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글] 태양절 끝, 최강의 ‘전투모드’로

태양절 끝, 최강의 ‘전투모드’로

 

 

우려가 현실로 바뀌고 있다. 북이 태양절행사를 마치자마자 가장 강력한 ‘전투모드’로 전환했다. 김일성주석탄생100돌행사를 통한 주체역량강화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됐다고 판단한 듯하다. 북은 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주체역량강화에 둔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서거라는 전혀 예기치 못한 변수에 김정은제1비서체계로의 전환이 추가됐을 뿐이다. 기본은 전국대학에 10개월휴교령을 내릴 때 결정됐다. 미국과 남의 반응에 대응수위를 조절하는 것만 남아 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은 최강의 옵션이다.

 

4.18최고사령부대변인성명, 4.18조국평화통일위원회성명, 4.19북코리아정부·정당·단체성명 등 모두 최고수위다. 최고사령부성명에서는 ‘서울 한복판’이라도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도발원점인 한 그 모든 것을 통째로 날려버리기 위한 ‘특별행동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따옴표 안의 세단어가 포인트다. 그것이 정밀유도탄일지 기후무기일지 특수이온비행체일지 방법은 달라도 선전공세에 그치지 않고 물리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력히 시사한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동아일보’가 직접 거명된 것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도 ‘이명박역적패당’이라는 표현에 방점이 찍혀있다. 미국을 건드리지 않는 건 최근 일관된 논조다. 이명박정권만 끝장내려하는 것이니 괜히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성명들의 기조도 똑같다. 최고존엄을 건드렸으니 최고수위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특기할 것은 성명이 발표된 4.18이라는 날짜다. 1948년 4월18일에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가 열렸다. 김일성주석이 직접 조직하고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건설의 바탕이 된 민족통일전선이 형성된 역사적인 기념일이다. 최고사령부대변인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성명은 모두 18일에 발표됐다. ‘선군혁명’과 ‘통일혁명’의 주력군인 혁명무력이 나서는 만큼 보조역량인 민족통일전선 형성에 모두 나서라는 뜻이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북의 논리는 일관되고 철저하다. 북의 정세와 전략을 이해하려면 북의 역사와 철학을 알아야 한다.

 

강력하게 말할 땐 강력한 목표가 있다. 북의 목표는 1980년 조선노동당6차대회이후 사회주의완전승리(강성국가건설), 코리아의자주적평화통일, 온세계의자주화 3가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때그때 주된 목표만 달라질 뿐이다. 가령 미국이 코리아의 통일시간표를 늦추며 지연전술을 쓰면 그만큼 세계자주화를 촉진하는 식이다. 극동과 중동이라는 2개의 전장이 밀접히 연관되어, 보이는 전쟁과 보이지 않는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조건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최근에도 이란·시리아에 대한 전쟁가능성과 코리아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고조가 함께 간다. 어느 한군데에서의 긴장고조는 다른 한군데에서의 긴장고조로 직결된다. 북이 중동까지 신경 쓰며 작전을 짠다는 말이다.

 

무엇이 북을 자극했는가. 일단 단어 그대로 ‘최고존엄’을 건드린 게 결정적인 실책이다. 인천내무반사건도 심각했는데 교훈을 얻을 대신 계속 더 나아갔으니. 사실 북은 참을만큼 참았다. ‘어버이연합’이니 ‘탈북자동지회’니 ‘조중동’이니 평소 얼마나 북의 속을 긁어댔는가. 북은 이 모든 걸 하나로 묶어 ‘이명박역적패당’이라고 표현한다. 이명박정권하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최악의 모독이고 도발이라는 것이다. 2월말에서 4월말까지의 키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도 문제고 김관진국방부장관의 “응징의 날” 운운도 문제고 50여개국 정상들이 모인 핵안보정상회의도 문제다. 북의 ‘인공위성발사’를 유엔안보리로 끌고간 건 도화선에 불을 다는 것과 같다.

 

보기에, 총선결과도 문제다. 총선에서 민주·진보세력이 승리했으면 ‘무혈승리’의 희망을 가졌을텐데, 이명박정권4년간의 최악의 실정이 구렁이 담넘어가듯 덮어지니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선거로는 안된다, 결국 힘밖에 없다는 견해가 힘을 얻는 순간이다. 앞으로 특히 두달간 대중투쟁이 고조되고 6월에는 새국회가 개원되어 정치투쟁을 본격화한다. 그렇지 않아도 북이 중시하는 4.25에 즈음한 군사적 공세와 5.1에 즈음한 계급적·대중적 공세가 예견되는 참이다. 미국과 남의 반통일세력은 알아야 한다. 김대중이 아니라 이회창이 당선되었다면, 영남의 노동계급과 호남의 농민대중이 결코 개량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신탁통치를 혁명적으로 거부하는 제2의 6월항쟁이 터졌을 것이다.

 

내외반통일세력의 핵심들도 바보는 아니다. 문제는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이다. 총선에서 국회과반의 권력을 야권에 넘기는 순간 그냥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을 것이다. 부정부패와 민생파탄이 한계를 넘겨 언제 터질지 모를 지경이므로. 장고 끝에 악수라고 고심을 반복하다 선택한 수가 패착이 될 줄이야. 물은 골 따라 흐르고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밝아온다. 세상만사 순리대로 변하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뒤따른다. 북이 비난을 집중하는 ‘역적패당’에는 이명박의 친인척과 측근들만이 아니라 최근 여기에 결탁한 박근혜파도 들어간다. 2.25국방위원회대변인성명에서는 이명박역적패당을 ‘씨도 없이’ ‘완전히 쓸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족까지 없애버리겠다는 초강도 위협, 역시 처음 나온 표현들이다.

 

근래 성명들의 표현수위가 정말 심상치 않다. 빈말을 하지 않는 북의 스타일상, 뒤에 이어질 실제행동조치가 어떤 수준일지 섬뜩하다. 코리아전이후 언제 이처럼 긴장됐던가. 국지전, 전면전까지 연쇄폭발을 일으킬 것 같다는 우려까지 든다.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할 데 대한 뜻있는 이들의 장구한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가.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내외반통일세력은 무모한 대결책동을 중단하고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기회는 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째깍째깍 시한폭탄의 시침이 돌아간다.

 

조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