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초대의장인 흰돌 강희남목사 7주기추모·출판기념회가 5일 오전10시30분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흰돌강희남기념사업회, 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 주최로 개최됐다.
7주기추모·출판기념회에는 통일애국인사, 민주인사, 종교인, 노동자, 여성, 청년학생 등 각계각층 60여명이 참가했다.
강희남의장은 지난 2009년 6월6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먼저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강희남의장을 비롯해 선배열사들과 미국과 박근혜<정부>의 폭압정치에 항의하며 목숨건 무기한 옥중단식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김혜영양심수를 비롯한 모든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며 묵상한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다음으로 박근창민자통서울회의의장의 강희남의장약력을 소개한 후 권오창우리사회연구소이사장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권오창이사장은 <범민련정신따라 조국을 통일하자!>·<양키놈들 내치고 조국을 통일하자!>고 외친후, <1994년 북의 김일성주석이 서거하자 김영삼은 전쟁소동을 벌였다. 그러나 강희남선생은 <내가 같은 민족으로서 김주석조문을 가야겠다. 길 비켜라.>라며 나섰다. 그리고 1999년 범민련투쟁에 나섰다. 당시 개량주의자들이 3자연대가 아닌 남측만의 대회를 열려고 하자 강희남선생께서는 <3자연대 없이는 통일투쟁, 범민련 있을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고, 4만명이 넘는 군중들이 관악산을 넘어 서울대로 모였다. 그 이듬해 6.15공동선언이 나왔다. 만약 99통일대축전에서 강희남선생의 통일정신이 아니였더라면 과연 6.15공동선언이 열릴 수 있겠는가.>라고 강희남의장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코리아연대가 강희남선생의 정신을 이어 김혜영동지가 지금 목숨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코리아연대동지들 힘내라.>고 지지격려한 후, <며칠전 중국 시진핑국가주석과 북 노동당중앙위 리수용부위원장이 만났다. 이는 유엔안보리제재2270호가 공중분해 된 것이다. 미국의 클래퍼국가정보국장이 비밀리에 방남했다. 이러한 정세는 우리민족과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부가 끝났을 말한다.>고 밝혔다.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이적목사는 <강희남목사는 이땅의 자주화를 위해 실천하다 돌아가신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목회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진로를 제시해준 스승님>이라고 전하면서 <그분은 이땅의 자주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자주없이 통일없다. 오로지 자주만이 생명이고 우리의 명줄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짖다가 자결까지 하셨다.>고 추모했다.
계속해서 <이땅의 자주의 주체자로서 저들과 싸우기 위해 강희남목사님은 비뚤어지고 어긋나는 것들과는 가열차게 투쟁하라고 하셨다. 강목사님의 말씀을 새겨 계속 정진하고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코리아연대는 추모사를 통해 <강희남의장님께서는 민족을 가장 사랑하셨고 독재를 증오했기 때문에 억압을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실천하셨다. 호헌조치규탄투쟁·방북조문시도투쟁·명동성당농성투쟁·맥아더동상철거투쟁 등 역사적인 투쟁들은 강희남의장님의 이름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수많은 탄압과 투옥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굴함없이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생이었고, 생의 마지막까지도 의연히 조국을 위해 바치셨다.>고 밝혔다.
이어 <박근혜폭압<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리아연대에 광적인 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박<정부>의 공안탄압과 인권유린에 맞서 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이 5월26일부터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당장 병원으로 가야할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박<정부>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선택을 했고 오늘도 단식11일째를 맞고 있다. 의장님께서 87년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치며 40일간의 역사적인 단식으로 전두환에 맞섰던 것처럼 30여년이 지난 지금 김혜영회원이 위태로운 몸을 이끌며 박근혜에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90년대 범민련을 <이적단체>로 만들려고 발악했을 때도 원칙을 지키고 <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주한미군철수·보안법철폐>구호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강희남의장님의 정신을 따라 박근혜<정부>가 코리아연대를 <이적단체>로 만들려고 하고 그 어떤 탄압을 해오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더욱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면서 <강희남정신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감옥안에서, 미대사관앞에서, 청와대앞에서, 백악관앞에서 멈추지 않고 굴함없이 투쟁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희남의장의 차남인 강익현원장은 가족인사를 통해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내형제고 내모친이라고 했는데 나보다 더 오히려 강희남목사님의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앞장서 가는 여러분들이 형제요 모친이 되실 것>이라며 <민족사에 꽃피울 날이 말지 않았음을 서로 어깨걸고 격려하며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흰돌 강희남목사의 자서전 <한목사의 생애와 사상> 출판기념회가 이어졌다.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 송무호대표는 <강희남선생님의 정신은 이땅의 자주와 민주, 민족사랑, 민중사랑, 자주의 구체적인 요체에 있어서 반미>라며 <사람이 생각과 뜻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에 있어서 강희남선생님의 정신이 더더욱 중요하다. 강희남선생님처럼 그뜻을 강고하게 세우고 그 뜻에 한치의 어긋남없이 자기의 생을 살아가고 그 실천활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오늘 추모제를 맞이해 나에게 가장 큰 숙제로 나가온다. 오늘 추모제를 기해 나 자신부터 조금더 분발해서 강희남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조덕원21세기코리아연구소소장은 추천사를 통해 <우리에게는 영원한 범민련의장님이다. 그래서 강희남의장님이다.>라며 <강희남의장의 삶은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과 투쟁이다. 그 불굴의 투쟁정신, 강희남정신을 계승해 결성된 조직이 바로 코리아연대이다. 강희남정신은 코리아연대의 기치이고 강령이며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범민족대회와 명동성당농성장, 맥아더동상앞과 미대사관옆에서 제국주의외세와 사대매국노들을 향해 언제나 민족정기를 당당히 대변하던 분! 조국통일운동사에 영원히 빛날 강희남의장의 한생이 바로 이 자서전에 생생히 담겨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라며 <우리는 의장님의 뜻을 따라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겨 완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음으로 이천재 범민련남측본부고문의 추모및출판기념강연이 이어졌다.
