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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월29일 금요일 18: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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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항쟁의기관차〉 파리코뮌, 세계최초의 노동자·민중의 자치정권

프랑스의 사회경제적 모순은 1870.7 프랑스-프로이센전쟁에서의 패배로 더욱 격화됐다. 패전소식에 9.4 파리민중은 봉기를 일으켜 2제정을 붕괴시키며 공화국을 선포했다. 프랑스부르주아세력은 <민족방위정부>를 조직했으나 1871.1.28 프로이센과 굴욕적인 휴전조약을 맺으며 민중을 배신했다. 2.17 부르주아세력은 티에흐를 중심으로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프랑스민중은 티에흐정부를 반대해 혁명투쟁을 전개했고 3.18 마침내 티에흐정부를 전복했다. 파리의 주권은 노동자·민중의 군대이자 정치조직인 국민근위대중앙위원회에 의해 장악됐다. 3.26 선거가 진행됐고 전복10일만인 3.28 80여명의 코뮌위원이 선출되며 사상최초의 노동자·민중정권인 파리코뮌이 선포됐다. 파리코뮌은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정부의 국가기구·군대를 해산하고 국민방위군의정규군화·구경찰제도폐지·부르주아법원폐쇄·정교분리등을 시행했다.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의 공장을 몰수해 노동자협동조합이 관리하고 철도·운수·군수품생산은 특별위원회가 관리했다. 또 임금상한선을 규정하고 집세면제·벌금부과금지, 빈민구제기구설립·무상의무교육등 민중생활을 향상시켰다. 파리코뮌은 혁명적당과 노농동맹의 부재에 따른 주체역량상 한계와 반혁명세력을 격멸하지않고 부르주아경제지반제거에 불철저했던 전략전술적 오류속에서 프로이센을 등에 업은 티에흐·반혁명군대의 역습으로 72일만에 그존재를 마감했다. 파리코뮌의 혁명정신과 진보적 시책은 그이후에 수립된 노동자·민중주권의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진보정당들의 정책과 진보적인 지방자치단체에도 빛나게 계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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