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암투병에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박근혜<정부>의 공안탄압과 인권유린에 맞서 20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인 김혜영양심수가 하루빨리 석방되길 바라며 학생운동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온 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의 삶과 길에 대해 연재한다.

김혜영양심수는 암투병을 하면서 수술로 갑상선을 완전히 적출하고 평생 호르몬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태가 됐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지난 시절 그 결심대로 변함없이 활동하고 생활하려 노력했다. 


국제포럼을 위해 헌신


2008년 김혜영양심수는 파리국제정책포럼조직위원회에서 조직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김혜영양심수는 남코리아에서 통일과 민주·인권분야에서 활동해온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국제정책포럼의 성사를 위해 여러가지 역할을 헌신적으로 했다. 그해 파리국제정책포럼은 남코리아의 주요진보인사들을 파리로 초청했으며 코리아통일·동북아평화·반신자유주의를 주제로 토론과 강연, 문화행사까지 다채롭게 펼쳐졌다. 


2008년의 파리국제정책포럼의 성과를 딛고 2009년에는 전세계 진보주의자들의 축제인 프랑스 뤼마니떼축제에서 제2회 파리국제정책포럼이 열렸다. 계속되는 국제연대와 실속있는 정책연구토론이 축적되면서 2011년, 2012년에는 서울에서 각각 <전환>, <민중주권>을 주제로 코리아국제포럼이 열렸고 2015년에는 민주국제포럼이 개최됐다. 


암투병으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김혜영양심수는 사업과 투쟁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저녁에는 들어와 지쳐 쓰려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김혜영양심수는 그 성격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피곤함마저 잘 드러내놓지 않았다. 2013년부터는 21세기서울여성회에 회원으로도 참여해 활동했다.


갑작스런 압수수색과 기독교회관 농성돌입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그 3일후인 2014년 12월22일 코리아연대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경찰은 김혜영양심수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까지 들이닥쳤다. 압수수색에 이어 3차례의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김혜영양심수는 당시 압수수색을 받았던 이적목사와 코리아연대(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회원들과 함께 2015년 1월8일 농성단(민주주의수호와공안탄압저지를위한피해자농성단)을 꾸리고 기독교회관 농성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에 대해 <전 단순한 사람.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복잡한 순간에 섰을 때, 중요한 판단을 할 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이 맞다고 판단하면 굉장히 빠르게 판단하는 편이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게 득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하며 농성을 시작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운동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농성과정에서도 끊임없는 실천을 진행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냈다. 그는 농성활동에 대해 <농성투쟁과정은 나에게 학교 같다. 부족한 점을 총화하고 혁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농성투쟁하는 과정에서 바닥을 많이 봤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 숨겨져 있던 나의 모습. 그런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 드러내지 못했던 게 드러나는 거다. 그게 이제 부끄럽지 않다. 동지들안에서 부족한 걸 깨닫고 그걸 더 딛고 잘할 수 있다는 혁신의 과정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영양심수는 강도높은 농성투쟁속에서 자신의 건강의 한계로 인해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곤란보다 훨씬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농성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많이 있다보니 사람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이 있다. 초반 한달은 그렇게 부딪히고 깨닫는 과정이었다.>면서 <운동은 사람과의 관계,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 이 사람을 파악하고 이 사람을 진심으로 알려고 하는데서 시작한다는 것도 배운다. 근본으로 돌아가게 됐다. 운동이 뭔지 생각하고 저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값진 시간이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공안정국을 분쇄하고 투쟁을 더 잘하고자 시작한 농성투쟁


지난해 농성중이었던 3월30일 세월호유족들도 세월호1주기를 앞두고 416시간농성을 벌였다. 당시 농성단은 세월호유족들의 삭발과 농성에 뜻을 함께 하기 위해 일부농성단원이 삭발을 했다.


김혜영양심수는 당시에 <유가족들이 삭발을 하시고 투쟁을 시작하는 것을 여기에서 영상으로 봤다. 우리가 왜 이곳에서 농성을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구속과 수배를 피하고 농성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지금 정국에서 투쟁을 더 잘하고, 공안정국을 분쇄하고자, 박근혜<정권>이 민중의 삶을 파탄시키고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고자 투쟁을 시작했는데 했다. 세월호문제는 그 중심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족들의 투쟁을 보며 운동적 대의를 떠나 심정적으로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이곳의 한계적 상황에서 유가족을 지지하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농성단원 일부가 삭발을 했다. 앞으로 어떤 것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건 우리가 가진 마음을 주변의 많은 분들과 공유해 더 많은 분들이 광화문으로 모이고 이 투쟁에 함께 하고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4월말 코리아연대회원들이 집회도중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농성중에 기독교회관에서 민주국제포럼을 하며 바쁘고 긴장된 상황이었는데 코리아연대는 긴급기자회견과 항의집회를 전개했다. 농성중이던 김혜영양심수도 과감하게 농성장을 나와 그 자리에 참석해 코리아연대회원들을 연행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당시의 사진이 김혜영양심수의 모습이 담긴 몇안되는 사진중 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