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노동신문은 <혁명가의 심장은 언제나 혁명열로 불타야 한다>, <전국청년학생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소연지봉밀영과 무두봉밀영 답사>, <백두의 혁명정신을 심어주시던 나날에>, <몸소 답사행군도 조직해주시며>, <혁명투사 차광수동지의 한생에서>, <백두산밀영고향집관리소 강사들의 생활에서>, <가자, 《백두산대학》으로> 등을 보도했다.
아래는 전문이다. 
혁명가의 심장은 언제나 혁명열로 불타야 한다
 
혁명을 위하여 자신을 깡그리 바치는것을 더없는 영예로, 보람으로 여기는 참된 인간인 혁명가,
혁명가는 하루를 살아도 혁명을 위하여 심장이 용암처럼 끓어야 하며 일생 혁명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집단의 혁명열, 투쟁열을 고조시켜야 할 일군들에게 있어서 혁명열은 더욱 필수적이다.
일군의 실천력을 담보하는 원천은 혁명열이다.
생눈길을 헤쳐나가는 척후병, 화선에 나가 대오를 이끌어나가는 기관차,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일군들에게 지정하여주신 이 위치를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 당의 핵심골간이며 혁명의 지휘성원인 일군들은 응당 혁명열로 충만되여야 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일은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립장에서 맡은 사업을 혁명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일군의 혁명열, 이는 모든 사업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게 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 인민들의 비상한 투쟁열의에 일군들의 대담하고 과학적인 작전과 능숙한 지휘, 이신작칙의 일본새가 안받침되면 점령 못할 요새와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는것이 일군들에 대한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의 믿음이고 기대이다.
우리 일군들이 전진하는 대오의 척후병, 기관차의 영예로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자면 생에 대한 관점부터 바로가져야 한다.한것은 생에 대한 옳바른 관점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일생동안 자기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살지만 생에 대한 혁명적인 관점을 지닌 사람은 오직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기때문이다.
생에 대한 혁명적관점이 없이는 시련과 사선의 고비를 무수히 넘어야 하는 혁명의 길에 나설수도, 목숨을 내대고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갈수도 없으며 자기의 한생을 끝까지 빛내일수는 더욱 없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한생을 다 바쳐 싸우는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행복으로 여기였으며 어느 한순간도 자기의 생을 혁명과 떼여놓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바로 여기에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닌 생에 대한 혁명적관점의 근본특성이 있으며 한생을 값높이 빛내일수 있은 근본요인이 있다.
이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는 기회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일 그들이 혁명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정치적생명보다 육체적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였더라면 눈보라세찬 백두광야에서 풍찬로숙할수 없었을것이며 조국해방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영웅적으로 싸울수 없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항일혁명투사들의 빛나는 생은 생에 대한 혁명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의 한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나갈 때 혁명앞에 닥쳐온 난관과 시련이 극복되고 혁명의 승리가 이룩된다는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하시였다.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혁명의 한길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온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넋을 안고있는것으로 하여 혁명가들에게 불타는 혁명열, 투쟁열을 안겨주는 귀중한 활력소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는것이다.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이는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되는 전제조건인 동시에 일군을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라고 말할수 있다.
일군들의 기본표징은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이다.모든 사업에서 성과의 비결은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에 있다.
그 일군에게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도 결국은 충실성에 귀착된 문제이다.능력이 부족하거나 실무가 딸리는 일군인 경우에도 혁명에 대한 충실성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꾸준히 노력하면 높은 정치실무적자질을 갖출수 있다는것이 우리 당의 의도이다.
한걸음을 걸어도, 열백걸음을 걸어도 오직 충성의 자욱을!
