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노동신문은 <안변벌상공의 사연깊은 비행운>, <대중의 정신력을 최대로 분출시키도록>, <<룡악산>, 그 부름에 어려오는 따뜻한 사랑>, <공산주의혁명가는 정열적인 독학가이다>, <<전민항쟁만이 승리할수 있다>>, <연안군 라진포농장에서 살림집입사모임 진행>,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하는가>, <군중교양, 군중동원의 위력한 무기>, <충성의 한길에서 변치 않는 삶을 조국은 보석같이 빛내여준다>, <어떤 문제들에 초점을 박을것인가>, <끝나지 않는 수업>, <로씨야대통령 조국에 대한 충실성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강조>, <로씨야외무성 유럽동맹의 제재에 대응할 립장 표명>, <충돌이 강요된다면 모든 미군기지들이 타격권안에 들게 될것이라고 경고>, <미국의 입국금지조치를 비난>, <젤렌스끼의 망발을 배격>,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살륙만행> 등을 게재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인민을 매혹시키는 위인의 세계
안변벌상공의 사연깊은 비행운
얼마전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타격전방인 농업전선에서 례년에 없이 불리한 상황이 조성된 속에서도 기본면적의 모내기를 성과적으로 결속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져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주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으며 사람들 누구나 위대한 당의 현명한 령도아래 또다시 찾아올 이해의 풍요한 가을을 흐뭇하게 그려보았다.
파아란 잎새를 펼친 벼포기들이 산들바람에 흐느적거리며 황금파도 설레일 래일을 손저어 부르는듯한 사회주의전야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할수록 우리 인민이 가슴뜨겁게 되새겨보는 고장이 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두해전 8월 태풍피해의 흔적을 하루빨리 가셔주시려 한주일동안에 무려 두차례나 찾으시였던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이다.
정녕 위대하신 우리 어버이께서 진행하신 그날의 현지지도는 얼마나 가슴뜨거운 사연을 안고있는것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전선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입니다. 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여야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고 사회주의강국을 성과적으로 건설할수 있습니다.>
2023년 8월 17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을 또다시 찾으시였다. 뜻하지 않은 큰물로 하여 피해를 입었던 논들의 상태를 다시금 알아보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시려 천금같이 귀중한 시간을 내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따라서는 일군들의 가슴은 후덥게 달아올랐다.
며칠전 태풍에 의한 폭우와 해일의 영향으로 침수된 농경지를 찾으시여 태풍피해를 속히 가시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며 최대한 농작물을 보호하고 알곡수확고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시급히 영양관리대책을 따라세우는것을 비롯하여 필요한 농업기술적대책들을 세울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나라의 농사문제를 두고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경애하는 그이께서 안변벌의 평범한 농장들에 거듭 헌신의 자욱을 새기시랴.
하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신의 로고에 대하여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피해지역 논들을 돌아보시면서 피해복구실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온통 침수되여 흙탕속에 묻혀있던 농장벌들이 피해흔적을 말끔히 가신 모습을 기쁨속에 바라보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존안에는 환한 미소가 어리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만족하신 어조로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의 논들이 원상대로 복구되였다고, 며칠전만 하여도 강하천제방이 터져 많은 면적의 논들이 물에 잠겨있었는데 이제는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짧은 기간에 침수피해를 입은 농경지들을 원상복구하고 알곡수확고에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한것은 커다란 성과입니다.>
자신께서 바치신 크나큰 심혈과 로고는 고스란히 묻어두시는 경애하는 그이의 말씀에 일군들은 머리가 숙어졌다.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이번에 인민군대를 동원한것은 결코 250여정보의 피해면적이 많아서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싸우는 전선에서 한치의 땅도 적들에게 내여줄수 없듯이 자연의 광란으로부터 단 한평의 땅도 잃을수 없다고, 우리 군인들의 애국충심에 의해 자연재해를 입었던 이 논들에도 풍년이삭 설레이는 바다가 펼쳐지게 되였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농장원들이 애써 가꾼 하나의 벼이삭이라도 잃을세라 그리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심중이 어려와 일군들은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
잠시후였다.
한 일군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다가와 농약살포준비가 다되였다고 보고를 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러면 농약살포를 진행하라고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잠시후 안변벌상공으로는 여러대의 경수송기와 직승기들이 날아와 푸른 하늘에 비행운을 새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리를 뜨실념을 하지 않으시고 비행지휘까지 몸소 하시는것 아닌가.
마치도 비행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해주시듯 경수송기들과 직승기들이 비행측선을 잘 잡아야 한다고, 비행고도를 적당한 높이로 유지하며 농약살포를 편대를 지어서도 하고 한대로도 하면서 담당구역이 빠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이를 우러르는 일군들의 가슴은 불을 안은듯 뜨거워올랐다.
며칠전에는 휘뿌려지는 찬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농장을 찾으시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해주시더니 오늘은 또 이렇게 현지에 나오시여 피해복구정형을 세심히 료해하시고 몸소 농약살포를 위한 비행지휘까지도 하시는것이다.
고금동서 그 어디에 이렇듯 한 나라의 령도자가 태풍피해를 입은 침수논들의 작황을 두고 그리도 마음쓰며 비행기들의 농약살포까지 직접 지도해준 례가 있었던가.
이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올해 농사를 안전하게 결속하기 위한데 모든 힘을 총집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자연의 피해를 가셔낸 이 지대에 오곡백과 무르익는 풍요한 가을과 행복이 깃들기 바란다고 따뜻이 축복해주시였다.
안변벌상공에 새겨진 사연깊은 비행운, 정녕 그것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시는 위대한 어버이를 모신 우리 조국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또 하나의 감동깊은 화폭이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이 어찌 안변군의 오계리와 월랑리에만 새겨져있다고 하랴.
몸소 운전대를 잡으시고 큰물피해를 입은 은파군 대청리의 좁은 포전길을 달리시던 그날의 사연, 혹심하게 피해를 입은 안석간석지논의 허리치는 감탕물속에서 논벼의 생육상태를 헤아려보시던 잊지 못할 화폭, 태풍과 해일이 휩쓴 해안가의 험하디험한 돌서덜길을 밟으시던 모습, 언제 산사태가 날지 모르는 험한 길을 헤치시던 헌신의 자욱…
하늘도 감복할 이렇듯 뜨거운 정과 열로 인민의 행복을 지켜주시고 인민을 위한 만복의 열매를 주렁지우시는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이시다.
하기에 우리 인민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행복, 이 땅에 마련되는 모든 경이적인 결실들은 위대하신 우리 어버이의 천만로고와 맞바꾸어지는것이라고.
대중의 정신력을 최대로 분출시키도록
밝혀주신 생산장성의 근본비결
2018년 7월 어느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혁명령도의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원산영예군인가방공장을 찾으시였다.
후대들을 잘 키우는 문제를 국가의 장래와 관련되는 중차대한 문제로 내세우는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강원도에서 원산영예군인가방공장을 현대적으로 개건하고 학생가방생산을 정상화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먼길을 달려 찾아오신것이다.
이날 공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중요하게 강조하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대중의 정신력을 발동할데 대한 문제였다.
제품견본실에 들리신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공장에서 생산한 가방을 보시고 질을 높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생산의 물질기술적토대를 점령하기 전에 생산의 주인이며 담당자인 종업원들의 마음부터 먼저 점령하여야 한다고.
깊은 뜻이 담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가르치심을 새겨볼수록 일군들의 생각은 깊어만졌다.
