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 기관차

[항쟁의기관차-8] 중동반제전선의 중심에 선 이란

동구사회주의나라들이 소련의 해체와 함께 모두 무너졌다면 2차대전이후 반제반봉건혁명의 길을 걸은 중동·북아프리카나라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혁명적원칙에서 멀어졌다. 아랍민족국가들은 이스라엘의 건국에 반대해 함께 투쟁했지만 이스라엘이 미·영의 지원을 받아 중동지역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제국주의의 첨병이 됐다. 2차대전이후 이집트는 <자유장교단>의 반제반봉건혁명으로 왕정을 전복하고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집트혁명지도자 나세르는 시리아의 바트당과 함께 아랍연합공화국을 수립했으며 반제반시오니즘투쟁에서 아랍국가들의 행동통일보장과 나아가 아랍의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 중동의 아랍국가들은 반시오니즘으로 단결했으며 석유자원주권실현을 위해 세계주요산유국들과 함께 OPEC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중반 사우디는 미국의 정치군사적지원을 대가로 석유달러체제를 수용했고 1970년대말에는 이집트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아랍국가들은 이집트와 단교했고 당시이집트지도자 사다트는 암살당했다. 뒤를 이은 무바라크는 2011 반정부시위로 물러나게 될때까지 국가비상체제를 유지해야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1960년대말 공화국을 수립하고 리비아내에서 미군과 외국석유자본들을 몰아냈다. 미국은 1979 리비아를 첫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1991 소련의 몰락과 미국의 이라크전쟁발발은 카다피에게 충격을 줬고 1999 미국이 유고공습을 하던 시기 카다피측이 화학무기를 폐기하겠다며 미국에 비밀협상을 제안했다고 한다. 부시정권때 리비아와 미국은 수교했으나 카다피정권이 전쟁억지력을 잃고 무장해제될 무렵 오바마정권은 <아랍의봄>시기에 군부반란과 무력침공을 배합해 카다피정권을 붕괴시켰다. 미국이 <리비아식>이라고 하는것은 앞에서는 수교와 협상을 내세우고 뒤로는 급변사태공작·군부와해공작을 감춘것이다. 오바마정권2기 이란에 핵협상을 제안했다. 이란은 리비아혁명이후 10년뒤 종교혁명으로 왕정을 전복하고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강력한 반제반미노선을 취했고 핵·미사일개발에 나섰다. 민족적·종교적차이에도 시리아와 헤즈볼라, 하마스를 지원하고 꾸드스·이란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공동전선을 이뤄냈다. ISIS와의 전쟁은 시리아를 흔들지못했고 러시아의 군사지원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본질을 폭로했다. 팔레스타인에 손을 내민 클린턴에 비해 부시정부에서는 등을 돌렸고 다시 오바마정부는 팔레스타인을 포용하는 노선을 취했다. 현재 중동에서는 반제전선이 확장되고있으며 그중심엔 이란이 있다. 이란은 1990년대이후 일관되게 북과 함께 가장 강력한 반제무장투쟁세력의 입장을 견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