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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 항쟁의기관차〉 일제강점기, 일제를 이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전쟁 

현재 북정권수립의 뿌리는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에 있다. 김일성주석이 해방이후 건국당시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추대되고 북코리아의 공화국시조인것은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조선인민혁명군의 사령관이었기때문이다. 김일성주석은 1930 카륜회의에서 조선인민의 힘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게 무장투쟁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아 독립을 이룩할 노선을 제시하고 항일무장투쟁노선·반일민족해방통일전선노선·자주적당창건노선을 선언했다. 1931.12 김일성주석은 유격전을 정규전의 보조적수단으로 보던 기존관념에서 벗어나 상비적인 혁명무력에 의한 유격전을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규정하고 무장투쟁의 형식에 대한 문제를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유격대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두만강연안의 산악지대와 혁명화된 농촌지역들에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역을 창설하고 그주변농촌지역을 혁명화해 유격구역이나 다름없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지하혁명투쟁에서 단련된 청년전위들을 골간으로 무장대오를 조직하고 실천속에서 검열된 노동자·농민·애국청년들을 받아들여 유격대오를 꾸리고 무장력의 2대요소의 하나인 무장을 갖추기 위해 <무장은우리의생명이다!무장에는무장으로!>라는 구호를 들고 적의 무기를 빼앗아 자신을 무장하는 동시에 자체로 무기를 마련하는데 주의를 돌렸다. 당시 다른 나라에 수류탄공장을 지어달라고 청원하고 이를 기다리는 현상이 있었는데 김일성주석은 자체의 병기창을 만들도록 했으며 여기서 <연길폭탄>을 제작해 공급했다. 1932.4.25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역량이 강화되면서 통일적인 지휘체계의 사단체계로 개편해 1934.3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시켰다. 1933.3 왕재산회의를 조직하고 무장투쟁을 국내로 확대발전시킬 방침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과업을 밝혔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중국지역에서 활동하는 조건을 고려해 조·중인민들의 공동투쟁에도 특별히 관심을 돌렸으며 경우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활동했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연군으로 중국군과의 연합작전에서도 지휘관으로 역할했다. 1935 유격근거지를 주동적으로 해산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새로운 단계로 전진시켰다. 1936~40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의 토벌작전을 상대하면서도 두차례의 국내진공작전을 승리적으로 전개했고 조선인민들에게 일제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신심을 안겨줬다. 1939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나치독일과 추축국을 이루며 소련사회주의세력과 미영제국주의세력에 전쟁을 선포하자 국제적인 반파쇼전선이 형성됐으며 이는 항일전쟁에서 우리민족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일제는 전세계를 적으로 돌림으로써 그패망을 자처했다. 그러나 조선의 해방은 조선인민의 힘으로만 가능했다. 김일성주석은 조선인민혁명군의총공격과 전인민적봉기배합, 소부대와국내무장봉기조직들의배후연합작전의 조국해방3대노선을 밝히고 이를 준비했으며 1945.8.9 항일전쟁정세가 무르익자 총공격명령을 하달했다. 작전의 승리를 위해 이미 전날 밤 선봉군토리·훈춘현남별리·동흥진을 비롯한 적요새구역의 여러군사요충지들에 대한 습격전이 벌어졌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전쟁에서 우리민족이 반드시 승리하는 주·객관적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북에서는 이에 기초해 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독립국가를 건설한것을 높이 평가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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