생산자대중의 정신력을 더없이 중시하시기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방금전 공장의 연혁소개실에 들리시였을 때에도 1970년대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학생가방생산을 본때있게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하신것 아니던가.
그날 오랜 시간에 걸쳐 공장을 돌아보시며 도들마다에 수십만개의 학생가방들을 생산할수 있는 물질기술적토대가 원만히 갖추어진것만큼 이제는 가방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쟁에 불을 걸고 힘을 집중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가르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경건히 우러르며 일군들은 깊이 새겨안았다.
생산자대중의 정신력발동, 바로 여기에 생산장성의 근본비결이 있음을.
사상관점과 립장의 차이
2014년 11월 어느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인민군대의 한 수산사업소를 찾으시였다.
이 수산사업소로 말하면 물고기잡이에서 전례없는 성과를 이룩하고있는 단위였다.
사업소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곳 일군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전례없는 물고기대풍을 이룩하고있다는 보고를 받고 찾아왔다고, 당의 수산정책관철에서 앞장선 이곳 수산사업소와 인연을 맺게 되여 기쁘다고, 그동안 수고들이 많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선창에 가득한 물고기를 바라보시며 인민군대안의 수산부문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고있다는 보고를 받고 너무 기뻐 요즘은 잠도 오지 않는다고, 자신께서 이렇게 기쁜데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부모들이 이렇듯 희한한 물고기대풍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수산사업소일군들과 종업원들을 높이 평가하는것은 물고기잡이실적이 높은데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의 수산정책을 결사관철하겠다는 그 정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대비할수 없게 높기때문이라는데 대하여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사업소들의 수자상차이를 실무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며 그 차이를 당의 수산정책을 대하는 사상관점과 립장의 차이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사업소가 물고기잡이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신 그 사랑, 그 은정에 보답하기 위해 애썼을뿐인데 자기들이 이룩한 성과를 두고 그리도 높은 평가의 말씀을 주시니 일군들은 몸둘바를 몰랐다.
그날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어로공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에 힘을 넣을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모든 사업의 성과여부는 대중의 정신력을 최대로 발동시키는데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못잊을 그날의 이야기는 오늘도 새겨주고있다.
당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사상관점과 립장에 의하여 결정된다는것을.
<룡악산>, 그 부름에 어려오는 따뜻한 사랑
<아마 우리 공장을 돌아보면 놀랄것입니다.>
아름다운 공원을 방불케 하는 룡악산비누공장구내에서 지배인 김명성동무가 하는 말이였다.
은근한 자랑이 깔려있는 그의 이야기에 우리는 한시바삐 공장을 돌아보고싶은 호기심을 누를길 없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당에 모든것을 의탁하고 당과 함께 온갖 시련과 난관을 헤쳐온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세상에 부럼없는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제품전시실에 들어서니 미처 그 이름을 다 꼽아보기에도 아름찰 정도로 다종다양한 제품들이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인삼, 역삼, 박하, 쑥 등의 기능성추출물과 여러가지 기능성분이 들어있는 기능성샴푸, 린스들, 피부에 대한 온화한 세척력과 보습작용을 나타내는 애기피부세척용품들과 세수물비누, 손세척제들…
어디 그뿐인가. 금속, 타일, 유리, 수지피막과 같은 각이한 물체들을 세척할수 있는 전용제품들은 물론 살균소독, 탈색방지작용을 하는 다양한 옷물비누들과 옷린스 등 없는것이 없었다.
지배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조업당시 6종에 31가지에 불과했던 <룡악산>제품이 오늘은 80여종에 250여가지로 늘어났다고 한다.
종업원수도 많지 않은 공장에서 우리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다종다양한 제품들을 마음먹은대로 꽝꽝 생산한다는것이 참으로 놀라왔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우리에게 일군은 이 모든것은 바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낳은 결실이라고 절절히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바로 이렇듯 불같은 일념을 안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이시기에 혁명령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공장건설과 관련한 사업을 하나하나 지도해주시였고 2016년 6월에는 설비조립공사가 한창인 공장을 찾으시여 우리 인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장, 우리 당이 완공을 기다리는 공장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신것이다.
공장이 일떠선 때로부터 어느덧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나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공장관리운영과 관련하여 지도하여주신 문건만 하여도 수십건이나 된다고 한다.
정녕 인민을 위해 이렇듯 희한한 멋쟁이공장을 일떠세워주시고도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다심한 사랑을 떠나 우리 인민 누구나 즐겨찾는 <룡악산>제품에 대하여 어찌 생각할수 있으랴.
뜨거운 격정을 안고 전시실을 나서니 제품창고에서 출하를 기다리는 각종 비누제품들이 안겨들었다.
<룡악산>제품들을 바라보느라니 2016년 10월 완공된 공장을 또다시 찾으시였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이 숭엄히 어려왔다.
룡악산비누공장에서 생산한 여러가지 물비누와 세척제를 받아안고 좋아할 인민들을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다고, 쌓였던 피로가 풀린다고 하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신 우리 어버이,
정녕 그날의 뜻깊은 말씀은 인민의 행복을 위함이라면 그 어떤 천만고생도 달게 여기시며 거기에서 혁명하는 멋을 느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만이 터치실수 있는 뜨거운 심중의 토로가 아니랴.
물비누생산현장에서 기사장 정명화동무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수지피막세척제를 연구도입하여 박사칭호를 수여받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였는데 또 한가지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룡악산>제품생산에 수질이 좋기로 소문난 룡악산샘물이 리용된다는것이였다.
여기에도 참으로 감동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처음 룡악산비누공장건설예정지는 지금의 위치가 아니였다. 그러던것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제품생산에 제일 좋은 물을 리용할수 있도록 공장위치를 물좋고 공기좋은 여기 룡악산기슭에 잡아주시였던것이다.
인민들이 리용하는 모든것은 최상의것으로 되여야 한다는 숭고한 뜻을 안으시고 공장터전도 몸소 잡아주시고 그 이름도 <룡악산비누공장>으로 부르도록 하여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다심한 손길이 곳곳마다에 어려있는 실로 사연깊은 일터였다.
경공업제품전시회 <경공업발전-2023>에서 최우수상을 받은것을 비롯하여 여러 전시회에서 많은 상장과 메달들을 수여받았으며 세계적추세에 맞게 보다 다기능화된 물비누들이 인민들속에서 좋은 반영을 불러일으키고있다는 이야기, 최근 어느한 나라에서 진행된 국제상품 및 봉사전람회에 출품한 인삼샴푸, 역삼샴푸 등 많은 <룡악산>제품이 우수한 평가를 받은 사실…
공장에 대한 기사장의 자랑이야기는 끝이 없을상싶었다.
<저희들은 룡악산비누공장에서는 우리의 원료로 인민들의 호평을 받는 여러가지 물비누들을 꽝꽝 생산할 때 만세를 불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말씀을 언제나 새겨안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우리의것을 더 많이 내놓기 위해 더욱 분발해나가겠습니다.>
제품을 가득 싣고 공장정문을 나서는 수송차를 바래우며 지배인동무가 우리에게 하는 말이였다.
멀어져가는 수송차를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격정의 웨침이 울리고있었다.
정녕 인민을 보살피는 어머니 우리당의 사랑에는 끝이 없다고.
당의 사상과 의도를 사업과 생활의 신조로 삼자
공산주의혁명가는 정열적인 독학가이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
비상한 책임감과 과감한 전개력, 완강한 투쟁력과 철저한 집행력,
다감하고 은근하며 로숙하고 여유작작한 세련된 령도예술,
이 모든것의 전제는 높은 실력이다.
