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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 항쟁의기관차〉 가장 취약한 예속경제, 처음부터 편파적인 기형경제

가장 취약한 예속경제, 처음부터 편파적인 기형경제

미는 코리아전쟁을 기회로 군수산업분야에 대대적으로 지원하며 일경제를 일군국주의세력과 함께 부활시켰다. 패권을 쥔 미는 일까지 이용해 남경제에 자본을 투입하며 남경제를 외형적으로 성장시켰다. 결국 1997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외국자본은 주요은행지분과 주식시장총액에서 압도적부분을 차지하게 됐으며 남의 주요대기업의 주식들까지 장악하게 됐다. 한편 농업·채취공업이 침체·해체되면서 생산원료·연료의 대외의존성이 심화됐다. 미일독점자본의 전략에 따라 국제적분업이 이뤄지면서 남경제는 정밀기술이 필요하거나 노력이 덜드는 중간재·부품생산에서 대외의존성이 높아졌다. 미가 일에 떠넘긴 공해산업이 다시 남으로 이전해오는 방식으로 남의 예속적공업화가 이뤄졌다. 제국주의국가는 식민지를 수탈하는 경제인데 남은 다른 G20국가와 비교해서도 가장 취약한 예속경제다. 남의 공업화의 첫번째 본질적특성은 예속성이다. 동시에 심각한 대외의존성은 남경제를 구조적으로 기형화시켰다. 특히 농업은 완전히 파탄됐다. 농업의 파탄은 이농현상을 초래하고 도시의 공업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유입됐다. 공업부문에서도 전체공정이 균형적으로 발전하지못하고 임가공·임조립을 기본으로 하는 완성공정부문이 기형적으로 팽창했다. 미일경제의 하청경제로 발전하고 중공업이 일면적으로 비대해지면서 경공업은 구조적으로 파산영락의 길을 걸을수밖에 없었다. 남경제는 이른바<수출주도형경제>기치하에 1960년대 합판·가발·신발·섬유등 경공업제품들을 수출하며 성장했다. 1970년대에는 국가중심으로 중화학공업육성정책이 적극적으로 진행되면서 기계· 선박·철강등 중화학제품들의 수출비중이 급신장했다. 민중주권이 실현되지않은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낳았다. 경제개발과정에서 공업구조상취약성이 문제점으로 제기됐으며 1970년대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분별한 과잉투 자로 설비투자효율은 크게 떨어졌다. 1980년대중반에는 자동차수출비중이 매우 커지고 대공장중심의 경제구조가 자리잡게 됐다. 1990년대에는 반도체가 수출품목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됐다. 공업화과정에서 일본의 공해산업이 들어오는데 1966 설립된 원진레이온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산업도 미에서 일로, 일에서 남으로 넘어온 대표적인 공해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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