이천재고문은 <돌이켜보면, 재판을 강희남선생과 같이 두번 받았고 감옥을 두번 같이 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강희남선생이 진짜 혁명가로구나 느끼기도 했고, 어떨때는 참 군자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운을 뗀 후, <강희남의장을 한번도 목사라고 부른 일이 없다. 강희남선생에 대해 이 불행한 시대에 보편양심, 보편애국심을 위해 우뚝 선 지도자이지 목사님이라는 틀에서 그분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고 회고했다.
이어 <민주주의와 조국의 평화를 위해 내가 목숨을 바칠 이유가 있으면 바친다라는 것이 강희남선생의 사상이다. 그런 군자다운 모습이야말로 혁명가같은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대의명분을 위해서는 아무 때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분이 강희남선생이다. 강희남선생의 높은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허물은 나에게도 있고 우리모두에게도 있다. 100, 200년이 지나도 분단민족의 이 불행한 비극의 역사에서 강희남선생의 족적은 분명하게 찍혀있다.>고 역설했다.
참가자들은 영정에 헌화하며 강희남정신을 깊이 새기고 고인의 넋을 기렸다.
7주기추모·출판기념회가 끝난후 참가자들은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강희남의장의 <남기는 말>, <김혜영 석방!>·<국가보안법철폐!>·<박근혜퇴진!>·<끝내자 박근혜!>·<북미평화협정체결!>·<민중총궐기!> 등의 구호가 적힌 가로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미대사관앞에서 세월호광장을 거쳐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다음은 코리아연대의 추모사와 강희남의장의 약력이다.
강희남정신으로 끝까지 싸워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로 양키놈들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자시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의장님을 영결한지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의장님께서는 민족을 가장 사랑하셨고 양키를 가장 증오하셨습니다.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를 실천하셨고, 민중을 사랑하고 독재를 증오했기 때문에 억압을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호헌조치규탄투쟁·방북조문시도투쟁·명동성당농성투쟁·맥아더동상철거투쟁 등 역사적인 투쟁들은 강희남의장님의 이름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탄압과 투옥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굴함 없이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생이었고 생의 마지막까지도 의연히 조국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이런 의장님이시기에 코리아연대는 강희남정신으로 살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박근혜폭압<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리아연대에 광적인 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의 공안탄압과 인권유린에 맞서 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이 5월26일부터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김혜영회원은 2번의 갑상선암수술을 받은 암투병환자이며 현재는 옥인동대공분실에서의 살인적인 수사후유증으로 심각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당장 병원으로 가야할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박근혜<정부>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선택을 하였고 오늘로 단식 11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의장님께서 87년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치며 40일간의 역사적인 단식으로 전두환에 맞섰던 것처럼 30여년이 지난 지금 김혜영회원이 위태로운 몸을 이끌며 박근혜에 맞서고 있습니다. 90년대 범민련을 <이적단체>로 만들려고 발악하였을 때도 원칙을 지키고 <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주한미군철수·보안법철폐>구호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강희남의장님의 정신을 따라 박근혜<정부>가 코리아연대를 <이적단체>로 만들려고 하고 그 어떤 탄압을 해오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더욱 당당히 맞서 싸우겠습니다. 옳은 일이라면 감옥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의장님의 정신처럼 우리는 감옥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전에 <죽어도 나라를 위해서 죽고, 우리민족 역사발전을 위해서 죽고, 우리민족 통일을 위해서 죽고, 양키들을 몰아내는 일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하는 그런 정신으로 싸울 것>이라던 의장님의 연설대로 우리는 그렇게 싸울 것입니다. 이번 7주기에 맞춰 의장님의 한생이 담긴 자서전이 발간되었습니다. 강희남의장님의 한생은 운동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언행일치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장님은 생전에 감옥에 있거나, 감옥밖에 있을 때는 미대사관앞과 맥아더동상앞을 자택보다 더 다니셨습니다. 강희남의장님의 정신을 따라 우리는 박근혜시대에 그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장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말을 실천에 옮겨 지금의 이명박인 박근혜를 끝장내는데 앞장서겠습니다. 강희남정신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감옥안에서, 미대사관앞에서, 청와대앞에서, 백악관앞에서 멈추지 않고 굴함없이 투쟁할 것입니다. 2016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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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 강희남 의장 약력 1920년 1월 13일 전북 김제 농가 강학용과 류성녀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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