열렬한 독학가, 이를 떠나 일군들의 당성단련, 혁명적수양을 론할수 없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당이 맡겨준 위치에서 자기 직분을 다하기 위한 첫째가는 전제가 실력제고에 있다는것을 명심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며 사색하는것을 습성화하여야 합니다.>
천하의 책을 다 읽으면 천하를 얻을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일군들이 자기자신에게 부단히 요구성을 높이면서 투쟁기풍과 일본새에서 혁명적인 개선을 가져올것을 바라는 오늘,
모르고서는 당이 맡겨준 중요한 책무를 제대로 감당해낼수 없는것은 물론 시대의 전진속도에 숨결과 보폭을 맞출수 없기마련이다.
배우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는가 하는것도 결국은 사상에 달려있다. 사상이 투철하고 견결하면 애써 배우고 파고드는 독학가, 정열가가 되고 사상이 견실치 못하면 배움을 게을리하는 건달군이 되여 위대한 당중앙이 제시한 웅대한 혁명강령의 완수를 위한 투쟁에서 자기의 책임과 본분을 다할수 없게 된다. 이는 자명한 리치이다.
이처럼 실력을 높이는 문제가 사활적인 요구로 나서는 때에 배우기 위하여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면 당에 대한 충실성이 진실치 못한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일군이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온갖 조건과 기회를 다 리용하여 쉬임없이 배우고 또 배우는 정열적인 독학가가 되여야 한다.
주체사상총서이며 혁명과 건설, 투쟁과 생활의 대백과전서인 불후의 고전적로작들과 당문헌들을 손에서 놓지 말고 자자구구 새기며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탐독하는것을 생활화, 습성화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정치리론도서들과 과학기술도서들, 잡지와 상식도서들도 읽고 혁명적인 소설과 시를 비롯한 문학예술작품도 많이 보아야 한다.
지식은 날마다 늘구지 않으면 줄어든다.
한번 습득한 지식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습득하면 새로운감이 나기마련이다. 한것은 그동안 환경도 달라지고 수준도 일정하게 높아져 새로운 각도에서 보고 받아들이기때문이다.
전당에 당중앙의 피를 뿜어주는 당보,
당에서 중시하는 문제가 무엇이며 그것을 집행하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잘 알수 있게 하며 여러 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소유하게 하는 자양인 당보를 정상적으로 열독하여야 한다.
머리에 든것이 없으면 기적을 창조하는 대중을 감동시키고 동원시키는 령도예술을 발휘할수 없다.
특히 광범한 군중을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고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는 품을 들여야 하는 당일군들이 자기 분야의 식견을 넓히기 위한 실력의 탑을 높이 쌓는것이 중요하다.
실무와 지식이 안받침되지 못한 일군에게서 다감하고 은근하며 로숙하고 여유작작한 그러한 세련된 령도예술을 기대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가령 작가들을 대할 때 작품이야기부터 꺼내고 력사가들을 만날 때면 력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내여 실제적인 문제들에 의사소통하는 당일군,
이런 당일군을 사람들이 돋보며 따르는것은 응당하다.
그러한 신뢰와 존경심은 혁명과업수행으로부터 일신상의 문제까지도 의탁하는 혈연의 관계로 승화되기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령도예술이며 우리 당이 요구하는 원숙한 사업방법과 작풍이다.
모르면 대중과 멀어지게 되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사업에서 씨가 먹지 않고 날이 서지 않아 종당에는 피동에 빠져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것을 명심하고 당일군일수록 욕망을 앞세우기 전에 지식의 저장고를 풍부히 하여 높은 실무능력을 갖추는데 전심전력하여야 할것이다.
지금에 비해 환경과 조건이 엄혹한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학력이나 경력도 요란하지 않았지만 당의 로선과 정책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 정치의식과 정치적감수성에 있어서 비할바없이 현격한 높이에 있었던 창당세대,
대부분 소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였지만 알아야 혁명을 할수 있고 일제와 싸워 승리할수 있다는 투철한 사상으로 간고한 행군길에서와 계속되는 전투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한시도 배움을 중단하지 않은 바로 여기에 창당세대가 훌륭한 공산주의혁명가로 성장할수 있은 비결이 있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마련이다. 창당세대의 고귀한 리념과 정신을 자양으로 우리 일군들은 한순간의 정체도 용허하지 말고 최대의 긴장과 무한한 열정으로 지식의 탑을 높이 쌓아나가는것을 체질화하여야 한다.
정열가, 독학가가 되여 열심히 습득하고 연구하며 사색하는 기풍을 체질화하는 그길이 순간의 침체와 답보도 없이 당에 충실할수 있는 길이다.
구호문헌해설
<전민항쟁만이 승리할수 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발굴된 혁명적구호문헌들가운데는 <전민항쟁만이 승리할수 있다>도 있다.
구호문헌에는 전체 인민이 일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성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전민항쟁에 관한 사상을 충성으로 받들어나가려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신념과 의지가 그대로 맥박치고있다.
피어린 항일혈전의 길을 과감히 헤치면서 사령관동지께서 가리키시는 길은 곧 승리의 길임을 실체험으로 간직한 항일혁명투사들,
하기에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전체 인민을 항일의 대오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칠수 있은것 아니던가.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넋이 맥맥히 살아높뛰는 구호문헌의 글발들을 보며 우리의 새세대들은 뜨겁게 새겨안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그이의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감으로써 혁명선렬들의 피와 땀이 스민 우리 조국을 온 세상이 우러러보는 천하제일강국으로 끝없이 빛내여나갈 철석의 의지를.
연백의 전야에 또다시 꽃펴난 새집들이기쁨
연안군 라진포농장에서 살림집입사모임 진행
농촌진흥의 새시대와 더불어 사회주의문명개화의 새 생활을 누려가는 인민의 기쁨이 날로 꽃펴나는 가운데 서해곡창 황해남도의 연안군 라진포농장에 세번째로 되는 새집들이경사가 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현대적인 문화주택들과 탁아소가 번듯하게 일떠서고 수종이 좋은 나무들이 푸른 잎새를 한껏 펼친 새 마을들의 전변상은 우리 농업근로자들이 공산주의사회의 문어구에 남먼저 들어서게 하시려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크나큰 은덕을 전하고있다.
인민의 참다운 복무자라는 확고한 관점을 지니고 연안군의 당, 정권기관 일군들은 건축물들마다에 인민대중제일주의리념이 직관적으로 구현되도록 정책적지도와 기술적방조를 구체화하였다.
건설자들은 한동한동의 살림집들을 우리식 농촌문명의 새 모습이 체현되고 실용성과 조형예술화가 높은 수준에서 보장된 멋쟁이 새집들로 일떠세우기 위해 깨끗한 량심과 노력의 땀방울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12일 현지에서 진행된 살림집입사모임에는 황해남도와 연안군의 일군들, 농업근로자들이 참가하였다.
모임에서 연설자는 어머니당의 은정속에 마련된 새집의 주인들을 열렬히 축하하였다.
평범한 농장원들이 받아안은 꿈같은 행복은 인민의 세기적숙망과 리상을 찬란한 현실로 꽃피워가는 위대한 당중앙의 숭고한 위민헌신이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모든 일군들과 농장원들이 날이 갈수록 더해만지는 당의 사랑과 믿음을 깊이 새겨안고 연백벌의 전야마다에 해마다 흐뭇한 풍년작황을 펼치며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실행에서 선봉적역할을 수행할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모임에서는 살림집리용허가증이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속에 전달되였으며 결의토론이 있었다.