오늘 우리 일군들의 심장은 이렇게 높뛰여야 한다.
혁명가에게 있어서 보람없이 보낸 천날, 백날보다 혁명을 위하여 심장을 불태우며 보람있게 산 하루가 더 값있고 빛난다.
인생의 길에는 험한 산발도 있고 가시덤불길도 있다.어떤 환경속에서도 삶의 순간순간을 충성으로 수놓아야 하며 절해고도에 있다 해도 일편단심 붉은 마음 변치 않는 사람이 혁명열로 심장의 피를 끓이는 사람이다.
한순간을 살아도, 일생을 살아도 혁명을 위하여!
바로 이것이 조선의 혁명가들의 첫째가는 좌우명으로 되여야 한다.
우리 일군들은 혁명밖에 모르는 진짜배기혁명가가 되여야 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이 당과 수령을 위하여 심장을 뜨겁게 불태우는 진짜배기혁명가가 되자면 혁명밖에 모르는 사람,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그런 사람은 늘 일감을 만들어가지고 긴장하게 일하며 휴식을 하고 사사일을 하여도 혁명의 리익을 생각하면서 한다고, 일군들이 평상시에 맡겨진 혁명과업을 수행하는데 전심전력하는 버릇을 붙여야 시련의 시기에도 혁명적절개를 끝까지 지켜싸울수 있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혁명밖에 모른다는것은 언제나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혁명사업을 첫자리에 놓고 사고하고 행동한다는것을 의미하며 어떻게 하면 당에서 바라는 문제를 풀수 있겠는가를 모색하며 오로지 당에 기쁨을 드리는데서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다는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 일군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기질로 되여야 하는 혁명열은 비상한 일욕심으로 발현된다.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께서 각별한 정과 열로 사랑하시며 높이 일러주시는 황금해의 고장, 단풍호의 고향인 조선인민군 8월25일수산사업소의 지배인이 바로 우리 당이 바라는 일군이다.
욕심이 지내 커서 매번 최고사령관에게 이것을 하자, 저것을 하자고 많은것을 제기하는데 정말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일군이라고, 최고사령관을 돕자고 부리는 욕심이고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하자고 부리는 욕심이며 군인들에게 푸짐한 식탁을 마련해주자고 부리는 욕심인데 그이상 애국적이고 충성스러우며 바른 욕심이 어데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그래서 이 동무에게는 더더욱 정이 가고 이 동무가 일하는 사업소 어로공들과 종업원들에게도 더 정이 가는것 같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이시다.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일군은 이처럼 우리 당의 리상이라면 그 어떤 어려운 과제도 자기의 투쟁목표로 정하고 그것을 당에서 바라는 높이에서 가장 완벽하게 관철하려는 열의에 충만되여있는 일군, 남이 하나를 하면 열백을 할 승벽심으로 무서운 힘을 폭발하는 일군이다.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희생정신을 떠나 혁명열에 대하여 론할수 없다.
혁명가의 높은 정신세계는 개인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것을 영예와 보람으로 여기는데 있다.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까지 서슴없이 바치는 희생정신은 일시적인 충동이나 기분에 의해서 발휘될수 없다.그것은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 령도자의 사상과 혁명위업의 승리에 대한 드팀없는 확신에 기초한 높은 자각성과 의식성이 안받침되여야만 발현될수 있는 숭고한 정신이다.혁명전사로서의 자각을 깊이 간직한 사람, 언제 어느때나 령도자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어떤 역경속에서도 드놀지 않는 혁명적신념을 지닌 사람만이 혁명열로 심장을 불태우며 혁명에 끝까지 충실할수 있다.
혁명열이 부족한 일군은 언제 가도 일을 제끼지 못한다.혁명적정열에 넘쳐 분초를 다투어가며 심혈을 쏟아부어야 훌륭한 실적의 탑을 쌓을수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보람과 행복은 혁명적정열을 가지고 살며 일하는데 있다고 하시면서 삶의 보람과 행복을 사업에서 찾지 못하고 제 한몸이나 돌보면서 무맥하게 한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사실상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고 하시였다.
어떻게 하면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겠는가, 어떻게 하면 한생을 혁명과 더불어 보람있게 마치겠는가 하는 높은 자각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사람이 참된 일군이다.
하다면 일군으로 하여금 혁명열로 불타지 못하게 하는 제동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신 교시를 우리 일군들은 다시금 뼈에 새겨야 한다.
사람이 자기만 잘 먹고 잘살려고 하면서 사생활에 지나치게 머리를 쓰게 되면 점차 혁명사업에 무관심하게 되고 혁명적열정이 식어지게 되여 결국 혁명가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
자기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살다가 한생을 마친다면 남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그런 생은 무의미한것임을 깨우쳐주시는 귀중한 가르치심이다.
항상 자기를 채찍질하여야 한다.채찍질하라는것은 자기의 혁명성의 열도를 재여보면서 계속 긴장하여 분발하라는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시키는 일이나 하고 현상유지나 하는 일군이 있을 자리란 없다.
일군들은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혁명전사가 되기 위하여 항상 많은 일감을 맡아안고 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여야 한다.


