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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일성조선 100년의 총화’

[북 태양절] ‘김일성조선 100년의 총화’

 

 

4.15축포야회 <태양조선은 무궁번영하리라!>를 마지막으로 북코리아최대의 축전 김일성주석탄생100돌경축 태양절주간이 끝났다. 대동강변을 붉게 물들인 CNC에 의한 수십만발의 축포는 ‘김일성조선’ 100년을 ‘총화’하고 새로운 101년 ‘김정은시대’를 선포하는 신호탄이었다.

 

2012년 4월10일자 조선중앙통신은 ‘20세기정치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의 내용은 김일성주석에 관한 응축된 통계자료였다. 김일성주석이 생전에 집필한 노작(북코리아지도자의 논문을 뜻함)은 1만800여편으로 2~3일에 1편의 글을 집필하는 왕성한 저술력을 보였다. 김일성주석이 북코리아민중들에게 ‘철학형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또 김일성주석의 누적현지지도일수는 8650여일이며 지도한 단위는 모두 2만600여곳이었다. 1994년 7월8일 서거직전까지 김일성주석의 현지지도 총연장거리는 57만8000여km에 달했다.

 

북코리아에서 말하는 ‘김일성조선’ 100년은 김일성·김정일시대 100년을 뜻한다.

1960년 8월25일 근위서울유경수제105탱크사단지도와 1964년 6월19일 당중앙활동이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작년 12월17일 야전열차안에서 서거할때까지 김일성주석 못지않은 왕성활 활동력을 보였다. 북코리아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정식화하고 북코리아를 핵보유국의 지위로 격상시킨 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북코리아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장군형의 지도자’로 불린다.

 

최근년 김정은제1비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상당부분의 사업을 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대리는 2008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김정일최고사령관을 대리해 미국과의 군사적 대결을 주도했다. 또 김정은제1비서는 2009~2010년 인민군작전에의 첨단기술도입, 국방공업·중공업의 CNC화,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건설, 대동강과수원확장공사, 2009년 태양절과 5.1절축포야회기획·프로그래밍 등의 사업을 지도했다. 2010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2차례 방중호위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을 돌파하자’는 구호와 ‘새세기 산업혁명’과 ‘CNC’가 강조된 시점도 김정은제1비서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때문에 북코리아에서 김정은제1비서는 ‘첨단형의 지도자’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절을 준비하며 북코리아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칭하고 ‘김정일대원수칭호’수여를 결정했다. 또 평양만수대언덕의 김일성주석·김정일국방위원장동상과 평양장대재언덕의 태양상모자이크벽화, 조선인민군무장장비관가 건립됐다. 김정일국방위원장에 의해 수행된 ‘수령영생위업’에 이은 김정은제1비서의 연속적인 조치로 분석된다.

 

이번 태양절은 ‘김정은시대’의 새로운 101년의 시작을 내외에 선포하는 자리였다. 김정은군사위부위원장은 4.11당대표자회와 4.13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조선노동당제1비서와 국방위원회제1위원장으로 추대돼 북코리아의 군대와 당,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김정은시대의 자신감이 곳곳에서 읽힌다. 북코리아는 ABC, FOX 등 서방의 방송과 언론을 대거 초청했다. 광명성3호·은하3호의 근거리촬영도 허가했다. 이같은 자신감은 이번 태양절주간 가장 주목받은 행사인 4월15일 열린 김일성주석탄생100돌경축열병식에서 극에 달했다.

 

김정은제1비서는 세계의 방송·언론이 지켜보는가운데 처음으로 육성축하연설을 하며 국제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결과적으로 북코리아는 김정은제1비서의 등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세계에 알렸다. 이들 방송·언론들은 김정은제1비서의 육성과 제스쳐, 복장 하나하나를 보도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했다.

 

정재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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