토론자는 마음속 가장 첫자리에 인민을 소중히 품어안으시고 정력적인 령도로 이 땅우에 농촌의 천지개벽을 안아오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은 진정 우리 인민모두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라고 격정을 터치였다.
그는 어머니당에 대한 충성과 보답의 일념을 안고 농촌혁명의 담당자, 주인답게 과학농사열풍, 다수확열풍을 세차게 일으키며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 뚜렷한 삶의 자욱을 새겨갈 결의를 피력하였다.
모임이 끝난 다음 로동당의 은덕으로 새 생활, 새 문명을 누려가는 인민의 기쁨을 노래하며 흥겨운 춤판이 펼쳐지는 속에 일군들이 새 보금자리에 입사하는 농업근로자들을 축하해주었다.
이날 새집들이경사를 축하하여 진행된 중앙예술경제선전대원들의 공연과 특색있는 불장식으로 단장된 살림집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근로자들과 학생소년들의 행복넘친 모습은 분위기를 더욱 이채롭게 하였다.
공화국기가 나붓기는 집집의 창가마다에서는 어머니당에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의 목소리, 인민의 웃음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지고 마을들은 불꽃놀이로 흥성이였다.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하는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경제실무에 빠져 행정대행을 하는것과 같은 현상들을 타파하고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철두철미 당적방법,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정신력을 발동시키는 정치적방법으로 풀어나가는것을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느한 공장의 공무직장에 한달동안 수백개의 부속품을 생산할데 대한 과업이 제기되였을 때였다.
제일 걸린것이 로력이였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 단위로부터 기능공을 보충받기 전에는 그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하지만 직장부문당조직에서는 로동자들의 정신력을 발동하여 한 사람이 두 사람, 세 사람의 몫을 해내는 방법으로 긴장한 로력문제를 해결할것을 결심하고 정치사업을 벌렸다.
당세포들에서 협의회들이 진행되고 당원들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들이 세워졌다.
로동자들의 창조적열의와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들도 진행되였다.
로동자들속에서 서로 돕고 이끄는 집단주의기풍이 높이 발휘되였고 작업반들사이의 사회주의경쟁도 활발히 벌어졌다.
그리하여 로력을 보충받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하던 생산과제를 자체의 힘으로 제기일에 끝내게 되였다.
이 사실이 주는 교훈을 소홀히 할수 없다.
지금 어느 일군이나 대중의 사상을 발동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외우군 한다.
그런데 실천에 들어가서는 사람들의 정신력보다도 로력수를 먼저 보고 걱정을 앞세우면서 우는소리를 하는 페단이 종종 나타나군 한다.
대중의 정신력을 발동할 궁리는 하지 않고 기구를 새로 내오자느니, 로력이 부족하여 불가능하다느니 하면서 로력수에만 매달리는 현상은 일군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패배주의, 보신주의의 집중적표현이다.
로력타발만 하여서는 언제 가도 혁신을 일으킬수 없다.
상원에서 타오른 기적적증산의 봉화는 생산자대중의 무궁무진한 사상정신의 힘에 원천을 둔 창조와 혁신의 불길이다.
현실은 대중의 정신력발동에 모든것이 달려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일군들은 자기 사업을 랭철하게 돌이켜보아야 한다.
로력수에 매달리고있는가 아니면 정신력발동에 힘을 넣고있는가.
군중교양, 군중동원의 위력한 무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이 대중을 알고 대중의 힘과 지혜를 발동하자면 능숙한 군중공작방법을 체득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군중을 교양하고 발동하는것은 당의 존립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이며 당정책관철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일군들이 군중과의 사업에 진지한 품을 들여야 우리 당을 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군중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불패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킬수 있고 대중을 당정책의 철저한 옹호자, 관철자로 만들수 있다.
우리 당의 전통적인 군중공작방법은 대중을 당의 사상과 로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군중교양의 위력한 무기이다.
우리 당의 사상과 로선에는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을 다그쳐나갈수 있는 진로와 방략이 뚜렷이 명시되여있다. 전체 인민이 당의 사상과 로선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 관철을 위한 사업에 사활을 걸고 나설 때 인민들 누구나 꿈과 리상으로 그려보던 리상사회건설이 다그쳐지게 된다. 대중을 당의 사상과 로선으로 철저히 무장시키는 사업은 전적으로 우리 일군들이 군중교양사업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실속있게 진행해나가는가에 따라 그 성과가 좌우되게 된다.
일군들이 당의 전통적인 군중공작방법을 체득하는데서 중요한것은 건당위업의 개척세대가 창조한 군중공작경험을 적극 따라배우고 구현해나가는것이다. 광범한 군중을 굳게 묶어세워 조국해방성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킨 항일혁명투사들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사람과의 사업을 아주 능숙하게 할줄 아는 사람, 사람들을 잘 끌어당기였을뿐 아니라 끌어당긴 사람들을 원만하게 통솔할줄 아는 일군이였다는데 대하여 감회깊이 추억하신 권영벽동지도 있다.
그는 대중이 살아숨쉬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찾아가 언제나 례의밝은 행동과 남다른 인품으로 대중을 감복시키고 진정으로 위해주며 그들의 마음속에 투쟁의 불씨를 심어주어 혁명의 길로 이끌어나갔다. 대중을 의식화하고 묶어세우는데서 삶의 가장 큰 보람을 느낄줄 알고 군중을 각성시키고 조직을 늘여나가며 마을들을 혁명화하는데서 혁명가의 더없는 영예와 긍지를 찾을줄 아는 그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군중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칠수 있었다. 언제나 군중속에, 그들의 마음속으로, 바로 여기에 권영벽동지를 비롯한 1세대 혁명가들이 적들의 삼엄한 포위속에서도 대중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철통같이 묶어세우고 적의 아성에 혁명의 포대를 쌓아올릴수 있은 비결이 있다.
오늘 우리 일군들앞에는 대중의 정신력을 총분출시켜 당결정을 충실하게 관철함으로써 5개년계획수행의 마지막해인 올해를 뚜렷한 사업실적으로 빛내여야 할 무거운 임무가 나서고있다.
지금의 조건과 환경은 혁명의 1세대들이 대중전취를 위한 투쟁을 벌리던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군들 누구나 건당위업의 개척세대들처럼 군중과의 사업을 방법론있게 진행해나갈 때 대중을 새로운 기적과 위훈창조에로 불러일으킬수 있고 전면적국가부흥의 활로를 힘차게 열어제낄수 있다.
우리 당의 전통적인 군중공작방법은 대중의 힘과 지혜를 당결정관철에로 집초시키는 군중동원의 위력한 무기이다.
우리 당정책은 과학이고 진리이다. 그렇다고 하여 당정책관철을 위한 사업이 저절로 대중자신의 사업으로 전환되는것이 아니다. 대중이 당정책관철을 위해 서로서로 힘과 지혜를 합치고 과감한 분투와 용기를 발휘해나갈 때 당이 제시한 정책들이 하나하나 완벽하게 집행되게 된다. 일군들이 대중의 힘과 지혜를 당정책관철에로 지향시키는 묘술은 당의 전통적인 군중공작방법을 적극 체득하고 구현해나가는데 있다.