전국청년학생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소연지봉밀영과 무두봉밀영 답사
 
백두전구에 새겨진 절세위인들의 거룩한 발자취를 따라 항일의 피어린 투쟁사를 심장깊이 체득하며 용기백배, 기세충천하여 답사행군길을 이어가고있는 전국청년학생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가 18일 소연지봉밀영과 무두봉밀영을 답사하였다.
답사행군대원들은 허리치는 눈속에서도 항일혁명투사들이 신념의 표대로 높이 추켜들었던 붉은기를 대오앞에 펄펄 휘날리며 행군길을 다그쳐 소연지봉밀영에 도착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대한 군복, 무장장비보장과 병상자치료를 진행한 소연지봉밀영에 대한 해설을 들으면서 답사행군대원들은 밀영의 여러곳을 돌아보았다.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결사관철한 투사들의 고결한 넋이 어려있는 재봉소, 무기수리소 등을 보면서 그들은 백두밀림에서 타오른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이어받아 오늘의 대진군에서 영웅청년신화를 창조해나갈 결의를 다지였다.
귀뿌리를 도려내는듯 한 강추위속에서 항일혁명선렬들이 지녔던 강인성, 투쟁성, 혁명성을 절감하며 답사행군대원들은 더더욱 끓어솟는 힘과 열정으로 무두봉밀영에로의 행군길을 이어갔다.
행군길에서 답사행군대원들은 간백산밀영에 대한 해설을 통하여 자주의 기치높이 전체 조선인민을 거족적인 조국해방성전에로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기였다.
무두봉밀영에 도착한 답사행군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9(1940)년 9월 사령부직속 소부대성원들과 함께 이곳에 오시여 대원들에게 소할바령회의에서 제시된 방침을 해설해주시고 밀영이 중간련락소의 사명에 맞게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나가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사적내용을 들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사령부귀틀집과 혁명적구호문헌을 비롯한 사적물들을 보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야말로 새 세대들의 가슴속에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만장약해주는 《백두산대학》의 교정이라는것을 절감하였다.
백두의 혁명정신을 삶과 투쟁의 교과서, 자양분으로 받아안으며 청년학생들은 답사행군길을 계속 다그치고있다.


