상표도안들도 간결성, 집중성, 상징성이 보장되게 잘 형상되였다.

이밖에도 민족적특성과 시대적미감에 맞게 형식과 종류를 다양하게 한 직종별에 따르는 봉사원들의 복장도안, 갖가지 형태의 학생가방도안 등도 수많이 창작되였다.

보기만 해도 우리의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해지는 도안들이였다.

그것은 단순히 재능의 산물이 아니였다.

도안의 점 하나, 선 하나에도 인민들의 미적요구와 편리를 최우선 보장하고 나라의 부강발전을 앞당기려는 산업미술가들의 뜨거운 애국의 마음이 깃든 도안들이였다.

조선산업미술창작사 창작가 최향미동무의 창작실천을 통해서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

그는 지난해 석탕온천의 유래에 대하여 해설한 알림판도안을 창작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 양덕온천문화휴양지건설장으로 달려나가 밤낮이 따로 없는 창작전투를 벌렸다.

현지에서 석탕온천의 유래와 치료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을 한데 기초하여 몇십점의 초안도 그려보고 참고자료도 보면서 사색을 거듭하였다.그 과정에 《석탕온천》이라는 글씨형상의 세부를 완성시켜 우리 식의 새롭고 특색있는 알림판도안을 내놓게 되였다.

나라의 산업미술발전을 위한 방향과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세계를 앞서나갈 창조의 나래를 달아주신 위대한 손길이 있어 우리의 산업미술가들이 이렇듯 자기의 재능을 활짝 꽃피우고있는것이다.미림승마구락부마크도안을 창작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 기쁨을 드린 조선산업미술창작사 창작가 천영일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크나큰 생기와 활력, 앞날에 대한 희망에 넘친 우리 조국입니까.우리 원수님 펼쳐주신 오늘의 행복, 휘황한 앞날이 우리가 창조하는 도안들에 그대로 담겨지는것입니다.》

그렇다.아름다운 현실, 아름다운 미래가 있어 그것을 반영하는 도안도 훌륭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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