지금 시대의 전렬에서 내달리고있는 단위들에서 찾아보게 되는 공통점은 일군들이 능숙한 군중공작방법으로 대중의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지혜를 당결정관철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로 철저히 지향복종시켜나간것이다. 그것은 기적적증산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리며 온 나라를 증산열기로 들끓게 하고있는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당위원회의 사업경험만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 이곳 당위원회에서는 정치사업을 모든 사업에 선행시키는 원칙에서 혁명사적교양실과 연혁소개실에 대한 참관, 방송선전차에 의한 선전, 기동예술선동대활동 등 다양한 형식과 방법의 사상교양사업을 적극 활용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전세대들의 투쟁정신을 굳건히 이어나가도록 하였다. 군중의 힘을 믿고 군중에게 의거하는 방법으로 생산자대중의 애국심과 분발력을 총분출시켰으며 대중적기술혁신운동을 활발히 전개함으로써 생산현장 어디서나 증산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게 하였다. 상원의 기적적증산, 바로 이것은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당위원회가 군중과의 사업을 방법론있게 품을 들여 진행해나가는 과정에 이룩한 소중한 결실이다.
모든 일군들은 군중교양, 군중동원의 위력한 무기인 당의 전통적인 군중공작방법을 깊이 체득하고 사업실천에 철저히 구현해나감으로써 사회주의건설의 새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오늘의 투쟁에서 자신들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가야 할것이다.
충성의 한길에서 변치 않는 삶을 조국은 보석같이 빛내여준다
공화국영웅 홍영근동지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의무감보다 수령의 전사로서의 자각을 깊이 간직한 사람, 개인의 공로와 명예보다 수령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어떤 역경속에서도 드놀지 않는 혁명적신념을 지닌 사람만이 수령에게 끝까지 충성 다할수 있습니다.>
2018년 9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화국영웅홀에는 공화국영웅 홍영근동지의 사진과 투쟁공적이 새로 전시되였다.
강사로부터 그에 대한 해설을 듣는 참관자들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이 우리의 빛나는 승리로 결속된 때로부터 45년만에, 평범한 인민반장으로 수십년간 일하다가 세상을 떠난 때로부터 15년후에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남다른 인생행로를 걸어 영생의 언덕에 오른 홍영근동지, 그는 어떤 사람이였고 어떤 공적을 세웠으며 그의 고결한 삶의 자욱자욱이 우리에게 남긴 생의 메아리는 과연 어떤것인가.
우리의 생명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살고있는 홍정수로인의 집에는 가보처럼 정히 보관되여있는 색날은 사진첩이 있다.
그 사진첩의 첫장에는 홍안의 모습으로 대좌의 견장을 달고있는 한 내무성(당시) 군관의 사진이 있다. 그 군관이 바로 로인의 아버지인 공화국영웅 홍영근동지이다.
해방전의 철공소로동자를 새 조선의 보안서원으로, 당원으로 키워주시고 평양특별시(당시) 정치보위부장의 막중한 직무를 맡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은 홍영근동지에게 있어서 삶의 고마운 은인이실뿐 아니라 목숨바쳐 보위하여야 할 민족의 운명이시였다.
하기에 그는 새 조국건설시기에는 물론 준엄한 전쟁시기에도 수도의 정치적안전을 책임졌다는 높은 자각을 안고 맡은 임무에 언제나 충실하였다.
홍영근동지는 대좌의 견장을 단 정치보위부장이였지만 수령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면 평범한 전사의 모습으로 맹호처럼 달려나가 척후에서 용감히 싸웠다.
1951년 4월이였다.
홍영근동지는 정방산부근에 둥지를 틀고있던 <반공동지회>의 원쑤놈들이 5.1절기념행사를 파탄시키기 위해 평양에 기여들었다는 자료를 입수하였다.
네놈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우리 수도의 정치적안전은 절대로 해칠수 없다!
여러명과 함께 현지로 달려나간 홍영근동지는 주변지형을 주의깊게 살피다가 어느한 초가집에 숨어있는 놈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주저없이 울바자를 박차고 뛰여들었다.
놈들은 완강히 저항하였다. 적간첩두목놈이 마당으로 뛰쳐나오자 한 대원이 그놈을 덮쳤다. 놈은 필사적으로 발악하다가 안전고리를 뽑은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홍영근동지는 수류탄을 쥔 그놈의 손목을 비틀어 놈의 배밑으로 꺾어 누르며 힘껏 깔아눕혔다.
순간 수류탄이 터지며 수많은 파편이 홍영근동지의 온몸에 들어박히고 그의 두손을 날려보냈다.
홍영근동지는 자기의 두손이 떨어져나간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채 피흐르는 팔로 허리를 더듬으며 권총을 뽑으려고 했다.
바로 이때 다른 한놈이 또다시 수류탄을 들고 뛰여나왔다. 위급한 정황속에서 그는 다시 몸을 날려 부상당한 두팔로 놈의 목을 그러안고 딩굴기 시작하였다.
전우들이 달려왔을 때 홍영근동지는 놈의 모가지를 꽉 그러안은채 의식을 잃고있었다.
한주일후 의식을 회복한 그는 동지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쑤놈들을 다 잡았습니까?>
홍영근동지는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두손이 떨어져나간 육체적고통보다도 수령의 신변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참된 보위전사, 수도의 정치적안전에 드리워진 위험을 제거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조차 없다는 무한한 책임감을 간직한 불사신!
과연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듯 한몸 아낌없이 내대게 하였는가.
항일빨찌산들은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한 전투마다에서 지휘관과 대원이 따로없이 모두가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였다. 그는 해방후 항일투사들로부터 그 모범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새기였던것이다.
<저는 오직 김일성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며 그길에서 뼈가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한이 있어도 장군님을 목숨으로 옹호보위하겠습니다.>
홍영근동지는 해방의 첫 기슭에서 다진 충성의 이 맹세를 실천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우리의 생명은 수령결사옹위를 위해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수령결사옹위를 이 나라 공민의 의무이기 전에 혁명전사의 량심과 의리로 간직한 홍영근동지의 인생관이 비껴있고 조선로동당이 키워낸 첫세대 혁명전사들의 참인간상과 고결한 풍모가 있다.
그 이후 홍영근동지의 생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두손이 없어도 혁명은 끝까지 해야 한다
수령옹위전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우고 몸에 심한 부상을 당한 홍영근동지는 제대되여 군복을 벗었다.
당의 신임으로 피현군에 위치한 영예군인제1통계부기학교(당시)에서 1952년 여름부터 교장으로 사업하던 그는 축포가 터져오르는 전승의 날도 그곳에서 맞이하였다.
3년간의 전쟁을 빛나는 승리로 결속한 전우들이 군화끈을 풀새없이 피로써 지킨 조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복구전역으로 용약 달려나가 땀을 동이채로 흘릴 때 격동된 그의 마음도 수도 평양으로 달리고있었다.
전쟁이 승리하였다고 하여 혁명이 끝났는가.
두손을 잃었다고 하여 복구건설에서 뒤전에 물러나야 하는가.
성한 몸이 아니여서 어제날의 전우들과 함께 다시 보위초소에 설수 없고 두손이 없어 벽돌 한장 제힘으로 쌓을수 없는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서운했다.
하지만 그는 수령의 전사된 본분이 끝났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영예군인학교의 교장, 그 직무를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으로, 당의 신임으로 대단히 무겁게 받아들였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학교의 모든 영예군인학생들이 수령의 사상과 정신을 공기처럼 호흡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들모두가 부상당한 몸이라 하여도 절대로 비관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락천적으로 생활하게 하여야 하며 가만히 앉아서 국가의 혜택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 보탬을 주는 인간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조국의 서북변의 한 산골군에서 영예군인들의 정신적성장을 맡은 책임적인 혁명초소의 일군이 된 그는 이런 각오를 가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크나큰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억척같이 일했다.