백두의 혁명정신을 심어주시던 나날에
 
앞장에서 헤치신 눈보라길
 
백두산야에 눈보라가 사납게 휘몰아치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삼지연읍(당시)으로 가시던 도중 백두산으로 향한 갈림길을 10여리 앞두고 문득 차에서 내리시였다.
영문을 모르고 뒤따라내린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갈림길까지 걸어가자고 이르시였다.
《예?! 걸어가신단 말입니까.이 눈보라속을…》
놀라와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의 눈길을 헤치며 걸어보아야 조선혁명이 어떤 혈로를 헤쳐왔는가를 알수 있으며 우리 수령님께서 백두산에서 얼마나 고생하시면서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시였는가를 알수 있다고 하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모두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시며 힘있게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백두의 눈보라에 옷자락이 세차게 퍼덕이였다.털모자도 순간에 온통 성에투성이로 변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넘어지거나 뒤떨어지는 일군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시면서 눈보라를 결연히 헤쳐나가시였다.
마침내 갈림길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천고의 밀림, 백설광야를 배경으로 거연히 서시여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백두의 혹한속에서 풍찬로숙하시며 찾아주신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끝까지 고수하여야 한다.그러자면 백두의 혁명정신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순결하게 이어나가야 한다.…
백두의 눈보라속에서 필승의 신념을 더욱 굳히신 그날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강령을 선포하신 뜻깊은 날로부터 스물다섯해가 되는 주체88(1999)년 2월 19일이였다.
 
담력과 의지를 키워주시며
 
주체87(1998)년 1월 어느날 자강도에 대한 력사적인 현지지도를 마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의 강행군이 간고한데 우리모두 백두산에 가서 대한절기로 절정에 이른 강추위도 겪어보고 세찬 눈보라도 헤쳐보면서 백두의 기상, 백두의 혁명정신을 더욱 억세게 다져나가자고, 그러면 담도 커지고 의지도 굳세여져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을 자신만만하게 다그쳐나갈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그이의 눈보라강행군길은 자강도에서 량강도에로 이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렬차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량강땅에 도착하였다.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곳에서 하루밤이라도 휴식하실것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밤으로 삼지연까지 가자고, 모두들 따라서라고 하시며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백두산정에서 휘몰아쳐내리는 눈보라는 아름드리거목들을 뽑아버릴듯 천리수해를 휩쓸며 태질하였고 질풍같이 내달리는 차바퀴에서 이는 눈갈기는 구름처럼 타래쳐올랐다.
이윽하여 삼지연에 도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백두산의 눈보라맛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처음엔 위구심이 좀 들었다고, 그러나 이젠 담이 커지고 의지가 굳세여졌다는 일군들의 한결같은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럼 됐다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밀림의 바다, 백두의 산악을 울리는듯싶은 그이의 호방한 웃음소리는 사나운 눈보라소리를 짓누르며 일군들의 담력과 배짱을 백배, 천배로 더욱 북돋아주었다.
몸소 답사행군도 조직해주시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주체의 혁명전통을 끊임없이 계승발전시키고 그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
얼마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보시던 절세위인의 거룩한 영상이 우리의 심장을 격동으로 높뛰게 하고있다.
군마를 타시고 항일의 전구를 힘차게 달리시며 백두광야에 뜨거운 선혈을 뿌려 조선혁명사의 첫 페지를 장엄히 아로새겨온 빨찌산의 피어린 력사를 뜨겁게 안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
백두에 뿌리내린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그 위대한 전통에 기초한 불굴의 공격사상으로 혁명의 난국을 타개하고 개척로를 열어제끼자는것이 경애하는 원수님의 확고부동한 결심이고 의지이다.
주체103(2014)년 4월 1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선인민군 련합부대 지휘관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이 성과적으로 끝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현지에서 그들을 만나시여 고무격려해주시였다.
답사행군대원들이 항일혁명선렬들의 발자취를 따라 행군하면서 투사들의 강의한 신념과 의지를 체득하였으며 눈을 깔고 누워자면서도 해방된 조국을 그려본 투사들의 열화같은 조국애와 혁명적락관주의를 가슴후덥게 새겨안았다는 지휘관들의 이야기도 만족하게 들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선인민군 련합부대 지휘관들의 결의대회에 참석하시여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련합부대 지휘관들이 항일혁명투사들처럼 강행군도 하고 야외에서 숙식도 하면서 백두산의 눈보라맛을 보았을것이라고, 그 과정에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시기 위해 풍찬로숙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깊이 새겨안았을뿐아니라 우리 혁명의 시원, 우리 혁명의 전통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를 더 잘 알게 되였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전군에 혁명전통교양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련합부대 지휘관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을 조직하였다고 하시였다.
순간 지휘관들은 자기들을 백두산전구에로 불러주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심원한 뜻이 안겨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몸소 답사행군을 조직해주시고 자기들을 만나주시기 위하여 수천리 먼길을 찾아오시여 하늘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지휘관들은 조선혁명의 넋이며 생명인 백두의 혁명정신을 심장깊이 새기고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의 혁명위업을 총대로 믿음직하게 받들어갈것을 바라시는 그이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심장에 새겨안았다.
그들은 항일의 전구에 나래치던 혁명정신을 그대로 이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갈 신념의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주체의 혁명전통을 꿋꿋이 이어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해나가실 철석의 의지를 안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
그이께서 얼마전 또다시 백두의 혁명전구에 거룩한 자욱을 새기신것은 온 나라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가슴마다에 백두의 칼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게 하고 혁명열, 투쟁열을 백배해주는 격동적인 사변으로 되였다.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한별, 그이는 조선의 위대한 태양!
혁명투사 차광수동지의 한생에서
 
