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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 항쟁의기관차〉 공화정, 노예소유자들의 권력분점으로 시작

국가가 형성되던 고대시기 동·서양의 모든 나라들에 수립된 통치형태, 정치체제는 군주제였다. 고대동방나라들의 군주제는 중앙집권력이 강했으며 공화제형태가 나올수 없었던 반면 서방나라들은 국가의 중앙집권력이 강하지못해 분권적경향이 컸으며 일련의 나라, 도시국가들에 군주제이외에 편협하고 폐쇄적인 공화제형태의 정치체제가 수립됐다. 고대로마의 귀족공화제와 고대그리스의 아테네도시국가에 존재했던 민주공화제가 대표적이다. 고대로마의 공화제는 당시 지배계급인 노예소유자계급의 소수귀족계층속에서 선거된 대표들로 조직구성된 대표기관이 국가의 최고권력을 틀어쥐고 행사하는 귀족공화제였다. 당시 고대로마의 귀족공화제는 키케로와 같은 노예소유자귀족계층의 대변자들에 의해 정당화·합리화됐다. 고대그리스의 아테네도시국가의 공화제는 노예소유자계급을 비롯한 지배계급 전체성원들에 의해 선거된 대표기관이 국가의 최고권력을 틀어쥐고 행사하는 이른바 민주공화제였다. 아테네도시국가의 공화제는 데모크리토스·아리스토텔레스등에 의해 민주주의적인 공화제로 인식됐다. 고대로마의 귀족공화정은 노예제사회의 근본적한계를 가졌으며 강력한 권력자의 등장과 함께 여지없이 파괴됐다. 브루투스는 공화정을 훼손하려는 케사르를 암살했고 브루투스는 케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의 2차3두정치에 의해 정리됐다. 옥타비아누스는 단계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공화제를 사실상 군주제로 바꿔놓았다. 중세에 이르면서 동·서양의 지배적인 의식형태는 종교적신앙·미신이었으며 종교와 교회가 국가정치와 밀착돼 군주를 신성불가침화하고 군주의 중앙집권력을 강화하면서 중세기 동·서양의 모든 통치형태는 군주제로 됐다. 따라서 중세기에는 공화제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정치학설은 공공연히 나오지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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