전쟁시기에는 물론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도 당과 국가에 손을 내밀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영예군인학생들을 발동하여 학교주변에 염소와 돼지, 닭과 오리를 키우는 목장을 만들어놓고 자체로 부식물을 생산하여 보장하였고 가야금, 바이올린, 피리, 탁구채를 만들어주어 그들모두가 신심과 랑만에 넘쳐 생활하게 하였다.
그가 5년간 교장으로 사업하는 기간에 이룩한 공적에 대하여서는 력사에 불과 몇토막의 단편적인 사실로밖에 알려져있지 않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조국을 위한 투쟁도 중단하지 않은 그의 투철한 혁명적신념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당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영예군인들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만 사는 그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각방으로 압력을 가하던 끝에 두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교장을 계속할수 있는가, 건강도 좋지 못한데 국가에서 보조금이나 받으며 휴식하게 하라고 하면서 끝내 해임시켰다. 그때 홍영근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에게는 우리 수령님과 당의 믿음이면 되오. 교장이면 어떻고 로동자면 뭐라오.>
그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든 오직 수령밖에는 그 누구도 모르며 수령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투철한 각오와 일념으로 가슴끓인 혁명전사,
이런 전승세대가 바로 준엄한 전쟁을 이겼고 재더미우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우렁찬 동음을 울리며 내 조국땅에 전설속의 천리마가 나래치게 했다. 이렇듯 훌륭한 혁명가, 애국자들이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단호히 쳐갈겼고 언제한번 피흘린 대가를 바람이 없이 국가의 번영과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줄기차게 분투하고 또 분투해왔다.
그 세대를 대표하는 애국자들중의 한 사람으로서 홍영근동지는 조선로동당이 키워낸 첫세대 혁명전사의 혁명성이 어떤것인가를 자기의 신념과 원칙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림없는 실천행동으로 증명했다.
목숨이 붙어있는한 두손이 없어도 혁명은 끝까지 해야 한다. 직무가 높든낮든, 어느 위치에 세우든 나는 항상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오직 수령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를것이며 수령님의 뜻을 충직하게 받들것이다.
이것이 홍영근동지의 투철한 인생관, 혁명관이였다.
전후 그가 변함없이 이어간 충성의 삶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본능으로 간직한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언제나 참된 혁명전사로 생을 빛내이게 된다는 고귀한 진리를 새겨주었다.
인민반장으로 수십년
홍영근동지가 세상을 떠난지 15년이 지난 1998년 6월 24일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평안북도 신의주시 마전동 인민반장>이라는 글발이 새겨진 영웅증서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가 걸어온 흔치 않은 인생길을 더듬어보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그처럼 어렵던 전후복구건설시기 남성인민반장은 그가 처음이였다.
근 30년간 인민반장으로 사업한 그가 전쟁시기에 대좌의 군사칭호를 지니고 평양특별시(당시) 정치보위부장으로 사업하였다는것과 수령옹위의 제1선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운데 대하여서는 그의 자식들과 한인민반에서 사는 이웃들조차 다 모르고있었다. 단 한번도 자기의 공적을 내놓고 자랑해보거나 그에 따르는 평가를 바란적이 없는 그였던것이다.
그런 그가 인민반장으로 사업하게 된데는 어떤 사연이 있는가.
신의주시 마전동(당시)으로 이사한 홍영근동지는 1956년 여름에 동초급당위원으로 선거되였다.
동초급당일군과 이야기하는 과정에 인민반장사업이 무척 힘들다는것을 알게 된 홍영근동지는 서슴없이 자기에게 그 일을 맡겨달라고 제기하였다.
몸의 수십곳에 상처자리가 있고 두손을 잃은 영예군인전쟁로병인 그가 인민반장사업을 하겠다고 제기했을 때 동초급당일군은 몸도 불편한데 동초급당위원으로서 자기들을 잘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홍영근동지는 누구나 선뜻 맡아나서기 어려워하는 인민반장사업을 스스로 떠안았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직분은 많아도 인민반장이라는 말처럼 인민과 제일 가깝게, 제일 정겹게 이어진 부름은 흔치 않다.
하지만 그때의 인민반장사업은 오늘날의 인민반장사업과 대비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으나 인민생활은 여전히 어려웠고 부족되는것이 너무도 많았다.
아직 반토굴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생활상곤난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도 지금처럼 진행되지 못하고있었고 복구건설의 노래가 곳곳마다에서 울려나오면서 새 생활이 약동하고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지 않았다.
그가 인민반장이 되였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의수를 한 그를 측은한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설복해도 집단을 위한 일에 선뜻 몸을 적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영근동지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와도 언제나 기수가 되여 인민반원들과 동주민들을 이끌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민반장사업은 인민을 당의 두리에 하나로 묶어세우는 사업이였고 인민반을 충성과 애국으로 굳건한 일심의 대가정으로 꾸리는 혁명투쟁이였다.
인민반장인 그는 언제나 인민반원들과 동주민들을 당정책관철에로 이끌었다. 전야에 더 많은 거름을 마련하여 보내줄 때에도 홍영근동지는 자신이 앞장서군 하였다. 그 몸으로는 일을 못한다고 만류하는 동일군들에게 그는 전쟁시기에 부상당했다고 참호에 앉아있은 병사는 없었다고 하며 거름지게를 남먼저 지고 인민반원들을 이끌어갔다.
사람들은 그의 불굴의 모습에서 두팔을 잃고도 턱으로 중기의 압철을 누르던 조군실영웅과 수류탄을 입에 물고 적진으로 뛰여들던 강호영영웅을 다시 보는것만 같았다.
그의 며느리인 전명화동무는 시아버지가 불편한 몸이지만 매일같이 이른새벽에 남먼저 겨드랑이에 비자루를 끼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하실 때마다 지나가시는 길을 쓸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추억하군 한다.
홍영근동지는 그때 단순히 길만 깨끗이 쓴것이 아니였다.
수령을 받드는 길에서 티검불 하나라도 앉을세라 자기의 량심을 어루쓸었고 인민반원들의 마음이 오직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고 나라를 위하는데 지향되도록 그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흐리터분한것들을 말끔히 쓸어냈다.
사람들은 점차 그를 동정의 눈빛이 아니라 존경의 시선으로 보았고 영예군인인민반장처럼 순결하게 살고 그처럼 헌신적으로 일해나가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 홍영근동지는 여러개의 수류탄파편이 곳곳에 박혀있는 몸으로 인민반원들을 한사람같이 단합시켜 동적으로 제일 우수한 인민반으로 만들었다.
나라에서 강철증산을 호소할 때에는 인민반원들을 발동시켜 파철수집을 하고 알곡증산을 해야 한다고 하면 또 그들을 거름생산에로 불러일으키였다. 때로는 동네아이들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여 구수한 옛말도 들려주었고 마을녀인들이 가정사를 하소연하면 집집마다 찾아가 그 애로까지 풀어주며 온 인민반의 대소사를 다 맡아안고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애쓴 동네의 큰아버지가 바로 그였다.
그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사람들은 그가 인민반장일을 그만두고 전쟁로병으로서, 영예군인으로서 병치료에 힘을 넣고 국가의 혜택과 사회적우대를 받으며 여생을 편히 지냈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정말 그랬더라면 그는 대좌의 견장을 단 군복을 입고 가슴에 영웅메달을 번쩍이며 성대하게 진행되는 전국로병대회에도 참가하는 영광을 지녔을수도 있다.
