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은 15일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을 게재했다.
<높이 모신 수령님의 초상화>에서는 <주체34(1945)년 12월 어느날 평양학원(당시)의 미술가 이성화는 창작적열정을 안고 화판에 마주앉았다>며 <미술가는 김일성장군님을 언제나 뵙고싶어하는 온 나라 인민의 불타는 염원을 안고 그이의 초상화를 정중히 형상하기 위해 심혼을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에서는 <시인(이찬)의 붓끝에서는 인민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은 불멸의 혁명송가의 가사가 구절구절 꽃펴났다>며 <정녕 영생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는 김일성민족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고고성이였다>고 평가했다.
<열화같은 흠모심 시어가 되여>에서는 <들끓는 현실을 대할수록 혁명시인 조기천의 가슴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이역땅에서 방황하던 자기를 새 조선의 시인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와 감사의 정으로 불타올랐다>며 <혁명시인 조기천이 온넋을 기울여 쓴 장편서사시 <백두산>, 이 시는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기 전에 해방의 은인,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의 분출>이라고 해설했다.
아래는 전문이다. 
해방된 조국땅에 차넘친 끝없는 감격과 새 생활창조의 기쁨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높이 모신 수령님의 초상화
 
해방을 맞이한 이 나라 인민의 희열과 행복의 파도는 좀처럼 잦아들줄 몰랐다.꿈만 같은 하루하루가 흐를수록 인민들의 가슴속에는 김일성장군님의 영상을 언제나 뵙고싶은 열망이 커만 갔다.
주체34(1945)년 12월 어느날 평양학원(당시)의 미술가 리성화는 창작적열정을 안고 화판에 마주앉았다.한상의 영상사진을 우러르는 그의 눈빛은 흥분으로 이글거리고있었다.그 영상사진은 항일의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시던 때 남기신 화폭이였다.미술가는 김일성장군님을 언제나 뵙고싶어하는 온 나라 인민의 불타는 념원을 안고 그이의 초상화를 정중히 형상하기 위해 심혼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되여 이듬해 1월 3일 평양학원 정문과 매 호동, 건국실들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가 모셔졌다.그리고 2월 23일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모시고 진행된 평양학원개원식 주석단에도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가 정중히 모셔졌다.
수천년력사에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김일성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은 우리 인민들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과 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준 위대한 태양의 모습이였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해방조선의 첫봄은 크나큰 기쁨과 희망속에 계절을 앞당겨 찾아왔다.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서는 유구한 민족사에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감정이 불길처럼 타번지고있었다.
혁명시인 리찬도 그들속의 한사람이였다.
태양송가를 창작할 결심을 품은 그에게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손에 쥔 펜은 쉴줄 몰랐다.썼다가는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고…
시인은 창작의 나래를 펼쳤다.끓어오르는 격정을 쏟아붓는듯 펜이 원고지우를 달리고달렸다.
그가 종이우에 쓴것은 가사가 아니라 빨찌산 김대장의 력사였다.
시인의 붓끝에서는 인민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은 불멸의 혁명송가의 가사가 구절구절 꽃펴났다.그것은 일찌기 항일혁명투사들의 심장에서 뜨겁게 끓어번지였고 우리 인민모두의 심장에서 또한 세차게 고동친 시대의 메아리였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이렇게 태여났다.노래는 나오자마자 해방된 조국땅 방방곡곡에서 높이 울려퍼졌다.
정녕 영생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는 김일성민족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고고성이였다.
 
열화같은 흠모심 시어가 되여
 
해방을 맞은 조국땅은 력사적인 사변으로 끓어번지고있었다.
토지개혁을 비롯한 민주주의적시책들이 련이어 실시되고 공장과 농촌, 교정 그 어디에 가나 나라의 주인된 인민의 창조의 열정이 샘솟고 노래소리 넘치였다.
들끓는 현실을 대할수록 혁명시인 조기천의 가슴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이역땅에서 방황하던 자기를 새 조선의 시인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와 감사의 정으로 불타올랐다.
(아, 절세의 애국자이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조선이 낳은 불세출의 영웅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조선의 시인이겠는가.)
젊은 시인의 가슴에서는 격랑이 일었다.
열정의 시인은 백두산에 대한 현지답사를 마치고 평양에 돌아오자 밤을 밝혀가며 며칠사이에 방대한 서사시의 초고집필을 끝내였으며 수정작업을 다그쳐 완성된 작품을 내놓았다.
혁명시인 조기천이 온넋을 기울여 쓴 장편서사시 《백두산》, 이 시는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기 전에 해방의 은인,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의 분출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