외세에 국권을 강탈당하고 2천만겨레가 망국노의 치욕을 강요당하던 민족수난의 그 암담하던 시기 조선의 새 세대 혁명가들은 어떻게 되여 불패의 통일단결이라는 위대한 력사적성업을 이룩할수 있었는가.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혁명투사 차광수동지의 혁명가적한생을 통하여 이에 대한 웅변적인 대답을 찾아보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길림시절을 회상할 때면 잊을수 없는 얼굴들이 수없이 떠오르군 한다.그 얼굴들의 전렬에는 항상 차광수가 서있다.》
차광수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뵙게 된것은 주체16(1927)년 봄이였다.
그 나날의 인상깊은 상봉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속을 터놓고 사귀여보니 차광수는 대단한 멋쟁이였다.…
그는 글도 잘 쓰고 연설도 잘했지만 마음씨가 무한정 좋아서 청년들을 많이 끌었으며 맑스주의전문가로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차광수의 출현으로 하여 《ㅌ.ㄷ》의 핵심력량은 새롭게 보강되였다.우리의 운동권에는 조선공산당 상층부의 거물들과도 실력을 겨룰수 있는 쟁쟁한 리론가가 등장한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감회깊이 회고하신것처럼 차광수동지는 활달한 성격과 뜨거운 인정미를 지닌 열혈청년이였을뿐아니라 쟁쟁한 리론가, 보기 드문 재사였다.
이러한 차광수동지가 어떻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의 심장을 통채로 맡기고 그이를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민족재생의 유일한 구성으로 충직하게 받들어모실수 있은것인가.
일찌기 청운의 뜻을 품고 이국땅에 건너가 온갖 고역을 치르며 지식의 탑을 쌓았으나 투쟁의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의 길을 헤매이지 않으면 안되였던 차광수동지였다.
그 길에서 차광수동지가 수없이 목격한것은 3인1당, 5인1파식으로 갈라져 파벌싸움에 피눈이 되여 테로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종파분자들의 너절한 행위였다.
남의 나라 땅에서까지 파쟁과 범죄행위를 일삼는 종파분자들에게 환멸을 느낀 차광수동지는 시골훈장이 되여 아이들의 머리에 민족의 정기나 넣어주며 조용히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게 된 차광수동지는 그이께 온넋이 자석처럼 끌리게 됨을 금할수 없었다.
특히 차광수동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것은 모든 문제를 조선의 구체적현실에 기초하여 판단하시며 공리공담이 아니라 혁명실천을 중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자주적립장,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사고방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자신이 걸어온 쓰라린 인생길을 스스럼없이 터놓던 차광수동지는 이국땅에서 찬비를 맞으며 걸어갈 때 자기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줄수 있는 옳바른 투쟁로선과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렸노라고 심장의 고백을 터치였다.
갈길몰라 끝없이 방황하던 차광수동지가 비로소 운명의 닻을 내린 포구,
그것은 민족수난의 암담하던 세월 애국으로 피끓이던 이 나라의 열혈청년들모두가 목마르게 찾고찾던 절세위인의 품이였으니 한없이 위대하고 자애로우신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긴 차광수동지의 행복과 환희는 그 얼마나 가슴벅찬것이였던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혁명투쟁의 길을 걷던 나날 차광수동지는 자기가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혁명의 령도자로 모신 행운아인가를 심장으로 절감하군 하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광수동지에게 한 마을을 혁명화할데 대한 과업을 맡기신적이 있었다.
그때 차광수동지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시골에 있다가 운동선을 찾아 모처럼 올라온 사람을 왜 도로 시골로 보내는가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차광수동지를 이렇게 일깨워주시였다.
지금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우로만 올라가고있다.시골에서 고을로, 고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국제당으로, … 우로 올라가야 축에도 들고 그 무슨 인정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고있다.무산대중을 위한 혁명을 한다면서 대중을 떠나 자꾸 우로만 올라가면 어떻게 하는가.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자.아래에 내려가 로동자, 농민들속으로 들어가자.
그 어느 고전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심원한 진리가 담겨진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차광수동지는 참으로 신통한 발견이라고 하면서 격동된 심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이처럼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삶의 걸음마다 페부로 절감하였기에 차광수동지는 오로지 수령님만을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불같은 충성심을 억척의 신념으로 간직할수 있은것이다.
여기에 차광수동지가 지닌 충성심이 얼마나 강렬한것이였는가를 말해주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1930년 가을 어느날 조선혁명군 성원들의 모임이 진행되던 자리에서였다.차광수동지는 중대한 제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오가자의 온 마을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칭송하고있으며 이것은 오가자만이 아닌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마음이라는데 대하여 절절히 토로하였다.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긍지높이 선언하였다.
《온 겨레가 우러러따르는 위대한 한별동지를 어찌 새별에만 비기겠소.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한 일자, 별 성자대신 날 일자에 이룰 성자로 하여 김일성동지로 할것을 제기하오.》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드린 태양의 존함!
이는 정녕 자기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숭배와 열화같은 흠모심이 낳은 최대의 경의, 수령칭송의 정화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지닌 차광수동지는 언제나 수령님의 신변안전보장에 최대의 주의를 돌리였으며 동지들에게도 늘 이렇게 강조하군 하였다.
《우리의 지도자 한별동지를 옹호보위하는것은 조국과 혁명앞에 지닌 우리들의 최대의 의무요!》
이렇듯 자기 령도자에 대한 충실성을 가장 진실하게, 가장 견결하게, 가장 열렬하게 지닌 차광수동지였기에 불의에 달려든 적들과의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마지막시각까지 위대한 한별정신으로 억세게 싸울수 있은것이다.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혁명의 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차광수동지의 고귀한 한생,
그것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수령의 위대성에 대한 끝없는 매혹과 흠모심에 기초한것이라야 공고한것으로 될수 있으며 충성의 신념으로 불타는 혁명가의 발걸음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천만의 가슴마다에 억척으로 새겨주고있다.