근 30년세월 궂은날, 마른날 가리지 않고 인민반사업에 헌신하던 그는 1983년 여름 동에서 진행되는 인민반장회의에 참가하였다가 전쟁시기에 입은 상처의 후과로 63살에 순직하였다.
눈을 감는 최후의 순간까지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로 불같이 산 그에게 당과 국가에서는 묻혀있던 전화의 나날의 공적까지 다 찾아내여 1998년 6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었다.
한생토록 변함없고 사심없이, 견실하고 대바르게 조국을 위해 헌신하며 후손들에게 애국적삶의 본보기를 가르쳐준 전승세대를 그처럼 높이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전승 6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그의 유해를 안치하도록 해주시고 온 나라가 다 알도록 그를 내세워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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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렬한 전쟁시기만이 아니라 전후복구건설시기와 사회주의건설시기에도 그는 생의 순간순간을 수령을 위한 복무, 조국을 위한 복무로 빛내여왔다.
그의 생의 매 구간중에서 어느 한 구간을 보아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참된 교본의 글줄이 빛발친다.
그에게 수여된 공화국영웅칭호는 단 한순간의 공백도 없이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변함없이 충실하여온 고결한 생에 대한 총적인 평가인것이다.
어떤 사람이 영웅인가. 이 물음에 조선로동당이 키운 첫세대 혁명전사인 홍영근동지가 고귀한 삶의 모범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명백한 대답을 주고있다.
수령을 받드는 충성의 마음을 한생토록 변치 않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을 위한 복무를 계속하는 사람이 참된 애국자이며 영웅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전쟁로병동지들이 한생 발휘해온 충실성과 용감성, 애국심은 오늘 수천만 인민들속에 그대로 높뛰고있으며 1950년대 준엄한 포화속에서 탄생한 위대하고 우수한 그 특질을 자기의 유전성으로 가지였기에 우리 혁명은 세대를 이어서도,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좌절과 후퇴도 없이 자기 위업을 자기의 힘으로 굴함없이 개척해나가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 땅의 새세대들이여,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위대한 전승세대의 고결한 인생관을 따라배우자!
바로 그들처럼 생의 시작부터 마감까지 오직 수령밖에 모르는 절대적인 충실성을 체질화, 인생관화할 때 우리 당과 조국은 충성의 한길에서 순간도 변치 않은 그 삶을 보석같이 빛내여준다.
과학의 힘으로 재해성기상현상에 대처하자
어떤 문제들에 초점을 박을것인가
재해성기상현상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서도 과학기술은 그 성과를 담보하는 만능의 보검이다.
과학연구부문에서는 재해성기상현상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서 나서는 관건적인 문제들에 연구력량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책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면 어떤 문제들에 초점을 박을것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각종 사고와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하겠습니다.>
농업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농사시작부터 마감까지의 전 과정에 과학의 힘을 강력히 안받침하여야 한다는 비상한 책임감을 안고 다시한번 분기하는것이 중요하다. 과학농사추진조 성원들을 비롯한 과학자, 기술자들은 올해의 불리한 일기조건에서도 기어이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를 점령하기 위하여 떨쳐나서는 농업부문의 근로자들과 일군들의 애국충성의 마음과 피타는 노력이 다수확으로 이어지도록 하는데 자기들의 지혜와 재능과 열정을 깡그리 바쳐야 한다. 그리고 재해성기상현상의 영향을 극복하면서도 높고 안전한 소출을 낼수 있는 과학기술적방도를 찾기 위하여 사색과 탐구를 기울임으로써 우량종자의 육종과 확보, 과학적인 재배기술확립, 물원천확보와 물절약형농법확립, 관개체계완비와 충분한 영농물자보장사업 등에서 알찬 연구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전력공업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전력설비들과 전력공급계통을 재해성기상현상으로부터 철저히 보호하기 위한 실제적인 과학기술적대책을 한가지라도 똑똑히 세우는것이 또한 중요하다. 최근년간 송변전시설의 벼락피해방지능력제고와 관련한 기술개발과 도입사업에서 이룩한 성과에 자만하면서 전진을 멈출것이 아니라 교훈과 빈틈을 먼저 찾고 새로운 일거리들을 계속 찾아 풀어나가야 한다.
국토환경보호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재해성기상현상에 의한 피해를 미리막는데서 의의가 큰 사업들을 과학기술적으로 해나가도록 하는데 필요한 연구성과들을 내놓는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특히 치산치수사업과 사방야계공사의 과학화수준을 높이고 산림조성사업을 과학적으로 진행하며 산불방지대책을 빈틈없이 세우고 바다가지역들에서 해일과 태풍피해를 미리막을수 있도록 해안방조제와 방파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보호시설을 건설하고 바람막이숲을 전망성있게 조성하는데서 연구종자를 잡고 끝까지 성공시켜야 한다.
도시경영부문과 건설부문을 비롯하여 재해성기상현상의 피해를 입을수 있는 모든 부문에서 필요한 사전대책을 철저히 세우고 피해를 입는 경우 그것을 시급히 복구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대책을 예견성있게 강구하는데서도 참으로 많은 일감이 과학기술부문앞에 제기되고있다.
재해성기상현상에 기민하게 대처해나가는데서 기상수문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있는 조건에서 기상수문국에 파견된 2월17일과학자, 기술자돌격대원들을 비롯한 이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의 역할은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다. 기상수문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현재의 앙양된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말고 항상 긴장된 책임의식으로 최대로 각성하고 분발해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기상예보의 과학성과 정확성, 신속성보장에 만전을 기하며 가치있는 첨단과학연구성과들로 종합적이며 립체적인 기상관측체계를 수립할수 있는 물질기술적토대를 더욱 믿음직하게 구축하여야 한다.
과학연구부문의 일군들은 과학자, 기술자들이 재해성기상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대책을 세우는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알찬 연구성과를 내놓도록 그들의 정신력을 적극 발동하고 떠밀어주는데 보다 큰 품을 들여야 한다.
자연의 광란에 포로되여 하늘만 쳐다볼것이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 맞받아나갈 때 모든 부문, 모든 단위가 재해성기상현상에 얼마든지 대처해나갈수 있다.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끝나지 않는 수업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야수성을 바로 알게 하고 영원히 잊지 않게 한 조국해방전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부모와 형제자매들, 귀중한 전우들과 벗들을 앗아가고 참혹한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얼마전 룡연군계급교양관을 찾았던 우리는 한통의 편지를 보게 되였다. 그것은 평성시에서 살고있는 한 녀성이 몇해전 새세대들에 대한 계급교양사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자기 어머니가 겪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이야기를 적어보낸것이였다.
<저의 어머니 로용애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이였습니다. 하지만 전쟁때 원쑤놈들에 의해 입은 상처로 교원생활을 10년밖에 더 할수 없었습니다. …>
로용애녀성의 고향은 황해남도 룡연군 석보리였다.
해방전 그의 아버지는 일곱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품팔이를 하였다. 그러던 아버지는 해방된 조국땅에서 일군들을 키우는 학교를 졸업하고 면인민위원장(당시)으로 일하게 되였다.
나라없던 세월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던 자기를 어엿한 일군으로 키워준 그 품이 너무도 고마와 그는 새 조국건설에 모든 힘을 다 바쳤다.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던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그는 중요한 문건들을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느라 뒤늦게 후퇴의 길에 올랐다가 미국놈들에게 체포되여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아직은 아버지의 최후를 모르고있는 로용애녀성의 집으로 해방전의 지주놈과 녀편네가 나타났다. 놈들은 5년동안 <제땅>에서 농사지은 쌀을 다 내놓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멸살시키겠다고 행패질을 하던 끝에 집재산을 몽땅 걷어갔다. 놈들의 만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후 그의 집으로 <치안대>놈들이 달려들었다. 놈들은 19살 난 그와 어머니, 남동생을 다짜고짜 고문장으로 끌고갔다.
놈들은 남편이 문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대라고 악을 쓰며 어머니에게 뭇매질을 가하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입을 열지 않자 방법을 바꾸어 그들을 서로 다른 감방에 가두어넣고 고문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어느날 감방에서 로용애녀성을 끌어낸 놈들은 그가 문건을 감춘 장소를 모른다고 잡아떼자 사정없이 발로 걷어차며 모진 악형을 들이대였다. 매질을 할 때마다 신음소리를 낸다고 놈들은 그의 발에서 버선을 벗기여 입을 틀어막고 계속 고문을 들이댔다.
그가 실신하여 쓰러진 바닥에는 피가 질벅하였다.
로용애녀성에게서 더는 비밀을 알아낼수 없다고 단정한 놈들은 빨갱이족속들에게는 총알도 아깝다고, 깨깨 말리워죽여야 한다고 뇌까리며 그와 어머니, 남동생을 지하감방에 처넣었다.
놈들의 만행은 그의 가족들에게만 국한된것이 아니였다.
원쑤놈들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끌어다 잔인한 고문을 하고는 감옥안에 가두고 물 한모금도 주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명씩 감방에서 숨을 거두었으나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후 놈들은 그의 남동생과 함께 수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을 끌어내다가 생매장하고 총으로 쏘아죽이는 몸서리치는 살륙만행은 매일이다싶이 계속되였다.
그러나 원쑤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인생의 참된 진리를 체득한 인민들의 의지를 꺾을수 없었으며 얼마 안있어 인민군대의 재진격과 함께 마을은 해방되고 감옥에 남아있던 인민들도 모두 구원되였다.
로용애녀성은 전화의 나날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전쟁승리를 위한 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였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고향마을에서 얼굴에 늘 웃음꽃이 피여있는 명랑한 처녀였다. 그러나 원쑤들에게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그때부터 그는 아예 딴사람이 되였다.
구천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전에는 한시도 마음편히 살수 없기에, 날로 행복이 꽃펴나는 이 땅에 어떤 처절한 피의 력사가 새겨져있는가를 후대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를 자각했기에 전후 그는 교단에 섰다. 하지만 원쑤들의 고문의 후과로 그는 10년만에 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의 수업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그가 교단에서 들려준 피맺힌 이야기를 어제는 그의 제자들이, 오늘은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가며 후대들의 가슴속에 새겨주고있다. 래일에는 또 다른 세대들이 그날의 수업을 계속하여 받을것이다.
그렇다. 복수자의 수업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넘보며 미쳐날뛰는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이 살아있는한 이 땅에서 계급투쟁의 진리를 만장약한 복수자들의 대오는 끝없이 자라날것이다.
로씨야대통령 조국에 대한 충실성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강조
로씨야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이 12일 국경절(로씨야의 날)을 맞으며 크레믈리에서 진행된 로력영웅칭호와 국가상을 수여하는 의식에 참가하여 연설하였다.
그는 <로씨야의 날>이라는 이 위대한 말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되여있는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더 높은 성과와 승리에로 모두를 고무하여준다고 말하였다.
로씨야는 예로부터 다민족국가로 형성되였으며 로씨야의 다민족인민은 언제나 공동의 리익, 나라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였다고 하면서 그는 조국에 대한 진실한 충실성은 로씨야의 힘과 자주성, 주권을 강화해준다고 언명하였다.
그는 로력영웅칭호와 국가상을 수여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더 큰 성과를 거두기를 축원하였다.
로씨야외무성 유럽동맹의 제재에 대응할 립장 표명
로씨야외무성 부상 알렉싼드르 그루슈꼬가 11일 신문 <이즈베스찌야>와의 회견에서 유럽동맹의 제재에 대응할 립장을 표명하였다.
최근 유럽동맹이 18번째 대로씨야제재일괄안을 준비하고있는것과 관련하여 그는 유럽동맹이 자기자신에게 총질을 하고있다고 조소하였다.
로씨야는 유럽동맹이 어떤 제재를 고안해냈는지 지켜볼것이며 이전에도 그러하였듯이 제재에 대응할것이라고 그는 강조하였다.
충돌이 강요된다면 모든 미군기지들이 타격권안에 들게 될것이라고 경고
이란국방 및 무력병참상이 1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군사적위협에 굴하지 않을 자기 나라의 립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상에서 결실을 보지 못할 경우 충돌이 일어날것이라고 위협하고있는데 대해 언급하면서 <만일 우리에게 충돌이 강요된다면 모든 미군기지들은 우리의 타격권안에 들게 되며 우리는 주둔국들에 있는 미군기지들을 과감하게 공격할것이다.>고 언명하였다.
한편 이보다 앞서 10일 그는 이란정보계가 이스라엘정탐모략기관인 모싸드의 과장된 신화를 깨버렸을뿐 아니라 음흉한 유태복고주의정권의 허세를 꺾어놓음으로써 또 한차례의 강타를 안겼다고 강조하였다.
미국의 입국금지조치를 비난
적도기네부대통령이 10일 자국공민들에 대한 미국의 입국금지조치를 비난하였다.
얼마전 미국집권자가 국가안전에 위협으로 된다고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챠드, 적도기네, 이란, 예멘 등 나라 공민들의 입국을 전면금지하는 포고문에 서명한것과 관련하여 그는 이를 실효성이 없는것으로 락인하였다.
그는 미국이 발표한 이 조치로 하여 적도기네가 손해볼것은 없다고 하면서 미국은 적도기네사람들의 우선적인 려행목적지가 아니며 자기가 국민들에게 미국에로의 려행을 중지하도록 권고할것이라고 말하였다.
젤렌스끼의 망발을 배격
마쟈르외무 및 무역상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젤렌스끼의 망발을 배격하였다.
최근 젤렌스끼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지원을 거절한 마쟈르수상이 실책을 범하고있다느니, 대다수의 마쟈르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유럽동맹가입을 지지한다느니 하며 횡설수설한것과 관련하여 그는 이를 불손한 정치선동으로 락인하였다.
그는 마쟈르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납입하지 않고 평화를 주장하기때문에 젤렌스끼가 악선전을 하고있다고 까밝혔다.
젤렌스끼는 마쟈르에 자기 국민의 돈을 털어 우크라이나에 보내주고 군대와 무기를 들이밀어 전쟁을 부추기는 괴뢰정부가 수립되기를 바라고있다고 그는 단죄하였다.
마쟈르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지 않을것이며 분쟁의 평화적조정을 주장한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살륙만행
가자지대에서 2023년 10월이래 이스라엘군에 의해 학살된 팔레스티나인수가 5만 5 104명, 부상자수는 12만 7 394명에 이르렀다.
11일 가자지대 보건당국은 지난 24시간동안에만도 이스라엘군이 120명의 팔레스티나인을 살해하고 47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폭로하였다.
유엔팔레스티나피난민구제사업기구는 이스라엘이 가자지대에 대한 봉쇄를 철회하고 기구의 원조활동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