영원한 삶의 품, 행복의 요람을 마련해주시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우리 인민의 진정한 어머니품이며 참된 삶과 행복의 요람입니다.어머니조국의 품속에서 사람들의 참다운 삶이 시작되고 행복이 꽃펴나게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전인 주체48(1959)년 12월 16일 새 생명의 고고성마냥 우렁찬 배고동소리를 울리며 재일동포들을 태운 첫 귀국선이 조국의 기슭에 닻을 내리였다.
세계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의 대이동》, 《20세기의 인류사적기적》, 《사회주의의 승리를 다시한번 확증한 력사적사변》으로 격찬한 이 극적인 순간 감격과 흥분의 거세찬 열풍이 온 강산을 휩싸안았다.
마중나온 조국인민들도 울고 그립고그립던 조국땅에 돌아온 귀국동포들도 울었다.삼천리지맥의 남쪽에서는 해외로 팔려가는 동포들을 태운 현대판《노예상선》의 처량한 배고동소리가 구슬프게 울려퍼질 때 우리 공화국에서는 어머니품을 찾아오는 동포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혈육들의 감격의 환호성이 천지를 진감하였다.너무도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이 경이적인 현실은 정녕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동포애가 펼친 대서사시적화폭이였다.피눈물나는 세월 수난과 치욕의 대명사로 불리우면서 온갖 풍상고초속에 몸부림치던 재일동포들이 태양의 품에 안기여 재생의 광명을 받아안던 력사의 그날은 우리 조국청사에 빛나게 아로새겨져있다.
 
숭고한 덕망, 뜨거운 동포애의 결실
 
재일동포, 이들은 얼음판에 떨어진 씨앗과도 같이 차디찬 이역의 대지에 뿌려졌던 우리 민족사의 비참한 수난자들이였다.
1945년 일제패망당시 재일동포들의 수는 무려 240만명에 달하였다.그 절대다수가 일제의 총칼에 떠밀리워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였다.조국이 해방되자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일본의 항구도시들로 물밀듯이 모여들었다.지난날의 죄과로 보나 인도주의적견지로 보나 일본당국은 그들의 귀국을 보장해주어야 하였으나 오히려 차겁게 외면하고 나중에는 악랄하게 방해하였다.《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으로 조국으로 가려던 수천명의 재일동포들을 수장시킨자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하여 적지 않은 동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쪽배로 귀국하다가 풍랑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그러던 주체36(1947)년 3월 5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 1만여명이 곧 귀국한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못내 반가와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도 오랜 기간 이역땅에서 곤난을 겪어보았지만 해외에서 제일 그리운것이 조국이였다고 하시며 재일동포들이 우리를 믿고 오는데 반갑게 잘 맞이하여야 한다고, 귀국하는 동포들을 친혈육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손잡고 고락을 같이하면서 분투해야 할 동지로 믿고 따뜻이 대해주어야 하며 조금도 불편이 없도록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하여 그때 조국으로 돌아온 재일동포들은 난생처음으로 땅의 주인, 공장의 주인으로 되여 자신들의 재능과 지혜를 다 바쳐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하게 되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 고향을 찾아 남조선으로 갔던 동포들중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리유는 오직 하나 외세가 주인행세를 하고 매국이 판을 치며 민주가 교살되는 그곳은 《고향이 아니라 타향》이고 《조국이 아니라 이국》이기때문이였다.
재일동포들의 마음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북으로, 북으로만 끝없이 달려갔다.그들의 이 간절한 소원을 헤아려주신분은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남의 나라의 처마밑에서 고생하는 재일동포들을 두고 못내 마음쓰시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에는 민족이 흩어져살아도 어찌할수 없는 일이였지만 오늘 자기 나라가 있고 자기 주권이 있고 자기 당이 있는 이상 동포들이 해외에서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받고있는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수 없다.비록 한그릇의 죽을 나누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해외동포들을 하루빨리 조국으로 데려오자.
이러한 드팀없는 의지와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지니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귀국운동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그 은혜로운 조치는 채찍에 피멍이 들고 천대와 멸시의 찬바람에 얼어붙었던 재일동포들의 가슴마다에 따스한 온기를 부어주고 재생의 서광을 안겨준 사랑의 해빛이였다.
주체47(1958)년 8월 총련 가나가와현 가와사끼지부 나까도메분회 동포들의 《조국이야기모임》에서 지펴진 귀국운동의 불길은 삽시에 일본 전지역으로 확대되였다.총련중앙본부와 현본부, 지부, 분회들에 귀국대책위원회가 조직되고 일본당국을 대상으로 한 권리쟁취투쟁이 우리 동포들이 사는 모든 지역에서 벌어졌다.
당시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재일조선인들의 귀국이 《자유세계의 일대 수치》라느니, 《공산주의를 강화시킨다.》느니 하면서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정세에 대처하여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령도로 귀국실현의 길에 가로놓인 애로와 난관을 타개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을 언제든지 조국에 받아들이며 귀국후 그들의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보장해줄데 대한 외무상성명, 귀국에 필요한 모든 려비와 배를 공화국에서 보장할데 대한 조치, 일본정부가 귀국실현을 위하여 책임적인 조치를 취할것을 강경히 요구하는 공화국정부의 원칙적인 립장…
참으로 그 하나하나에는 재일동포들을 위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애국애족의 뜨거운 정이 그대로 비끼여있었다.
《재일동포를 맞아들일데 대한 공화국정부의 동포애적조치의 구체적실례는 가는 곳마다에서 볼수 있었다.평양에는 6층아빠트를 건설하여 방을 비운채 재일동포가 들어오는 날을 기다리고있다.평양에서 멀지 않은 농업협동조합에서는 숙사와 직장들이 결정되여있다.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각 대학, 전문학교 등에서는 학급을 결성하는데 재일학도가 들어올것을 타산하여 짜여지고있으며 실험실, 작업실도 그때문에 확장하고있다.》
이것은 당시 우리 공화국을 방문하였던 한 외국인사의 목격담이다.
이역의 부두가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귀국선을 바라보면서 재일동포들이 《조국이 온다.》고 뜨겁게 눈물지으며 목청껏 만세를 부른것은 바로 수령님을 어버이로 높이 모신 어머니조국, 사회주의대가정의 한식솔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된 감격과 기쁨의 분출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귀국동포들의 안전보장과 관련한 온갖 조치를 취해주시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옹근 이틀밤을 잠 못 이루시다가 첫 귀국선이 무사히 청진항에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서야 비로소 며칠전부터 예견하였던 1960년도 인민경제계획을 토의하는 내각전원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해외공민들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에로 집단적으로 이주한 사실은 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도 없다.더우기 재일동포들의 절대다수는 남조선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였다.하지만 그들은 주체의 태양이 찬연히 빛나는 사회주의조국에로의 귀국의 길을 서슴없이 택하였다.그것은 진정한 조국의 참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의 신념과 량심의 선택이였다.재일동포들의 귀국은 조선인민의 참다운 조국은 민족의 위대한 수령이 계시고 후손만대의 행복한 삶이 확고히 담보되여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것을 뚜렷이 시위하고 세상사람들에게 주체의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과 견인력을 과시한 력사적사변이였다.
 
《이제는 우리모두 함께 살아갑시다》
 
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는 조국에 돌아온 10만여명 동포들의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되시여 그들모두가 나라의 어엿한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마음껏 누려나가도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민족배타주의가 살판치는 불모의 땅 일본에서 재능이 있어도 꽃피울수 없었던 수많은 동포들이 이국살이의 천대속에 얼어들었던 가슴을 녹이며 풍요한 어머니대지에 삶의 뿌리를 내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제1차 귀국선으로 온 동포들과 함께 음악무용서사시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을 보아주시기 위해 공연장소에 나오시였을 때였다.귀국동포대표들이 향기그윽한 꽃다발을 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깊은 어조로 이르시였다.
꽃다발이야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한 여러분이 받아야지 내가 받아서야 되겠습니까.…울지 마시오.이렇게 조국으로 돌아왔는데 이 기쁜 날에 왜 울겠습니까.조국에 돌아왔으니 이제는 되였습니다.이제는 우리모두 함께 살아갑시다.
한없이 뜨거운 어버이의 정이 귀국동포들의 가슴마다에 젖줄기마냥 나날이 흘러들었다.
찬장과 이불장에 가득찬 그릇과 이불이며 가마에서 뿜어져나오는 후더운 김발…
이 집이 정말 내 집이 옳은가.방금전까지도 단란한 한 가족이 살고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늑하고 아담한 살림집에 들어서며 귀국동포들 누구나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권세와 돈밖에 모르는 자본주의세상과 너무도 판이한 조국의 현실, 실업과 빈궁을 모르고 착취가 없으며 누구나 화목하게 사는 이 인민의 나라가 바로 내 안겨살 조국의 품이라는 생각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귀국동포들의 가정을 찾으실 때마다 부엌과 살림방, 세면장과 창고까지 돌아보시며 친부모의 사랑을 부어주시였고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일군들에게 귀국동포들의 생활에서 애로가 있을수 있으니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군 하시였다.
이토록 재일동포들에게 참다운 삶의 길을 열어주시고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귀국한 동포들을 만나주실 때마다 동무들이 조국으로 돌아온것은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값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주체53(1964)년 12월 5일 어버이수령님께서 홀몸으로 귀국한 청년들이 생활하는 기숙사에 찾아오시였을 때 있은 일이다.
꿈만 같은 소식을 듣고 맨발로 뛰여와 품에 안기며 눈물흘리는 청년들을 대견한 눈길로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아무 근심걱정없이 생활한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아무래도 친부모슬하만 못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이르시였다.
무엇이나 곤난한것이 있으면 내게 편지를 하거라.아버지, 어머니에게 하지 말고… 너희들은 당의 품속에서 자라는 아들딸들인데 해결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어려워말고 내게 편지를 써보내라구.…
그 사랑의 말씀에 모두가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만경봉》호에도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우리자체의 힘으로 현대적인 귀국선을 무을데 대한 과업을 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을 태워올 이 배는 조국의 한 부분이라고,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공업을 다 동원해서 외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건조과정을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시였다.
그후 완성된 배의 외형과 내부구조를 찍은 사진들을 보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득 귀국선이 운항될 때마다 동포자녀들이 몇명씩이나 타고오는지 알아보시고나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빛도 잘 들고 사방을 다 볼수 있는 곳에 어린이실을 널직하게 꾸려주자고 하시였다.그리하여 건조를 끝내고 첫 출항을 기다리던 배의 일부 구조를 변경하여 어린이놀이터를 아담하게 꾸려주는 작업이 긴급히 진행되게 되였다.
재일동포들의 뜻깊은 귀국의 력사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와 열화같은 동포애도 력력히 어려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의 귀국과 관련된 문제는 만사를 제쳐놓고 그 무엇이든 다 풀어주시였다.일본반동들의 방해책동으로 말미암아 귀국사업이 일시 중단되였을 때에는 일본땅에 우리 동포들이 살고있는 한 귀국사업은 절대로 중단될수 없다고 하시면서 귀국재개를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주시여 끊어졌던 귀국의 배길을 다시 이어주시였다.
조국의 품에 안긴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신 그이의 믿음과 은정은 또 그 얼마나 뜨거웠던가.
주체77(1988)년 8월 어느날 무산광산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4부자운전사들이 일을 잘하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그들이 일을 잘하며 특히 셋째아들이 10여년간 매해 년간계획을 넘쳐 수행하여 이번 전국영웅대회 대표로 추천되였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소행은 모든 사람들이 따라배워야 할 참으로 아름다운 소행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자본주의일본땅에서였다면 사회의 밑바닥에서 자본의 노예로서 삶 그자체를 포기했을 사람들이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영광의 상상봉에 올라섰다.
이역땅 철도역의 재무지속에서 타다남은 콕스덩이들을 주어모아 생계에 보태야 하였던 불행한 사람도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겨 온 나라가 다 아는 인기있는 영화배우로 자라났다.그의 비참한 과거를 알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예술인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아마 일본에 그냥 있었더라면 거지신세를 면치 못했을것이다, 21살의 젊은 시절에 수령님의 품을 찾아온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 우리는 이런 동무를 아끼고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 동무는 우리 나라 남자배우들중 3대명배우의 한사람이라는 최상의 평가를 주시였다.
또 언제인가는 한 평범한 건축가가 걸어온 애국의 자취를 더듬으시며 《당에 충실한 동무》, 《생의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이라고 추억하시였다.
자본주의일본땅에서 민족적멸시와 천대만을 받아온 자기들을 귀중한 혁명동지로, 한집안식솔로 극진히 아끼고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은 귀국동포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운명을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와 하나로 잇고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게 하였다.지난날 이역땅에서 들판의 무명초같이 이름없던 사람들이 영예의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 김정일상계관인으로, 최고인민회의를 비롯한 각급 주권기관 대의원으로, 로력영웅으로 자라났다.이름있는 과학자, 예술인, 체육인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또 그 얼마이던가.돌이켜볼수록 60년전 처음으로 울려퍼진 귀국의 배고동소리는 조국이 열어준 운명전환의 길우에 높이 울린 새 삶의 메아리였다.
* *
재일동포들의 귀국실현과 조국래왕으로 그들에게 보람찬 삶의 활무대를 펼쳐주시고 총련애국위업을 힘있게 추동하는 원동력을 마련해주신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쌓아올리신 영구불멸할 민족사적공적중의 하나이다.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뀐다고 해도 우리 인민과 재일동포들은 그 하늘같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대를 두고 길이길이 노래할것이다.은혜로운 태양의 빛발 넘치는 영원한 삶의 품, 행복의 요람을.
백두의 흰눈처럼, 만병초처럼
백두산밀영고향집관리소 강사들의 생활에서
 
백두산밀영고향집관리소의 강사들은 만나는 첫 순간에 벌써 정이 푹 들었다.
강사모두가 처녀들인데 평균나이는 23살이였다.
백두의 설한풍을 이겨내며 청춘의 자욱을 아름답게 수놓아가는 그들의 생활은 과연 어떻게 흐르고있는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장군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겨울철 백두산일대의 경치는 참으로 장관이였다.
천변만화하는 백두산날씨의 조화이런듯 밤새 내리던 눈이 어느새 멎고 아침하늘이 씻은듯 열려있었다.그런가 하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소백수의 맑은 물이 강산같이 쌓인 눈을 가르며 유정하게 흘러내리는데 그속에서는 산천어들이 유유히 꼬리치고있었다.
백두산지대에서만 볼수 있는 풍치였다.소리치며 흘러흐르는 소백수의 유정한 물소리가 가슴을 파고드는데 이깔나무숲속에서 이런 시구절이 들려왔다.
오 백두산 백두산아
네우에 한번 오르면
몸도 마음도 새로 태여나거니
나는 너의 딸! 백두의 딸!
마중나왔던 백두산밀영고향집관리소 교양과장 김은정동무는 우리에게 시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를 읊고있는 처녀가 강사 한향희동무라고 알려주었다.
한향희동무는 숲속에서 한창 강의훈련을 하는중이였다.이런 생활은 그만이 아니라 강사들 누구에게서나 볼수 있다며 교양과장동무는 끝없이 흐르는 답사대렬의 앞에서 걷고있는 또 한명의 처녀강사를 소개했다.
《김신향동무입니다.백두산지대에 대하여 모르는게 없는 박식가입니다.》
김신향동무는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정열이 대단한 독서가였다.그의 할아버지도 혁명사적부문에서 오래동안 일했고 아버지는 현재 대홍단혁명전적지관리소에서 20년나마 일하고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따금 소포로 책들을 보내주고있는데 거기에는 강의에 필요한 각종 자료들이 들어있어 많은 도움을 받고있다는것이였다.
처음 강사로 배치되여왔을 때까지만 해도 답사자들에게 강의내용을 잘 알려주는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 그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백두산지대의 자연과 기후, 동식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싶다는 한 답사대원의 질문을 받은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그 답사대원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못한 자신을 호되게 질책하였다.그때부터 그는 손에서 책을 놓을줄 몰랐다.
김신향동무는 백두산지대의 혁명전설과 자연기후, 동식물에 대해 환히 꿰들고있는것은 물론 혁명가요보급에서도 첫자리를 차지한다고 강사들 누구나 입을 모아 칭찬하였다.
백두산밀영의 강사들은 노래면 노래, 시면 시, 춤이면 춤 못하는것이 없어야 한다는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였다.
관리소에는 김은심동무도 있었다.
이곳을 찾는 답사대원들은 류달리 노래도 잘하고 당돌하게 강의를 잘하는 김은심동무를 무척 사랑한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강사생활에 대해 말해주었다.
여름철에도 그러하지만 겨울철이면 이들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령하 30℃를 오르내리는 혹한속에서 눈이 오면 새벽이든 밤이든 달려나와 눈을 쓸어야 하는데 여간 품이 들지 않았다.고향집주변을 관리하는것을 이곳 강사들은 설경관리라고 정담아 부르군 하였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지켜가는 그들의 생활이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이렇게 이른아침 밀영주변의 설경을 관리한 다음에는 모두가 발성련습을 하는데 강의준비에서는 그것이 첫 공정이라고 한다.
때문에 교양과장 김은정동무는 여기에 특별히 큰 관심을 돌리고있었다.
10년째 이곳에서 일해오고있는 그는 어린 자식을 가진 어머니였다.그의 남편인 김광혁동무도 관리소에서 함께 일하고있었다.알고보니 그들부부는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 김정일청년영예상수상자였다.
어머니당에서는 혁명사적부문에서 청춘의 사랑도, 가정의 행복도 꽃피워가는 자기들에게 거듭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었다고 그들은 격정에 넘쳐 이야기하였다.
혜산이 고향이고 교원가정에서 나서자란 김은정동무는 어릴 때부터 백두산밀영고향집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었다.그래서인지 어린시절부터 백두산밀영고향집 강사가 될것을 열렬히 희망하였다고 한다.
깊은 밤에도 문득 우리 원수님께서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찾아오실것만 같아 자리를 차고 일어나군 하던 그였다.그런데 바로 얼마전 그는 그 꿈같은 날을 맞았다.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김은정동무를 비롯한 녀강사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신것이다.
그날 고향집의 강사들은 설한풍속에서도 얼줄 모르는 소백수처럼, 눈속에서도 곱게 피는 백두의 만병초처럼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지키고 빛내여가리라 굳게 결심다지였다고 한다.
백두산밀영고향집에서 수십년간 강사로 일해온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강사가 된 윤진경동무와 얼마전에 이곳 강사로 배치되여온 최련희, 박신옥동무의 모습에서도 우리는 그런 진정을 엿볼수 있었다.
봄날에도 겨울날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답사대렬을 맞고 보내는것이 그들의 생활이다.어떤 날에는 답사대렬이 그칠새 없어 끼니를 번지기도 하고 온밤 내린 눈을 치느라 힘들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사령부의 초병들이라고 불러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믿음을 되새기며 힘을 얻군 한다는것이 그들의 심정이였다.
백두산밀영고향집으로 향한 인민의 흐름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거세차진다며 녀강사들은 뜨거움에 젖어 이렇게 말하였다.
《해마다 고향집을 찾는것을 생활화하고있는 대학생들도 있고 년로한 몸에도 오랜 세월 고향집에로의 길을 줄기차게 걷고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고향집주변에 소나무를 심겠다며 평양에서부터 수백그루의 소나무를 안고온 녀성도 있습니다.분계연선도시 인민들과 서해곡창의 농장원들, 동해의 어로공들을 비롯해서 조국땅 방방곡곡에서 고향집을 찾아오는 답사자들은 끊길새 없고 그 수는 미처 다 헤아릴수 없습니다.》
고향집주변관리에 필요한 관리도구들도 마련해오고 백두의 녀강사들의 수고를 헤아려 친정어머니처럼 정을 다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백두밀림의 고향집을 지켜선 긍지와 보람이 커진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충성의 한마음을 간직하고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지켜가는 녀강사들, 참으로 그들의 정신세계는 한없이 고결하고 아름다왔다.
백두의 흰눈처럼 순결무구하고 백두의 만병초처럼 억세인 녀강사들의 백두산강의는 오늘도 이어지고있다.

가자, 《백두산대학》으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찾아 답사행군대오가 흐른다.
그들의 모습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백두의 눈보라길을 헤쳐가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을 방불케 한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시라.
그러면 처억-처억- 내짚는 답사행군대오의 힘찬 발구름소리만 들려오는것이 아니다.
백두산에 명맥을 잇고 사는 이 나라 인민의 목소리가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가자, 《백두산대학》으로!
이런 신념을 안고 누구나 성스러운 교정으로 향하고있다.
《백두산대학》에서 항일의 혁명정신을 배우고 심신을 단련하는 오늘의 빨찌산투사가 될 일념 안고 줄기차게 이어가는 행군길,
그것은 단순히 답사길만이 아니다.
온 나라 인민이 걷는 배움의 길, 충성의 길이다.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몸과 마음 다 바쳐갈 굳은 맹세는 용용한 답사행군대오의 흐름과 더불어 변함이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